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4)

[법륜스님의 하루] 가정폭력 속에서 자란 저는 부모님을 어느 정도까지 돌봐야 할까요? (2024.09.09.)

Buddhastudy 2024. 9. 13. 19:09

 

 

 저는 청각장애가 있는 아버지와

평범하지 않은 생각을 가지신 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어릴 때 아버지에게 가정 폭력을 당하기도 하고

어머님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기도 했지만

다행히 주변의 도움으로 크게 비뚤어지지 않고

밝고 명랑하게 성장했습니다.

부모님 또한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와 불우했던 환경으로 인해

그렇게 행동하셨다는 걸 이해하기 시작했고

그 이후로는 부모님에 대한 원망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두 분 존재는 제 삶의 짐처럼 느껴집니다.

결국 저 혼자라도 잘 살고 싶어서

부모님을 떠나 호주로 오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특별히 부모님을 챙겨드리지 않고

가끔 거의 생존여부만 체크만 하는 수준입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고민이 됩니다.

그들을 사랑하고 싶지만 또 다시 상처받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후회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녀로서 부모님을 어느 선까지 돌봐드려야 하나요?

어떻게 하면 제가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부모를 해치거나 부모에게 손해를 입히거나 부모를 학대하지만 않는다면,

자식으로서 마땅히 부모한테 해야 될 도리 같은 것은 없어요.

아무것도 안 해도 됩니다.

이것은 자연생태계적으로 봐도 동일합니다.

자연생태계에서 어미가 새끼를 낳게 되면

새끼를 보호하는 본능이 일어납니다.

이것을 종족 보존의 본능이라고 합니다.

이 본능이 없다면 그 종은 멸종하게 됩니다.

이 본능이 있기 때문에

그 종이 지구상에 계속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연생태계에 존재하는 어떤 종도

자식이 부모를 보살피는 경우는 없어요.

아무리 늙어도 성체 사이의 관계는 동등합니다.

그러나 성체가 되지 않은 새끼는

아직 독립된 생명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어미의 보살핌으로 인해

생명이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새끼가 성장해서 성체가 되면

어미와 동등한 관계가 됩니다.

 

인간은 자기 새끼도 자기가 안 키우고 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생태적인 본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질환에 의해 오류가 생긴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악행이라고 해요.

생태적인 본능에 의한 행위에 대해서는

선악을 논하지 않습니다.

정신적인 것으로 인한 행위에 대해서만

선악을 논합니다.

 

자식이 늙은 부모를 돌본다는 것은

생태적인 본능에도 없는 좋은 일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이런 행위를 ()’이라고 말해요.

동물도 안 하는 나쁜 짓을 하면 ()’이라고 하고,

동물이 안 하는 좋은 일을 하면 ()’이라고 합니다.

 

동물도 하는 행위를 하면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고,

자연적인 본능이라고 합니다.

선악이라는 것은

인위적인 행위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이 아픈 사람을 돌보거나

넉넉한 사람이 배고픈 사람에게 나누어 주거나

배운 사람이 배우지 못한 사람을 가르쳐주거나

어른이 아이를 돌보거나

젊은이가 늙은이를 돌보거나

건강한 사람이 장애인을 돌보거나

이런 행위들은 선행이라고 말해요.

 

동물의 생태계에는 없는 이런 행위들은

모두 인위적인 행동이며 선행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선행은 의무 사항이 아니고 선택 사항입니다.

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것은

자연생태계에서 모든 동물이 본능적으로 하는 행위이므로

의무 사항입니다.

그래서 자기 아이를 돌보지 않는 것은

악한 행위입니다.

악한 행위는 멈춰야 합니다.

 

그래서 옛말에도 권선징악(勸善懲惡)’이라고 해서

선은 권장하고 악은 징벌하여 멈추게 했습니다.

 

선행은 권할 뿐입니다.

선행을 안 했다고 해서 나쁜 짓은 아니에요.

왜냐하면 선행은

자연생태계의 본능이 아니고

인간의 교육에 의해 형성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질문자가 사람이 아니라면

부모님을 돌보지 않는 것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아요.

그런데 질문자는 선행을 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으면서 자랐어요.

자식은 부모를 돌봐야 한다는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부모를 돌보지 않으면

마음속에 죄의식이 생기는 겁니다.

그래서 뇌에 있는 기록을 싹 지워서 망각해 버리면

아무 문제가 안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부모를 돌봐야 한다는 선행을 학습했기 때문에

부모를 돌보지 않으면 죄의식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죄의식은 실제로 죄를 지어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이성을 만나서 하룻밤을 잤다고 해서 죄의식이 생기나요?

서로 원해서 잤다면 죄의식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출가한 승려나 신부가

본인을 좋아하는 이성과 하룻밤을 잤다면

죄의식이 생깁니다.

왜 똑같은 행위에 대해서

죄의식이 생기기도 하고, 안 생기기도 할까요?

 

그 이유는 계율이라고 해서

어떤 행위는 하면 안 된다하는 기준을 정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계율을 지키기로 약속한 사람은 계율을 어겼을 때

죄책감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부모를 돌보지 않아서 죄책감이 드는 것도

교육에 의해 학습이 된 기준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생태계를 기준으로 하면

자식이 부모를 돌보지 않는 것을 죄라고 할 수 없지만

사람이다 보니 학습에 의해 죄책감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는

선행을 하는 게 좋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전화라도 드리고

용돈이라도 보내드리고

이렇게 하는 것은

부모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부모가 돌아가신 뒤에 내가 덜 괴롭기 위해서입니다.

미래에 올 괴로움을 막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부모님은

어릴 때부터 나를 먹여주고 돌봐주었잖아요.

부모도 자신이 힘드니까

자식에게 화도 내고, 짜증도 내고, 때리기도 한 겁니다.

그래서 우리들 대부분이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가 있어요.

동시에 부모로부터 받은 은혜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일 골치 아픈 관계가

부모와 자식의 관계입니다.

남이면 미울 때 안 만나면 되는데

부모는 안 만난다고 해서 관계가 끊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부모로부터 받은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받은 은혜가 있으니 돌봐드리면 되는데

막상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면 또 상처가 덧나요.

옛날에 혼났던 기억, 맞았던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목소리만 들어도 상처가 올라와요.

만나면 싸우고, 헤어지면 후회하고

또 만나면 싸우고 헤어지면 후회하고

이것이 되풀이되는 것이

우리들의 인생에서 부모·자식 간의 관계입니다.

 

부모를 돌보지 않는다고 해서

너무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죄책감을 안 가지려고 해도

이미 부모님을 돌봐야 한다는 기준이

교육에 의해 무의식 중에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부모가 돌아가시면

죄책감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죄책감을 덜 느끼려면

지금이라도 전화를 드리거나, 용돈을 드리거나,

싸우는 한이 있더라도 가끔 찾아뵙기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에

후회를 덜 하게 됩니다.

 

옛말에 부모 돌아가시면

불효자가 제일 서럽게 운다는 말이 있듯이

장례식장에서 많이 우는 사람은

대부분 살아생전에 부모님을 제대로 못 챙겨준 사람들입니다.

 

질문자뿐만 아니라 여러분 모두가 해외에 살다 보니

공통된 고민을 갖고 있을 겁니다.

한국에 있어도 실제로 효도를 못하는데

여러분은 마치 내가 해외에 있어서 효도를 못하는 것처럼

착각을 하게 되기 때문에

더 많이 괴로운 거예요.

 

막상 한국에 가면

며칠 같이 살지도 못하고

보따리 싸서 돌아올 사람들이 말이에요.

공연히 고향에 있는 부모를 생각하면서 울고불고 하는 것은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그런 감정 낭비를 하기보다는

부모님께 전화 한 통이라도 해드리고

용돈이라도 조금씩 보내드리는 게 서로에게 좋아요.

 

아버지가 화를 잘 내는 것은

청각장애로 인해서 그럴 수가 있습니다.

옛날부터 시골에서

낫을 들고 싸우는 사람은 귀머거리 밖에 없다하는 말이 있어요.

왜냐하면 소리가 안 들리니까 답답해서 그렇습니다.

 

그러니 아버지가 소리를 못 들으니까 답답해서 화가 많구나

이렇게 이해를 하면

사실은 큰 문제가 아니에요.

어릴 때는 그게 상처가 되었지만

어른이 되어서 돌아보니

부모도 그럴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라는 사실이 이해가 되잖아요.

미워할 존재도 아니고, 그렇다고 불쌍한 존재도 아니에요.

 

그리고 호주처럼 한국에서도

장애 등급에 따라 연금이 나와요.

노령 연금도 나오고요.

부유하게 살지는 못하지만

굶어 죽지 않을 정도는 정부에서 지원을 하기 때문에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첫째, 질문자 본인부터 잘 사는 것이 중요해요.

부모님의 입장에서도 자식이 잘 사는 게 제일 좋아요.

 

둘째, 조금 여유가 있으면

작은 용돈이라도 마음을 담아서 보내드리고, 전화라도 드리고

또 한국 갈 일 있을 때 잠깐이라도 만나보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부모를 위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나중을 생각하면

결국 나를 위하는 일입니다.

이렇게 관점을 가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