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 역사/손석희앵커브리핑(2018)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2018년 초여름의 거리… 꽹과리와 징은 울렸다'

Buddhastudy 2018. 6. 6. 19:00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꽹과리와 징을 울리며 백성들은 임금 앞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정조의 어가는 몇 번이나 걸음을 멈춰서야 했지요.

 

'격쟁'

임금의 궁궐 밖 행차에 직접 뛰어들어서 왕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는 제도

백성은 임금 앞에 그렇게 서기를 원했습니다.

 

살곶이 다리.

오늘날 중랑천과 청계천이 만나는 그곳에 다리는 아직도 남아서 조선시대 만들어진 것 중 가장 긴 다리라고 알려집니다.

 

그 살곶이 다리 한가운데 엎드려서 아비의 억울함을 호소한 10살 아이부터 마을 수령의 부패와 본처와 첩을 가려달라는 사소한 문제까지

정조는 재위기간 중에 총 1335건의 격쟁을 처리하였다 하니 그의 어가는 길에 나설 때마다 수십 번 멈춰 서서 백성과 눈을 맞추었을 것입니다.

 

물론 격쟁이 말처럼 쉬웠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왕의 행차 길을 막아선 불경으로 사연과 관계없이 곤장을 맞아야 했고, 사리에 맞지 않을 경우에 곤장을 맞고 귀양까지 가야 한다는 으스스한 조건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백성의 격쟁이 끊이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당시의 조선은 행정권과 사법권이 분리되지 않아서 마을을 다스리는 수령이 재판까지 관장하던 시절.

 

모두가 그렇지는 않았겠지만.

판관으로서의 수령을 믿지 못했던 백성들은 결국 위험을 무릅쓰고 왕을 찾아가서 억울함을 아뢰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백성의 하소연을 품어준 애민군주 정조의 사례는 훈훈하지만 거꾸로 말하면 백성의 믿음을 얻지 못했던 판관들의 실체가 어떠했는가를 알려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른 더위가 시작된 2018년의 초여름

그러니까 정조의 시간으로부터 200년도 훨씬 더 지나온 지금

차마 의심하지 못했던 판관들의 실체를 알아내고야만 백성들은 다시 길거리로 나서고 있습니다.

 

"뭔가 만나면 그냥 덕담하고

이렇게 좋은 이야기로 분위기 만들어야죠.

그냥 일회성으로 넘어가는 것이지"

- 양승태 전 대법원장, 61

 

청와대와의 뒷거래가 아닌 덕담 같은 것이었다는 당시 수장의 해명이 나왔지만 그것을 믿을 사람은 없습니다.

왕정도 아닌 법치국가의 시민의 자존심은 또 한 번 구겨졌지요.

 

그렇게 내리쬐는 초여름의 햇살 아래.

법의 판단을 믿지 못해서

거리로 나선 사람들 사이로 그 시절에 울렸을 꽹과리와 징 소리가 마치 귓전에 울리는 듯.

약자가 만인 앞에 나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2018년의 서글픈 격쟁의 풍경.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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