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철학자라고 자부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을텐데,
인의예지 얘기하면요 다 비웃습니다.
동양철학은 철학으로도 안 쳐요. 대학에서 원래.
서양철학이 철학과고요, 동양철학은 미신인데 넣어준 거예요, 그냥.
구색을 갖춰야 되어서 넣어준 거예요. 그런 개념이에요.
제가 동양철학과 대학원을 나왔지만, 벌써 분위기가요,
서양철학교수가 한 10명이면 동양철학은 유불선 3명 정도, 또 한국철학 1명, 이렇게 해서 구색만 갖춘 거예요.
그러면서 기본적으로 서양철학 하시는 분들의 마인드가
‘저건 철할 아닌데, 내보내야 되는데.’
그러니까 의사 분들이 한의학을 바라보는 시선 있죠.
‘아, 저거 미신인데.’ 있어요. 철학에서도.
놀라운 게 서양철학 하는 많은 분들한테 이데아를 물어보시면 아무도 이데아 얘기 하는 사람 없습니다.
‘이데아 그런 거 없어.’
‘합리적 의심과 분석과 논리적 방식으로 우리가 진리를 사색해 보자’ 그럽니다.
그럼 고등침팬치들끼리 하는 거예요. 원래.
‘도저히 이데아는 모르겠고, 우리끼리 합의를 해서 가장 자명한 결론을 도출해서 그걸 우리의 교과서로 삼자.’ 요정도 수준의 얘기라니까요.
그런데 이데아를 본다는 거는요, 하느님하고 바로 통해버린 거죠.
‘이게 자명이고, 이게 찜찜이야.’ 바로 게시의 소리를 들어버리는 수준이에요. 이데아를 만난다는 건.
소크라테스는 이데아를 만나서 얘기를 하는데, 제자라는 사람들이
‘이데아는 없는 거고, 우리 논리적으로 가장 타당한 오류가 없는 그 논리를 우리가 진리로 삼읍시다.’ 이걸 지금 철학이라고 알고 있는 거예요.
서양철학이 고대로 가면 동양철학과 똑같은데,
근대로 와서 너무 달라진 그 철학을 ‘이게 철학이다’하고 동양에 들어오니까 동양 것들이 다 미신 같죠.
다들 인의예지라는 이데아를 기본으로 삼고 선비들이 논리를 전개하니까
‘여기는 합리적 의심이나 이런 사색이라는 게 없구나, 주체적 사색이’
그런데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그런 건 너네 소크라테스 할아버지한테나 가서 하라는 거예요.
소크라테스 한테 그런 얘기가 먹힐까요?
소크라테스가 합리적인 의심만 한 사람 같죠. 겉으로 보면 그렇게 보이죠.
합리적인 의심만 하는 거 같죠. 논리적인 어떤 사유만 추구한 사람 같죠.
저 내면에는 다이몬의 소리가 있어요. 다이몬이 하지 말라고 그러면 못하는 거예요.
이 부분을 빠뜨려버리면요 공부가 산으로 간다고.
여러분, 제가 선정 빠진 지혜라는 거는 고등침팬치들의 전유물입니다, 이 지혜는.
선정과 함께 썼을 때 여러분은 하나님 자녀 같은 사고를 할 수가 있어요.
머리가 안 좋아도 괜찮아요.
자, 선정이라는 체험은요,
체험은 여러분이 서 있는 위치를 결정해 줍니다.
참나 체험이 없는 분이 만약에 아이큐 430
참나 체험 있는 분이 아이큐 100이에요.
어느 분이 더 알아내겠습니까? 용을 써도 낮은 사람은 못 알아내요.
전제가 다르거든요.
서 있는 위치가 다른데, 참나 체험을 하셨죠, 여러분이.
그럼 서 있는 위치가 올라가버립니다. 참나를 이미 봤기 때문에.
참나 상태를 체험하면서 사유를 하면
여러분 아이큐가 별로 안 좋아도 자명한 답이 떨어져요.
아이큐가 400이면 뭐합니까? 참나를 안 만났어요.
‘참나에 대해서 논하시오.’ 그럼 상상을 해서 얘기하겠죠. 기가 막히게 잘 쓰겠죠. 그럴싸하게. 꽝입니다.
차이 아시겠어요?
체험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체험이 있다면 서 있는 기반이 다르신 거예요.
즉, 직관력이 달라요. 이미.
이미 알고 있는 게 있어요. 체험한 것만으로 이미 알고 있는 게 있어요.
체험 안했죠. 이미 몰라요.
직관이 딸리는데 머리로 논리로 어떻게 보강해 보려고 하죠, 한계가 있습니다.
연구하시려면 무조건 참나를 체험하시고 체험하시면서 연구를 하실 때,
여러분의 단점들이 보완되면서 자명한 결론을 내는데, 문제가 없게 다 만들어줄 겁니다. 이 참나 체험이.
그래서 ‘참나 만나라. 참나 만나라’ 하는 거지,
참나 만나기만 하면 된다는 얘기 아니에요.
참나 만난 뒤에 이런 식으로 잘 관리해 주셔야
여러분의 지혜가 아주 날마다 날마다 샘솟으실 거예요.
오늘 하루 또 자명한 생각이 나고,
내일 또 자명한 생각이 나고
이런 삶이 가능해집니다.
그러면 삶 방향이 바뀌어 버려요.
여러분의 삶의 경영지침이 바뀌니까 원칙이 바뀌니까 삶이 바뀌어 버려요.
이런 체험들을 꼭 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랬을 때, 진짜 살아있는 철학자가 나옵니다.
소크라테스가 무슨 철학과 나와서 철학했습니까?
지금 철학과가 하는 철학이라는 건 제가 볼 때 우리 예전에 고등학교 때 배우는 국어 시, 분석하는 그런 같아요.
시인들이 와도 못 풀 문제를 내고 자기들이 맞추고 그러죠. 코미디 아닙니까?
‘여기서 님은 조국이요’ 막 이렇게. 뭐든지 님은 웬만하면 조국이죠. 그래서 다 분석해서.
시인한테 물어보면 짝사랑하던 여자를 생각하고 썼을 수도 있는데. 그렇죠? 평생에 어떤.
‘소크라테스도 우리가 잘 풀어. 우리가 철학자거든.’ 안 그래요.
다이몬스의 소리 듣는 사람이 소크라테스 마음을 알 수밖에 없습니다.
못 듣는 사람들이 아무리 아이큐 430, 480 해도 모르는 거예요. 전혀.
상상 속에서 다이몬을 상상한 뒤에.
그러니까 말이 됩니까? 말이 안 되니까 배제, 배제, 다 배제하다보니까 이데아도 드러내고 다 드러내요.
지금 현대철학은 이데아고 뭐고 다 드러냈어요. 이데아 인정하는 철학자 제가 본 적이 없습니다.
학당에 오면 이데아부터 얘기하고,
진정한 철학학당은 홍익학당이라고 자부를 하고 있는 게,
철학이 땅에 떨어져서 누구라도 세워야 될 거 같아서
홍익학당은 사실은 철학학당입니다.
과학 배우러 과학학당 가셔야 하듯이 철학 배우러 오신 거예요. 본의 아니게.
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내가 가보니 거기가 철학 학당이더라 하는 게.
그래서 막 어려운 철학 얘기를 하겠다는 게 아니에요.
‘다음 주에는 헤겔 읽어 오시고, 그 다음 주에는 칸트 갑시다.’ 막 이러는 게 아니라
이런 얘기들이 다 철학 공부하고 계시다는 걸 아시면 좋겠습니다.
'윤홍식 > 윤홍식_3분인문학(2019)' 카테고리의 다른 글
[3분 인문학] 통일을 희망하다 _홍익학당.윤홍식 (0) | 2019.03.13 |
---|---|
[3분 인문학] 깨어나라 풍류의 민족이여! _홍익학당.윤홍식 (0) | 2019.03.12 |
[3분 인문학] 혐오를 이용하는 이익집단 _홍익학당.윤홍식 (0) | 2019.03.08 |
실패하는 교육 '너만 잘되면 돼!' [홍익학당] (0) | 2019.03.07 |
[3분 인문학] 고등침팬지 사회(소수 소시오패스의 지배 구조) _홍익학당.윤홍식 (0) | 2019.03.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