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를 모를 경우는 법문을 듣고 이치를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본인은 이치는 알았잖아 그죠? 그러니까 우리가 괴롭다 하지만은 괴로움을 다 연구하고 연구하고, 분석하고 분석해보면 괴로움이랄 실체가 없다. 내 꺼다 하지만은 왜 내껀가 하고 또 분석하고 분석하고, 연구하고 연구하고, 탐구하고 탐구해 들어가 보면 내 꺼다 할 만한 것도 없다. 그런데 우리는 마치 꿈에 강도를 만나서 두려워하듯이 어떤 환영 속에 사로잡혀서 이런 두려움이 생기는 거란 말이오. 그런걸 모르면 그런 이치를 알면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죠. 제법이 공한 줄 알면 두려워할 일이 없단 말이오. 두려워할 것이 없고 두려워할 일이 없다. 그런데 그걸 탁 몸과 마음에서 체험을 해 버리면 두려움이 사라지는데 본인은 그것을 이해한 수준이란 말이오. 이해는 했다 이 말이오. 이제는.
그런데 경계에 부딪히면 두려움은 늘 생기거든요. 그러니까 이 단계에서 공부를 해야 할 것은 다만 알아 차릴 뿐이다. 이렇게. 다만 알아차릴 뿐이다. 두려움이 일어날 때 오~ 두려움이 일어나는구나. 이렇게만 알아차리세요. 두려움이 일어날 때 두려워하지 말고 그래서 도망가지 말고 두려운 마음이 일어나는 거구나. 어! 근심이 일어나는 거구나. 어! 공포가 일어나는 거구나. 어! 겁이 나는 마음이 일어나는 거구나. 이렇게. 그러나 이치적으로는 어떠냐? 이런 것은 다 어떤 환영 때문에 일어나는 거거든요. 실제 있는 게 아니고. 뱀을 보고 내가 두려워한다 하더라도 뱀이 나를 두렵게 만드는 게 아니란 말이오. 뱀은 그냥 다만 그렇게 생겼을 뿐이란 말이오. 그걸 보고 내가 두려워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이 장난감으로 뱀을 만들어 가지고 옆에서 ‘억’해도 어때요? 겁이 나요 안나요? 겁이 나지. 그것이 나에게 어떤 위해가 되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니에요. 두려운 상을 내가 갖기 때문에 두려운 거란 말이오. 그런 데서 이미 그것이 오랫동안 습관화 되어있다. 무의식의 세계 잠재되어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경계에 부딪히면 나도 모르게 일어나버리는 거란 말이오. 그걸 점점점점 그 순간에 알아차리도록 자꾸 정진을 해야지. 그 순간에 알아차리도록. 그래서 우리가 명상할 때 호흡을 관하는 것도 호흡이 들어갈 때 들어가는 줄 알고 나올 때 나오는 줄을 안단 말이오. 그냥 사람이 생각으로 ‘어~ 사람 숨쉬고 있지. 그래 숨이 들어갔다 나오지.’ 이거 다 알아요 몰라요? 알지. 그러나 정말 딱 정좌를 해서 호흡을 관찰해 보면 호흡 관찰이 잘 안 된다 이 말이오.
숨쉬는 거를 아는 거 하고 실제로 숨쉬는 거를 알아차리는 거 하고는 큰 차이가 있단 말이오. 그만큼 우리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고 산만하다 이 거요. 현재에 깨어 있지 못하다. 그래서 조금 정신을 차리면 호흡이 관찰되지만 금방 놓쳐버린다. 왜? 망상을 피우기 때문에. 지금까지 늘 깨어있지 못한 삶의 습관이 잠시 깨어 있더라도 금방 또 원래 습관대로 가버려서 놓치는 거란 말이오. 그것처럼 내가 무지의 상태에서 이미 몸에 베어버렸다. 이런 두려워하는 습관이 몸에 베어버렸다. 몸과 마음에. 마치 담배 피는 사람이 담배가 나쁘다라는 걸 알았는데도 담배 연기를 맡으면 그냥 피우고 싶은 생각이 일어나버리듯이. 그것이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다만 지금이라도 그런 상태를 알아차리면서 ‘어! 내가 또 습관적으로 두려워 하구나.’ 두려움이 있어서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습관적으로 두려워하구나. 이걸 자기가 자꾸 자각을 하면 개선이 되죠. 여러분들이 악몽을 꿀 때도 지금은 꿈에 꿈이 생시인 줄 착각하기 때문에 도망을 가는데 이게 두 번, 세 번 되풀이 되고 자꾸 자각을 하게 되면 어떠냐? 처음에는 꿈을 꾸면서 꿈에 휩쓸리지만은 금방 ‘아 이건 꿈이야’ 하고 자기가 알아차리면 되. 꿈이야 하고 알아차리면 도망을 안가고 어떻게 합니까? 눈을 뜰려고 한단 말이오. 눈이 잘 안 떠지지. 그러나 어떻게어떻게하면 눈이 탁 떠지면 가만히 누워있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꿈속에서 이게 꿈인 줄 알아차리는 게 정진이에요.
이게 꿈 속에서도 화두가 성성해야 된다. 이걸 이제 몽중일여라 그러거든요. 우리 그리 잘 안되죠. 그냥 자버리면 놓쳐버린단 말이오. 그러나 여러분들이 조금만 더 이렇게 깨어있는 훈련을 하면 자기가 꿈을 꿀 때도 자기가 ‘오 이건 꿈이야’ 하고 알아차려 집니다. 그러듯이 두려움이 일어날 때 아 이건 내가 지금 경계에 사로잡히는 거야. 이렇게 자각하는 훈련을 깨어있는 훈련을 자꾸 해 나가면 되요. 이걸 뭐 따로 한다고 개선되는 건 아니에요. 절한다고 개선되고 그런 게 아니니까. 항상 그때 그때 자기가 지나가버리면 ‘아이고 내가 놓쳤구나’ 하고 다시 깨어있고. 그러다가 순간순간 고 상황이 일어날 때 탁 깨어 있으면 바로 없어지지. 그렇게 반복된 훈련이 필요합니다. 연습을 많이 하셔야 된다. 이게 수행이에요.
이 근심과 걱정이라고 하는 것은 미래의 일. 아직도 일어나지 않는 일. 이걸 갖고 마치 현재에 일어나는 일처럼 정신세계에서 착각이 일어나는 거요. TV를 보는 거 하고 똑같습니다. TV를 보면서 거기서 일어나는 사건, 사람이 죽는다든지 헤어진다든지 하면 여러분들 눈물이 나요 안나요? 눈물이 나지. 스위치 딱 끄면 거기 뭐가 있어요? 아무것도 없잖아. 그냥 시커먼 물건 하나 있을 뿐이잖아. 거기에는 헤어짐도 없고 거기에는 죽음도 없단 말이오. 그런데 거기에 집중해서 볼 때 그것이 내 이 머릿속에서는 착각이 일어나서 그것이 현재에 일어나는 것과 동일한 현상이 일어난다는 거요. 꿈과 똑같은 거지. 꿈도 눈 떠 보면 아무것도 없잖아요. 이것도 스위치 꺼버리면 아무것도 없고. 책을 읽을 때도 책을 덮어버리면 아무것도 없단 말이오.
이것은 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영상이에요. 지금 오늘 대부분 그런 TV보고 살듯이 요즘 애들은 컴퓨터만보고 빠져 살지 않습니까 그죠? 그래서 인생은 꿈같다고 하는 거에요. 그런 상속에 이미 지나가버린 옛일을 늘 기억하면서 그 기억 속에, 그 영상 속에 살듯이. 그렇지 않으면 아직도 일어나지 않는 미래를 끌어와서 현재에 영상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산단 말이오. 그래서 지금에 깨어 있어라. 지금 숨이 들어갈 때는 들어갈 때 깨어있고 나올 때는 나올 때 깨어 있어야 된다. 지금에 깨어 있어라. 그런데 우리는 늘 지금에 깨어있지 않고 과거에 살거나 미래에 사는 거요. 과거에 사로잡히면 두려움이 괴로움이 생기고 미래에 사로잡히면 근심과 걱정이 생긴다. 불안과 초조가 일어난다. 불안과 초조라는 건 다 미래를 현재화 시켜서 생기는 문제들이오.
그래서 이런 문제는 애기가 숨이 막힌다 하면 숨막히면 어떠냐? 숨막히면 뚫으면 되지. 유방암 걸리며 어떠냐? 수술하면 되지. 이렇게 그리 생기면 어떠냐? 뭐. 불 나면 어떠냐? 불 끄면 되지. 이렇게 그것이 일어나면 어때. 이렇게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 이 문제가 훨씬 수월하죠. 그건 안 일어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자꾸 하기 때문에 한쪽은 일어날 거다 하고, 한쪽은 안 일어 났으면 좋겠다. 이 두 가지가 겹쳐서 두려움이 생긴다. 이게 다 우리가 생각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이오. 그렇게 해서 이런 환영 속에 사로잡혀서 현재를 놓치고 늘 과거나 미래 속에 살면 괴로워했다가 초조 불안했다가 이렇게 자기의 현재의 인생을 낭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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