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사는 공간에는 항상 질투라는 게 있게 마련이에요. 그죠? 그런데 그 구설수를 만드는 분은 가까운데 있는 놈이에요? 먼데 있는 놈이에요? 날 모르는 놈은 나에 대해 말하는 놈이 없어요. 항상 주변을 살필 필요가 있는 거죠.
그런데 주변을 살피는데 그 사람을 나쁘다고 이야기하지 말고,
구설수가 있을 때 구설의 원인을
나한테서 냉정하게 찾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마음먹지 않고 한 얘기인데 상대방은 뼈있게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가능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항상 즐겨하는 말이 뭐냐 하면 친구하고 길을 가더라도 둘이 같이 가면 되는데, 셋이 같이 갈 때는 절대 화장실 가지 마라. 왜? 화장실 간 다음에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이런 부분이 세상의 삶의 구조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하죠.
그런데 우리가 잘 생각할 것이 뭐냐 하면
남의 말은요,
3일을 넘기지가 않아요.
이게 부처님 말씀이세요.
어떤 경우가 있어도 누군가가 내 말을 할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 사람들 다 바빠요. 자기일 챙기기 바쁘거든요. 한번은 남의 얘기를 할 수 있지만, 두 번 세 번은 가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런 부분이 생기면 대게가 본인 스스로가 마음이 위축이 되어져서 본인이 그 이야기에 분노하고, 그 이야기에 해명하려고 애를 쓰다보면 장작불을 피워놓고 나면 그냥 피워놓으면 내버려둬 버리면 그것만 타고 없어지는데, 자꾸 땔감을 갖다 집어넣으면 계속 타요? 안 타요? 그 땔감 제공은 딴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하는 거더라.
그러니 이렇듯 저렇든 간에 반응을 하지 마라.
그리고 무심히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다보면
그 구설수는 오히려 찬사가 되어서
돌아오는 날이 반드시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억울한 일이 생기면
그 억울한 일을 빨리 소명하거나
빨리 누군가에게 이해시키려고 애를 씁니다.
여러분, 한 사람에게 내 오해를 풀기는 좋지만, 이미 그 오해를 풀은 그 사람이 그게 오해였다라고 말하는 것은 쉽지가 않아요. 우리가 남의 말을 할 때 보면은요, 남 잘못된 거 이야기 할 때는 재미가 있는데, 그게 아니라고 해명하는 것은 흔하지가 않지 않습니까. 그렇죠?
어떤 구설수가 되었든지 간에
그 구설수의 원인은 A가 됐든 B가 됐든
시작은 내가 한 게 맞아요.
좋은 의도로 이야기를 했든 나쁜 의도로 이야기를 했든 간에 좋은 의도로 얘기했던 것을 나쁘게 꺾어 쓰는 부분도 이미 내가 잘못전달이 되었거나 잘못 표현한 부분에서부터 일관하는 내용들이라고 우리는 분명히 생각을 해야 될 겁니다.
그 다음에 해명은 또 다른 구설수를 만든다. 라고 하는 것이 철학이에요.
해명은 또 다른 구설수를 만들어요.
해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구태여. 내가 한 행동이 잘못되지 않았을 때는
잘못되지 않는 부분으로 뚜벅뚜벅 가라 이거에요.
그리고
입은 무겁게 하고
행동은 민첩하게 해라.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십악 중에서 열 가지 악업이 있다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몸으로 짓는 업이 살생, 도둑질, 음행입니다.
입으로 짓는 업이 뭐냐 하면 거짓말, 욕설, 이간질, 그리고 아첨하는 말, 4가지라고 그랬어요. 그리고 마음으로 짓는 업이 탐내는 마음,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 이것이 십악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라고 하는 부분이 우리가 몸으로 짓는 것도 3가지고, 뜻으로 짓는 것도 3가지인데, 입으로 짓는 게 몇 가지에요? 4가지.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입으로 짓는 업을 두렵게 생각하지 말고, 이 입으로 짓는 업을 우리가 입으로 짓는 복으로 만들 필요가 있거든요. 그래서 구시화문이다. 입이 화를 부르는 문이다. 이렇게 얘기를 했거든요. 그런데 이 부분을 바꾸어서
구시화문이 아닌
구시복문을 만들어 보자.
첫째 거짓말을 하지마라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거짓말 보다는 진실한 말로서 누군가를 칭찬하는 것을 습관들이는 불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내가 어떤 기회가 있어도 “누군가가 잘못 되었데.”라고 하는 것은 이것은 이미 업이 됩니다. 그런데 남이 잘못되는 것은 내가 말을 하지 않아도 딴 사람도 다 알아? 몰라? 다 알아요.
그런데 내가 그 다 아는 부분을 거기다 불쏘시개를 갖다 놓으면 내가 짓는 게 되잖아요. 그러니까 이미 누군가가 잘못한 부분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딴 사람도 다 알게 되어있어. 딴 사람도 다 바보가 아니야. 그런데 본인도 그 부분을 확산시키고 싶어 해요. 재미삼아서.
그 재미삼아서 누군가가 잘못되어진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은 나에게 큰 업이 되어서 돌아올 수 있다.
고로 나는 누군가를 비판하는
누군가를 욕을 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누군가를 칭찬하고
누군가의 잘한 부분을 정말 칭송할 수 있는
언어의 주인공이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다보면
화문이 아닌 복문으로 입을 바꿀 수가 있습니다. 아시겠죠?
그 다음에 남을 욕할 일이 있거든 그냥 참으세요. 그런데 이 욕은 정말 하고 싶어서 못 참잖아요. 이게 중생이야. 여러분들은 부처님 진리를 만났으니까 우리는 “차라리 욕을 할 거라면 입을 닫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사세요. 솔직히 저도 이 말하지만 이게 잘 안 돼요. 참 어려운 일이거든요. 그런데 이것만 바꾸면 업을 줄일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귓속말해서 이간질 하는 거 하지 말고, “당당하게 큰 소리로 이야기 하지 않으면 나는 말을 하지 않겠다.” “나는 귓속말을 하느니 차라리 내가 마이크를 잡고 말을 하겠다.”라는 마음을 갖고 세상을 사시기 바랍니다.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당당합니까? 안 당당합니까? 당당하게 말하라 이거에요.
우리가 국회 같은 데서도 보면 누군가가 잘못된 부분은 마이크잡고 잘 “이건 문제가 있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출세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없어요?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비판만 하는 것이 아니고 잘되는 부분은 잘된다고 칭찬할 수 있을 때 멋진 리더가 될 수 있듯이 우리가 세상을 사는 부분은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라.
내가 한 말은 내가 책임을 져야 되요? 안 져야 되요? 그래서 내가 한 말은 내가 책임지는 불자가 되라. 그런데 이간질 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에요? “너만 알고 있어.” 라고 얘기하거든요. “너만 알고 있어.”라고 하는 부분이 업이 되는 사실을 잊지 마라.
그 다음에 아첨하지 말자. 주지스님에게 할 말 있거든 “스님,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라고 말씀 딱 드리고, “그리고 스님께서 이렇게 잘하고 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스님이 판단하시는 부분이 다 옳다고 말하지 않고, 이런 부분을 조금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멋진 말하는 불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시겠죠.
이렇게 살면 순간적으로는 스님에게 스님이 원하는데 따라가지 않아서 조금은 마음 상하는 부분이 생길지라도 시간이 길게 가다보면 “그래, 역시 그 사람이 내게 있어서 바른 불자였어.”라고 하는 부분으로 칭찬받는 불자도 분명히 만들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몸으로 짓는 업, 뜻으로 짓는 업, 입으로 짓는 업 중에 입이 가장 무겁다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항상 입은 가볍게 하지 말고, 무겁게 열 번 생각해서 한번 말할 수 있는 행위를 통해서 구설을 제거해낼 수 있는 불자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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