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3)

법륜스님의 하루_ 직장 동료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2023.06.26.)

Buddhastudy 2023. 10. 12. 19:41

 

 

직장 동료 중에 이상한 사람이 있는데

그로 인해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그 스트레스가 집에 있는 아이와 남편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서 걱정이에요.

인간관계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이상한 사람이라는 게 어떤 것을 이상하다고 하는지 한번 말해보세요.

어떤 부분을 이상하다고 하는 겁니까?

 

...

 

돈을 아껴 쓰는 것은 좋은 습관인데요.

만약에 질문자의 남편이 밖에서 밥값이나 찻값을 잘 내면

동료들로부터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겠죠.

그렇다면 아내 입장인 질문자한테도 좋은 사람입니까?

남편이나 아내가 밖에서 눈치껏 밥값 좀 덜 내고 찻값 좀 덜 내며 아낀다면

가족의 입장에서는 좋은 일 아닌가요?”

 

그런데 그 동료가 왜 이상한 사람이에요?

동료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입니다.

 

어지간하다고 말할 때는

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질문자의 기준일 뿐이에요.

예를 들어

동료들끼리 밥을 열 번 먹었다고 합시다.

질문자가 밥값을 두 번 내는 동안

상대방이 한 번 낸다면 질문자의 기준에서 보면 짠돌이일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밥값을 열번 중에 다섯 번 낸 사람이 볼 때는

밥값을 두 번 낸 질문자도 짠돌이로 보일 수 있습니다.

각자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질문자의 기준에서는 직장 동료가 짠돌이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사람이 진짜 짠돌이인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는 나와 다른 사람인 것이지 이상한 사람은 아닙니다.

 

우리가 사람들과 만나서 얘기하다가

내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고 싶을 때

주로 쓰는 방법이 있습니다.

 

길 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라

동네 사람한테 다 물어봐라이렇게 말을 하곤 하죠.

 

이러한 방식은

다수의 입장에서 소수자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는 행동일 수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전 세계의 소수자들이 차별받아 왔습니다.

 

이상하다하는 결론은 다수로 결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수의 사람이 기독교를 믿는데

몇 명만이 불교를 믿는다고 하거나

다수가 불교를 믿는데 소수의 몇 명이 기독교를 믿는다고 하면

소수자가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리곤 합니다.

 

또한 조선조 말엽에는 유교를 믿는 유생들에게

천주교를 믿는 사람은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졌습니다.

유생들은 자식이라면 당연히 부모의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천주교를 믿는 사람은 제사를 안 지낸다고 하니

짐승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여기고 죽였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천주교를 믿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에요?

유교를 믿는 사람과 서로 다른 사람이에요?

 

 

마찬가지로 질문자의 동료가 이상한 사람이에요, 질문자와 다른 사람이에요?”

 

나와 다른 사람이 이 세상에 있을 수 있어요, 없어요?

 

저 사람을 이상한 사람이라고 보면 스트레스를 받겠지만,

나와 다른 사람이라고 보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나와 종교적 믿음이 다르거나 가치관이 다를 뿐이고

정치적 성향과 국적, 성별이 다를 뿐이지

옳고 그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질문자가 이런 관점을 놓치지 않는다면 스트레스를 받을까요?

 

질문자가 그 회사의 사장이에요?

동료가 업무를 잘 안 하려고 하면

사장이 볼 때는 문제일 수 있지만

같은 동료인 질문자가 시비(是非)할 게 있습니까?

 

동료지간에 내가 일을 좀 더하면 어때요?

동료의 일을 내가 해주기 싫다면 그게 이기주의 아니에요?

내일을 안 하는 것만 이기주의가 아닙니다.

남의 일은 절대로 안 해주려는 것도 이기주의입니다.

 

단지 질문자의 생각이 그런 건 아닐까요?

그 사람이 나보다는 일은 좀 적게 한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피해를 준다고 말하기는 좀 어렵지 않을까요?

 

같은 월급을 받는데

나보다는 그가 일을 좀 적게 한다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보다 더 일을 안 하는 사람이 오면

그 사람은 별문제가 안 돼요.

일을 많이 하느냐 적게 하느냐는

모두 상대적인 평가이기 때문입니다.

 

일하는 양이 나보다 좀 적고 밥값을 좀 덜 내는 것은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다 같을 수는 없잖아요.

 

만일 질문자가 모든 사람은 기독교를 믿어야 된다고 생각할 경우

상대에게 여러 번 얘기를 했는데도

교회에 안 오면 스트레스를 받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나와 다른 것을 같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어요.

나보다는 좀 일을 적게 하네이렇게 인정하면 됩니다.

 

그런데 상대방이 나보다 일을 좀 못하거나 적게 하는 것이

질문자가 승진하는 데에는 아주 유리해요.

나만 상대방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나 윗사람도 다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질문자보다 일을 잘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질문자한테 손해입니다. 질문자는 영리하지가 못한 것 같아요.

 

직장 동료들이 전부 나보다 조금씩 일을 못하거나 게으른 것은

훨씬 내 승진에 유리합니다.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면

집에 와서 남편이나 아이들에게 화풀이할 일이 없습니다.

 

화가 났는데 참으니까 스트레스를 받는 겁니다.

질문자는 참고 있기 때문에 지금 힘든 거예요.

보통 한국 사람들은 세 번 이상 못 참습니다.

그래서 보자보자 하니까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저게!’ 이러면서

세 번째에는 화가 터집니다.

화가 터지고 나면 갈등이 심해지니까

다시 뉘우치고 반성을 하죠.

그래서 또 참습니다.

또 참으면 힘드니까 다시 화가 터집니다.

이렇게 반복을 하는 것은 마음공부가 아닙니다.

참으면 스트레스가 됩니다.

 

저 사람은 나와 다르구나

그냥 일을 조금 못하는구나

일하는 속도가 좀 느리구나

이렇게 바라보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습니다.

 

지난주에 제가 동남아 스님들을 모시고

일주일간 한국 구경을 시켜드리면서 같이 다녔거든요.

한국식으로 생각하면 속이 터집니다.

 

왜냐하면 그분들은 바쁜 게 전혀 없고

행동이 항상 느릿느릿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점을 상당히 감안해서 스케줄을 아주 넉넉하게 짰는데도

일정이 계속 쫓겼습니다.

30명이 휴게소에 내려서 화장실을 다녀오는 것도 30분씩 걸리니까요.

하지만 이런 것은 모두 문화의 차이일 뿐입니다.

 

제가 인도의 불가촉천민 마을에서 학교와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언젠가 인도인 스태프들한테

학교에 어떤 사람이 제일 필요합니까?’ 하고 물으니까

컴퓨터 잘하는 사람과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대답했습니다.

 

어찌어찌해서 그런 사람을 구했어요.

그래서 제가 이번에 새로운 멤버가 올 거다그랬더니

어떤 사람이요?’ 하고 물었습니다.

어떤 사람을 원하니?’ 그랬더니

서로 눈치만 보고 말을 안 해요.

너희가 영어 잘하는 사람과 컴퓨터 잘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안 그랬니?’ 이랬더니

한참 있다가 스태프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도 사람들이 볼 때는

한국 사람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전부 화를 잘 낸다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한국 사람은 성격이 좀 급하고 빠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도 사람들은 느리니까

한국 사람이 그 모습을 보면 속이 터집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화를 내게 되거든요.

그런데 한국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화를 안 냈다고 그럽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겁니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존중입니다.

부부 사이에도 다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존중은 상대방을 훌륭하다고 여기는 게 아니고

나와 다른 상대방을 인정하는 겁니다.

 

종교가 다름을 인정하고

남녀가 다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장애를 가진 것도 신체가 다만 불편할 뿐이지 열등한 것은 아닙니다.

불편함은 기술의 도움을 받으면 됩니다.

팔이나 다리가 없으면 의수나 의족을 해서 도움을 받으면 되고,

눈이 보이지 않는 것도 기술이 발전하면 더 좋아질 수 있습니다.

 

불편한 것은 좀 더 편하게 개선하면 되는 것이지

열등하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얼굴이 검은 것은

피부 빛깔이 다를 뿐인 것이지 열등한 게 아닙니다.

키가 작은 것은 키의 크기가 서로 다를 뿐이에요.

 

이렇게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존중입니다.

여러분의 아내, 남편, 직장 상사, 부하직원을 존중하는 방법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으로는

그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하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사장님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겠다,

남편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네

그 친구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겠네하고 이해하면

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상대방이 옳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사람을 만나서 속사정을 잘 들어보면

그렇게 행동할 만한 이유가 다 있습니다.

 

평소에 밥값이나 찻값을 잘 안 내고

돈을 아끼는 행동이 이해가 잘 안 되지만

대화를 해보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일반적인 기준으로 생각하면 너무 인색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사람이 자라온 환경 때문에 돈을 잘 안 쓰는 습관이 생겼거나

경제적으로 돈을 아껴 써야 되는 상황일 수밖에 없거나

어떤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걸 이해하면 상대방이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이상한 사람으로 보지는 않게 됩니다.

 

첫째,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둘째,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고 이해하면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어집니다.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어지면

집에 와서 화낼 일도 없어집니다.

화가 이미 났는데 참는 것은 화를 내는 것보다 해롭습니다.

 

왜냐하면 세 번 참다가 터지면

화를 더 크게 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상대방 입장에서는

저 사람이 미쳤나?’ 하면서 의아해하게 됩니다.

 

마음이 불편하면 오히려 가볍게 내어놓는 게 낫습니다.

부부 사이라면

여보, 당신이 그렇게 말을 하니 내 마음이 좀 불편합니다하고 표현하는 거죠.

 

상대방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상태를 드러내어 알리는 것이 좋습니다.

 

옛말에 착한 여자 무섭다하는 말이 있습니다.

착한 여자는 원래 착한 게 아니라

불평을 안 하니까 착해 보이는 겁니다.

 

사실 착한 사람은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받습니다.

그러다가 터지면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

아무 말 없이 잘 지내다가

어느 날 아침에 보따리 싸서 집을 나가버려요.

이런 마음의 작용을 잘 알면

저 사람은 나와 다르구나’, ‘무슨 사정이 있겠구나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누가 스트레스를 안 받습니까?

 

 

그러니 그 사람이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고

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그 사람을 위해서 하는 겁니까? 나를 위해서 하는 겁니까?

 

이렇게 내가 스트레스를 안 받으면 직장 생활도 편안해지고,

가정생활도 훨씬 편안해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