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7)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_인간관계가 너무 힘들어요

Buddhastudy 2017. 3. 31. 20:30



 

저는 26살 직장인입니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너무 어려워하고 많이 긴장을 하는 것이 고민입니다. 사람들을 만나려고 모임 등 많이 참여를 하는데 기대 했던 것만큼 잘되지가 않습니다. 사람들을 만나면 늘 정신이 없고 잔뜩 긴장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쉽게 상처받고 다른 사람 대하는 것이 너무 어려운데 어떤 마음을 내고 어떻게 행동해야할까요? 고민스럽습니다.//

 

오늘은 셋이 다 같은 과라 쭈욱~

8명중에 이런 사람이 한명이 있어야 되는데 3명이 다 순서대로, 짜고 하나 그거?

그런데 아까 대학교 1학년 학생보다는 조금 나아. 자기도 그 과에 들어가는데, 조금 나은데, 그러니까 저기는 조금 심하기 때문에 내가 문을 열고 나가라. 과감하게.” 그런데 자기는 너무 고치려고 하면 안 고쳐지면 더 자기를 자학하게 돼.

 

그 정도 어울려야 한다는

노력을 하고 있으면

문제가 없어.

노력 더 이상 하지 마.

조용한 사람이 좋아.

 

괜히 어디 와서 떠들고, 말 많고,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입 다물어라.” 소리 듣고, “시끄럽다소리 듣고. 저런 사람은 절에 좀 많이 오면 좋아. 안 그런 사람들이 절에 와서 자꾸 시끄럽잖아. 그러니까

 

내가 사람들과 어울리는데,

어떤 말을 해야 된다.

또 즐겁게 말을 해야 된다.

남을 웃겨야 된다.

내가 좌중을 장악해야 된다.

이것은 욕심이야.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굳이 그래야 될 이유가 없어. 그냥 딴 사람들 말 다 하고 싶어 하니까 조용히 들어주는 것 좋아, 사람들이 물어도 대답을 안 하는 거, 이거 문제야. 그러니까 뭐 먹을래?” 이래도 입 다물고 가만히 있고. “어떻게 즐거웠어?” 이래도 가만히 있고. 이러면 사람들이 답답하다고 그래. 그러니까 뭐 먹을래?” 그러면 나 뭐 먹을게.” 이렇게 안 떠들어도 돼. 가만히 있으면 사람들이 물어. “너 뭐 먹을래?” 이렇게 물으면 짜장면이면 짜장면짬뽕이면 짬뽕이렇게 대답하면 되고.

 

사람들이 같이 어울리면 중국집에 가면, 종이 먼저 잡아서 너 뭐 먹을래?” 이렇게 하는 사람 있어요? 없어요? 있어. 그런데 물어도 대답 안하고 짜장면을 해야 할지, 짬뽕을 해야 할지 대답을 못하고, 꼭 그렇게 대답을 안 해서 시켜놓으면 나중에 꼭 한 그릇 모자라고, “도대체 누가 안 시킨 거야?” 이래서 체크를 하면 한 사람, 자기가 말을 안했어. 그런데 보통 보면 그런 사람은 자긴 꼭 의사 표시한 것처럼 착각하고 있어. 그래서 한명 늘 빠져. 20명 정도 가서 조사를 해봐. 늘 한명이 없어.

 

그래서 이 정도는 큰 문제가 없어. 모든 게 똑같을 수가 없어. 코끼리하면 무조건 다 크나? 코끼리도 조그마한 코끼리 있나? 조그마한 코끼리 있고, 쥐는 다 적나? 쥐도 큰 쥐가 있고. 사람도 180 2미터 이렇게 되는 종자가 있고, 아프리카가면 110 120 이런 종자가 있고, 피부도 검은 사람이 있고, 흰 사람이 있고, 그러지 않습니까?

 

우리가 같은 유럽사람 중에도 이태리나 스페인사람은 다혈질, 한국 사람처럼 다혈질이고, 영국사람 이런 사람들은 조용하고 그래. 냉정하지. 그런데 사람은 사람 죽었을 때 우나? 안 우나? 안 울어, 거의. 그러니까 이태리나 스페인사람들은 우리하고 똑같아. “엉엉이렇게 울고, 저 위에 사람들은 그냥 우는 거 없어. 장례식장에 가서. 그냥 겨우 한다면 눈물 정도 이렇게 흘리면 손수건 주면 아무소리도 안하고 닦고. 그런 정도지.

 

그러니까 이게 문화가 서로 다르듯이 사람이 같은 집안에 태어나도 형제간에도 성격이 다르고, 친구지간에도 다르고 그러니까, 자기 그 정도면 아무 문제가 없어. 고치려고 애 안 써도 돼.

 

자기가 고치가 싶다면

그게 부러운 거야.

좌중을 확 휘어잡는 게 부러워 보이는 거야.

성격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자기가 그게 부러워 보이는 거야.

부러워 보이면 자기가 연습을 하면 돼.

 

연습을 하는데, “너 뭐 먹을래?” 해도 대답도 못하는 정도의 수준에서 한꺼번에 청중을 휘어잡을 정도로 한다는 것은 욕심이야. “너 뭐 먹을래?” 할 때 대답 못하는 수준에서는 앞으로 목표를 어떻게 정할래? “너 뭐 먹을래?” 하면 짜장면이거부터 연습을 하는 거야. 그러니까 사람들이 앉은 자리에서 내가 어떤 얘기를 해서 사람을 좌중을 웃겨야 된다. 잡아야 된다.’ 이런 생각을 하지 말고, 그냥 뭐 먹을래?”하면 자장면.” “어땠니?”하면 좋았어.” 이정도 묻는 거는 대답한다.

 

묻는 것만 대답하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사람이 묻는데 대답 안하면 묻는 사람 속 타는 거요. 그러니까 대답은 한다.’ 이 목표만 정하면 돼. 자기 대답하는 쪽이야? 안 하는 쪽이야? 내 말에도 잘 대답을 안 하잖아. 그럼 이렇게 해야 돼. 목표를 이렇게 정해야 돼. 묻는 말에는 짧든 길든, “예스, 라고 묻는 말에는 뭐한다? 빨리 대답한다. 그거 하나만 딱 가져도 절대로 답답하다는 소리는 안 들어. 한번 해 봐. 묻는 말에만 대답을 빨리하면 답답하다는 소리는 절대로 안 들어요.

 

부부지간에도 답답한 거는 대답을 빨리 안하는 거요. 애도 뭐라고 그래도 대답 안하면 엄마가 답답하나? 안 하나? “배고프니?”해도 아무 말도 안하고, “밥 먹었니?” 해도 아무 말도 안하고. 그러면 엄마가 짜증나는 거야. 그러니까 묻는 말에 대답하는 정도면 돼. 그 이상은 안 해도 돼. 그 이상은 되면 좋고, 안 되면 좋고. 묻는 말에 대답만 하면 친구들한테 그런 소리 절대 안 들어.

 

자기 지금 묻는 말에 대답을 잘 안한다는 거야. 답답하다는 소리 듣는 거는. 안 하는 이유는 뭘까? 또 대답 안하잖아.

빨리빨리 대답을 해봐. 무슨 대답이든. 마이크 가까이 대고. 그러니까

 

긴장이 된다는 것은

잘 보이고 싶다는 거 아니야.

잘 보여서 뭐하려고? 잘 보여서 뭐하려는데?

나를 잘 봐주세요.” 해도 아무도 안 잘 봐주고.

그냥 가만히 있어도

볼 사람은 보고 안 볼 사람은 안보고 그래.

 

그러니까 너무 남을 의식하고 살지 마.

자기 생긴 대로 그냥 살아.

 

그러니까 이 세상 사람하고 얘기해봐야

건질 거 하나도 없어.

다 쓸데없는 소리 하고 있으니까

입 다물고 있는 게 나아.

 

다만 물으면 뭐는 한다?

대답은 한다. 짧게라도.

 

대답 좀 크게 해야 돼. 아따, 나도 답답해진다. 자기하고 얘기하니. 하하하. “!” 이렇게 얘기해 봐. 아니 안 들려, 다시. “알겠습니다.” 이렇게 해봐. 하하하.

 

그러니까 기도를 절에 다녀요? 교회 다녀요? 불교대학 다녀? 그러면 일단, 교회 다니는 사람도 불교대학 다니니까, 종교는 관계없이 불교대학 다닌다니까, 아침에 일어나서 기도를

 

부처님, 감사합니다.

~ 하고 인사하겠습니다.

~ 하고 대답은 잘 하겠습니다.

 

이렇게 자꾸 연습을 해야 돼. 누가 물으면 네. 이렇게 해야 돼. 무슨 말인지 알겠어?

여러분들 애들 키워보면, 애들 보고 뭐라고 뭐라고 엄마가 야단칠 때, “엄마 나 싫어. 나 안 할래.” 이렇게라도 대답하는 게 나아요? 아무 말도 안하는 게 나아요? 그래. 그러니까 대답은 예스, .” 내가 꼭 엄마 말을 들어야 된다. 이런 부담 갖지 마라니까.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내가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고. 무슨 대답이든지, 대답은 그냥 사람이 물으면 금방 해주는 게 좋아.

 

대답을 안 하면 상대편이 굉장히 답답해져. 소통이 안 되잖아. 우리 지금 누구하고 소통이 안 되잖아. 내가 말은 안하지만. 누군지 알아요? 자기 그런 사람 될래?

소통이 금방금방 되어야 돼. 그분도 굉장히 심사숙고하고 하지만, 그게 지나치면 답답해. 그러니까 우리는 오래, 좋은 거 내라는 것이 아니에요. 그냥 솔직하게 소통 좀 하자.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사람이 여기 쓰러져있을 때, 그걸 잡고 울어야지, 다 지난 뒤에 갑자기 앉아서 울면 좀 이상하잖아. 어디 갔을 때, 처음에 갔을 때 좀 울었으면 좀 소통이 되었을까? 안 되었을까? 되었겠죠. 그냥 그때 가서 안고 아이고, 내 잘못이오. 아이고, 내가 부덕해서 그렀소.” 이러고 같이 좀 앉아 엉엉 울어줘도 문제가 간단하게 해결이 되는데.

 

그리고 또 한참 지나서 앉아서 무슨 얘기하는데, 또 울기는 뭣 때문에 울어요. 그러니 이게 시기에 안 맞으면 오해를 하게 되요. 본인에게 또 물어보면 본인은 또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까? 없을까? 이유가 있겠죠. 처음에는 그 사람도 정황이 없어서 긴장을 해서, 우는 것도 잊어버린지도 모르고, 나중에 또 늦게 생각하니까, 울컥해서 우는지도 모르지만, 일반인이 볼 때, 그러니까 자꾸 오해가 빚어진단 말이오.

 

울 때 안 우니까 냉정하다 그러고, 안 울 때 우니까 연기한다고 그러고. 그러면 이런 오해. 실제로 그 분이 어떤지 그건 모르잖아. 그러나 오해가 빚어지는 이유는 현상에 상식적인 선에서 안 맞기 때문에 그래. 예외는 다 누구나 있을 수 있어. 그러니까 소통이 되려면 적어도 묻는 말에 빨리빨리, 모르면 모른다. 이렇게 대답을 해주면 돼.

 

저도 누가 뭐 물었을 때, 어떨 때 대답이 빨리 안 나와요? 결정이 안 나면 대답이 안 나옵니다. “스님, 어디 갈래요?” 이럴 때, 갈까 말까? 갈까 말까? 이렇게 결정이 안 나면 대답이 입에서 빨리 안 나와요. 그런데 우리는 대답을 빨리해주는 게 좋아. “아직 모르겠다. 좀 기다려라.” 이 대답도 빨리 좀 해줘야 되나? 안 해줘야 되나? 해줘야 돼. 우리가 어디다가 항의를 하거나, 무슨 건의를 했을 때, “잘 받았다.” 이 말이라도 해주면 좋은데, 그런데 몇 달이 지나도 소식이 없어.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도 모를 정도로.

 

받았다.” “아직 모르겠다.” “아직 결정이 안 났다.”

이 소통이라도 사람은 해줘야 돼.

그런데 다 자기 생각에 빠져있기 때문에

대답이 안 나오는 거요.

 

리더 그룹 중에도 나도 겪어봤는데 그래요. 테이블에 앉아서 많은 토론을 하면 그 자리에서 주고받아야 되잖아. 모르면 모르겠다. 난 아니면 아니다. 이렇게 소통이 되어야 되는데, 입 다물고 아무얘기도 안 해요. 그래서 대답도 없다가 일주일이나 한 달쯤 그때 얘기하는 거 하겠습니다.” 난 까마득히 잊어버렸어, 그 얘기. 두 달 만에 결정해놓고, “스님이 그때 하라고 그래서 결정했다.”고 그래. 나는 뭐? 두 달 지나 벌써 잊어버렸는데, “이제 한다.” 이런 사람이 있어요.

 

그러니까 이러면 사람이 답답해져. 자기가 답답다 하는 말을 듣는 것은 대답을 빨리 안한다는 거고, 대답을 빨리 안한다는 것은 속에서 자꾸 혼자서 망설인다는 거요. 그러니까 앞으로는 어떤 대답이라도 한다? “망설이는 중이다.” 이 대답이라도 해줘야 돼. 알았죠.

 

어릴 때 무슨 상처?

왕따가 꼭 나쁜 거 아니야. 그러니까 그거 뭐, 어릴 때 친구지간에 왕따 되었다고 그걸 갖고 상처라고 아직 징징 짜고 울고, 아직 자기는 유아적 사고라 그래. 어린애 같은 사고, 옛날에 입었던 상처를 꼭 움켜쥐고 있는 거요. 자기가 약간 소극적이 되면 , 내가 어릴 때 따돌림 당한 것의 상처가 나한테 남아있구나.”

 

두 가지 좋은 점이 있어. 이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학교선생을 하거나 애들 키울 때 따돌림 당하는 애들의 심리를 빨리 알 수 있어요. 왕따 안 당해 본 사람이 학교선생을 하면 왕따 당했다는 애를 야단을 쳐요. “뭘 그걸 갖고 그러냐? 별 일도 아니구만.” 이렇게 얘기 하는 거요. 남자들은 성추행 당해본 경험이 없으니까, 여자들이 성추행 당했다고 뭐라고 그러면 경찰도 그러잖아요. “그렇게 종아리를 내놓고 다니니까 그런 일이 생기지.”

 

종아리 내 놓으면 누가 만지라고 내놓나?

내가 시원하라고 내놓지.

 

일본사람도 얘기하다보면 그래요. 어제도 그런 토론하다 나왔는데, ‘한국이 조선조 말엽에 국력이 약하고 힘이 없으니까 일본이 침략을 했지.’ 맞아요. 우리가 힘이 있으면 침략할 수가 없지. 그것도 일리 있는데, 그런데 우리가 힘없는 거 하고 일본이 우리를 침략하는 거하고 정당화 하는 거 하고 무슨 관계가 있어요?

 

힘없으면

뺏어도 된다는 얘기에요?

 

그것은 우리가 우리한테 일본 놈만 나쁜 게 아니라 우리도 힘이 부족한 것도 우리도 문제가 있다.” 이럴 때 쓰는 거지, 그것을 남의 나라를 침략하는데 그것은 이유가 될 수가 없어. 여학생 보고 그냥 얘기할 때 남자라는 것은 이런 견물생심(물건을 보면 가지고 싶은 욕심이 생김)의 특징이 있으니까, 앞으로 그렇게 너무 노출을 안 하고 해라.” 이렇게 타이를 때 쓰는 거지, 그것이 이 범죄가 일어난 원인이 노출에 있다. 이렇게 얘기하면 안 돼요.

 

노출이 되어있다고

내가 만지라는 무슨 권리는 없잖아.

그러니 그것은 잘못한 거야.

잘못한 건 처벌하고,

 

다만 예방을 위해서 이런 권유를 할 수는 있지,

마치 그 원인이 노출한 사람한테

원인이 있는 것처럼 얘기하면 안 돼요.

 

얼마 전에도 무슨 사건이 생겨서 제가 얘기 들어보니까, 둘이 연애를 했어요. 연애를 해서 호텔방에 갔는데, 어이했는데 여자가 싫다고 나왔나봐요. 그럼 남자들이 강제로 해요? 안 해요? 강제로 하니까 뭐가 되었다? 강간죄가 된 거요. 강간죄가 되었는데, 조사를 하니까, 그냥 사람이 길가는 사람 잡아서 강간했다면 이건 이의가 없는데, 보니까 둘이서 뭐한 흔적이 있다? 연애한 전과가 있는 거요.

 

그러면 마치 사람들은 어때요? 이 책임이 남자한테 적고 여자한테도 있는 것처럼, 남자의 죄가 적은 것처럼 생각하기가 쉬워요. 그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여관방에 간 것은 내 자유고, 설령 갈 때 연애를 하기로 동의했다 하더라도, 이블 밑에서라도 싫다할 권리가 있나? 없나? 있어요. 그것을 강제로 하면 그것은 성폭행이에요.

 

그러니까 자기가 그럴 때 내가, 너무 얘기가 어긋났는데, 그러니까 피해를 입어보지 않은 사람은 피해자의 심리를 알기가 어렵다. 그래서 옛날부터 무슨 말이 있어요? ‘과부 심정은 과부가 알고, 홀아비 심정은 홀아비가 안다.’ 이런 말이 있잖아요. 그게 뭐냐? 그 피해를 입어봐야 그 심정을 잘 알 수 있어요. 그러니까 자기는 어릴 때 왕따를 당해보니까, “애들이 왕따 당했을 때 어떤 마음의 상처를 입느냐.” 하는 것을 잘 알 수 있어요. 자기가 직접 경험을 해 봤잖아. 그러니까 자기한테 굉장히 좋은 경험이 된 거요. 학습이 된 거요.

 

그런데 자기가 이것을 극복을 못하면 어떤 문제가 생기느냐? 그러면 그 아이 왕따 당하는 것을 보고 자기가 왕따 당하듯이 착각을 해서 자기가 괴로워지는 거요. 그런데 이것을 극복을 해야 두 가지 장점이 있어. 안 당하고 없는 사람보다는 당하고 극복하는 사람이 유리한 거요. 당하고 극복한 사람은 다른 아이가 당했을 때 이해하는 폭이 넓고, 또 극복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어떻게 극복하는지를 안내해줄 수가 있어요. 그럼 안 당한 사람보다 나아요.

 

그래서 어떤 대학생이 어떻게 하면 스님처럼 누가 이것저것 물어도 그렇게 자유로이 대답할 수 있을까요?” 그래. 그래서 내가 꼭 알고 싶니?” “.” 그래. “고생 많이 하면 된다. 해볼래?” 이러니까, 안하겠대요. 고생을 좀 많이 해야 돼. , 온갖 것을 좀 당해야 돼.

 

온갖 것을 당해서 상처를 입으면 어떠냐?

세상을 외면하게 되고, 원망하게 되고,

온갖 고생을 해도 거기에 상처를 입지 않으면

온갖 경험을 한 것이 되잖아.

그러면 이것이 실질적인 공부가 되는 거요.

 

그래서 그것은 좋은 거요. 나쁘게 생각하지 마. 이미 지나간 일이고. 그러니까 우선 남이 물으면 뭐부터 또릿또릿 빨리빨리 대답한다? 답부터 한다. 알았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