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부중생은 자기 뜻대로 안되면 화를 내고 참지 못한다. 그 다음에 지혜로운 사람은 그렇게 화내고 짜증내고 미워해 봐야 자기만 손해다. 그래서 참는다. 참는 거를 인욕이다 이래. 그런데 정말 지혜로운 사람은 참을 것도 없다. 아무 참을 게 없어. 참을 게 있다는 거는 화가 났다는 얘기지. 화가 났으니 참지. 화가 나지 않으면 참을 게 없겠죠. 참는다는 것은, 용서해 준다는 것은 미워하기 때문에 용서해 준다는 과정이 필요하지. 미워하지 않는다면 용서해 줄 것도 없지.
그럼 이 화가 난다, 미워한다는 건 뭐냐? 결국은 내가 옳고 네가 글렀다는 거 아니야. 그런데 실제는 어떠냐? 이 세상에 누가 옳고 누가 그른 건 없어. 그냥 다를 뿐이지. 생각이 다르고, 모양이 다르고, 서로 다를 뿐이란 말이야. 그러니까 그 실상을 우리가 알면 미워할 일이 없고, 화날 일이 없단 말이오. 그러면 참을 일도 없는 거요. 그것을 이름하여 뭐라 하느냐? 인욕바라밀이라 그래. 바라밀이라는 말은 괴로움이 없다는 뜻이에요. 인욕을 한다. 이 말속에는 괴로움이 있다는 얘기거든.
괴로움이 있는데 그걸 이기는 거요. 인욕바라밀이라고 할 때는 참을 것이 없는 걸 말해. 바라밀이라는 것은 괴로움에서 벗어난다. 이런 뜻이란 말이오. 저 언덕을 건넌다. 이런 뜻인데. 그래서 인욕바라밀이 되려면 법의 실상을 깨쳐야 돼. 인욕을 하는 거는 이를 악 다물고 참으면 되는데. 인욕바라밀이 되려면 법의 실상을 꿰뚫고 알아야 된다. 그럼 법의 실상을 안다 하니까 그 굉장히 추상적으로 들으면 안 된다. 이거요.
지금 앞에서 질문한 분이 남편이 밉고, 내가 괴롭고 이걸 참는다. 그렇다고 막 터트리고 울부짖고 하면 범부중생이고, 그걸 꾹 참으면 인욕인데. 법의 실상을 안다는 거는 그냥 다만 돈이 흘러갈 뿐이고, 그래도 이래 망해봤자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가잖아. 그죠? 아무것도 없는 게 자기가 좋다니까. 그럼 이게 잘못 되어 봐야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되는 거란 말이오. 사실 걱정할 게 하나도 없는 거요.
본인이 부자가 되겠다. 할 때는 이게 좀 걱정거리가 되지만은. 나는 숫제 아무것도 없는 게 더 낫겠다. 이 정도가 될 때는 이건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잘못 돼야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될 거 아니오. 그러니까 무슨 걱정할 일이 있어. 놔 놓으면 되지. 그런 거를 알면 인욕 할 것도 없다 이 말이야. 그럴 때 뭐라 하냐? 인욕바라밀이다 이래 말해. 그럼 뭔가 우리가 애를 쓰고, 노력을 하고, 참고, 이렇다는 것은 아직도 법의 실상을 보지 못했다는 뜻이야.
법의 실상을 보면 노력할 것이 없어. 애쓸 것도 없고. 조금 더 구체적이지 않는 거는 질문이 이렇게 단어를 갖고 질문을 하니까 그런데. 이따 다른 사람이 질문할 때 내가 한 번 이거 더 얘기해 줄게요.
그러니까 상대편이 내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할 때는 자존심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상하잖아. 그지? 나라는 것이 없으면, 상할 자존심이 없으면, 상하지를 않아. 자존심이, 내 자존심이라는 게 망념이란 말이오. 그게. 자기 자신을 귀중하게 생각하면 나라는 것이 없는 줄을 알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내가 상처를 안 입으니까 내가 정말 소중하게 되고. 나라는 허상을 갖고 있으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입으니까 그건 나를 해치는 게 된단 말이오.
허공에 칼을 백 번 쳐도 아무런 상처를 안 입어. 횟수와 아무 관계가 없어. 그건 본인 알아서 하면 되지. 그 예수님이 뭐라 그랬어? 왼뺨을 때리면 오른 뺨을 내 주라 그랬지. 가만히 있는 정도가 아니라 때리라고 한쪽 더 내주라 그랬잖아. 모르겠어? 그럼 촛대 뼈를 까버려. 촛대 뼈를 까든, 한 대를 맞든, 한 대를 더 맞아주든, 그건 나의 인생의 선택이에요. 그걸 자기가 한 번 해봐. 어느 게 자기한테 이로운지. 해보고 자기가 선택하면 돼.
부처님은 이렇게 살아라.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어. 부처님은 결국은 인간이 요렇게, 요렇게, 요렇게, 요렇게 해 봤을 때 어떤 게 가장 자신에게 이롭나. 그걸 말씀하셨단 말이야. 그러니까 지혜로운 사람은 딱 듣고 ‘아~ 그렇구나.’ 이렇게 되는 거고, 어리석은 사람은 귀에 안 들어오니까 딴 짓 실컷 해 보다가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늙어서 죽을 때쯤 되가지고 그때 가서 아는 거고. 그래서 이게 다 무지와 집착 때문에 생기는 거요.
자기 기준에서 보면 자긴 백이 옳고 상대가 백이 나빠. 그런데 상대편 입장에서 보면 또 어떠나? 자기가 백이 옳고 상대가 백이 다 나빠. 그 나쁘다는 걸 전제해놓고 고치려면 힘이 들어. 세월도 들고. 많이 참아야 돼. 나쁜 것이 없는 줄을 알면 참을 것도 없고 고칠 것도 없어. 그래서 인욕하고 인욕바라밀은 하늘과 땅 차이다. 오늘 대부분 수행하는 사람들이 인욕을 하지. 부처님의 가르침은 인욕바라밀이야. 그것이 우리가 선에서 말하는 돈오, 돈오라는 거요.
앉아가지고 좌선을 한다고 돈오를 깨치는 게 아니라. 어떤 사물을 이렇게 바로 보는 걸 말하는 거요. 남의 집 일은 특별히 공부 안 해도 잘 보여요. 아시겠어요? 그게 있는 그대로 보는 거란 말이오. 사실은 남의 일보다 자기 일을 더 잘 알아야 되잖아. 그지? 그런데 우리는 자기 일은 안보여 왜? 바로 아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아집을 버려라. 아상을 버리라고 하는 거요. 그건 다른 말로 하면 무지를 버려라. 이런 얘기와 같단 말이야.
지금 이런 보살님 같으면 나이가 몇이요? 서른한 살이지. 아직 인생이 창창하잖아 그죠? 지금 식으로 저렇게 살면요, 죽을 때까지 저렇게 괴롭게 살아야 됩니다. 죽을 때까지. 지금 제가 얘기한 것처럼 그렇게 싸우고, 울고불고, 도망가니 헤어졌다가 또 붙었다가, 헤어졌다가 또 붙었다가 이렇게 살게 되는 거요. 그런데 길은 두 가지에요.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 딱 끝내든지. 안 그러면 “당신 하는 일이 옳습니다.” 하고 그냥 살면 돼. 아무 일도 안 생겨요.
남편 하는 일, 백이면 백. 당신 하는 일이 다 옳소. 그래. 해봐요. 이러고 살면 아무 일도 안 생겨. 니가 옳으니 내가 옳으니 이리 살면 죽을 때까지 끝이 안나.
얘기 해 봐.
정말로 옳다고 생각하라는데 왜? 그럼 거짓말로 그러라고 스님이 가르치나? 웃기는 사람이오. 옳다니까. 그 사람 하는 일이. 그른데 옳다 그래 주면 좋다. 지금 이렇게 받아들였구나. 내 말을. 그 그르다는 생각을 버려라 이 말이오. 그르다는 생각을. 그르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를 마라 이거요. 망념에 불과한 거요.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 나와 산다고 해도 지금 뭐가 장애가 있겠어? 21살의 젊은 여자가 파출부를 해도 되고, 청소부를 해도 되고, 이 사회 어디 식당에 가서 음식을 날라도 되고. 어디 정토회 같은데 와가지고 해외 파견돼서 살아도 되고. 지금 아프간 난민 돕기 해서 지금 전쟁터에, 오늘 사람 파견하려고 오늘 회의 했거든요? 자원해서 가셔도 되고. 거기 가 총맞아 죽어버렸는데 빚 갚으러 오라 그러겠어? 그러니까 꿈에서 깨면 아무 문제가 없고, 꿈속에서 악몽을 꾸면 엄청난 괴로움이 생기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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