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질문
일체유심조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낸 것인데
세상에 일어나는 많은 부정적인 일들은
왜 일어나는 걸까요?//
첫 번째 이런 질문부터 너무 좋아서요.
제가 이걸 보고 대본으로 작성하면서도
질문이 너무 좋아서
사실 여러분들이 이제 저한테 보내주신 모든 질문들이 너무 좋아요.
그래서 그걸 다 다루려고 지금 준비를 한 겁니다.
--마음은 심층의식을 말한다
일체유심조에서 말하는 마음 심자 있죠
마음 심자
이거는 사실 표면의식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표면의식을 말을 하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잠재의식
혹은 그보다 심층의 무의식의 측면을 말하고 있습니다.
--마음속 깊이 갈수록 개인의 느낌이 옅어짐
그리고 표면의식층으로부터
의식의 심연으로 심층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님이 느끼시는 게아의 느낌 있죠?
개인의 느낌.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다.’
이러한 자기 규정마저도
이러한 관념이 만들어 내는 개인의 느낌 자체가 옅어져요.
불교에서 이야기하잖아요.
유식학이라는 학문에서 이야기합니다.
육식에서부터 칠식을 거쳐 팔식으로 들어가게 되면
점점점점 무자성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딴 게 아니라.
좋고 나쁜 것을 말을 하자면
어떤 기준이 있어야 됩니다.
질문하셨죠?
“세상에 일어나는 많은 부정적인 일들은 왜 일어나는 겁니까?”
나쁜 거라고 지금 내 의식이 규정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좋고 나쁜 걸 말을 하자면 어떤 기준이 있어야 된다는 거죠.
누구에게 좋고 누구에게 나쁘다라고 말을 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해요.
--‘나’라는 기준이 필요
즉 그 기준에 또 기준이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나예요.
나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나’라는 것은 하나의 허수입니다.
허수
나라는 것은.
이게 이 부분에 대해서 확실하게 설명을 하려면은
그 밤을 새도 모자라기 때문에
그냥 준비해 온 대로 지금 진행을 하고 있지만
쉽게 말씀드리자면
나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지금 어떤 하나의 물리적인 실체
독립적인 어떤 실체라고 받아들이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부터는
일종의 느낌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일단.
일종의 생각이나 느낌이라고 생각을 해보세요.
어떤 물리적인 실체라기보다
독립된 어떤 실체라기보다
일종의 느낌이라고 일단 한번 받아들여보세요.
그 상태에서 한번 들어보시는 겁니다.
나라는 것은 하나의 허수입니다.
지금 님이 나라고 믿고 있는 몸과 같이
실체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에요.
--‘나’라는 것은 ‘함수’에 가까운 것
오히려 일종의 느낌에 가까우며
어떤 느낌?
‘나’라는 형태의 느낌에 가까우며
수학에서 사용하는 함수에 가까운 것입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함수라는 게 뭔지 아시죠?
함수라는 게 그 수학 공식을 만들 때
대응하는 그 관계를 만들어 주는 거예요.
이보다 더 쉽게 이야기를 하자면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틀을 이야기해요.
함수관계라는 건.
여기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틀
그것이 작동하는 상황에 있어서
‘나’라는 것이 거기에 작용을 하는 겁니다.
필수 조건으로 작용을 하게 돼요.
그래서 어떤 식으로 작용을 하냐?
‘나’라는 것은 그 자신과 동일시할 대상이 없이
독립적인 실체로 존재하지 않아요.
--‘나’는 동일시의 대상없이 독립적 실체로 존재할 수 없다
예를 들어볼게요.
‘나는 이 몸이다’라고 느끼시죠?
이때 나는 뭐하고 동일시돼요?
몸하고 동일시돼요.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다’라고 할 때
나는 뭐하고 동일시돼요?
이러이러한 사람이다라고도
그 무엇이 되든 맞습니다.
그 어떤 규정이 되든 간에.
‘나는 오직 지켜보는 주시자로다’라고 거창하게 이야기할 때도
이 나가 뭐와 동일시돼요?
주시자와 동일시되죠.
‘나는 우주의식이다. 합일의식이다’라고 할 때도
우주의식 합일 의식이라는 어떤 특정한 의식의 상태와
동일시가 됩니다.
‘나는 위대한 영혼이다’라고 말을 해도
마찬가지예요.
이처럼 나라는 것을 따로 한번 떼보세요.
나라는 것을 따로 떼어놓고 보면
나라는 것은 독립적인 실체라기보다는
존재라는 것을 드러나게 하는 필수 조건
혹은 수학 공식의 함수와도 같은 것이에요.
그래서 나의 느낌과 같은 형태로 있는 것입니다.
존재함수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죠.
이 존재 함수가
나가 활동하는 형태가 어떻게 되냐?
공식 자체가 어떻게 되느냐 I am That이에요.
나는 이것이다.
그런데 의식의 심층으로 들어갈수록
이 존재 함수인, 이 허수인 나의 느낌이 점점 옅어집니다.
처음엔 인격적인 나의 느낌이 옅어져요.
여기에서 더 깊이 들어가면
인격적인 나의 느낌에서 비인격적인 앎의 느낌으로 변해가고
더 깊이 들어가면 순수한 앎의 느낌으로 변해갑니다.
더 깊이 들어가면 어떻게 돼요?
이마저도 일원성 안으로 사라져 버려요.
여기서 보다 본질적인 질문을 본인 스스로에게 한번 하는 거예요.
--분별하고 있는 ‘나’는 어떤 ‘나’인가?
지금 긍정적인 현실과 부정적인 현실을 나누어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어떤 나입니까?
어떤 기준점과 동일시된 나라는 얘기예요.
님이 지금 나라고 느끼는 그 마음 있잖아요.
이것은 표면의 마음이에요.
표면의 마음.
가장 표면의 마음이기 때문에 뭐와 동일시된 마음이죠?
몸하고 동일시된 마음이에요.
몸하고 동일시되어 있는 마음이기 때문에 뭡니까?
자연스럽게 나에게 좋은 것과 나에게 나쁜 것,
긍정과 부정을 절대적으로 분별하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현실은 무자성에 가까운 심층으로부터 나온다
그런데 지금의 현실을 만들어 내는 마음 심이라는 것은
무자성에 가까운 의식층에 존재하는 관념들로부터 나타나고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나’라는 것이 극도로 옅어진
그래서 무자성인, 무자성에 가까운
의식의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지금 현실이 나타나고 있다면
지금 내 마음이라고 느끼고 계시는 그 마음이
사실은 마음의 가장 어디에 불과하다?
껍데기 부분에 불과한 것입니다.
--현실을 만드는 마음은 분별하지 않는다
정리하자면
지금 우리의 현실을 만들어낸 마음은요.
긍정과 부정, 옳고 그름으로 대상을 분별하지 않아요.
이것을 분별하려면 뭐가 필요해요?
‘나’라는 어떤 자아의 느낌이 필요해요.
--관념은 주어가 없다
근데 그게 없어요.
주어가 없어요.
그래서 관념이라는 것은 주어가 없습니다, 사실.
근데 관념이 드러나려면 뭐가 필요해요?
주어가 필요해요.
의식의 가장 심연에 있는 관념이라는 것은
그냥 있는 거예요.
존재의 표현일 뿐이에요.
그래서 주어가 없어요.
그런데 얘네가 드러나려면, 현실로 드러나려면 뭐가 필요해요?
주어가 필요한 겁니다.
그래서 본래 있지도 않은 주체의 느낌을 끌어다 쓰죠.
그게 뭐예요?
‘나’라는 허수예요. 딴 게 아니라.
심층의식 안에 존재하는 관념들이
인드라망을 통해서 개개인의 현실 출력 회로를 타고서
오감과 현재 의식으로 체험할 수 있는
3D 입체 형상의 세계인
현실의 트랙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대답이 되어 있을 거예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절대적으로 구분하고 있는
그 마음 자체를 돌아봐야 된다라는 겁니다.
‘이 마음은 무엇과 동일시되어 있는 마음인가?’ 라고
들여다봐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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