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2)

[즉문즉설] 제40회 기도를 하며 나를 보니 짜증이 납니다.

Buddhastudy 2012. 10. 17. 03:49
"> 출처 YouTube

 

 

사람은 사물을 볼 때 두 가지 경우가 있어요. 하나는 있는 그대로 보는 거요. 하나는 자기의 상, 자기의 상을 지어서 그 상을 통해서 보는 거요. 우리는 남편에 대해서 우리 남편이 이래야 된다는 자기 상이 있어요. 우리 자식은 이래야 된다. 하는 상이 있어요. 나는 이래야 된다는 자기 상이 있어요. 이 상을 가지고 사물을 본다 이 말이오. 그런데 내가 그린 상하고 실제 이 남편하고 같아요? 달라요? 달라. 그 간격이 넓으면 넓을수록 남편을 미워해요. 못마땅해. 그 상과 실제 아들사이의 간격이 크면 클수록 아들이 못마땅하고 아들이 미워지는 거요.

 

자기가 그리 나는 이런 사람이다. 하는 상과 자기 현실의 자기와 간격이 넓으면 넓을수록 자기를 못마땅히 여기고 자기를 미워해요. 그러니까 못마땅하면 일어나는 마음이 뭐요? 보기가 싫어져요. 보기가 싫은데도 자꾸 앞에서 얼쩡거리면 뭐라고 합니까? 꺼져. 나가. 이래 고함을 지대요. 그래도 안 나가면 어떻게 해요? 두드려 패서 쫓아내요. 그래도 안 나가면 어떻게 해요? 죽여 버려요. 그래서 밖의 존재를 죽여 버리는 걸 뭐라고 한다? 살인. 자기를 죽여 버리는 걸 뭐라고 한다? 자살. 동일합니다.

 

이게 다 허상, ‘나는 이런 사람이다.’ ‘당신은 이런 사람이어야 돼.’ 라는 상에 사로잡혀 있어요. 그러니까 허상을 사랑하는 거요. 허상에 집착돼있는 거요. 그래서 자기를 미워하고 남도 미워하고 이러는 거요. 마치 물속에 있는 물에 비치는 자기의 얼굴을 좋아해서 물에 빠져 죽는 사람하고 같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자기상을 버려야 됩니다. 나는 이런 여자야라고 하는 상을 버려야 되요. 화를 내면화를 내는 게 이게 현재의 나요. 이 현재의 나라는 건 이게 내 까르마요. 이게 내 업식이에요. 키가 작으면 작은 게 나요. 피부가 검으면 검은 게 나요. 팔이 하나 없으면 없는 게 현재의 나요.

 

이건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오. 팔이 하나 없는데 팔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을 하니까 팔을 있는 나를 자꾸 그리니까 팔 하나 없는 나가 보기 싫단 말이오. 키가 커야 되는 나를 그리고 있는데 키가 작으니까 볼 때마다 미운 거요. 내 얼굴은 젊어야 되는데 거울을 보니 늙었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거울 보기 싫은 거요. 늙으면 그러잖아. 거울 보기가 싫다. 이런 말 하잖아. 쭈글쭈글한 게 얼마나 좋은데. 생각을 바꾸어야 돼. 단풍이 예쁘듯이. 머리가 희끗희끗하면 희끗희끗 거 좋은 거요. 좋다는 말은 좋다, 나쁘다, 좋다는 뜻이 아니에요. 아시겠어요? 그대로다.

 

흰 거는 흰 거대로, 검은 건 검은 거대로, 늙으면 늙은 데로, 젊으면 젊은 대로 좋은 거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있는 그대로. 현재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돼. 그래서 상대의 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우리가 말하면 내 그림대로 고집하니까 상대가 미워지는 거요. 그러니까 용서해준다는 말은 사실은 맞지 않는 말이오. 내 그림을 버려버리며 있는 그대로는 용서할 것도 없어요. 그러니까 상대의 행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듯이 나에 대해서도 인정하고 받아 들려라. 이런 얘기요.

 

즉 이것이 상대를 사랑하는 법이고 자신을 사랑하는 법이요. 나를 사랑해야 돼. 허상에 취해가지고 지금 현실의 자기를 미워한다니까. 다 아까도 앞에 질문 나왔지만, 속으론 자기가 잘났어. 그 잘난 자기에 취해있는데 현실에서 하는 자기 꼬라지를 보니 어때요? 불만이지. 잘난 자기만큼 못하고 있는 거요. 그러니까 자꾸 이게 부끄럽고 그래 된단 말이오. 심하면 남 앞에 나가기가 싫어지는 거요. 이게 조금 심하면 우울증 아니오. 사람들하고 안 만나려고 그러고. 그러니 여러분들이 그냥 딱 깨어놓고 사세요. 남도 별거 아니고 나도 별거 아니오.

 

인생이라는 건 사람이나 동물이나 풀이나 그냥 돌멩이나 그냥 한 존재다. 이렇게 생각하세요. 변소 간에 구더기가 바글바글한데 거기 잘난 구더기 못난 구더기 있어요? 다 구더기지. 저 하늘에서 인간세상 내려다보면 그냥 개미 새끼나 구더기나 벌이나 똑같아요. 구더기도 다 몸무게 달아보면 다를까? 안 다를까? 변소간에 자세히 들여다봐. 얼른 보면 다 같은 거 같은데, 자세히 보면 달라요. 주름살 간격도 다르고, 길이도 다르고, 굵기도 다르고, 기어가는 속도도 달라요. 그것도 그 안의 내부에서 보면 다 다릅니다. 우리 인간 다르듯이.

 

그런데 그 하찮은 구더기도 열등의식을 느껴서 자살하는 구더기 없잖아요. 그지? 그런데 왜 인간이 열등의식을 느껴요? 이 고귀한 존재인데. 그래서 자학을 하지 말아야 한다. 자학을 한다는 것은 헛된 상에 집착돼 있다. 이런 말이오. 그래서 이 허상을 버려야 된다. 나다 하는 허상을 버려야 한다. 그래서 기도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데 나에 대해서 조금 너그러워야 돼. 다른 말로 하면 내가 별거 아닌 줄을 알아야 돼. 그래서 여러분들도 마찬 가지오.

 

이런 대중 앞에서 얘기하라고 그러면 나오면 좀 떨려요? 안 떨려요? 떨리지. 왜 떨릴까? 생긴 대로 안 하고 잘하려니까 떨리는 거요. 아시겠어요? 저도 마찬가지오. 저도 이런 데서는 생긴 대로 얘기하는데 더 많은 청중이 있고 더 중요한 자리에 가면 사람 마음이 잘하고 싶어요? 안 잘하고 싶어요? 잘하고 싶지. 그럼 마음이 떨리는 거요. 잘하고 싶어. 생긴 대로 하면 아무 떨리는 게 없어요. 그런데 잘하고 싶어서 얘기를 하면 쪽 잘 못합니다, 생긴 대로 하면 어때요? 잘해요. 훨씬. 그래서 여러분들이 어떤 말 할 기회가 있더라고 그냥 자기 생긴 대로 얘기하는 연습을 자꾸 해야 돼.

 

그래서 이런 곳에서 얘기하거나 마음 나누기할 때 아이고 나는 말 못해. 나는 말 못해. 이러지 말고 시키지도 않은데 나와서 하는 거까지는 안 해도 좋은데, 시키면 나와서 어때요? 순번 돌아오면 그냥 하는 거요. 생긴 대로. 그냥 가볍게. 자꾸 연습을 해야 됩니다. 그러면 이게 자꾸 마음이 안정이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