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과거 왜곡의 광정’
대외비라는 빨간 표시가 선명히 박혀있는 이 보고서는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인 2015년 7월에 작성됐습니다.
‘광정’은 무슨 뜻인가...
나름 한자어에 익숙한 세대지만 그 단어는 사전을 뒤져본 이후에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잘못을 바로잡아 고침’
아무튼 대법원이 ‘광정’하여 체제수호,
즉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했다고 자평한 이른바 성과들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한국전쟁을 전후로 한 민간인 희생자에 대한 국가배상을 제한하고
유신 시절 긴급조치에 따른 체포, 구금, 고문 등 피해에 대해서도 국가가 배상할 필요가 없다는 판결...
그런데 그들은 왜 하필 ‘광정’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을까.
생각해보면 법원에는 일반인들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는 단어들로 넘쳐나고 있죠.
법정 드라마를 찍는 배우들을 괴롭힌 것 역시 외계 어와도 같았던 낯선 법정 용어들이라고 합니다.
소위 사회의 엘리트라 불리는 그들은 자신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그 언어들 사이로 보다 높고 견고한 권력의 철옹성을 만들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대법관의 숫자를 늘리면 되는데, 왜 상고법원을 더 만들겠다고 했을까?’
이런 기자에 질문에 대한 법조계 인사들의 답변은 매우 간단했다고 합니다.
“대법관의 희소성을 지키겠다는 거지요.”
대법관이 고귀한 이유는 숫자가 적기 때문인데 숫자가 늘어나면 그만큼 권위가 떨어진다는 논리...
즉, 법원의 힘은 거대하게 부리되 권위는 그대로 유지하고자 했던 그들은 그 핵심과제를 얻어내기 위해서
법관의 독립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사법 가치를 거래의 장물로 내어놓았다는 해석이 될 것입니다.
“과거 왜곡의 광정”
어떻게든 원하는 것을 얻어내고자 했던 법원은 정권과 거래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 문건의 주인공인 양승태 대법원장의 퇴임사는 정반대의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정치적인 세력 등 부당한 영향력이 조금이라도 허용되는 순간, 어렵사리 이뤄낸 사법부의 독립은 무너지고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말 것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정작 ‘광정’해야 할 것은 바로 자신들의 과거...
새삼스레 사람들로 하여금 사전을 뒤져보게 만든 ‘광정’
그의 대법원이 삼권분립을 무너뜨리고 건져 올린 낯설고도 초라한 단어 하나.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시사 - 역사 > 손석희앵커브리핑(2018)'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9.4(화) '다시 한 번 헤드록' (0) | 2018.09.05 |
---|---|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8.30 (목) 'The show (magic) must go on' (0) | 2018.08.31 |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8.27(월) "오늘은 전두환 씨가 잊었을지도 모를 그의 대통령 당선일" (0) | 2018.08.28 |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8.22(수) '잊혀진 이름…월트, 브렌던, 더그…' (0) | 2018.08.23 |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8.21(화) '가장 느린 투수…그의 일점집중' (0) | 2018.08.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