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 앞
대한독립을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온 시민은 약 200만 명.
당시 전체 인구의 10%에 육박했습니다.
그 후 일본의 무력 진압으로 사망한 시민은 7,509명
체포되어 감옥에 간 이들만 46,948명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가 인정한 3.1 독립 유공자는 5,070명 뿐입니다.
잊혀진 분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려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킨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피와 땀으로 채워나간 독립운동의 증거들은 불태워지고
이를 기억하는 증언들마저 침묵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 가운데 용성스님이 있었다.
당대 최고의 선지식이자
불교사상가, 불교 개혁가였던 용성스님은
종교인을 넘어
뜨거웠던 독립운동의 심장부를 움직이게 했습니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스님은 6년간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3정승, 6판서, 8도감사,
360개 고을 수령 방백을 지낸 이나
그 후손을 모두 찾아가
독립운동에 앞장서거나 후원할 것을 요청합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시대 사조가 그렇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다”는 싸늘한 반응들뿐.
그때 용성스님의 눈에 환하게 들어온 것은
헐벗고 굶주린 삶을 살면서도
외세의 침탈에 항거하는 사람은
오직 평민 의병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나라의 주인은 백성이구나!
대한제국 부흥운동이 아닌
대한민국 수립운동을 펼치자”
1918년 용성스님은 천도교의 손병희 교주를 찾아가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 계획을 꺼내놓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독립 선언에 관한 것.
얼마 뒤 용성스님과 손병희 교주가 나눈 그날의 기획은
태극기의 물결을 이루며
대한독립 만세 운동으로
전국 방방곡곡에 퍼져 나갔습니다.
중국 상해의 인삼 무역사업
함경남도 북청의 금광 사업
만주의 명월촌과 봉녕촌, 그리고 경남 함양에 대단위 농장을 운영합니다.
그렇게 거두어 들인 자금은
독립운동가를 양성하고, 그 가족의 생계를 지원하고
만주지역 독립운동의 거점을 마련하는 한편
독립운동의 심장도 상해임시정부로 전달됐습니다.
용성스님의 독립운동은 자금 후원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1932년 윤봉길 의사를
상해임시정부의 김구 선생에게 보낸 이도 용성스님이었습니다.
1937년, 중일 전쟁이 시작되자
“중국과 함께 항일 투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 용성스님은
중국의 장제스와 마오쩌둥을 만나
나라의 명운이 걸린 제안을 합니다.
“윤봉길 같은 대한의사군 일만 명을 모집해 보내겠소.
조중 연합군을 구성합시다.
그리고 곧바로 1만 대한의사군 총사령관으로
홍범도 장군을 임명하고 그와 상의하라.”
그러나 1939년 조선총독부가 보낸 밀정에 의해
30년간 용성스님이 피땀으로 일궈 놓은
만주의 비밀 독립운동 조직이 일시에 괴멸되자
“사자 뱃속에서 충이 생겨
사자가 쓰러졌구나”
생전에 그토록 꿈꾸던 조국 독립을 보지 못한 채
1940년 2월 24일
스님은 종로 대각사에서 입적한다.
마침내 조국이 해방되고 귀국한 김구 선생이
임정 요원 40여 명과 함께 찾아간 곳은
용성스님이 계셨던 종로 대각사
김규식, 조소앙, 이범석, 이시영, 김창숙 등
상해임시정부 핵심 요인들의 얼굴이 함께 보이는 이 사진은
당시 대각사 마당에서 찍은 것으로
2017년에 비로소 세상에 공개가 되었습니다.
“용성스님이 쌀가마니에 돈을 넣어 보내주셔서
긴요하게 썼습니다.”
이미 5년 전 용성스님이 입적했다는 소식을 듣고
흐느껴 울었던 김구 선생은
자금 지원에 대해 뒤늦은 감사의 인사를 건넸습니다.
“용성스님께서 이미 열반하셔서 안타깝지만
스님의 크고 깊은 뜻을
우리 동지들이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일제와 밀정들의 눈을 피해
모든 활동을 비밀리에 숨겨야 했던
독립운동가 용성스님.
그 증거를 안 잡히기 위해서 노력한 독립운동이기 때문에
비밀리에 독립운동을 한 것이지,
우리 할아버지가
(일제에 노출되지 않기 위해 증거 자료들을)
4일, 5일을 왔다 갔다 다 불태워 버렸어, 전부 다.
해방은 되었으나
이념 갈등의 혼란 속에서
모든 자료를 불사르고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후손들.
이름 없이 쓰러져간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희생 위에
이룩한 대한민국
용성스님이 꿈꾸었던
백성이 주인이 되는 나라
대한민국은
1960년 4.19혁명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10민주항쟁
2016년 촛불혁명,
2017년 긴박했던 한반도 전쟁 위기를 넘어
2018년 판문점 평양에서 열린 3번의 남북 정상회담을 거쳐
2018년 1차 북미 정상회담
2019년 2차 북미 정상회담까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 남은 과제
국민통일, 평화통일, 새로운 미래 100년의 출발점에서
독립운동가들의 치열했던 삶을
잊지 않겠습니다.
“사분오열의 과거를 되풀이하지 말라.
강대국의 종속국이 아니라 주인국이 되어라.
앞으로 수고해다오”
-용성스님 유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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