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내가 미국의 한 시골로 유학 가 처음 듣는 수업이었다.
옆에 있던 한 세심한 친구가
내가 잘 알아듣고 있는지 확인하고자 물었다.
“You okay?”
“Yes! I’m okay!”
다음은 과학 시간이었다.
친구가 다시 물었다.
“You okay?”
“Ye.. yeah.. I’m okay..”
그다음은 미국의 국어, 영어 시간이었다.
걱정된 세심한 친구가 다시 물었다.
“You okay?”
내가 말했다.
“이런.. ㅠㅠ”
그러자 친구는 빵 터졌고 나는 그때 묘한 기분을 느꼈다.
생긴 것도 다르고 말하는 것도 다른 어떤 낯선 사람과 뭔가 통한 것 같은 느낌.
사람들이 나에게 묻는다.
“성선설이 맞나요 성악설이 맞나요? ”
그러면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렇다 저렇다 하며 저마다의 의견을 말한다.
그런데 본능이란 건 뭘까?
20여 년 전 일이다.
미국에서 인류학을 전공하던 한 젊은 청년이
마추피추에 사는 마치겡가 부족을 찾아갔다.
그의 청년의 이름은 조 헨리치.
그가 증명하고 싶은 건 딱 하나였다.
인간의 본능은 어딜 가나 똑같다는 것!
그동안의 연구가 대부분 서양인을 대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문명과 동떨어진 마취겡가 부족에게 실험을 함으로써
그간 이뤄온 사회과학 연구에 힘을 더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유명한 게임 이론 중 하나인 ‘최후 통첩 게임’을 했다.
규칙은 간단하다.
1번 참가자에게 돈을 주고
2번 참가자와 어떻게 돈을 분배할지 결정하라고 한다.
2번 참가자는 1번 참가자가 분배하는 돈을 받아들일 수도 거절할 수도 있다.
만약 2번 참가자가 1번 참가자에게 분배받은 돈을 거절한다면
두 참가자 모두 돈을 한 푼도 못하게 되고
수락을 하면
1번 참가자의 제안에 따라 돈을 나눠 갖게 된다.
그간 실험에선
1번 참가자가 2번 참가자에게 돈을 적게 줬을 때
2번 참가자가 이를 거절 해 보복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를 이미 예상하고 있는 1번 참가자는
돈을 균등하게 혹은 약간 더 많이 가져갔다.
그래서 이 실험의 평균 결과는 50:50에 가까웠다.
사람들은 거의 공평하게 나눠 갖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실험의 대상자는 대부분 미국인과 캐나다인이었다.
이제 마치겡가족이 이 게임을 시작했다.
놀랍게도 1번 참가자는 받은 돈의 대부분을 가져갔는데
더 놀라운 건
2번 참가자는 아무리 적은 돈을 분배받아도 그걸 거절하지 않았다.
그들은 공짜 돈을 거절하면서까지 1번 참가자를 벌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1번 참가자는 욕심 많은 악당이 아닌
1번으로 배정받은 운 좋은 사람이었다.
당시 이 실험이 가져온 파장은 엄청났다.
심리학, 경제학, 사회과학 등 학계의 인간 본성에 대한 이론은
모두 최후통첩 게임과 같이
서양인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 기초하고 있었고,
‘이것이 인간이다’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후 헨리치는 탄자니아에서 인도네시아까지
세계 각지에서 14번에 걸친 실험을 했지만
실험 결과는 기존의 것들과 모두 다 달랐다.
이 연구로 그는 2004년 백악관에서 ‘젊은 과학자 대통령상’을 받았고
뉴욕타임즈는 이렇게 보도한다.
“헨리치는 자신의 발견이 우리가 갖고 온 커다란 지식나무에
새로운 나뭇가지 하나를 달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가 나무의 몸통을 자르고 있었다.”
그 후 행해진 많은 심리 실험에서 알게 된 건
서양인들은 오히려 통계 스펙트럼의 중앙이 아닌 가장자리에 위치한다는 것이다.
이 가장자리만 보고서 인간은 이렇다 저렇다 말해왔던 것이다.
빛의 스펙트럼에서 우리 눈에 보이는 가시광선만 보고
이게 빛이다 라고 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우주를 알기 위해 지구만 보고서
우주는 물과 산소로 가득하다라고 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인간의 본능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인간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우주로 가서 나랑 재밌는 놀이를 해보자.
저기 아무도 살지 않는 안드로메다의 한 행성에 어떤 사람이 태어났다고 해보자.
그 사람은 거기서도 사람들이 북적대는 도시에서 태어났을 때와 같은 본능을 갖고 있을까?
그 사람이 서양에서 태어났을 때, 아프리카에서 태어났을 때와 같은 본능을 갖고 있을까?
우리는 모두가 자신이 자라온 문화, 환경에 따라서
각기 다른 모습을 갖고 자란다는 걸 알고 있다.
내가 서울이 아닌 바하마에서 태어났다면 난 또 다른 내가 됐을 것이고
내가 이 시대가 아닌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수렵 채집 시절에 태어났다면
또 완전히 다른 내가 것이다.
심지어 뭔가를 죽이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사자
킬링 머신이라고 불리는 이 사자가
본능적으로 다른 동물을 죽이고 잡아먹는다 생각하지만
집안에서 경쟁할 이유 없이 걱정거리 없이 사랑받으며 자란 사자는
완전히 다른 사자가 된다는 걸 우린 봐왔다.
그래도 사자가 본능적으로 살생한다고 생각하는가?
감히 내가 이 조그만 지구에
조그마한 사회에
아주 찰나의 시간 동안 살고 있는 인간을 보고
인간이 이 저렇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지금 이 엄청나게 특수한 환경이
지금 나라는 사람을,
그리고 여러분을
잠시 만든 것일까?
아인슈타인도 좋아했던 사고 실험을 해보자.
나라는 사람이 동시에 여러 군데에서 태어날 수 있다.
한 명은 한국에, 한 명은 미국에, 한 명은 아르헨티나, 가나, 스페인, 페루
193개국 모든 나라에 내가 있다.
그들은 서로 완전히 다른 나로 자라면서
각기 다른 성향과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질 것이다.
한 명은 돈을 적게 분배받았다고 씩씩거리며
1번 참가자를 벌하고 싶어 하지만
한 명은 공짜로 받은 돈이라며 신나할 테니까.
그런데 어느 날 구글에서 뇌를 전산화해 클라우드에 저장할 수 있다고 한다.
193개국의 각각 살고 있는 나들은
이 소식을 접하고
모두 클라우드에 뇌를 업로드하게 되는데
유전자 코드가 겹쳐 컴퓨터에 오류가 나고
이 뇌들이 하나의 뇌에 업로드되었다고 하자.
이렇게 하나가 된 나는 뭘까?
지구의 모든 지역에 있던 내가 합쳐진 이 하나의 의식은 뭘까?
왜 지구에만 한정 짓는가?
우주로 확장해 보자.
우주에 있는 모든 행성에 내가 있다.
안드로메다에도, 검은 눈 은하에도, 시가 은하에도, 큰 게자리 왜소 은하에도
우주에 있는 7조 곱하기 100억 개의 별 주위 행성에
모두 다 내가 있다.
이 우주 전역에 걸친 모든 나들은
각자 다른 세상을 보고
각자 다른 생각을 하며
완벽하게 서로 다른 의식을 갖고 자랄 것이다.
그 모든 우주 전역에 빽빽하게 펴져 있는 나들이
하나의 클라우드에 합쳐진다.
그렇게 합쳐진 나는 뭘까?
나의 정체는 뭘까?
나는 뭘 선하다고 하고 뭘 악하다고 할까?
그런 게 존재한다고 생각이나 할까?
이게 오바스럽다고 생각하면
미안하지만 아직 한참 모자르다.
차원 하나가 빠졌으니까.
왜 3차원 공간만 연결하는가?
네 번째 차원 시간을 더하자.
과거로 가서 1천년전 고려 시대의 나를 지나
1만 년 전 수렵 채집을 하던 나를 봐보자.
1억 년 전도 가볼까?
왜 지금 이 조그만 곳에서, 조그만 사회에서, 조그만 것 밖에 경험하지 못한 인간을 가지고
이렇다 저렇다 단정 짓는가?
내가 경험하고 보고 듣고 느낀 이 세상은
그리고 그렇게 형성된 나의 생각은?
내가 느끼는 모든 것은
그냥 단지 이 특수한 환경이 잠시 만든 것이다.
다른 사람은 내가 아직 경험하지 못한 나다.
누군가 그랬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는 건
서로 다른 우주가 만나는 것과 같다고
우리 모두는 각자 다른 환경에서 각자 다른 나로 자란 하나의 우주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나와 다른 우주를 보고도
그걸 어떻게든 해석하고 싶어서
내 우주에 있는 한정적인 재료들만 가지고
그 사람을 해석하려 하지만
그건 결국 내가 내 자신의 일부를 보는 것일 뿐이다.
내 자신의 일부를 보면서
‘저 사람은 나쁘다, 저 사람은 선하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직접 되어보지 않고선 그 사람을 알 수 없다.
그런데 그래서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건 너무 재미있다.
그 사람이 보고 듣고 느낀 세상을 알아가면서
그 사람과 공감하다 보면
나의 우주가 확장돼 그 사람의 우주와 겹쳐지는 걸 느낄 수 있고
그 사람의 우주가 확장돼 나의 우주와 겹쳐지는 것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건 인생에서 정말 설레는 경험이다.
내가 ‘이런.. ㅠㅠ’라고 외쳤을 때
그 백인 친구가 웃는 걸 보고 기분이 이상했던 이유는
그의 우주와 나의 우주가 순간 겹쳐진 걸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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