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이 무엇일까요?
한 소식 들었다는 수행자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첫 번째, 번뇌망상이 소멸하여 열반에 이르고
두 번째, 분별로 사고하는 가아(假我)가 사라져
참나(진아(眞我))의 상태가 돼야 한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 ‘나’라는 생각이 사라져 삼라만상과 연결돼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깨달음이 얼마나 어려운지
수천 년 동안 이것을 이뤘다는 수행자들이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다음 생과 그 다음 생에
연이어 수행하겠다는 원력을 세우곤 합니다.
그런데 근래에 들어서는
신경과학의 발달로 인해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미국 톨레도 대학교의
신경심리학과 박사인 크리스 나이바우어는
‘나’라는 것이 좌뇌로부터 창조된 허상이란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인간의 좌뇌는 일종의 해석 장치인데
어떤 일을 겪었을 때
그 일에 대해 해석하고
여기서 얻어진 생각과 감정을 진실이라 믿게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니 자연스럽게
‘나’란 것이 존재한다고 믿게 되는 것이지요.
실례로 좌뇌의 특정 영역에 자극을 주면
‘나’는 사라지고 우주와 합일된 느낌을 얻게 됩니다.
(언어적 –이름 기억을 잘함, 언어로 된 자료를 잘 기억
논리적 –논리적 추리, 수학 학습에 유리
이성적 –사실적 현실적인 것을 좋아함)
번뇌망상의 에고가 사라져 우주의식의 상태로 마무르게 되는 것입니다.
수행자들이 말하는 깨달음과 정확히 일치하는 현상인 것이지요.
이런 연구 외에도 뇌의 기능과 깨달음이 연결된다는 실험은
무수히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신경과학에서는
얼마든지 깨달음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이제 병원에 가서 다음과 같이 주문할 날이 머지않은 것 같습니다.
“의사 선생님, 저는 열반을 70% 정도만 넣어 주세요.
현재의식을 조금 남겨 놓으려고요”
“의사 선생님, 저는 열반을 100%로 꽉 채워 주세요.
몸도 아프고 살날도 많지 않아 열반 속에 있으려고요.”
“의사 선생님, 저는 열반을 30%만 살짝 첨가해 주세요.
할 일이 많은데 종종 스트레스가 밀려오거든요.”
이처럼 저마다의 구미에 따라 열반 처방이 달라질 것입니다.
처음에는 뇌에 자극을 주는 방식으로 시술하다가
좀 더 발전하면 가정에서 알약 하나로 해결할 것입니다.
시술보다는 호르몬을 조절하는 것이 편하고 안전하니까요.
그렇다면 이처럼 뇌과학의 발달에서 얻어지는
영성이나 깨달음 같은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혹자는 뇌과학과 수행자가 말하는 깨달음이
각기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몇십 년 동안 비교 관찰한 결과
그것들이 완전히 일치한다고 드러났습니다.
수행자들의 깨달음이란 것도 일종의 정신 현상이기에
뇌과학에서 분리될 수 없는 까닭입니다.
그러면 이제 인류 모두가
붓다가 되어 살아가는 시절이 도래한 것일까?
범죄 유전자를 타고 났어도
열반 알약 한두 알이면 성자로 뒤바뀔 것이 아닙니까?
힌두교나 대승불교에서는
참나(아트만)와 불성(진아(眞我))을 깨달음의 증거로 내세웁니다.
이것들은 본뇌망사으로 뒤덮인 가짜 ‘나’가 사라지고 남은 순수 의식을 말합니다.
그런데 미안한 얘기지만
이런 건 사실 깨달음이 아닙니다.
그냥 심리적으로 편안해진 기분일 뿐이지요.
우리가 어떤 병에 걸려 병원에 갔다고 가정해 볼게요.
그런데 의사가 진통제를 써서 통증만 잡고
병을 치료하지 않으면 어떨까요?
통증이 없으니 병도 없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 것입니다.
하지만 진통제 효과가 사라지면 병세는 다시 드러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열반이란 건
진통제처럼 번뇌 망상의 고통을 없애 줍니다.
하지만 열반 상태에서 조금이라도 깨어나면
오만가지 생각이 총알처럼 튀어나와 고해를 만듭니다.
그러다보니 수행자들 사이에서
“참나 상태로 얼마나 오래 유지할 수 있냐”는 대화가 오갑니다.
쉽게 말해 진통제가 작용하는 시간을 따지는 것이지요.
정리하면
수행자들이 말하는 ‘참나 상태에서 오는 열반’은
일종의 진통제로서 치료의 한 과정에 불과합니다.
수행의 완성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오는
정신 현상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렇기에 향후 뇌과학에서
열반을 의료 상품에서 판매한다고 해서
깨달음이 대중화되는 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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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이란 무엇일까요?
깨달음은 어떤 심리적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하고 고귀하여 찬양할 만한 의식 상태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런 건 앞서 말한 열반에 수반되는 것들입니다.
깨달음은 오로지 아느냐 모르냐의 영역입니다.
열반의 환희보다
‘열반이 어떤 구성 요소로 만들어어져 그런 현상을 일으키는가?’에 대한
본질적 의문이 중요합니다.
인간의 지적 영역을 무한대로 확대해
존재의 비밀을 모두 알아차렸을 때의 전지적(全知的) 자각(自覺)
이것이 곧 깨달음입니다.
따라서 당신이 깨닫고자 한다면
열반 속에 숨어 이성을 마취시키면 안 됩니다.
당신은 쉼 없이 생각을 일으켜
실존(實存)의 코드를 풀어야 합니다.
그러면 당신은 열반의 환희와 실존의 깨달음을 잠시 맛보고는
이것들마저 훌훌 털어버리고
평범한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그대로의 모습이 깨달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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