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 1

[Pleia] 죄책감, 후회의 패러독스

Buddhastudy 2025. 3. 13. 20:11

 

 

죄책감이란

내가 과거에 한 행위에서

그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서 나타나는 감정입니다.

 

이 죄책감은

후회와 수치심을 동반하기도 하며

진동으로 봤을 때

가장 진정한 나와 멀어진 상태입니다.

 

우리의 상위자아 혹은 영혼은

모든 일어난 일에 대한 이유를 이해하고

전적으로 수용하기 때문에

죄책감을 가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은 우리에게 결코 죄책감을 주지 않습니다.

죄책감은 조건 없는 사랑과 가장 동떨어져 있으며

또한 가장 낮은 진동이기도 합니다.

죄책감은 내가 더 성장하며, 앞으로 나아가려는 것을 막게 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죄책감을 쉽게 떨치지 못하고

심지어는 평생을 안고 살아가기도 할까요?

 

그 이유는 이 죄책감을 놓아버리면

나는 다시 예전의 나쁜 나로 돌아가

같은 행동을 할까 두려운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같은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나를 경계하며

동시에 내가 사랑받고 행복할 가치가 없다

스스로 심판하는 것입니다.

죄책감을 가질 때 느끼는 고통으로

스스로에게 벌을 주게 됩니다.

 

이미 다른 생각, 다른 결정, 다른 진동, 다른 상태에 있는 다른 존재가 되었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 과거의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일 참회하면서 살아라하는 말은

늘 같은 고통의 자리에 머물면서

가장 진정한 너와 멀어진 상태로 지내라는 말과도 같습니다.

또한 한 번 지은 죄는 용서받을 수 없고

너는 늘 잠재적인 죄인이니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참회와 후회를 지속적으로 가져야 더 좋은 사람

죄를 덜 짓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입니다.

 

죄책감, 참회, 후회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늘 그와 같은 진동을 생산해 내는 현실을 맞게 될 것입니다.

죄책감 참회로 만들어진 늪 속에 계속 머물러 있게 됩니다.

 

이 세상은 진동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지금 내가 계속 참여의 심정으로 죄책감을 가진다면

나는 과거에 그 일을 만든 진동 속에

아직도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컫는 정말 나쁜사람은

분리 의식이 너무나 강해

후회나 죄책감을 가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죄책감을 가진다는 것은

나는 나와 누군가에게 의도적으로 피해를 입히는 행동을 삼가하며

긍정적인 행보를 할 것이며,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조심할 사람이란 얘기입니다.

 

즉 죄책감은

지금의 나는 내가 더 선호하는 사람이 된 것을 증명하는 마음 상태입니다.

죄책감을 가지는 사람은 역설적이게도

이제는 죄책감을 갖지 않아도 되는 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일에 계속해서 죄책감과 후회를 갖는 것은

지금의 나를 거부하고

과거의 그 일 역시 있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그 가치를 완강히 부인하는 일입니다.

 

나의 일부를 지우려 하고

무가치하다며 없애려 하는 작용입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경험이라 해도

반드시 다른 영혼들의 동의와 허락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 경험에 동참한 영혼들은

모두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하기에

나와 함께 그 상황을 창조하였습니다.

 

내 행동을 정당화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에게 봉사한

본질적인 가치를 알아보라는 것입니다.

 

죄책감을 가진다는 자체가

당신은 이미 좋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죄책감을 가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니까요.

 

그러나 죄책감을 가지는 것은

단 한 번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오히려 단 한 번일 때

유일한 가치를 가지는 감정이 바로 죄책감, 후회, 뉘우침입니다.

 

그렇다고 죄책감을 느끼는 것에 대해

또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를 바랍니다.

죄책감이 들 때마다 부드럽게

나는 그때와 다른 생각을 하는 다른 사람이다

스스로에게 환기시키면 됩니다.

 

그 경험에 동참한 누군가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면

이제는 미안함과 죄의식 대신 성장할 기회를 주었던 것에

한없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그의 헌신을 더 가치 있게 만드는 길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