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2)

법륜스님의 즉문즉설_ 1838. 아들이 학원에서 싸워 6주 골절 2주 뇌진탕 진단을 받았습니다

Buddhastudy 2022. 8. 30. 19:09

 

 

 

중학교 3학년 아들이

학원에서 싸워 6주 골절 2주 뇌진탕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았습니다.

학폭위를 신청, 고소하려 합니다.

다른 친구와 시비가 붙어

1차 화이자 백신을 맞고 온 날부터는 심장이 두근

여러 일이 생기니 저는 괜찮다고 하지만 마음이 무겁고 힘이 듭니다.

불안장애와 부정적 요소는 없는데 화가 많다고 해서 약을 먹고 있습니다.

아이는 잘 지내고 있는데 현재 아이와는 어떻게 해결해야 좋을까요?

 

 

부모로서 자식을 키우면서 자식들이 참 안전하게 별탈없이 커줬으면

아마 제일 좋겠죠.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리가 원하는대로 다 그렇게 안 되는 게 또한 현실입니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형제간에 다투기도 하고

학교가서 친구들하고 다투기도 하고.

 

저도 제가 중학교때인가 고등학교때

친구들이 서로 싸워서 칼부림을 해서 한명이 죽고

이런 거를 학교 안에서 겪기도 했거든요.

 

매달 보면 교실벽에 누구는 무기정학, 누구는 한 달 정학

이런 것이 늘 붙어있기도 하고.

 

이런 걸 말씀드리는 것은

모든 학생이 다 그렇다는 것도 아니고

모든 학생이 다 아무 일도 없을 수가 없고

살다 보면 일부 학생은 이런 경우가 있다.

 

또 그것이 한 학생에게만 있는게 아니라

어떤 때는 이 학생이 이렇고, 어떤 때는 저 학생이 그럴 수도 있다.

 

또 이렇게 자라서 나이가 해를 넘기면 70이 되는데

옛 친구들 오면

그때 착실한 아이도 지금도 착실한 사람도 있고

그때 착실했는데 뒤에 삶이 힘든 사람도 있고

그때 우락부락했는데 지금 아주 사람도 재미있고 잘 사는 사람도 있고

그때 깡패같이 놀더니 늙어도 그런 사람도 있고

 

그래서 사람이 어떻게 된다고 정해서 말할 수 없다.

이런 말씀을 먼저 드리고요

 

그런데 애들이 학교에 가서 학원에 가서 싸웠는데

학교에서도 아니고 학원에서 싸웠는데

상대 아이가 본인이 지금 학부형이 설명한 대로도

악의적으로 우리 아이를 때렸거나 돈을 빼앗았거나

이렇게 한 게 아니고

우발적으로 다투게 되었고

그것이 심해서 다치게까지 됐다.

 

이런 경우라면

그걸 처벌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지 않느냐, 처벌한다고.

처벌하는 것은 일종의 복수심이거든요.

 

우리는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을 갖고 복수하는 거 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이런 일이 안 생기도록 재발 방지를 할 거냐?

그 재발 방지가 가장 중요한 관점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우리가 재발방지를 하는데, 이 사람의 어떤 특성으로 봐서

처벌 안하면 똑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다.

이럴 때 그 사람을 처벌하는 거다.

처벌은 지나간 일에 대한 복수가 아니고, 예방을 위해서 처벌을 해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우리도 아이들 키우면서

아이들이 10을 잘못했는데, 부모가 만약에 100을 처벌하게 되면

아이는 반발을 하게 됩니다.

억울해진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니까 잘못했다고 시인하는 게 아니라 억울하게 느끼는 거요.

그것은 자기가 한 이상으로 처벌을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다.

이럴 때는 처벌이라고 하는 복수는 되지만

교화는 안 된다.

예방 차원의 행동은 안된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반발하기 때문에 기회가 다시 또 복수심을 갖게 되거든요.

 

그래서 옛날부터 아이들은 무조건 처벌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그래서 요즘 우리 미성년자들은

지나치게 처벌 위주로 안 가고 교화 위주로 한다 해서

처벌의 수위를 매우 낮추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요즘 또 한쪽에서는

그래서 아이들이

잘못을 저질러도 미성년자라서 처벌받지 않는다.” 이런 거로 해서

어떤 좀 더 큰, 나쁜 범행을 저지르는 이런 부작용도 있다고

사건마다 보호가 되기는 하지만

그러나 청소년기에 일어난 것은

가능하면 처벌보다는 교화 위주로 하는 게

우리 사람의 길이고, 또 우리 전체 미래를 위해서 좋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상대편 학생이

부모입장에서 우리 아이를 때려서 중상을 입혔다는 걸 생각하면

괘씸하고 분노가 되겠지만

그러나 일어난 사건의 시작이 비교적 악의적인 게 아니라

하다가 보니 생겨난 일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두 번째는 우리 아이가

이 아이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하고도 이렇게 다투는 걸 보면

내 아이이지만 내 아이도

어떤 문제를 대화나 합리적으로 푸는 게 못되고

화가 나면 감정조절을 잘못하는

이런 일이 있지 않느냐.

이런 것도 돌아보면서 상대편 아이를 철벌하기 보다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서로 다 잘 자랄 수 있도록

오히려 어른들이 도와주는 게 바람직하지 않겠나.

저는 이런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지금 질문자만 치료받을 게 아니라

아이도 학교에 가서 갈등이 자주 있으면

학우들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말고

우리 아이도 감정조절이 잘 안 되는 거구나.

그렇게 해서 아이도 좀 치료를 받고

상대 아이는 그것이 상습인지, 이런 걸 체크해 보면 되거든요.

 

상습이다하면 처벌은 안하더라도 치료를 받도록 권유해야 하고, 약속을 받아야 하고

그게 아니라 그러면 좀 더 지켜보는 게 필요하지 않겠나.

 

내 아이에게 부모가 있듯이

그 아이에게도 부모가 있기 때문에

청소년은 너무 처벌 위주로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

 

상대 엄마 입장에서는

서로 얘기해서 무마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학교에 가서 학폭위에 의를 제의하니까

상대편에서는 섭섭하게 생각지 않을까요?

서로 얘기가 안 되었으면 몰라도

서로 만나서 얘기가 된 뒤에 학폭위에 신청을 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이게 필요합니다.

 

문제는 상대 부모가 어떻게 나오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자유이니까

내입장에서 지금 본인이 말한 대로

이거 자체는 무마되었다 하더라도

이런 문제가 학교에서도 좀 공식적으로 폭력 문제는 다뤄줬으면 좋겠다 해서

내가 학폭위에 신청을 해서

학폭위의 결과가 나오면 그 결과를 내가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결과를 안 받아들일 거 같으면

학폭위에 신청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부모는 얘기가 됐는데 그걸 굳이 학폭위에 가서 신청할 필요가 있겠느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죠.

 

그러니까 그걸 가지고 또 기분 나빠서 일을 크게 벌이는 것은

저는 맞지 않는다.

 

그냥 이 사건이 앞으로 폭력을 막는데

이런 해결방식은 도움이 안 되겠다.

뭔가 조금 더 처벌이 돼야 아이들이 이 폭력을 행사하지 않겠다,

이런 상담, 자기 나름대로 어떤 견해가 선다면

저는 뭐 고소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감정이 나빠서 고소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렇게 생각해요.

 

그러니까 상대 엄마가 그렇게 얘기하는 것은

그 아이의 엄마로서는 자기 아이의 장래에 학적부에 이런 게 기록이 되면

취직이라든지 미래에 장애가 된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부형들은 가능하면 그런 기록이 안 남도록

돈이 들더라도 미리 배상을 하더라도

자식가진 부모들의 대부분 심정입니다.

 

그러니까 그 부모가 그렇게 말할 때, 자기가 조금 감정조절이 되면

충분히 그렇게 말씀하실 수는 있는데

크게 다친 아이의 엄마 생각도 당신이 좀 해보시라고 그러고.

이렇게 아이들이 싸우더라도

이렇게까지 다치게 싸워서는 안되지 않느냐.

그런 면에서 당신 아들이 폭력이 어떤 이유로 시작이 되었든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학생으로서 학폭위에 알려야 하고

학교의 지도가 있어야 미래에 더 잘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신청했다.

만약에 당신이 나로서는 최대로 감정을 절제해서 하고 있는대도 불만이라면

그렇다면 나는 고소를 할 수밖에 없다.

내가 고소를 하려다가 그래도 같은 자식 가진 부모로서 이 정도로

학교에까지 알리는 선에서 해결하려고 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필요하지.

 

그 부모는 자기가 때린 것도 아니잖아요.

자녀가 한 거니까 우선 병원비 물고, 뭐 물고 이 정도면 해결되지 않겠나,

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옛날에 어느 대학에서 남학생들이 여학생 성추행해서

그게 문제가 되어서

그 의과대학생들이 다 퇴교당하는 이런 일이 벌어졌잖아요.

그랬을 때, 피해자 입장에서 볼 때는 이런 사람은 무조건 퇴교시켜야 한다 그러지만

그 의사 아들을 둔 엄마 입장에서는 어떻겠어요?

그렇게 공부시켜서 의과대학에 다니는데

순간의 실수로 그 모든 꿈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어떻게든 이것을 무마해 보려고 안 하겠어요?

무마해 보려고 하니까 또 제2 요즘은 피해가 발생한다.

또 이렇게 여론이 돌지 않았습니까.

 

그 부모가 잘했다는 게 아니라

모든 부모는 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자기 아들을 보호하려고 하는 그런 본능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너무 감정적으로 기분 나빠해서는 안 된다.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그것이 틀렸으면 그냥 내가 고발을 하면 하지

감정을 갖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관점을 좀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

 

그런데 사건이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이죠.

사건이 한번 나도 죽는 사건이 더 크지

작은 사건이 열 번 나는 거 보다 큰 사건 한번 나는 게 더 문제잖아요.

 

싸움이 두 번 일어났지만

그렇게 장애가 될 만큼 또는 학교에 못 다닐 만큼 일이 벌어진 것도 아니고

작은 사건들이 몇 개 연달아 났을 뿐이다.

 

우리 선조들은 이럴 때 마음을 어떻게 돌리냐 하면

액땜했다고 생각해라이렇게 말하죠.

작은 사건을 연달아 겪는 마음의 자세는 큰 사건을 막기 위해서

큰 재앙을 막기 위해서 이런 작은 재앙들로 나타나는 거다.

이렇게 그걸 긍정적으로 보라,

이런 거를 옛날 말로 액땜이라고 생각해라

이렇게 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우선 이것을 살다보면 이렇게 연달아서 일어날 때도 있고

살다보면 연달아서 더 좋은 일이 생길 때도 있고 이래요.

 

주사위를 던지면 1의 눈이 여섯 번 만에 한 번씩 나와야 하는데

실제로 던져보면 연달아 두 번 나올 때도 있고

열 번 던져서 한 번도 안 나오는 게 자연스러움이에요.

이게 인생이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니까 내가 볼 때는 아들을 한번,

이 사건 때문이 아니라

아들이 이렇게 분쟁이 자주 생긴다는 것은

우리 아들에게도 감정 조절이 안되는 부분이 있겠다 해서

예방 차원에서, 이 사건하고 관계없이 예방 차원에서

아들의 심리 검사나 치료가 좀 필요하지 않겠나 싶고요.

 

또 이것을 감당하는 본인이 이런 일이 너무 힘들다, 이렇게 생각하면

본인도 심리적으로 지금 좀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까

치료를 받고 있다니까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정도 일은 인생을 살면서 그렇게 큰일은 아니에요.

제가 볼 때, 일이 막 굉장히 큰일이라고 다가왔다면

본인이 이제까지 인생을 너무 편안하게 살아왔다, 하는 반증이 아니겠나.

이렇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