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경제-1
멕시코의 경제 규모는
라틴아메리카에서 2번째, 세계에서는 15위에 해당하는 대국입니다.
또한 매년 190개국을 대상으로
기업환경을 평가하는 World Bank 조사에서
전체국가 중 54위, 중남미 국가 중에서는 1위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멕시코의 산업은
식품 및 음료, 담배, 철강과 섬유, 석유산업과 관광업 등이 있습니다.
석유산업은 국가재정의 주요 수입원으로
국영 멕시코석유회사(PEMEX)가 독점하고 있으며,
멕시코는 현재 세계 상위권의 원유생산국이자 석유 수출국입니다.
광물자원도 풍부해 은 생산량은 세계 1위,
납과 수은 역시 세계 4위의 생산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임산자원으로는 마호가니와 삼목 등 고급 가구재가 많이 산출되며
껌의 원료인 사포딜라가 많이 납니다.
주요 농업생산물로는 옥수수, 콩, 커피, 토마토 등이 있으며
제조업 부문에서는 트랙터, 자동차, 항공기, 석유화학공업이 크게 발달했습니다.
멕시코의 경제는 대외수출의 약 80%, 수입의 50%가량이
미국에 집중되어 있는 대미의존형이나
의존도는 지속적으로 조금씩 감소하고 있습니다.
또한 멕시코는 외국인 직접투자도 매우 높습니다.
멕시코 소비시장은 유럽, 미국, 중국 등 다수의 글로벌 브랜드들이 진출하여 경쟁을 펼치고 있는데요.
Zara, GAP, H&M 등 패션 분야는 물론 스마트폰과 자동차, 화장품 등
다양한 분야에 다국적 기업들이 멕시코 시장을 공략하고 있습니다.
이는 멕시코가 중남미 국가들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제조업이 잘 발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4. 경제-2
1910년 멕시코혁명으로 인해 대토지소유 제도를 없애면서
멕시코의 경제는 전환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1940년대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토지개혁과 석유국유화로 산업화의 기반을 닦은 이후로
연평균 4%대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멕시코의 기적’이라고 불릴 정도로 성공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었습니다.
대표적인 석유 산지인 텍사스를 미국에게 빼앗겼지만
멕시코 내에는 석유가 많이 매장되어 있었고
1977년부터 1981년까지 멕시코는 석유호황기(Mexican Oil Boom)를 맞게 됩니다.
멕시코의 경제는 석유의 힘을 받아 다시 좋아지기 시작했고
1인당 국민소득도 빠른 속도로 성장하였습니다.
하지만 멕시코는 상황을 너무 낙관적으로 보는 나머지
더 많은 투자를 위해 대량의 외채를 빌려오게 됩니다.
얼마 후, 미국의 석유파동으로 인해, 미국의 물가가 크게 오르면서
그동안 멕시코가 빌렸던 외채의 이자 부담이 커지게 되었고
1981년을 기점으로 석유 가격마저 폭락하기 시작해
멕시코의 경제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나빠졌습니다.
경상수지 적자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불어났고
1982년, 멕시코 정부는 빌린 돈을 제때 갚지 못하겠다는 의미로
상환을 미루는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게 됩니다.
모라토리엄 선언 이후 멕시코는 국제적 신용은 하락하고
국내에서도 심각한 경제적 혼란을 겪게 되었습니다.
1994년 미국, 캐나다와 함께 북미자유무역협정인 NAFTA 출범 이후
원유와 제조업의 수출이 다시 증가세로 돌아서며
멕시코의 경제도 다시 안정을 찾아가는 듯했지만
여전히 현재까지도 멕시코는 미국의 경제상황에 큰 영향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멕시코는 극심한 빈부격차와 지독한 임금 정체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OECD의 연구 결과에서 멕시코의 상위층과 하위층의 소득 격차는 25:1로
이는 칠레와 더불어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합니다.
전인구의 40% 가량을 차지하는 빈곤층 문제는
멕시코 정부가 매번 핵심 정책으로 강조하는 부분이긴 하지만
여전히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5. 자연환경
멕시코는 국토면적이
한반도의 약 9배이며, 세계에서 13번째로 큰 국가입니다.
광대한 국토의 멕시코는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휘어진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북으로는 미국과 3,200km의 국경을 접하고 있고
남쪽으로는 과테말라와 벨리즈와 접해있습니다.
해안선의 길이는 9,220km로
캐나다에 이어 아메리카 대륙에서 2번째로 깁니다.
국토 중앙에 시에라 마드레(Sierra Madre) 산맥이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어
국토의 절반이상이 고지대입니다.
멕시코의 지형구조를 보면 북아메리카의 일부로 연결되지만
민족적으로는 라틴아메리카에 더 가깝습니다.
멕시코의 기후는 고도에 따라 다양한 기후분포를 보입니다.
연중 고온다습한 기후로 특히 해안지대는 열대기후를 보이고
중부의 고산지대는 우기를 제외하고는
건조한 온대성 기후, 나머지 국토는 아열대 기후에 속합니다.
멕시코 북부에 자리한 사막지역에서는 50도가 넘는 고온이 기록되기도 하는데요.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더운 곳이 멕시코 북부의 소노라 사막(Sonoran Desert)지역이며
이 사막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모하비 사막과 같은 사막으로 이어진다고 합니다.
또한 멕시코 고원에는 4,000m가 넘는 높은 화산들이 다수 분포하고 있어,
남부 지역에서는 지진도 자주 발생하는 편인데요
1985년에 일어난 멕시코시티 지진으로 인해
사망자만 5,000명이 나왔을 정도로 피해가 심각했고
2017년 9월에도 큰 규모의 대지진이 연달아 2번이나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6. 문화
멕시코는 마야 문명, 아즈텍 문명 등
아메리칸 인디오의 찬란한 토착유산을 가지고 있는 국가이면서도
스페인의 식민지배를 통해 서구문명이 유입되어 혼합적인 문화를 띕니다.
현대 들어서는 미국의 영향을 크게 받기도 했습니다.
흔히 생각하는 멕시코인의 모습은 망토처럼 생긴 판초를 입고
커다란 밀짚모자를 쓰고, 풍성한 콧수염을 기르며,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이지만
실제 멕시코인들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실제 멕시코 국민들은 친절하고 낙천적이지만, 배타적인 성격도 강하다고 합니다.
화려함을 좋아하고, 정열이 넘치는 멕시코인들은
거의 매달 활기찬 축제를 즐기는 민족으로도 유명합니다.
각기 특색이 있는 축제들 중에서도
멕시코시티에서 11월 2일에 열리는 전통축제인
‘망자의 날(Dia de los Muertos)’ 축제가 가장 대표적입니다.
수세기 동안 이어온 전통적인 축제로
죽은 자들이 이승으로 돌아와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 머무는 날을 기념하기 위해 시작되었습니다.
죽은 이들을 위해 특별한 제단을 꾸미고 선물과 꽃으로 장식하며
성대한 퍼레이드를 펼치기도 하는데요.
이 축제에 참여한 사람들은 얼굴에 해골 그림을 그리거나 해골 코스튬을 즐겨 입습니다.
멕시코는 세계 6위의 관광대국으로 관광업이 국내 3대 산업 중 하나입니다.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국립공원들과 더불어
아즈텍문명으로 대표되는 찬란한 문화유산 덕분인데요.
주로 미국인과 캐나다인이 관광으로 멕시코를 찾고 있으나
계속해서 전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가장 유명한 관광지로는 칸쿤(Cancun), 아카풀코 (Acapulco), 리베라 마야(Riviera Maya) 등이 있습니다.
특히 한국인들 사이에 신혼여행지로 각광 받고 있는 칸쿤은
멕시코 남동부에 있는 휴양도시로
세계관광기구의 인증을 받은 관광특화도시입니다.
멕시코에서는 축구가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입니다.
북중미 여러 나라들 가운데서도 가장 축구를 사랑하는 국가가 바로 멕시코인데요.
무려, 전 세계 4위의 자국 리그 관객 수를 기록하고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인기만큼 실력도 좋아서 멕시코의 축구 수준은
북중미 지역에서는 미국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좋으며
월드컵도 2번이나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매운 맛을 즐기는 멕시코인들은
하바네로 고추와 칠리소스를 활용한 매콤하고 자극적인 요리를 많이 먹습니다.
옥수수가 주식인 멕시코에서는
말린 옥수수 가루를 반죽해 만든 토르티야에
다진 고기와 야채 등 각종 재료를 넣어 만든 타코(Taco)가 대표 음식입니다.
토르티야를 바삭하게 하거나 혹은 부드럽게 해서 색다른 맛을 즐길 수 있습니다.
타코는 손바닥 크기정도로 동그랗게 부쳐낸 토르티야에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 각종 육류와
고추, 피망, 선인장 열매 등 다양한 야채들을 볶아내어
쌈처럼 싸 먹는 멕시코 전통요리입니다.
맛은 의외로 느끼하지 않고 담백하며
개인의 취향에 따라 재료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장점입니다.
6. 인물
멕시코에서 잘 알려진 인물로는 초현실주의 화가인
‘프리다 칼로 드 리베라(Frida Kahlo de Rivera)’가 있습니다.
그녀는 20세기 멕시코 미술계를 대표하며
피카소, 칸딘스키를 잇는 초현실주의화가이자, 혁명가이며
멕시코 민중벽화의 거장 ‘디에고 리베라’의 아내이기도 합니다.
프리다 칼로는 교통사고로 인한 신체적 불편과
남편과의 관계에서 받은 정신적 고통을 극복하고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작품으로 승화시켰습니다.
프리다 칼로는 1907년 멕시코 시티 근교 코요아칸에서
독일인 아버지와 메스티소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6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오른쪽 다리가 불편했지만
칼로는 총명하고 아름다운 소녀로 자라났습니다.
사진작가였던 아버지 기예르모 칼로는 총명한 칼로를 유난히 아끼며
어린 칼로에게 철학, 고고학, 음악, 미술 등 여러 분야로 가르쳐 주었습니다.
칼로는 사진기를 다루는 법도 배우고, 아버지의 사진 수정 작업을 돕기도 했는데
이는 사실적이고 세밀한 칼로의 작품 활동에 밑거름이 됩니다.
1925년. 18살이 된 프리다 칼로는
하굣길에 오른 버스가 전차와 부딪치는 사고를 당해 치명상을 입게 됩니다.
이 사고로 칼로는 왼쪽 다리와 쇄골, 갈비뼈 등이 골절되고
죽을 때까지 하반신마비 장애를 안고 살아가게 되었으며
평생 35번의 수술을 받게 됩니다.
꼬박 9개월을 병원에 누워 있어야 했던 칼로는
자유로웠던 두 손으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멕시코의 민중벽화의 거장이라 불리며, 혁명가였던 디에고 리베라를 만나
그에게 자신의 그림에 대한 재능과 열정을 인정받게 되고
두 사람은 1929년 8월, 21살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결혼하게 됩니다.
화가로서 활동할 초기에는 워낙 유명한 남편의 명성에 묻혀
예술가로서 그녀의 재능이 세상에 충분히 알려지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칼로의 예술은 많은 다른 예술가들을 매료시켰고
피카소와 바실리 칸딘스키 등으로부터
초현실주의 화가로서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이 1938년 멕시코시티대학 갤러리에 출품했던 칼로의 자화상을 구입하면서
루브르에 입성한 최초의 중남미 여성작가가 되어
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녀의 작품은 현실주의, 초현실주의, 상징주의와
멕시코의 전통 문화를 결합한 원시적이고 화려한 화풍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앓았던 소아마비, 청소년기의 교통사고, 30여 차례의 수술,
죽음까지 이른 병마, 남편과의 갈등은
그녀의 삶에 반복된 고통과 절망으로 수많은 작품의 오브제가 되었습니다.
거울 속의 자신을 관찰하며 고통을 이겨냈고
자신과 관련된 소재들을 즐겨 그렸기 때문에
그녀의 작품은 절대적으로 자화상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1939년 작품인 ‘두 명의 프리다 칼로’와
1940년작품인 ‘벌새와 가시목걸이를 한 자화상’,
1946년 작품으로 ‘상처입은 사슴’ 등이 있습니다.
칼로는 1954년 40대 중반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사후 멕시코 정부는 그녀의 작품을 모두 국보로 지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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