친정 엄마에게 걸려온 전화가 반갑지 않은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제 자존심을 건들기도 하고 심리적으로 불안하게 만들 때가 많습니다//
내가 자기한테 물어볼 일을
자기가 나한테 물어보면 어떡해요? ㅎㅎ
자기하고 자기 엄마 사이의 일을
자기가 알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
내가 뭐 점쟁인 줄 아나?
나를 도대체 뭘로 보고, 과대평가를 하는 것 같네요.
엄마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할 때 그런지
내용이 없고 수박 겉핥기식이에요.
‘엄마가 전화하고 나면 기분이 나쁩니다’
이런 말 하지 말고
‘엄마가 뭐라고 할 때 기분이 안 좋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얘기를 한번 해보세요.
...
근데 자기가 이제같이 엄마하고 같이 이렇게 살아보면
두 사람의 생각이 같아요? 달라요?
전혀 다르니까 나는 애가 밥 먹으면 먹는 대로 주고
안 먹으면 좀 놔뒀다 또 새로 먹는다면 주고
이건 내 생각이고
엄마가 아기를 키울 때는
애가 밥을 안 먹으면 ‘왜 안 먹는지, 연구를 하든지, 따져 묻든지’ 해서
어쨌든 먹여야 된다, 이렇게 생각하잖아요.
그러면 누구 생각이 옳은 거예요?
그러니까 두 사람의 생각이 다른 거예요? 한 사람의 생각이 옳은 거예요?
근데 다른데 왜 자기가 옳다고 생각해요?
그럼, 엄마의 생각이 틀렸어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으면
‘엄마는 그렇게 생각하구나, 그런데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누가 옳고 그런 게 아니라 두 사람의 생각이 다르다.’
이걸 먼저 받아들여야 돼요.
자기는 내 생각은 옳고, 엄마 생각은 틀렸다 하니까
기분이 나쁜데
‘엄마는 그렇게 생각하구나.’
그래도 자기처럼
내가 옳아서가 아니라
‘나는 내 아이니까 내 식대로 키우겠다’
이런 관점이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엄마 생각이 기분 안 나쁘죠.
‘그렇게 할 수도 있겠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그러나 나는 이렇게 하겠다’
엄마가 오면
‘네네 네네 엄마 알았어요. 엄마 말씀대로 한번 해볼게요.’
이렇게 하고 뭐 내 아이니까 안 해도 되고
두 번째는 ‘엄마 말도 일리가 있는데 나는 내 아이니까 내 식대로 할게요.’
이렇게 얘기해도 되고
그래서 그건 별문제 아니에요.
근데 그 말이 왜 쉽게 나오지 않을까요?
자기가 생각이 옳다는 게 너무 강하니까 그렇지.
‘내 아이 키우는데 왜 니가 간섭하나’ 이렇게 생각하니까 그렇지.
그리고 자기가 어릴 때
엄마가 하는 것이 자기가 자랄 때 좀 못마땅한 게 많았던 것 같아.
엄마가 내 어릴 때 내가 생각해도
엄마 하는 게 꼭 옳은 거 아니야
엄마 그래 잘 키우면 왜 내가 엄마한테 이렇게 미움이 있을까?
엄마가 어릴 때 그렇게 한 게 나는 별로 안 좋았다.
근데 그걸 또 내 아이한테 하란 말이야.
이런 식으로 엄마가 나에게 한 것이
내가 안 좋은 감정이 지금 남아 있기 때문에
아이 키우는 거를 엄마식으로 하라는 거에 대해서
좀 반발이 있는 거지.
근데 다 뭐 반발만 하면 알았으면
‘엄마는 엄마대로 해. 난 내대로 할 거야.’ 이래 되는데
또 엄마하고 자라면서 또 좋은 점도 있었잖아요.
엄마가 너무 나한테 간섭하면
한쪽으로는 간섭해서 반발이 있고
다른 한쪽은 또 그것을 사랑으로 느낄 수도 있거든요.
그러니까 한쪽은 사랑으로 느끼고, 관심으로 느끼고
한쪽은 또 반발하고 간섭으로 느끼고
이렇게 두 개를 다 느끼지 한 개만 안 느껴요.
우리가 부모에 대해서
애정도 느끼고, 미움도 느끼고
두 개를 다 느끼니까 갈등이 있지.
미움만 느끼면 안 만나면 끝이에요.
사랑만 느끼면 갈등이 없죠.
근데 항상 거기에는
‘뭐 해라 뭐 해라 뭐 해라’ 하는 데는
애정도 들어있고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을 넘어서서 하기 때문에 간섭으로도 느끼고
이렇게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족 관계는 항상 애증이 반복되는 거예요.
남하고는 이런 일이 없어요.
남하고는 조금 싫으면 안 봐버리면 되고
그런데 가족이라는 관계는
이렇게 다 잘한다고 해주는데
내 식대로 하기 때문에 상대가 반발하거든요.
그런데 또 잘하려고 해준 그건 또 인정이 되거든요.
그래서 이 사이에 이중 감정이, 애증이 교차한다
이렇게 말하죠.
그러니까 엄마가 얘기하면
엄마의 관심사
‘나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준 거는 고맙다.
그러나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
이 관점을 가지면 돼요.
그럴 때 뭐라고 한다?
영어로 ‘노땡큐’라 그래요. 한번 해봐요.
‘노땡큐’
무슨 말이에요?
그러니까 싫다가 아니라
관심을 가져서 고맙지마는 나는 싫다.
“커피 드시겠어요?”
“노땡큐”
그러니까 나한테 드시겠냐고 물어본 거는 좋은 뜻이잖아요.
그러나 난 지금 커피를 안 먹겠다는 거거든
‘나하고 데이트 합시다.’
이럴 때 ‘싫어’ 이러지 말고
뭐라고 해야 된다?
‘노 땡큐’
왜? ‘나한테 관심을 가져준 거는 고마운 일이에요? 안 고마운 일이에요?
고마운 일이지만 저는 싫습니다.’
그래서 항상 그렇게 말하면
“싫어” 이러지 말고
“감사합니다마는 저는 싫습니다.”
“고맙습니다마는 저는 안 먹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좋지.
그런 관점.
엄마의 관심은 좋은 일이야.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
이런 관점에서
“엄마 고마워요. 관심 가져줘서.
그러나 아이 키우는 문제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돼.
또 딴 거 얘기해 봐요.
뭐 때문에 기분 나쁜데?
...
그러니까 자기도
엄마도 ‘노땡큐’라고 그랬으면 됐는데 안 해서 그러잖아.
그러니까 아이가 엄마 좋다고 만졌는데
엄마는 귀찮다 이 말이야.
엄마는 자기 지금 손자가 걱정해서 해줬는데
자기가 귀찮은 거하고 똑같은 거지.
‘나는 좋아서 그랬는데 엄마는 그때 좀 귀찮았구나.’
그게 사랑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
그때 귀찮았다.
지금도 마찬가지고
엄마가 ‘엄마는 관심을 갖고 하지만 자기는 좀 귀찮잖아.’
그것과 똑같단 말이야.
그것이 엄마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나는 내 식대로 하겠다는데 자꾸 옆에서 뭐라고 하니까
귀찮은 것처럼
엄마도 자기 일에 집중하고, 자기 할 일이 많은데
애가 옆에 와서 자꾸
애는 좋다고 칭얼거리지만 엄마는 귀찮다 이 말이야.
사랑이 아닌 게 아니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라
그러니까 엄마도 그때 이런 도리를 알았으면
애한테 뭐라고 했을까?
‘노땡큐’라고 그랬겠지.
“엄마 머리 만져줘서 좋은데, 엄마 지금 바쁘니까 싫어”
이렇게 얘기해야 되는데
우리 한국 사람은 그렇게 안 되잖아.
이렇게 말하면 나도 잘 그렇게 안 돼.
그냥 좋은 거는 말 안 하고
항상 나쁜 것만 말해.
서로 같이 살면서 감사할 때도 있는데
감사하다는 말은 안 하고
항상 불평만 얘기하잖아.
감사할 때 감사하다고 해주고
불평할 때 불평해 주면 사이가 좋을 텐데
불평하지 말고 항상 감사만 해라. 이게 아니라
두 개를 다 해야 되는데
우리는 대부분 한 개만 해.
‘좋은 건 너무 당연한 거고
아닌 거는 아니다.’
이렇게 생각해요. 다 물어보면
그래서 경상도 남자들이 그러잖아
“그걸로 꼭 말로 해야 돼?” 이런다잖아
좋아하는 거 그건 당연한데, 그걸 꼭 말로 해야 알아듣나?
이렇게 되니까 정이 좀 덜 오고 가지.
근데 경상도에 같이 살면 그런 게 당연하게 느끼니까.
근데 서울 사람들은 안 그렇다 보니
서울 사람하고 살면 갈등이 생기거든.
그러니까 그 반어법이라는 게 있어.
좋은 거를 거꾸로, 미워하는 것처럼 표현하는 거.
그러니까 손님이 반갑게 왔으면
“아이고 반갑다, 어서 와라” 이래 말 안 하고
“할 일 없나? 뭐하러 오노?” 이렇게 말하거든요.
‘할 일 없나 뭐하러 오노?’ 이게 억수로 반갑다는 얘기예요.
그런데 선물 사 오면
“아이고 감사합니다. 이런 귀한 걸 선물 주셔서”
이런 말을 어떻게 하는지 알아요.
“돈도 샜다. 뭐하러 사오노?” 이렇게 말하거든요.
“할 일 없나 놀러 오게”
이렇게 말한다든지.
그러니까 이게 일종의 반어법이에요.
이렇게 말을 반대로 하는 거거든요.
근데 거기에 익숙하면
이게 반갑다는 소리인지 알아듣는데
처음에는 이거 알아듣기 굉장히 어려워요.
그러니까 서로 표현 방법이 다 다르다는 거예요, 사람마다.
저도 여기 있으면서
서울 사람한테 말을 잘못해서 비판받은 적이 있어요.
연말에 12월 31일 날, 12시에 아직 일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뭐 하고 있노, 밤 12시가 됐는데 잠도 안 자고”
내가 이렇게 말했다. 이 말이야.
근데 그게 엄청나게 섭섭한 거예요.
왜냐하면 연말정산해 준다고 잠도 안 자고 일하고 있는데
“아이고 밤이 깊은데 이렇게 일하는구나, 힘들지”
이렇게 말해야 되는데
“잠 안 자고 뭐하노? 12시가 넘었는데”
이렇게 얘기하니까
무슨 야단치듯이 이렇게 들리잖아요.
그게 뭐예요?
늦게까지 일하는 거에 대한 염려를 하는 말이
그렇게 나온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말하는 사람도 조심해야 되고
듣는 사람은 좀 새겨듣는 게 필요하다.
첫째는 엄마의 생각이 틀린 게 아니고
항상 엄마든 누구든 나하고 생각이 뭐하다?
다르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이게 사실이잖아, 그죠?
‘내 말이 옳다’는 사실이 아니에요.
그러나 ‘두 사람의 생각이 다르다’ 이건 사실이에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그러나 나는 이렇게 하겠습니다.”
“관심을 가져줘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저는 싫습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면 좋겠다 싶습니다.
어릴 때 입은 상처, 자기가 애 때 입은 상처가
애를 키우면서 또 덧나는 거예요, 옛날 상처가.
자기는 그런 생각이 들 거예요, 무의식 중에.
애를 이렇게 키워라 저렇게 키워라 그러니까
“그래 애 잘 키우면 너는 왜 나한테 그래 안 했노?”
이런 생각이 있는 거예요.
알았어요?
“그래 애 잘 키우면 왜 나는 이렇게 키웠노?
관심 갖고 잘 키워주지”
그런 반발 심리가 있기 때문에
하루 종일 기분이 나쁜 거예요.
그렇게 살펴서
어릴 때 입은 상처를 지금까지 움켜쥐고 있는 거는
좋은 게 아니에요.
이미 지나간 일이잖아. 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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