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그러면 시간 남으면 또 더 말씀 드리고, 96페이지 또 원문을 가겠습니다. 원문을 다시 또 읽어보겠습니다.
수보리야 여래 실지실견하나니
시제중생이 득여시무량복덕이니라
하이고오 시제중생이
무부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하며
무법상하며 역무비법상이니
하이고오 시제중생이
약심취상하면 즉위착아인중생수자니라
약취법상이라도 즉착아인중생수자니
하이고오 약취비법상이라도
즉착아인중생수자니라
시고로 불응취법이며 불응취비법이니
이시의고로 여래상성하되 여등비구
지아설법을 여벌유자라 하노라
법상응사어든 하황비법이랴
위에 한물 읽었습니까? 한글 봤습니까? 뭐든지 다 괜찮습니다. 자꾸 하다보면 한문이 봐지게 됩니다. 한글 밑에 보십시오.
수보리야, 여래는 중생들이 깨끗한 믿음을 내는
무량복덕을 얻는 줄을 다 알고 다 보느니라.
왜냐하면 깨끗한 믿음을 낸 중생들은 다시는
자기가 제일이라는 모습(아상)이 없으며
나와 남을 나누어 보는 모습(인상)이 없으며
재미있고 호감가는 것만을
본능적으로 취하는 모습(중생상)이 없으며
영원한 수명을 누려야지 하는 모습(수자상)이 없기 때문이니라.
또한 이들에게는 객관의 대상(법상)도 없으며
대상 아닌 모습(비법상)도 없느니라.
왜냐하면 만일 중생들의 마음에 생각을 가지면
곧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가짐이 되며
만약 법상을 취하더라도 곧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가지게 되느니라.
법 아닌 상을 취하더라도 이는 곧 아상, 인생, 중생상, 수자상을 가지게 되는 셈인데
하물며 법상이랴!
그러므로 마땅히 객관의 대상에도 매이지 말며
대상 아닌 모습에도 매이지 말지니라.
이런 이유로 내가 항상 이르되 나의 설법을 뗏목에 비유하였느니라.
법도 버려야 하는데 하물며 비법에 매여서 되겠느냐.
한글풀이도 만만치 않죠? 한글을 봐도 원뜻이 워낙 어렵기 때문에 무슨 말인가? 좀 어렵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다시 또 체크를 해봐야 할 것이, 97페이지 거기, 아래 사상에 대한 얘기를 해 놨습니다. 사상. 하도 중요해서 다시 또 설명해 놨습니다. 읽어보겠습니다. 아상,
아상은 한마디로 말하면 지잘났다는 그러한 고집, 지잘났다는 생각입니다. 거만하고 오만한 사람도 있죠. 그러다가 왕따 당하죠.
인상, 인상은 차별의식, 남을 무시하고, 또 지역감정 일으키고 하는 사람들, 전부 인상에 사로잡힌 사람들입니다. 인상.
중생상, 재미있고 호감가는 것만을 본능적으로 취하는 모습이다. 좋은 것, 재미있는 것은 취하고, 귀찮으면 버리는 ,그러한 것을 취하는 중생들의 버릇을 중생상이라, 이렇게 말해요. 그러니까 자기는 취미로 낚시를 하고 사냥을 하지만, 상대는 어떻습니까? 상대는 죽을 지경이죠. 그 중생상 때문에 여러 중생들을 괴롭히는 겁니다.
수자상, 영원한 생명을 누려야지 하는 모습니다. 뱀, 지렁이를 먹는 행위라 했는데, 여튼 권력이 영원하리라는 생각, 명예가 영원하리라는 생각, 이 몸뚱아리가 영원하리라는 생각, 이것이 다 수자상입니다.
그러나 아무튼 이 사상, 아상 인상 중생상, ‘나’라는 모습, 남이라는 모습, 중생이라는 모습, 수자라는 모습에 집착하는 것을 아집이라 그렇게 말해요. 그 밑에 읽어보겠습니다. 아집. 아집. 그러니까 나에 대한 집착, 스스로에 대한 집착입니다. 이 아집이 있으면 본인이 아주 힘들고 괴롭습니다. 아집 때문에 괴롭습니다. 그런데 이 아집이 없어진 상태, 아집을 버린 그 상태를 인무아라. 이렇게 말해요. 인무아. 그 옆에 보입니까? 읽어 봐봐요. 인무아. 아집은 버려야 되요. 버린 아집의 자리가 인무아라, 이 말이죠.
그런데 그 밑에 보면 또 오늘은 좀 더 진도가 나간 것이 이 법집이 나왔어요. 법집은 법상과 비법상을 아우르는 말입니다. 법집, 읽어보겠습니다. 법집. 법상이라. 안에 설명은 다 잘되어있습니다. 나중에 집에 가셔서 꼭 읽어보시기를 바라고, 아무튼 이 법상이라는 것은 상대의 모든 환경, 또는 부처님 말씀이라 할지라도 거기에 집착을 너무 많이 하게 되면 또 문제가 생겨요.
좀 어려운 말인데, 아무튼 또 법상, 그렇다 해서 “그러면 부처님 말씀은 아무것도 아니네. 부처님 아무것도 아니네.” 이렇게 하면 그것도 또한 법집입니다. 비법상이라 그래요. “부처, 아이고 그 아무것도 아니야.” 이렇게 또 말하는 사람이 있거든요. 건방지게. 그 사람 역시 법집이라는 병에 걸려있어요. 그래서 법상이나 비법상도 다 버린 그런 자리를 법무아. 그렇게 말해요.
아집과 법집,
이 두개의 말을 합쳐서 이집이라고 말해요.
두개의 집착이니까.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아집, 법집. 그러니까 아집과 법집은 버려야 되요. 그래서 타이집이라. 2개의 집착을 파해한다. 그래서
아집과 법집은 파해한다.
대신에 인무아와 법무아를 드러내고,
또 이 인무아라고 하는 이 말은 아공이라는 말이고,
법무아라는 말은 법공이라는 말이고,
그래서 우리는 아공의 세계에 들어야 되고, 법공의 세계에 들어야 된다. 인무아, 즉 아공의 세계에 들어야 되고, 법무아 즉 법공의 세계에 들어야 하는데, 내가 공하다라고 하는 생각조차도 다 버리고, 또 다른 공의 세계에 들어가야 돼. 더 깊은 공, 그것을 구공이라고 말해요. 구공. 그래서 아공, 법공, 구공을 드러내야 된다, 해서 현삼공이라는 말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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