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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4대 문명] 고대 그리스 역사, 올림피아 제전

Buddhastudy 2023. 3. 15. 19:54

 

 

 

2020년에는 도쿄에서 하계 올림픽이 열리고

2022년에는 베이징에서 동계 올림픽이 열리는데

원래는 올림픽도 하계와 동계가

같은 해 여름과 겨울에 열렸습니다.

 

그러다, 동계올림픽이 하계보다 인기가 없었고

1년에 두 번하는 것보다는 2년에 한번씩 개최하는 것이

수익과 시청율 확보를 위한 상업적인 이유로

1994년부터는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이 따로 개최되었던 거죠.

 

올림피아 제전은 기원전 776년에 처음으로 개최되었는데

그 이전에는 처음에는 4년 주기가 아닌

8년주기마다 올림픽이 열렸다는 설도 있습니다.

 

올림픽의 기원이 되는 고대 올림피아 제전은

고대 그리스에서는 종교 의식의 하나로

여러 가지 제전 경기가 많이 열렸는데

그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제일 오랫동안 유지되었던 대회가

올림피아 제전이라고 합니다.

 

이는 고대 그리스에서는 8이라는 숫자에 대해 완벽한 숫자라고 여겼는데,

이유는 태양신 아폴론과 달의신 아르테미스가 만나는 주기가 8년 주기였기 때문이었죠.

신화에 의거한 이유뿐만 아니라

실용적인 면에서도 8년 주기가 적용되었는데요

당시 그리스인들의 폴리스는 여러 국가들로

나라마다 쓰는 달력의 기준이 달라서

어떤 곳은 태양력을, 어떤 곳은 태음력을 썼는데

서로 다른 날짜의 타협을 볼 수 있었던 기준이 8년 주기였던 겁니다.

 

그러다 기원전 776년을 전후로

그리스 전체에 위기 상황으로 접어드는 시기가 찾아옵니다.

잦은 전쟁과 역병의 유행으로

국가들마다 분위기가 우울해졌는데요.

이때,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위치한 엘리스의 왕인 이피테스가

적국인 스파르타에게 하나의 제안을 냅니다.

바로 그리스의 전능한 신 제우스를 모시는

올림피아 제전을 치르자고 한 것이죠.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기간동안에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서로가 앙숙이었던 엘리스와 스파르타는

언제든지 서로 물어뜯을 수 있는 적국의 사이였는데

뜬금없이 제사를 지내자라는 제안은

그야말로 올림피아 제전이 목적이 아니라

휴전을 하는 게 눈에 보였지만

스파르타는 이 제안에 응하게 됩니다.

 

제우스를 위한 제사를 지내고 제전 경기가 열렸는데

이러한 올림피아가 계속해서 열린다면

휴전이 길어질 수 있다고 판단하여

주기가 8년이면, 그 사이에 국가 간의 마찰이 생길 수 있어

더 자주 대회를 열자는 취지에서 4년 주기로 바뀌게 된 거죠.

 

이렇게 4년 주기의 올림픽은 기원전 776년에 시작되었으며

처음 종목은 단거리 1스타디온 달리기 종목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시대로 치면 2백미터 달리기 정도의 거리였죠.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멀리뛰기, 원반던지기, 레슬링 등

점점 종목이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올림픽은 휴전의 목적과 그리스인들의 화합을 위해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대 사회의 올림피아 제전은

화합의 장이라고만은 할 수 없었습니다.

 

--

올림피아 제전은 제우스에게 바치는 제전경기로

개최시기는 7월에서 9월 사이 만월이 있는 날을 중심으로 하여

주로 5일 정도 진행되었습니다.

 

경기종목은 개인경기로 초기에는 경기장 끝에서 끝까지 달리는 200미터 정도의 단거리 경주뿐이었고

1회 대회 우승자는 에리스의 크로에포스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14회부터는 경기장을 왕복하는 경주

18회부터는 레슬링, 멀리뛰기, 창던지기 등 다섯 종목,

추후에는 4두 전차경기, 경마, 판크라티온 등

다양한 종목들로 점점 규모가 커져갔습니다.

 

운동종목 뿐만 아니라 시인,철학자,예술가 들이

문학과 연극 작품들로 승부를 겨루었는데

유명한 역사가인 헤로도토스또한

아테네의 역사 연구를 처음 발표한 곳이 올림픽이었죠.

 

고대 그리스 올림픽 경기에서의 가장 특이한 점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옷을 전혀 걸치지 않고 경기를 치루었다는 겁니다.

초반에는 중요한 부위를 가리는 얇은 천이라도 걸쳤지만

스파르타인들이 그마저도 벗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옷을 걸치지 않은 대신, 온 몸에 올리브유를 발랐는데

이는 몸 전체에 기름을 바르고 모래를 뿌려

날씨 변화에 따른 체온 변화를 방지했으며

탄탄한 몸과 그을린 몸을 자랑으로 생각했죠.

 

제우스를 향한 순수한 제사정신과

깨끗한 스포츠맨쉽으로만 이루어질 것만 같았던 올림피아 제전도

시간이 지나며 하나둘 얼룩지기 시작했는데요.

 

우선, 경기에 제대로 임하지 않고

일부러 상대에게 져주는 행위였는데

현대 사회를 비추어보자면 뉴스에서 종종 볼 수 있었던

돈을 받고 일부러 져준다는 일이 있었죠.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을 전후로

스타크래프트를 비롯해 농구, 야구, 배구계에서

불미스러운 일들이 있었던 기사들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이는 비단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스포츠 계에서는 이전부터 세계 4대 빅리그인 이탈리아 세리에A 리그,

독일 분데스리가 등지에서도 종종 발견되고

뿐만 아니라 월드컵이나 올림픽에서도 발견되었습니다.

 

고대 올림픽에서도 승부예측 내기 문화로 인해

수많은 뇌물과 반칙이 난무했는데

그리스가 로마 영역에 들어가고서는

네로 황제가 직접 올림픽에 참가하여

전 경기를 휩쓸어버리는 사례도 발생했습니다.

 

이러한 승부에 관련된 일뿐만 아니라

실제 경기 내용들 면에서도 현대 사회보다 훨씬 과격하여

승자는 국가의 명예와 힘을 자랑할 수 있었지만

패자는 레슬링이나 복싱 같은 종목에서는

많은 이들이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복싱으로 예를 들자면

현대사회에서의 글러브에서는

소가죽이나 합성피혁으로 둥근 모양으로 둘러싸여 있어

선수의 손을 보호하고 동시에

상대 선수에게 직접적인 충격이 가해지는 강도를 줄여주는 것이

글러브의 목적인데요.

하지만, 고대 복싱은 가죽끈으로 여러 차례 손과 팔에 휘감았던 히멘테스라는 형태로

상대방에게 더욱 심한 타격을 주는 것이 목적이었으며

여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돌과 납을 넣기도 했습니다.

 

이는 로마 시대에 가서는 날이 선 쇠를 손에 감은

악명 높은 카에스투스라는 글러브가 되었고,

복싱은 선수들이 가장 많이 사망하는 종목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목숨을 걸어야 했던 올림픽이었는데

잔인했던 종목은 비단 복싱에 그치지 않았죠.

 

 

케이블TV를 보다보면 인기 종합격투기인 UFC가 방영될 때가 있는데

가장 유명한 선수 중 한 명으로

아일랜드 출신의 코너 맥그리거라는 선수가 있습니다.

 

이 선수가 유명한 이유로는

2개의 체급을 처음으로 동시에 석권한 선수였기 때문인데

UFC에는 체급별로 플라이급, 라이트급, 헤비급 등으로

각자 자신과 비슷한 체급 선수와 시합을 붙게 되죠.

 

고대 그리스 올림피아 제전에서도 UFC와 비슷한

판크라티온이라는 경기가 있었습니다.

고대의 격투노예들이 마구잡이로 싸우던 것을

좀 더 완벽한 격투기로 구사하기 위해

연구하고 많은 이들에게 퍼지게 된 기술인데요.

 

판크라티온은 고대의 문헌이나 그림, 항아리에 기록되었으며

이는 그리스의 병사들이 전쟁터에서

무기가 떨어졌을 때를 대비해 배워두기도 했습니다.

 

UFC와의 눈에 띄는 차이점은

판크라티온에는 체급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 덩치가 크든 작든 조건에 관계 없이

눈앞에 있는 상대와 무조건 싸워야 했던 거죠.

 

이 경기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었는데

선수가 땅에 넘어져도 계속 진행되는 카토 판크라티온과

서 있는 상태에서만 시합하는 아노 판크라티온으로

올림픽 경기에서는 주로 카토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니, 상대가 쓰러졌음에도 그야말로 봐주는 일이 전혀 없었고

심지어는 경기 시간 제한도 없는 무제한이었기 때문에

생명이 다할 때까지 싸우게 되었던 거죠.

 

 

과격한 스포츠들과 잔혹한 면들도 많았던 올림픽이었지만

정상적인 스포츠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가장 인기가 많았던 종목 중 하나로는

펜타트론이라는 5종 경기로

달리기, 멀리뛰기, 원반던지기, 창던지기, 레슬링인데요.

특히 달리기 경주가 당시에는

가장 인기가 많은, 주 이벤트였다고 합니다.

 

스타디온이라는 달리기 우승자가 가장 많은 명예를 얻었으며

올림픽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우승자에게는 올리브 관과 종려나무 가지 그리고 우승자의 머리띠만 수여하면서

상금보다는 명예를 주는 방식이었는데

이는 공식적으로 보여지는 면이었고

실제로는 많은 부분에 있어서 혜택을 받았습니다.

 

우승자가 고국으로 돌아가면

마치, 공항에서의 올림픽 선수 환영식처럼

그 시대에도 성대한 개선식이 열리고

평생 세금을 면제받게 됩니다.

그리고는 초고속 승진으로 장군이나 지휘관이 되기도 했죠.

 

 

올림피아 제전은 여성의 참석이 금지되었으며

구경이라도 하다 적발되면 절벽으로 떨어뜨렸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 여성이 참가할 수 있는 경기가 생겼는데

종목은 전차 경주로 전차의 주인인 경우, 참가가 가능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도 직접적인 참가가 아니라 전차는 소속 마부가 몰았으며

우승을 하게 되는 경우, 월계관을 받을 때 직접 받은 정도였죠.

그러다, 이러한 규제들도 기원전 4세기 경부터 좀 더 풀리면서,

여성들만의 제전 경기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고대 그리 역사 다섯 번째 시간으로

올림픽의 기원인 올림피아 제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았는데요

지금 시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과격한 행사였지만

그나마 이전보다는 발전적인 형태로 보는 이유는

같은 언어, 종교를 지닌 같은 민족끼리

서로를 매번 죽이기만 하다가

일시적으로라도 한 장소에 모여서 일시적인 화합을 도모했다고 볼 수 있죠.

 

올림피아 제전 시기 동안만큼은

전 그리스의 폴리스들이 도둑질조차 엄격하게 금지할 정도로

신성한 기간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