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 1

[Pleia] 고통을 가질수록 잘 하고 있는 증거? 고통이 깨달음의 지름길? : 이러한 믿음이 주는 위험성

Buddhastudy 2025. 1. 2. 20:00

 

 

고통이란

자연스러운 나 자신의 상태에 대해

저항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통을 많이 가질수록 잘하고 있는 증거라는 말은

저항을 많이 할수록 잘하고 있다하는 말이기에

넌센스입니다.

 

고통의 목적은

내게 속하지 않은 것을 알아차리고

원래 자연스러운 나로 전환시키는데 있습니다.

 

물론 인생에는 도전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배우고, 경험하며, 성장합니다.

 

그러나 인생의 도전이 곧 고통이라거나

고통이 도전의 전부라고 정의할 필요는 없습니다.

 

슬픔이나 아픔 등의 감정을 억누르거나

무시하라는 말은 결코 아니며

그런 감정을 느끼는 자신을

비난하라는 얘기는 더더욱 아닙니다.

 

다만 고통의 본질이 무엇인지 아는 것과

내가 지금의 상황에 내리고 있는 정의에 따라

그 고통의 정도가 달라짐을 아는 것이

내게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맞이한 현실에 대해 어떤 정의를 내리고 있는가?

 

즉 내 마음에 따라

내가 경험하는 현실의 성질과 앞으로의 방향이 달라지는 법이니까요.

 

고통을 경험하면

진정한 우리 본연의 자연스러운 상태인

평온의 가치를 알아보고

감사함을 배울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고통과 평온은 같은 가치가 있는 것이지,

고통이 더 가치가 있다거나

고통 자체에 어떤 힘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결정적인 힘은

고통이 가리고 있는 진정함을 알아볼 수 있는

우리 자신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오히려 지속되는 고통은

인간으로서 나의 성장에도, 또 영혼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영혼이 우리의 고통을 바란다는 생각은

완전히 분리된 의식의 발상이며

오직 부정적인 믿음과 한계를 가질 수 있는

인간에게서만 나오는 관념입니다.

 

영혼은 나 자신입니다.

우리의 육체도 영혼 안에 있는 것이지

영혼이 우리 육체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이 바라는 것은

현실을 다른 시각으로 보고

고통을 전환시키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깊은 우울증으로

자살의 목전까지 갔다가

갑자기 소위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들에겐 과연 고통이 깨달음을 가져다준 것일까요?

 

우울증은 가장 깊은 무력감을 느끼게 합니다.

이런 우울증을 느끼는 사람들은

평소에 자기를 부정하고,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부정적인 믿음 체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자기 사랑이 결여되어 있거나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이라 믿고 있는

어떤 부정적인 믿음 체계가 반드시 있게 마련입니다.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없다는 믿음은

바윗돌처럼 점점 더 커져

나를 칠흑 같은 어둠의 심연으로 바닥까지 가라앉게 만듭니다.

더 이상 내려갈 바닥이 없을 만큼 가라앉았다 생각하는 순간

어떤 이들은 너무도 고통스러워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하고

어떤 이들에게는 이 바닥에 금이 가면서 빛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나는 존재할 가치도 없다라는

극단적인 절망적인 믿음에서

희미하게

내가 존재할 가치가 없는데 존재한다는 것은

그래도 내가 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늘 우리에게 조건 없는 사랑의 메시지를 보내주는

상위자아의 빛을 보는 순간입니다.

 

그때 나를 가라앉게 한 바위의 정체는

사실이 아닌 나의 믿음일 뿐이라는

그래서 그것이 환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그 바윗돌뿐만이 아니라

나를 감싸고 있던 어둠도 모두 깨어져 나가게 됩니다.

 

이제 나는 상위자아로부터 오는 빛으로 감싸이게 되며

자연스러운 나로 다시 태어나

새로운 믿음, 새로운 생각 패턴을 가진,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나는 다른 말과 행동을 하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그러한 나를 보며

완전히 달라진 사람이라 생각할 것입니다.

 

이것이 고통 속에서 환상을 알아본 것이며

신성의 의식과 접속이 되었다 느끼게 되는 것의 메커니즘입니다.

 

그래서 고통을 느껴주는 것이

나를 해방시킨 게 아니라

고통이 나의 잘못된 믿음에서 온 것이라는 깨달음이

나를 자유롭게 해준 것입니다.

 

고통 자체가 또는 고통 하나만으로는

나를 자유롭게 할 힘이 없습니다.

 

고통의 고마운 점은

나의 믿음이 신성을 가리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준 것입니다.

 

그래서 고통을 원망할 이유도

추앙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인생은 고통의 장이다.

고통이 있어야 잘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고통은 깨달음의 지름길이라는 믿음의 위험성은

이러한 고통을 느끼는 현실을

계속 창조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고통을 느끼는 현실을 창조하는 것을 선호한다면

그것 역시 우주는

그러한 현실을 창조하게 아낌없이 지원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러한 믿음을 가지는 것은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성장을 위해

극단적인 고통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같은 현실이라도 평소와 다르게 반응할 때

또는 과거와는 다른 시각으로 과거의 현실을 바라볼 수 있을 때

그때 나는 성장한 것입니다.

 

더 큰 힘은

작은 것이라도 감사함을 알아보는 데 있습니다.

고통은

잘못된 믿음으로 자연스러운 나에 대해

저항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