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역사의 도시국가들인 폴리스 중에서
아테네와 함께 유명세를 떨친 국가로는
빡빡한 교육이 떠오르는 스파르타가 있습니다.
기원전 12세기경, 크레타섬의 맹주였던
고대 그리스 계열의 미케네 문명이 멸망하고
이후 그리스 암흑시대 동안 스파르타 지역에서는
4개의 정착촌이 있었는데요
그 중 두 세력이 동맹을 하여, 다른 2개의 정착촌을 멸망시킨 것으로
스파르타의 기원이 이루어집니다.
이로 인해 스파르타는 특유의 Dual king 제도였으며
본국은 병영국가로서 운영을 하고
상공업은 식민지로부터 공수하는 형태였죠.
전투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던 미케네 문명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고도 할 수 있는 스파르타는
집단 전사문화 뿐만 아니라
여성의 참여 활동도 자유롭게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그리스 암흑시대가 끝나고 기원전 8세기 무렵부터
아테네와 함께 스파르타에서도 두드러지게 인구가 많이 증가하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폴리스들끼리의 경쟁으로 스파르타는
라코니아와 메세니아를 정복하여
정복한 지역의 시민들을 노예화시킵니다.
그렇게 영토확장을 해가던 스파르타는
기존의 자국민들과 식민지 시민들사이의 양극화가 벌어지며
심심찮게 반란이 일어나고, 정국의 불안함이 이어졌는데요.
이때 등장한 인물이 ‘리쿠르고스’라는 인물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정확하게 언제 등장했는지는 모르나
고대 역사가인 헤르도토스나 플라톤 이전 시대에 있었던 인물로 추정되며
스파르타의 전설적인 입법자로 통하는 인물입니다.
리쿠르고스는 스파르타 사회를 군국주의로 개혁하여
시민들 간의 평등, 군사적 적합성, 엄격성을 지향했는데
사치가 금지되고, 공동식사 제도가 확립되었으며
그 유명한 스파르타식 교육제도 또한 이때쯤에 정립되었다고 합니다.
리쿠르고스 개혁의 여러 사례들로는
28명으로 구성된 장로회를 설치하여
왕과 동등한 입법 권력을 가지게 했습니다.
또한, 사치를 근절하기 위해 귀금속 화폐를 폐지하고
녹슨 쇠 화폐를 사용하게 했죠.
주택에서도 화려하고 웅장한 형태를 금지하며
모든 스파르타인이 비슷한 크기의 주거 수준을 갖게 됩니다.
이를 위해 부유층의 토지와 노예를 몰수하여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면서
누구나 자영농으로 살아갈 수 있게끔 스파르타 전체를 평준화로 재정리를 합니다.
조금 전에 언급한 공동식사 제도라는 것은
구역 단위마다 공동 식당이라는 것을 설치해
그 구역에 사는 사람들은 항상 같은 곳에서 식사를 하며
친분을 쌓게하여, 주민들의 공동 의식을 키운 제도였죠.
이러한 환경이 갖춰지게 되면서
이제 잔인한 스파르타 교육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스파르타 교육 제도는 고대 그리스어로 ‘아고게’라고 하는데요.
교육의 주요 목적은
국가에 충성하는 애국심 향상과 강한 체력을 기르는데 있으며
국가가 모든 교육을 철저하게 통제했습니다.
아고게라는 단어는 고대 그리스어로 ‘양육’을 뜻했는데
일반적으로는 훈련이나 지도(leading)를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교육 내용에는 생활 유지에 필수적인 사냥
사고력을 기르는 논변학, 실전 체육이 주된 내용이었으며
태어날 때 장애가 있는 경우는 인간이 살지 않는 곳에 버려지고
일반 아이들도 이 교육 과정으로 인해
수많은 아이들이 살아남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그럼, 진짜 스파르타 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요?
한국에서는 한창 입시교육 열풍이 불던 90년대 전후로 하여
스파르타식 교육이라는 학원들이 제법 있었죠.
주로 기숙사형 재수학원에서 스파르타 교육이라는 광고를 많이 내걸었는데
물론 이 교육법으로 성과를 본 학생들도 있지만
많은 문제점을 야기한 방법론으로 평가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고대 스파르타에서 이루어졌던 진짜 스파르타는
빡센 입시공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더욱 비인간적이었는데
훈련 과정에서 부상이나 사망도 많았으며
꼬마 아이들의 정서적 보살핌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훈련으로 인해
사망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습니다.
스파르타 교육은 그야말로 태어날 때부터 시작되는데요.
집안에서 아기가 태어나게 되면
다섯명들의 검사관들이 아이 검사를 거쳐
신체에 장애가 있다거나 체형이 작다 싶으면 절벽에 떨어뜨려 세상과 이별시켰습니다.
여자 아이인 경우에는 추후 군사 자원을 잉태하는
중요한 역할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우선적으로는 귀중하게 생각했지만
16살이 될 때까지 2차성징 징후가 나타나지 않으면
역시 절벽에 떨어뜨려, 생이 마감되었죠.
태어난 아이들은 7살까지는 집안에서 자라는데
유아기 시절 때 아버지에게 배우는 교육은 전투상식과 예절을 배운 뒤에
7살이 되면 스파르타 교육을 의미하는 ‘아고게’를 시작하게 됩니다.
마치, 기숙사형 학원처럼
남자아이들은 7살부터 집을 떠나 살게 되는데
아고게 훈련을 받기 위해 집단 생활교육을 받게 되죠.
그러고는 30살까지 약 23년에 걸친 군복무생활을 하게 됩니다.
스파르타에서 말하는 사치 근절 교육은
물질적인 사치뿐만 아니라
가정에서의 따뜻함 또한 사치라고 생각했던 거죠.
입소하자마자 잔인한 교육방법을 받는데
그 과정이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라서
노란딱지를 받을까 봐 자세한 설명은 못하구요
우리나라 군대 훈련소 입소 때보다
훨씬 비인간적이라는 정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합숙학교라는 공간에서의 침대는 각자가
자신이 잘 수 있을 정도의 풀을 뜯어 모아서 만들었고
겨울에는 따뜻한 이불이 아닌, 풀 안에 가시를 박았는데요
겨울에 자다가 얼어 죽으면 안되기 때문에
자다가 중간중간에 깨야 했기 때문이죠.
이제 훈련소 시절 같은 예비학교 과정이 끝나게 되면
초등학교 1학년 과정이라 할 수 있는 진짜 훈련에 접어들게 됩니다.
24시간 중에서 10시간이 군사훈련이었는데
여기에는 기초근력 훈련과 검술, 창술, 방패술, 근접전, 레슬링 등
여러 가지 훈련이 진행되었으며
잠은 하루 7시간, 식사 시간은 하루 1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초기훈련은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 겨루기는 아니고
태권도의 품새나 혹은 쿵푸 훈련의 단체훈련처럼
특정 동작들을 일정하게 반복하는 훈련으로 교육과정의 체계가 있었습니다.
교육과정이 있다면, 당연히 시험도 존재했는데요
얼마나 신속하게 대열을 유지하고 교체하는지
창법과 방패술의 단체동작이 잘 이루어지는지 등
시험에 따른 평가도 있었다고 합니다.
고대에 이루어졌던 진짜 스파르타 훈련에서는
실전적으로 이루어지는 실기뿐 아니라
이론적인 암기 공부도 함께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 암기 공부에서도 많은 학생들이 세상과 이별하게 되었는데요
전쟁터에 나갔을 때, 갖가지 변수에 대비하기 위해
자연에서 먹을 수 있는 풀과 독초에 대한 구분법을 공부를 하고
각 풀에 따른 암기를 하게 됩니다.
여기까지는 살기 위한 암기법이었다면
이제는 죽지 않기 위한 위험한 훈련법을 시행하는데요
독초에 대한 면역력을 키워야 한다는 이유로
학생들은 지속적으로 독초를 복용하게 되었던 거죠.
이 과정을 버티고 살아남게 되면
스파르타 전사들은 독초를 먹어도 살 수 있다는 강인함을 보이며
적을 압박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겁니다.
또 다른 이론 수업으로는 하루에 2시간씩 철학, 수학, 문학을 배웠는데
요즘 시대처럼 고도로 발달 된 학문이 아니라
읽고, 쓰고, 계산하는 정도로만 이론 교육이 이루어졌습니다.
깊게 생각하는 사고를 기르게 되면
강력한 전사가 되지 못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죠.
즉, 전사는 군인으로서 생각하는 폭이 넓어서도 안 되고
명령과 충성이라는 삶의 지표만 있어야만 했던거죠.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인생이야말로
최고의 명예라고 생각하게끔 만들었다고 할 수 있죠.
어느 정도 자라게 되면, 인내심 교육과정이 있는데
스파르타인들은 강철 근육이나 강철 피부를 만들기 위해
교육생들을 1년에 한 번씩 나무에 묶어놓고
뜨거운 물과 채찍을 이용하여 갖가지 고문을 하고서는
재빨리 차가운 물에 뛰어들어 몸을 식히게 합니다.
그렇게 하면 강철 피부가 된다고 믿었지만
이 상황에서도 살아남지 못하는 경우가 생겼습니다.
인내심 교육과정에서 이용된 채찍 버티기는
이후 700년 이상이 흘러 로마제국 시대에서는
스파르타 지역의 관광상품이 되기도 하는데요.
로마제국 시대에는 거의 전 유럽을 지배했는데
그중 그리스 지역들도 포함이 되었죠.
로마인들은 그리스 신화도 선호했던 만큼
아테네 지역과 스파르타 지역에 대해서는
다른 곳에서 거두는 속주세를 면제했습니다.
아테네에 대해서는 문화 도시로서 인정했다면
스파르타에 대해서는 관광 도시로 두었는데
그중 관광상품으로 스파르타 풍속의 채찍 버티기가 있었죠.
로마 시절에서는 그 잔인성을 실제로 재현한 건 아니고
퍼포먼스 정도로 고대 풍속을 보여주었던 겁니다.
스파르타 학생들은 청소년기가 지날 때쯤이면
학교이자 군대에서는 이제 하루에 한 끼만 제공합니다.
나머지 두 끼는 본인이 알아서 구해야 했던 거죠.
돈으로 사먹는건 아니었고, 마을로 가서 약탈을 해야 했습니다.
특히, 식민지에서 데려온 노예라면 목숨을 앗아도 되는데
이는 정책상 힘 있는 노예는 일부러 없애길 권장했다고 합니다.
앞으로 스파르타에 대한 반란의 씨를 없애는 역할을 했던 거죠.
이러한 수많은 과정을 거쳐 소수의 인원이 살아남게 되면
전투력 최강의 엘리트 전사들이 탄생하게 되는데요.
그렇다고 해서 스파르타가 최고의 군대를 보유하게 되느냐?
그도 아닌 것이
힘든 훈련을 극복한 극소수 앨리트들은 각개 전투에서는 유리했지만
전쟁에서는 기본적으로 수적인 열세는 불리함을 나타냈기 때문에
군대의 규모에서는 그리 강력한 군대를 거느리진 못했던 거죠.
이는 폴리스 간의 경쟁에서도
패권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없었던 이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고대 그리스 역사 네 번째 시간으로
진짜 스파르타 교육에 대한 정리해 보았는데요.
기원전 8세기 무렵부터 스파르타 사회는
시민들 간의 평등, 군사적 적합성, 엄격성을 지향했고
그로 인해 사회가 군국주의로 개혁되며
교육에서는 생지옥 같았던 스파르타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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