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수행자들을 두 부류로 나눕니다.
그것이 바로 상근기와 하근기입니다.
상근기라 하면
달마나 원효 같은 특출난 수행자를 떠올리고
하근기라 하면
그런 기라성 같은 수행자들에게 미치지 못하는
일반 수행자들을 통칭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구분은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대부분 이현령비현령이 되고 맙니다.
그렇다면 상근기와 하근기를
어떤 잣대로 구분해야 좀 더 명확해질까요?
가령 병원에서 치료할 때 크게 두 가지 약을 씁니다.
그것은 치료제와 진통제입니다.
-치료제는 병의 근원을 해결하는 방법이고
-진통제는 병으로 인해 생겨나는 고통을 잊게 하는 방법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수행의 세계에서도
치료제와 진통제가 있습니다.
왜 수행을 하려고 할까요?
그것은 현재의 삶이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불만족스러운 걸까요?
시공의 한계에 걸려 생로병사하는 몽뚱이가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그리고 나와 존재가 무엇인지 모르고 사는
무명의 삶도 만족스럽지 못할 것입니다.
여기서 생겨나는 심리적 불안을 고통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곧 수행이 됩니다.
그렇다면 육체적 고통과 진리적 갈증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과연 그것을 해결할 치료법이 존재할까요?
고통을 잊게 하는 진통제는
브라만교에 의해 잘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해탈과 열반입니다.
집착을 끊어 해탈하면
괴로움이 소멸하게 되고
이것이 열반의 상태입니다.
열반에 머무르면 고통을 잊어 평온함이 유지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열반의 진통제를 치료제로 믿게 되면서 시작합니다.
고통이 사라졌으니 치료제로 생각할 법도 합니다.
하지만 진통제는 이성을 마비시킴으로써
고통을 잠시 동안 잊게 했을 뿐입니다.
열반의 상태에서 깨어나 이성에 불을 켜면
고통은 여지없이 찾아오지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열반의 상태를 오래도록 유지하는 것을 중시하게 되고
그래서 돈오 뒤에 점수가 따라붙거나
깨달음을 쪼개 등급을 나누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열반을 치료제로 알던 시기가 오래도록 이어지다가
세존이 등장하면서 진실이 알려지게 됩니다.
세존은 브라만교의 열반, 진통제 시대를 이끌던 참나론을 부정하고
진짜 치료제를 기치로 들게 되니
그것이 바로 연기론적 무아론입니다.
그러면 이제 치료제의 시대가 도래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치료제는 그 효과가 곧바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 보니 아주 빠르게 효과를 보는 진통제에 비해 인기가 떨어집니다.
참나만 찾으면 불성만 보면
효과가 확 퍼지는 진통제는
사람들의 구미에 딱 맞습니다.
그래서 세존이 불교라는 상표를 붙여
무아의 치료제를 전했어도
수행자들은 그것을 철저히 외면해 왔습니다.
심지어 불제자들조차도 치료제가 팔리지 않자
결국 진통제인 참나와 불성을 되팔게 되었습니다.
사실 신도의 수를 늘리기 위해서는
진통제를 팔 수밖에 없는 고충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수행생들마저도 습관적으로 진통제에 취해
해탈과 열반을 숭상하는 부작용도 만연하게 됐습니다.
다행히 상근기의 수행자들이 면면이 나와서
치료제를 고수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힘이 너무 미약한 것이 사실입니다.
여러분, 주변을 둘러보십시오.
수행의 상품들이 거의 다
참나, 본성, 불성의 꼬리표를 달고 있지 않나요?
거기다가 설명서를 보면
모두 열반, 해탈, 일체유심조에 대한 찬양뿐입니다.
물론 짧고 짧은 인생살이
그냥 참나(불성)의 진통제로 고통을 잊으면서
즐겁게 보내도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존재를 소중히 생각한다면
다시 말해 당신의 가치를 무상의 반열에 올리고 싶다면
반드시 치료제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것은 부처님께서 아트만을 부정하고 기치로 든 [무아론]입니다.
왜 무아인지를 이성적으로 추적해 들어가면
반야가 열리고
더 들어가면 존재의 실상이 드러나게 됩니다.
부처님은 수행자들이 금강의 발원을 세우면
반드시 무상정등각을 성취할 수 있도록 길을 닦아놓으셨고
그것이 바로 불교의 위대한 가치입니다.
당신은 정녕 참나나 불성의 진통제를 원하시나요?
진통제가 주는 일체유심조라는
반이성의 체험에 빠져
환상 속을 헤매실 작정이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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