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1년 반 정도 지나면 정년퇴직을 할 예정입니다.
요즘 들어서 퇴직 후에 뭘 하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됩니다.
낯선 미래가 불안해서 생각도 많아지고 잠도 잘 오질 않습니다.
3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생활 습관이 몸에 배어서 변화를 해야 되는데
변화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은퇴 이후에도 좀 더 당당하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남은 1년 반 동안은 어떤 마음 자세와 준비가 필요할까요?//
저는 질문을 들으면서 좀 이해가 안 되는 게 있어요.
만약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처음 들어가는 사람이라면
지금까지 늦잠도 자고 놀러도 다니다가
이제부터는 출근도 제시간에 해야 되고,
주말 빼고는 회사에 묶여 있어야 되니
걱정이 될 수가 있거든요.
그런데 질문자는 직장에 쭉 다니다가
이제 은퇴해서 놀 수 있는 시간이 다가오는데
그게 왜 걱정인지 잘 모르겠네요.
아침에 늦잠을 자도 되고, 출근을 안 해도 되고
상사의 잔소리를 안 들어도 되고, 아랫사람을 관리 안 해도 되고
그냥 퇴직금 받아서 아무 걱정 없이 살 수가 있잖아요.
물론 지금까지 돈을 많이 쓰다가 조금 적게 써야 되는 건 걱정이 되겠죠.
그러나 지금처럼 기후 위기 시대에는 적게 쓰는 것이 미덕이에요.
돈이 있더라도 소비하지 말아야 하는데, 돈이 없으니까 잘 됐잖아요.
소비만 조금 줄이면 아무 걱정이 없어요.
그런데도 걱정이 된다고 하니까
제가 볼 때는 질문하는 내용이 말이 되나 싶어요.
아침에 늦잠 자는 게 걱정인가요?
출근을 안 하는 게 걱정인가요?
잔소리를 못하는 게 걱정인가요?
무엇이 걱정인지를 잘 몰라서 다시 물어봅니다.
...
그런 어려움은 충분히 있을 수 있어요.
그런 고민이라면 불안해할 일은 아닙니다.
은퇴하고 빈둥빈둥 놀아도 되지만
이왕 노는 거 남에게 도움이 되면서 노는 방법이 없겠냐고 묻는 것이라면
스님은 그런 방법을 무진장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제일 먼저 회사에다가 이런 얘기를 해볼 수 있어요.
근무시간을 70퍼센트 정도로 줄이고 월급도 절반으로 줄이겠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겠느냐고 회사에 물어보세요.
지금 건강상 특별한 이상이 없고 다른 계획도 없다면
충분히 제안해 볼 수 있습니다.
다른 회사에 새로 취직하는 것보다는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보직을 낮추어서 근무를 하는 게 더 낫잖아요.
퇴직을 안 하고 계속 있겠다는 게 아니라
퇴직을 하되 재취업을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내가 회사에서 부장까지 했다’ 하는 생각은 다 버려야 해요.
수위를 해도 괜찮다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안 그러면 한 분야의 고문을 맡아도 괜찮고
아직 건강하다면 영업을 해도 괜찮아요.
퇴직을 안 한다고 하면 회사가 또 나에 대해 신경을 쓰니까
퇴직은 하되 월급은 신규 채용을 할 때처럼 적게 받는 겁니다.
내가 가진 경험을 회사가 필요로 한다면 그렇게 할 것이고
회사가 필요 없다고 하면 내가 그만둘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회사에서는 질문자의 경험이 필요한데도
질문자가 고위직을 계속 가지려고 하고, 월급도 많이 달라고 하면
회사는 부담이 됩니다.
고위직 한 사람을 은퇴시키면
신규 채용을 두 명이나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질문자가 우선 요구 조건을 낮춰야 합니다.
직책이나 직위도 전혀 신경 쓰지 말아야 하고요.
매일 집에만 있기가 무료하면
이런 자리를 회사에 알아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 정년퇴직 나이를 75세로 높여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대신에 60세를 기준으로 해서 임금피크제를 두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연봉이 5천만 원이라고 하면 60세부터는 4천만 원, 3천만 원,
이렇게 조금씩 연봉을 낮추어야 합니다.
근무 시간도 일주일에 3일만 나오든지, 오전만 근무한다든지
각자의 건강에 맞게 근무 시간을 조절해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그 사람이 가진 경험을 잘 살릴 수 있도록 해줘야 해요.
수많은 퇴직자들이 길거리에서 휴지를 줍는 이런 일들을 하면
자기가 쌓은 경험을 활용하지 못하잖아요.
그러나 정년퇴직 나이를 높이고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
훨씬 더 많은 문제를 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은 그런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으니까
질문자가 먼저 회사에 제안을 해보세요.
1년 반 동안 회사에 있으면서 그런 일이 자회사에 있는지도 알아보세요.
그러려면 질문자가 겸손해져야 합니다.
옛날에 한가닥 했다고 고집하면 사람들이 다 싫어해요.
요즘은 부모도 다 큰 자식한테 뭐라고 하면 다 싫어하거든요.
요즘은 싫다고 말도 안 해요.
그냥 집을 나가버립니다.
부부도 서로가 싫어지면 말을 안 해요.
옛날 사람들은 싸우기라도 했는데 요즘은 안 싸웁니다.
어느 날 보따리 싸서 나가버려요.
싸우는 것도 귀찮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집안 문제는 크게 걱정을 안 해도 됩니다.
만약 회사를 퇴직하게 되면 새로운 직장을 구하지 말고
내 집에 취업을 하는 거예요.
퇴직하는 날 부인한테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여보, 그동안 수고했어.
내가 직장 다닌다고 집안일도 거들지 못하고
대소사도 당신한테 맡겨놓고
돈 좀 번다고 큰소리치고 살았는데
내가 직장을 그만뒀으니까
앞으로 3년은 내가 집안일을 다 할게.
당신은 편안하게 지내.'
다음 날 아침부터는
내가 밥도 하고,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아내의 등도 좀 두드려 주고,
식사 후에는 커피도 좀 끓여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데 아내와 왜 싸우겠어요?
그동안 아내는 남편이 직장을 나가니까
밥도 해주고 커피도 끓여주고 신문도 갖다 주고 한 겁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빈둥빈둥 놀면서
밥 차려라, 뭐 해라, 이러니까 속으로는
'너는 손이 없나 발이 없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거예요.
옛날에 혼자 집안일의 대소사를 하면서 받았던 스트레스가 트라우마가 돼서
확 올라오는 겁니다.
옛날에는 돈이라도 버니까 봐줬는데
돈도 못 버는 주제에 요구가 많으면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퇴직금은 내가 벌었지 않냐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아요.
퇴직금은 부부 공용입니다.
퇴직금을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혼을 해도 딱 반반씩 나누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일본에서는 참았다가 딱 퇴직하는 날 이혼 소송해서
퇴직금의 반을 가져가버리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황혼 이혼을 안 당하려면 스스로 반성을 좀 해야 돼요.
집안일을 하면 운동도 됩니다.
그렇게 집에서 일을 거들면서
부인이 여행을 가자고 하면 여행도 가고 그렇게 살면 돼요.
그렇다고 돈을 낭비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껴 쓰되 집안일을 좀 도맡아 주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3년 정도는 이렇게 해야 아내의 한이 풀어지고 마음이 다시 신혼처럼 돼요.
신체 구조상 나이가 칠십이 넘으면
남자는 병들기가 쉽습니다.
여자가 평균적으로 오래 살기 때문에
남자의 병시중을 여자가 해야 할 가능성이 높거든요.
건강할 때 이런 투자를 안 해놓으면
진짜 늙었을 때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는 거예요.
이런 투자를 좀 해놓으면 늙어서 질문자가 병이 나도 덜 미안합니다.
그러니 우선 집안일부터 하세요.
NGO 단체나 봉사 단체에 나가서 작은 소일거리를 하겠다면
아직 1년 반이 남았을 때 지금부터 봉사를 나가야 됩니다.
미리 연습을 해봐야 해요.
귀농을 하겠다면 퇴직 후 곧바로 귀농을 하지 말고,
지금부터 주말마다 시골에 가서 농사도 거들어주고 하면서
1년 반 후에 하려고 하는 걸 미리 해봐야 됩니다.
막상 해보면 안 되는 게 부지기수예요.
젊었을 때는 실패해도 새로 도전하면 되는데
늙어서 어떤 사업을 시작해서 실패하면 아주 곤란해져요.
그러니 질문자가 하고 싶은 일을 미리 연습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이 육십에 은퇴하면, 앞으로 30년은 더 살아야 되거든요.
과거 30년은 나와 내 가족을 위해서 살았으니까
앞으로 30년은 세상에 이익을 환원해야 되겠다고 생각한다면
할 일이 천지입니다.
정토회에 나오면 봉사할 수 있는 일이 정말 많습니다.
경주 같은 곳에서는 관광가이드를 해도 됩니다.
예를 들어
분황사 앞에 앉아서 관광객들에게 무료로 안내해 준다고 하면
시청에서 약간의 경비를 지급해 주기도 합니다.
월급 수준은 안 되지만 용돈 수준은 지급을 합니다.
이렇게 사회에서 유의미한 일을 찾으면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그건 걱정할 게 하나도 없습니다.
퇴직하면 우선 아내한테 진 빚을 갚아야 해요.
돈으로 갚았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인간관계에서 진 빚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밥을 해준 것은 밥을 해줘서 갚고
빨래를 해준 것은 빨래를 해줘서 갚아야지
돈으로 갚는 것은 크게 체감 효과가 없습니다.
빚도 갚고, 가족관계도 풀고, 아이들과 대화도 나눠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잔소리만 하면 쫓겨나기가 쉽습니다.
빚을 갚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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