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3)

[즉문즉설] 제822회 엄마로서 아픈 딸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있어요.

Buddhastudy 2013. 10. 1. 22:17
출처 YouTube 

 

. ~~ 자기가 생각할 때 우선 아이 병 치료에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어요? 그냥 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겠어요. 으흠. 그게 안 되면 누가 괴로워져요? . 그럼 자기를 괴롭혀가면서 살고 싶다. 이 얘기 아니오. 그러면 이유가 뭐요? 그러니까 이 아이의 병이 현대의학으로, 현재상태에서 더 이상 특별한 치료방법은 없다. 그러고 병원에 다니면서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요렇게 요렇게 조절하면서 살아간다. 그럼 이 현실을 내가 받아들여야 된다. 이 현실을 못 받아들이면 현실의 변화가 안 일어나니까 내가 괴로울 거고, 이 현실을 받아들이면 이런 아이를 데리고도 어때요? 내가 잘 살아갈 거고, 그러니까 이 현실을 받아들여야 된다.

 

이걸 모르면 내가 깨우쳐주죠. 이 현실은 더 이상 변화가 안 되니까 이걸 변경시키려면 당신이 괴로워질 거고, 이걸 받아들이면 당신이 편안해질 거다. 기대 때문에 그래요. 자꾸 정상 아이에다가 기준을 두고 보니까 자꾸 힘들게 느껴지는데, 그러니까 이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바로 내가 이 상황 속에도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 수가 있다. 이건 모르면 깨우쳐서 알면 되고, 지금 질문자처럼 아는데도 꼬라지 보면 안 된다. 그거는 특별한 약이 없어요. 연습밖에 없어요. 안되면 누가 괴롭다? 내가 괴로우니까.

 

~ 이래봐야 내 손해구나. 이래봐야 내 손해구나.” 이렇게 자꾸 자기를 돌이키면 어느 순간에 그래, 자꾸 안달해봐야 그렇다고 현상이 변경되는 것도 아닌데, 이래서 결국은 나만 내가 해치고 있구나.” 거기다가 죄 없는 아이는 자기가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태생적으로 그런데, 저 아이를 닦달한다고 뭐가 변화가 있겠느냐? 아이는 아이대로 열등의식을 갖게 되고 상처를 입게 되고. 그래서 내가 내 낳은 아이를 괴롭히고. 또 내가 내 낳은 아이로 인해서 괴로워하고. 이래서 서로 서로를 해치는 이런 인간관계. 이게 무슨 전생의 죄 때문에가 아니라 스스로 어리석어서, 내가 이 성질을 못 버려서 그런 거 아니오.

 

그러니까 그걸 이제 겪어가면서 자각하면서 그러니까 엎드려 절을 해야 돼. “제가 어리석습니다.” 내가 이 현실에 남편하고 부부관계에서 현실의 불만을 가지고 자꾸 악을 쓰다보니까 아이의 심성까지도 나빠지고, 더 아이의 심정이 압박이 되죠. 이렇게 되니까 제가 어리석습니다.” 하고 참회를 하면서 이 현실을 수용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안되면 또 연습하고 또 연습하는 길. 어린아이에게 자전거 타라하고 알려주고 이렇게 타면 되는 거야. 하고 알려줬을 때 그 아이가 자전거를 타는 것 빼고, 어떤 특별한 길도 없다. 3명에게 자전거 타라 그러면 이튿날 물어봤어요. 넌 몇 번 넘어졌니? 3번요, 넌 몇 번 넘어졌니? 5번요. 넌 몇 번 넘어졌니? 7번요. 10번요. 이러면 어느 애가 앞으로 제일 빨리 탈 거 같아요?

 

. 그건 뭐에요? 10번 실수했다. 10번 안됐다. 이렇게 보면 걔가 제일 못한 거 같지만 걔는 그만큼 연습을 했다. 그만큼 노력을 했다는 얘기죠. 그러니까 지금 안 된다는 거는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 안 된다고 포기하지 말고 아~ 이래봐야 내 손해고, 이래봐야 아이 잘못이고. 이거를 늘 자각하면서 다시 도전하고 다시 도전하고 이렇게 해야 되요. 그러려면 이게 자기를 꾸준히 3일하고 그만두고 일주일 하고 그만두고 이렇게 되니까 그걸 꾸준히 이어가려면 기도를 하면서 해야 된다. 안 그러면 중도포기하게 되니까. .

 

그런데 여러분들 가정에 예를 들면 지체부자유아가 한 명 있다. 그러면 엄마는 그 아이 때문에 굉장히 힘들어하죠. 그런데 자기 아이도 아니고 남이 낳은 아이를 결혼도 안한 처녀가 수녀들이 여러 명을 모아서 돌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럴 때 그 수녀님들은 그걸 기뻐하면서 돌보잖아요. 왜 내 아이도 아니고 남의 아이를, 여러 명을 그것도, 돌보면서 기뻐하는 사람도 있는데, 남도 아니고 내가 낳은 내 아이를 그것도 한명을 왜 나는 이렇게 괴로워하면서 아이를 원망하고 자기가 믿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부처님을 원망하고 신세타령을 하고 살까?

 

이게 아이 문제일까? 이 말이오. 그러니까 수녀님은 이 현실을 인정하고 이 현실 속에서도 그 아이의 살아갈 수 있는, 그 아이가 걷지도 못했는데 걸을 수 있는 걸 보고 기뻐하고, 말을 못했는데 말하는 걸 기뻐하고, 움직이지 못했는데 움직이는 걸 기뻐하고, 이렇게 보게 될 때 거기에도 행복이 있다. 이런 얘기요. 그러니까 자꾸 엄마로 돌아가야 되는데, 누구보다 더 이 아이가 어떻던, 지능이 부족하든, 신체장애가 있든, 어떻든 세상 사람들은 그 아이를 버릴지 몰라도 나는 이 아이를 살아있는 생명으로 온전하게 보살펴야 되겠다. 할 때 그게 엄마란 말이오. 그런데 요즘 엄마가 별로 없어요.

 

이웃집 아줌마만 있어요. 이웃집 아줌마는 뭐에요? 건강하고 얼굴 잘생겼고, 공부 잘하고, 말 잘 들으면 저그 엄마만 좋아해요? 이웃집 아줌마도 좋아해요? 이웃집 아줌마도 좋아해요. 이웃집 아줌마만 이 세상에 득실득실 해요. 엄마는 없어요. 그러니까 엄마가 되셔야 됩니다. 진짜 엄마가 되어야 된다. 엄마가 되면 이 문제는 저절로 해결이 되요. 그러니까 아~ 내가 엄마가 아니구나. 내 욕심으로 아이를 보고 있구나. 이렇게 참회를 하셔야 되요. 특히 첫 번째 질문자는 남편한테 참회를 해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