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 때릴 때를 생각해봅시다.
멍을 때리면
아무 생각도 없고, 아무 감정도 없습니다.
오직 생생하게 진행되고 있는 현재 의식만 존재합니다.
순수 현재 의식이 있고
그 바깥에 생각과 감정이 있고
가장 바깥에 외부 세계가 존재합니다.
만약, 외부 세계와 생각/감정이 없어진다면?
순수 현재 의식은 아무것도 없음을 고요히 ‘인식’합니다.
‘무’를 ‘인식’하는 거예요.
하지만, 만약 현재 의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절대적 무’, ‘절대 공허’만 존재할 뿐입니다.
모든 생각과 감정에는 ‘구별되는 특성’이 있습니다.
선과 악, 긍정성과 부정성 등등.
하지만 순수 현재 의식에는 이러한 특성이 없습니다.
그저 ‘생생하게 진행되고 있는 인식 상태’
모든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기능만 존재할 뿐입니다.
나와 내 옆사람은 ‘다른’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나와 내 옆사람은
모든 생각/감정을 ‘가능하게 하는’
똑같은 무특성의 현재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와, 내 옆사람, 동물들, 과거의 존재, 미래의 존재, 외계의 존재
모두 다 ‘다른’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전부 다 똑같은 ‘순수 현재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시야를 확장해 볼까요?
모든 존재는 ‘순수 현재 의식’이라는 끈으로 ‘연결’되어있습니다.
즉, 모두는 ‘하나’입니다.
이 현상은 과학으로도 설명할 수 있어요.
태초에 '하나의' 점으로 뭉쳐있었던 의식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지만 [빅뱅 현상]
빅뱅 이전에 한 점으로 뭉쳐있었기 때문에
여전히 양자적으로 얽혀 있습니다 [양자얽힘 현상]
우주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는
'진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각자만의 ‘고유 진동수'를 가지고 있고
모든 것은 ‘진동하는 끈’으로써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단 하나의 전체 의식’은
‘고유한 부분들’을 ‘통해서’ 발현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존재하는 모든 '고유 진동수'들은
단 하나의 의식이 발현되는 '다양한 통로’입니다.
이 그림만 기억한다면
온갖 미스터리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카르마
내가 ‘방사’하고 ‘작용’한 것은 -> 나에게 돌아온다.
‘다른’ 방법과 ‘다른’ 존재를 통해서 어떻게든 돌아온다.
왜냐?
모든 존재는 ‘단 하나의 나’가 발현되는 ‘다양한 통로’이기 때문에
내가 나에게 준 것은 -> 나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작용-반작용, 카르마에는 시차만 있을 뿐 오차는 없다.
--동시성
한 공간에 위치한 존재 ‘안’에 ‘현재 의식’이 ‘인식’한 것을
다른 공간상의 ‘현재 의식’이 ‘인식’하는 현상
인간은 이것을 ‘동시성’이라고 불러왔다.
--무아
고유한 ‘나’는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단 하나의 나’뿐이다
/신께서 내 안에, 내 안에 신이 있는 것과 같이
그들도 다 하나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요한복음 17장 21절/
신은 내 안에 있고
나는 신 안에 있다.
--신성 의식
신성 의식은 삼라만상의 모든 것을 동시적으로 인식한다.
신성 의식은 모든 존재 ‘안’에 있고
모든 존재를 ‘통해서’ 발현되고 있다.
--도
모든 존재가 ‘도’의 위에 있다.
‘도’의 작용을 받지 않는 것은 없다.
‘도’는 촘촘한 그물망처럼 온 존재를 이어주며
삼라만상의 모든 것을 무위로써 다스린다.
이 밖에도 ‘단 하나의 거대한 현재 의식’을 가리키는
‘다양한 이름표들’이 있습니다.
디바인 매트릭스, 영, 참나, 하나님, 절대자 등등등…
각각의 ‘다른’ 이름표들이 가리키는 것은
단순한 ‘하나’였습니다
이 모든 생각과 감정
이 모든 외부 세계
이 모든 존재들과 우주가 ‘존재’하려면
‘태초의’ 의식이 존재했어야만 합니다.
‘최초의’ 의식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현존하고 있는 모든 ‘현재 의식들’의 존재가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에요.
‘시작’이 없는데 어떻게 ‘이어질’ 수 있겠습니까?
즉 절대적 공허, 절대 무의 상태에서
‘최초의 현재 의식’이 나타났기 때문에
‘지금의’ 현재 의식들이 ‘존립’할 수 있는 겁니다.
‘최초의’ 현재 의식이 ‘어떻게’ 탄생되었는지
그게 ‘어떤’ 존재인지는 저도 몰라요.
그걸 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최초’ 의식이 ‘존재’했다는 것만은
우리의 이성과 직관으로 알 수 있습니다.
최초의 의식은 ‘인식’함으로써 모든 것을 ‘창조’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식’하는 기능을 가진 ‘순수 현재 의식’은
그 자체로 ‘태초의 창조력’입니다.
[인식->창조] 과정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 = 끌어당김
끌어당김의 방법에는 대표적으로 3가지가 있습니다.
집중과 몰입, 앎, 전제
-집중과 몰입은 ‘인식’의 초점을 그것에 고정시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것에 집중하고 몰입하면, 그것이 창조되어 끌어당겨집니다.
-그저 아는 상태는 가능성이 확정됨을 그저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저 앎’으로써 ‘인식’한 그것이 창조되어 끌어당겨집니다.
-특성 상태를 ‘전제’하는 것은
‘이미’ 완성된 존재 상태를 ‘인식’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누리게 될 것을 ‘전제로’ 느끼고 행동하면
그 상태가 창조됩니다.
이제 ‘왜’
‘인식’하는 기능만 가진 ‘순수 현재 의식’이 ‘태초의 창조력’인지
이해가 되시나요?
‘인식’하는 것이 모든 ‘창조의 근원’입니다.
그러므로 끌어당김은 이러한 창조력을 영리하게 ‘이용’하는 거예요.
그런데…
태초의 창조력을 ‘그저 이용’하는 것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서
태초의 존재 ‘그 자체’로 녹아들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명상
명상을 하면 생각과 감정이 멎게 됩니다.
오직 생생하게 진행되고 있는 ‘순수 현재 의식’만을 느끼게 돼요.
그렇다면
나의 ‘안’에 순수 현재 의식이 있고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안’에도 ‘순수 현재 의식’이 있다면?
‘최초의’ 의식 안에도 ‘순수 현재 의식’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존재는 우리와 ‘다른’ 생각/감정을 가지고 있겠지만
우리와 ‘똑같은 순수 현재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안’의 현재 의식을 느끼는 행위는
‘최초의 존재’ 안에 있는 현재 의식을 느끼는 것과 같습니다.
즉, 신과 ‘하나’인 상태를 느끼는 방법은
내 ‘안’의 순수 현재 의식을 느끼는 거예요.
더 간략하게 말해볼까요?
명상은 -> 내 안의 순수 현재 의식을 느끼는 것이고
내 안의 순수 현재 의식을 느끼는 것은
내 옆 사람, 동물, 과거 존재, 미래 존재, 외계 존재
그리고 ‘태초의’ 존재 속의 ‘생생한 현재 의식’을 느끼는 것이므로
깊은 명상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온 존재 속의 ‘현재 의식’을 느끼는 것이다.
깊은 명상을 경험한 선각자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말을 남겼습니다.
-내가 신이고, 신이 곧 나다
-내 안에 우주가 있고, 우주가 곧 나다
-나는 온 우주에 퍼져있다
이 모든 것들을 ‘체득한’ 자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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