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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經 | 분명해진다는 것은 '어떻게도 할수 없음'이 분명해지는 것 | 월인선원

Buddhastudy 2024. 8. 7. 19:16

 

 

아마 저같이 느끼는 경험을 하신 도반들도 있을 거예요.

여기에 통하고, 자기도 모르게.

다 안다이런 생각이라든지

자기 공부보다도 아직 여기에 통하지 않은 이 도반들이

이걸 어떻게 못 알아듣지?”

이런 생각 하셨을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천만다행인 게 그거예요.

그런 생각이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회를 꾸준히 다니고, 법문을 듣고 그러면서

여기에서 멀어지지 않은 게, 그게 천만다행이에요.

 

왜 그러냐 하면

그렇게 다니다가 어느 날은 그냥 또

이겁니다그러는데

이게 다르게 다가 와.

 

똑같이 도가 뭡니까?”

이겁니다.” 이랬거든

제가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다르게 다가와 이게.

 

안다고 여겼던 그거하고 또 달라.

뭐가 이렇게 뚝 떨어지면서 밝아지기도 하고

뭐가 이렇게 다르게 다가와.

전 여러 번 다르게 다가왔어요, 이거 하나가.

 

근데 그럴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공부를 꾸준히 여러 해 이렇게 하시다 보면

왜 그런지 자기 스스로 압니다.

왜 이게 다르게 다가오는지를.

 

그리고 다르게 다가와야 될 거 아니에요.

이미 제가 이겁니다하고 이럴 때

다 안다이렇게 이런 생각이 있었다고 그랬잖아요.

그 생각이 없어져야 되거든.

안다는 생각이.

 

다른 도반들은 왜 못 알아듣지?” 하는 이 생각도 없어져야 되거든.

그 생각이 있으면

이게 이미 흐려진 거예요.

 

그런 생각이 다 빠져야 돼요.

그러니까 이거는 금을 하는 거 재련이라고 그럽니까?

단련하는 거하고 똑같다고 그러잖아요.

금을 단련하는 건.

금은 금인데 그 속에 불순물이 있어.

그 불순물을 다 빼내야 되는 거거든.

그걸 단련이라고 그래요.

 

그러니까 여기에서 불순물이 다 빠져나가야 됩니다.

이 털끝만큼이라도 남아 있는

자기는 모르지만 이 앎, 이해라고 하는 게 다 빠져나가야 돼요.

 

그래야 이거에 대해서는 손댈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할 수 없음이

스스로 분명해지는 거예요.

이건 어찌 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

어찌 할 수 없는 건데

옆에 있는 도반이 알아듣니 못 알아듣니

이런 생각이 있을 수가 없거든.

 

공부는 복잡한 게 아니에요.

우리가 이 체험을 하고 난 뒤에 공부도 복잡한 게 아니라니까.

그냥 여기에 통했으면

그냥 이게 분명해지는 게 공부예요.

 

분명해지려면

자기도 모르게 있는 분별이나 앎이나 이해가

여기에서 다 빠져나가야 되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빠져나가냐?

어떻게는 없어요.

어떻게는 없어.

그냥 꾸준히 이런 법 속에 있어야 돼.

 

법 속에 있다는 말은

이런 설법이나 이런 법회에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자기도 모르게 그냥 여기에서

그냥 문득문득 하고 그냥 뭐가 툭툭 떨어져 나가고

떨어져 나간 만큼 밝아지고

이제 이런 경험들을 하는 거거든.

 

첫 체험도 마찬가지예요.

처음에 여기에 통한다고 하는 것도

이겁니다하는 여기에서 문득

그냥 분별이 그냥 쑥 내려가 버리는 거야.

 

그러니까 통밑이 빠졌다이런 표현을 쓰는 겁니다.

앞뒤가 끊어졌다이런 표현을 그래서 쓰는 거예요.

 

무슨 앞이 있고 뒤가 있어서

끊어질 앞뒤가 있겠습니까?

없어요.

실제로는 없어.

 

근데 우리 분별은 앞이 있고 뒤가 있거든.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고

어제가 있고 오늘이 있어요.

우리 분별은.

 

근데 이거는 분별을 해서 있다고 착각하는 거지

실제로는 없어요.

무슨 앞이 있고 뒤가 있습니까?

과거가 있고, 현재가 있고, 미래가 있습니까?

없어요. 실제로는.

 

근데 그렇게 있다고 분별을 하다가

어제 오늘이라고 이렇게 나눠서 분별을 하다가

쉽게 말하면 어제 오늘이라고 하는 게

나뉘어져 있는 게 아니라 딱 붙어버리는 거지.

딱 붙어서 이건 앞도 없고 뒤도 없게 돼버리는 거지.

 

그러니까 우리가 느낌은 그렇게 느껴지는 거예요.

뭐가 그냥 탁 붙었다거나

뭐가 이렇게 탁 끊어졌다거나 뭐 이렇게 느껴지는 거야.

그런 착각 속에 있다가

이 착각에서 벗어나는 체험이라고 하는 거는.

 

그래도 우리가 그런 착각에서 벗어나는 체험을 해보면

꾸준히 한 10년 이렇게 공부를 체험하고 난 뒤에 해서 보면

처음 체험한 거는

정말로 이 어둠밖에 없는 곳에

이 바늘구멍 하나 이렇게 구멍이 뚫려서

바늘구멍으로 햇빛이 들어오는 겁니다.

 

바늘구멍으로 들어와도 빛은 비치지.

빛 아닌 건 아니지.

그러니까 한 줄기 빛을 자기가 실감한 거예요.

여기에 이렇게 딱 새겨진 거죠.

감이 새겨진 거예요.

이제 빛이 뭔지 이걸 한번 본 거예요. 빛이 뭔지.

그러면 점점 이 어둠을 몰아내고

빛으로 가득 채우는 게 사실은 공부죠.

 

빛 한 번 봤다고 내가 다 안다

이런 생각이 든다니까

우리 생각이라는 놈은 참 재밌는 놈이어서.

 

알긴 알지.

바늘구멍으로 들어오는 빛을 봤는데

생각은 당연히 알죠.

이게 빛이구나하고 안다니까

그러니까 다 된 줄 알아요. 다 끝난 줄 알아.

전혀 아닙니다.

 

그만큼 가지고는

자기 스스로를 구제하기도 아직 힘겨워요.

구제도 안 되고.

 

점점 공부를 해서 빛을 넓혀 나가야 된다.

말하자면 그런 거예요.

그런 걸 지혜라고 그러는 거죠, 지혜.

안목이라고도 하고

안목이 깊어진다이런 얘기를 그래서 하는 겁니다.

 

그래서 안목이 깊어진다는 말은

어둠이 하나도 없다는 얘기예요.

쉽게 얘기하면

어두운 구석이 하나도 없어.

온 세계가 그냥 빛으로 다 밝혀져 있다.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말하자면.

 

그 뜻을 깊이 이해라고 표현은 했지만

공감하고 실감한다는 얘기인데

이건 자기가 직접 그걸 이렇게 경험을 해봐야 됩니다.

그래서 제가 이 이야기를 해드린 거예요.

 

그냥 이겁니다그러면

그냥 그 정도인 줄, 처음에는 그 정도인 줄 알았는데

공부를 하면서 보니까

이거 하나에 또 그렇게 뜻이 깊고

무한하고 넓은 거를 경험을 하는 거거든.

 

근데 이 수보리처럼 감격에 겨워 울며 부처님께 아뢰었다.

감격이 겨워 울었다고 그러잖아요.

저는 이 심정이 충분히 공감 돼요.

그렇게 느껴질 때 정말로 전율이 일어나거든. 전율이.

 

정말로 불교라고 하는 게 이렇게 깊은 거였어?”

이런 전율이 일어나요.

 

그래서 저는 이게 공감이 됩니다.

그런 일들을 경험하면서 체험하고

그런 일들을 경험하면서 왔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