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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범스님_ 궁극의 경지엔 내가 없다 [큰 스님께 듣는 깨달음의 길]

Buddhastudy 2021. 8. 23. 19:43

 

 

 

 

수보리야 실무유법하야 여래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니라

_진실로 법이 있어서 사상이 있으면서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이 없느니라.

사상을 가지고는 안 된다, 이 소리에요.

반야는 무아이고, 무아는 반야이고 이런 거예요.

아집을 가지고는 반야가 구경을 못해요.

아집을 턱~ 내려놓으면 그대로 반야에요.

아집 내려놓으면 그대로 반야다, 이거죠.

법이 있으면서 사상을 가지고 있으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이 없나니라.

 

수보리야 약유법하야_ 만약 법을 가지고 있으면서

여래가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자이면_ 여리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려고 했다면

연등불이 즉불여아수기하사대_ 곧 나에게 수기를 주되

여어래세에_ 내가 저 내세요

당득작불하야_ 마땅히 장차 부처가 되어서

호를 석가모니라 하시리니_ 이름을 석가모니라 하리라 하고

 

여기서 전화 받으시면 안 돼요. 법문 못해요.

이런 것도 법문이에요.

녹화해서 나가면, 아 이 시대에는 이렇게도 법문했구나 ㅎㅎ

기록으로 남겨질 거예요.

또 저렇게 전화가 울리는구나.

잠시 꺼놓고 나중에 하세요.

 

어디까지 한 거예요? ㅎㅎ

글을 잃어버렸네.

 

아니 불자를 하나 해석하지 않고 내려갔거든요.

사상이 있으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려고 했다면

연등불이 나에게 수기를 주되

수기는 미래를 예언하는 거란 말이죠.

네가 앞으로 부처가 되는데, 호를 석가모니라 하지 아니하였으리라이거에요.

이 아상을 떡~ 가지고 달려들면 안 되는 거예요, 어디 가든지 통할 수가 없는 거예요.

아상만 하나 내려놓으면 다 통해요.

그게 금강경이거든요.

 

만약 법이 있으면서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려고 했다면

연등불이 즉불, 요걸 잘 보세요. 아니 불.

여아수기하되 나에게 수기를 주시되

연등불이 석가모니한테 수기하는 거죠. 전생에.

당득작불하야_ 마땅이 부처가 되어서 당_ 미래라는 말이거든요.

당내에 부처가 됨을 얻어서 호를 석가모니라고 하지 아니하였으리라.

 

이실무유법하야_ 진실로법이 있으면서 ~가 없다.

역시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 그 법이 있으면서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일새_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음이 없을세.

 

써 이_ 까닭으로, 없는 까닥으로 하면 해석을 안해도 거기에 포함되는 글자에요.

옛날에는 그랬는데 할 필요가 없구요.

 

이실무유법하야_ 진실로 법이 있으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얻음이 없는 까닭으로

시고로 연등불이 여아수기하사_ 이런 고로 연등불이 나에게 수기를 주어서

작시언하사대_ 이러한 말을 하기를

여어래세에_ 내가 내세에

당득작불하야_ 마땅히 부처가 되어서

호를 석가모니라 하시니_ 이름을 석가모니라 하리라 하시었나니라.

 

연등불이 석가모니한테

너는 언제 부처 될 것이다라고 미리 말씀하신 그 이유가 있거든요.

그게 뭐라고 그랬죠?

연등불이 왜 석가모니한테 너는 앞으로 부처된다, 호를 석가모니라고 하리라 그 이유가 뭐라고 그랬죠?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없기 때문이잖아요.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없기 때문에 너가 앞으로 부처된다 그랬지, 그거 있으면 안된다 이 소리예요.

간단한 거예요.

누가 깨달았느냐? 안 깨달았냐 하는 건, 자기 문제에요.

내 맘이 그걸 망상을 못 내려놓으면 어디 가서 물어봐도 못 깨달았다고 하거든요.

석가모니가 아상인상을 가지고 있다면 안된다, 못했으리라, 이걸 말하는 거거든요.

 

하이고오 여래자는 즉제법 여의니라_ 왜냐하면 애래란 곧 <모든 법이 진실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니라.

제법여여한 뜻이라는 게 뭐냐?

제법이라고 하는 것은요, 색성향미촉법, 6가지를 말해요. 색성향미촉법.

반야심경에 나오죠?

눈으로 보는 것, 귀로 듣는 것..

그런데 이 6가지 중에 우리 마음이, 반야가 선능분별해요. 잘 이걸 알아요.

귀로 듣고 소리인 줄 알고

눈으로 보고 형상인 줄 알고

혀로 맛보고 맛인 줄 알고 다 이걸 알아요.

안이비설신의가 색성향미촉법에 대해서 잘 분별을 한단 말이에요.

분별을 하는데, 분별을 해서 알기는 알지만

불념불착이_ 물들지도 않고 거기에 빠지지도 않아요.

요게 반야에요.

 

그래서 아무리 오랜세월을 두고 이 색성향미촉법을 잘 분별하되

불념착이에요. 거기에 물들지 않고 집착하지 않아요.

그래서 그 반야는 역겁상전이라_ 몇 억겁을 지나도록 항상 밝아있지 어두워지는 법이 없어요.

그걸 제법여의라고 그럽니다.

제법이 항상 변함없이 밝다.

그걸 여래라 그런다,

 

여래가 되면 색성향미촉법을 보고 듣고 느끼고 말하고 움직이고 다 하되

요게 선분별이에요,

보는데 집착하지 않고, 듣는데 집착하지 않는다.

집착하지 않는다는 말은 보고 듣는데 사상을 일으키지 않는다.

아상인상중생상을 일으키지 않아요.

욕구를 일으키지 않고 분노를 일으키지 않고 취사를 일으키지 않고 애착을 일이키지 않아요.

사상을 일으키지 않아요.

잘 인식을 하되 사상을 안 일으키니까 억만년이 지나도 그대로에요.

역겁상전이에요.

그래서 그걸 제법여의라_ 제법에 항상 똑같다.

똑같다라는 게 뭐라고 그랬죠? 보되 집착하지 않는 거예요.

똑같은 거예요. 보되 집착하지 않는 거예요.

그게 제법 여의입니다.

제법의 변함없는,

해석에는 즉무변이라_ 일찌가 변하고 달라짐이 없다.

역겁상전이라_ 겁을 지내도록 항상 그대로 존재한다.

그래서 이게 제법여의거든요.

여라는 게 즉무변이 역겁상존, 그 소리에요.

변이가 없어요, 일찍이. 변하고 달라지는 게 없어요.

항상 반야가 여여한 거예요.

그래서 부처님을 제법여의라고 그래요, 부처님을.

 

부처님 되라는 게 간단하지 복잡한게 아니거든요.

보고듣고느끼고보되, 거기에 집착하지 아니하면 부처님이 되요.

거기에 집착해서 사상을 일으키니까 중생인 거예요.

 

중생은 여의가 못 되는 거예요.

만날 취하고 버리고, 집착하니까 여의가 못되는데

부처님은 여의다, 집착하지 아니하니까 일찍이 변하고 달라짐이 없이

역겁을 두고 항상 존재한다. 상존을 한다.

이게 육조구결의 해석이에요. 멋진 해석입니다.

 

제법여의라는게 뭐냐?

제법은 색성향미촉법이다.

여의라는 건 뭐냐?

색성향미촉법을 반야가 항상 보도듣고느끼고 해도

거기에 사상을 안 일으킨다 이거예요, 탐욕과 분노를 안 일으킨다.

그러니까 항상 상존한다, 이거예요.

변함없이 늘 같은 뜻이다, 이게 제법여의다, 이게 반야바라밀이에요.

제법여의가 반야바라밀이고,

반야바라밀을 성취한 분을 부처님이라고 그러거든요. 여래라고.

 

(사람 쳐다보고 설명하다보니까 글 잃어버리고.. ..)

 

약유인이_ 만약 어떤 사람이

언 여래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하면_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한다면

수보리야 실무유법 불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하니라_ 진실로 법이 있어서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이 없느니라.

수보리야 여래 소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_ 여래가 얻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어시중에_ 이 중에

무실무허하니라_ 확실하게 있느냐? 실도 없고, 또 아무것도 없느냐? 허도 없느니라.

확실하게라는 것은 보고 듣는 형상으로 있느냐? 형상으로 있는 게 아니죠.

그러니까 무실이라고 그러죠.

형상으로 있는 게 아니다, 실이 없고.

또 아무것도 없느냐?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다, 허가 없다 이랬는데

이게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느냐?

이게 참 문제인데,

 

불교는 얻는 게 아니고 깨닫는 것에요.

얻는 거와 깨닫는 거를 알아야 해요.

보리를 깨달은 거지 얻는 게 아니에요.

그거 아주 중요한 거거든요.

얻는 게 아니고 깨닫는 거다.

 

왜 그러냐 그러면, 중생중생이 다 본각을 가지고 있어요. 본래 깨달아 있는 거, 본각.

본각을 가지고 있는데 거기에 사상이 끼어있을 뿐이다.

그래서 수행을 통해서 사상만 녹이면 그 본각과 합쳐져요.

그러면 그게 깨달음인데,

그 깨달은 거지 얻은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이걸 본각과 처음으로 본각의 자리에 들어간 걸 시각이라고 그래서

처음 시, 이거 말하기 어렵거든요. 시각.

그래서 이 문제를 가지고 설명을 아주 여러 가지로 화엄가에서 냈는데

본유_ 본래 있는 것

수생_ 닦아서 생긴 것

본유와 수생, 수생과 본유 이렇게 설명해요,

 

아따 말 참 어렵고 이게 아주 미치겠어요. 이런 거... ㅎㅎ

설명을 안하자니 답답하고 하자니 아주 미치겠어요.

여기 1시간 동안 앉아있는게 좋게 보여요? ㅎㅎ

말 안하자니 내가 싱겁고, 말하자니 내가 답답하고, 아주 미치겠는 거라, 이게.

 

수생이라는 거는 닦을 수, 날 생.

내가 닦아서 처음으로 생긴 걸 수생이라고 그래요.

본유라고 하는 것은 본래 있는 거예요.

그런데 이걸 비유하기를 매장금, 흙 속에 뭍혀있던 매장되어 있던 금이 있잖아요.

거기에 광물질 섞여 있거든.

이걸 제련을 해서 순금으로 만들면

이게 얻은 게 아니고 광물질이 제거되어서 순금으로 돌아갔을 뿐이잖아요.

얻은 게 아니잖아요.

깨달음이라는 게 그와 똑같다.

광물질이 제거되었을 뿐이지, 순금을 어디서 얻어온 게 아니다.

그럼 어떻게 생겼냐? 본래 있었기 때문에. 그걸 본각이라고 그래요.

 

그래서 연등부처님 앞에 가서 닦은 것은

그게 제련소다, 제련소.

잡철이라든지, 동철이라든지 이런 걸 녹여서 없앤 것뿐이고

본래 금으로 돌아간 거다.

시각이 본각과 합쳐진 거다, 이걸 구경각이라고 그러거든요. 구경각.

 

그러면 석가모니불이 보리수나무 밑에서 딱~~ 하니 용맹정진을 해서 깨달았다 이거예요.

그럼 뭘 새로 얻었느냐?

그게 아니고 번뇌망상만 용맹정진을 싹 녹였다.

번뇌망상이 사상이에요.

뭐든지 사상으로 말하면 돼요.

중생의 잘못된 건 다 사상이다.

 

어디서 뭘 얻어온 게 아니라, 마음속에 끼어있던 사상을 쏵 녹였다 이거예요.

그러면 본래 있던 그 순금하고 만나는 거죠.

시각이 본각과 만나는 거다.

이게 얻은 게 아니다, 깨달은 거다.

깨달음이라는 건 본래 있던 거 찾은 거고, 얻은 건 어디서 가져온 거잖아요.

이게 전혀 달라요.

 

지금 눈뜨고 쳐다보는 거, 그게 본래 있는 반야인데

그 왜 부처가 아니냐 하면 눈뜨고 쳐다보는 그 눈에 사상이 붙어있거든요.

붙어있는 사상만 녹이면 그게 깨달음이다.

얻은 게 아니다, 이거죠.

 

 

<금강경> 17장 구경무아분 (궁극의 경지엔 내가 없다)

한번 읽고 마치겠습니다.

 

이시 수보리백불언 세존 선남자 선여인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운하응주 운하항복기심

불고 수보리 약선남자 선여인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 당생여시심

아응멸도일체중생 멸도일체중생이

이무유일중생 실멸도자

하이고 수보리 약보살 유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 즉비보살

소이자하 수보리 실무유법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 어연등불

소유법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부

불야 세존여아해불소설의 불어 연등불소

무유법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불언 여시여시 수보리 실무유법여래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수보리 약유법여래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자

연등불 즉불여아수기 여어래세 당득작불 호석가모니

이실무유법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시고 연등불 여아수기 작시언

여어래세 당득작불 호석가모니

하이고 여래자 즉제법여의

약유인언 여래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수보리 실무유법 불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수보리 여래 소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어시중 무실 무허

시고 여래설일체법 개시불법

수보리 소언일체법자 즉비일체법 시고 명일체법

수보리 비여인신장대

수보리언 세존 여래설인신장대 즉위비대신 시명대신

수보리 보살역여시 약작시언

아당멸도 무량중생 즉불명보살

하이고 수보리 실무유법 명위 보살

시고 불설일체법 무아 무인 무중생 무수자

수보리 약보살 작시언 아당장엄불토 시불명 보살

하이고 여래설장엄불토자 즉비장엄 시명장엄

수보리 약보살 통달무아법자 여래설 명진시 보살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