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3)

법륜스님의 하루_ 사람에게 쉽게 상처를 받아요. 만남과 이별을 반복합니다. (2023.07.10.)

Buddhastudy 2023. 10. 23. 20:03

 

 

저는 지금까지 살면서 사람으로부터 상처받고 실망하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반대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도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사람을 멀리해야지하면서도 만나기를 갈망하고 찾습니다.

왜 그런 걸까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재미있기도 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게 사람을 만나다가 상대의 욕망이 보이면 실망하게 되고,

보기 싫은 면은 보지 않으려고 하고, 보고 싶은 면만 보려고 합니다.

이렇게 제가 사람을 만났다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저의 한계를 어떻게 하면 뛰어넘을 수 있을까요?//

 

 

지금 법륜 스님이 그렇게 하는 건가요?

아니면 질문자가 그렇게 하는 건가요?

 

질문자가 그렇게 하고 있으면 본인이 왜 그렇게 하는지 이유를 찾아보고

제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하고 스님한테 설명해 줘야 하지 않을까요?

 

질문자가 그렇게 하고 있으면서 스님한테

제가 왜 이럴까요?’ 하고 물으면,

스님이 그것을 어떻게 알겠어요?

 

질문자 스스로 본인을 잘 살펴서 다른 사람이

당신은 왜 그렇게 사람을 자꾸 만났다 헤어지기를 반복합니까?’ 하고 물으면

제가 이러저러해서 그렇습니다하고 설명해 주어야죠.

 

마치 본인이 담배를 피워놓고

스님, 저는 왜 담배를 피울까요?’ 하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본인이 왜 그렇게 하고 있는지를 본인이 잘 살펴봐야 합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의 모습을 가만히 살펴보세요.

처음에는 담배 끊어야지!’ 하고 결심해서 며칠을 끊습니다.

3일도 안 지나서 담배 끊고 오래 살면 뭘 하나? 차라리 담배 피우다 죽지 뭐하면서

다시 피웁니다.

 

그러다가 몸이 아파지면 이러다가 죽겠다 싶은 마음이 들어서

다시 담배를 끊습니다.

또 며칠 지나면

이렇게 하루 더 살면 뭐 하나? 실컷 피우다 죽자하고 다시 피웁니다.

또 건강이 나빠지면 담배를 끊습니다.

 

질문자가 사람을 만났다가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것도

담배를 피웠다가 끊기를 반복하는 것과 똑같은 겁니다.

 

...

 

사람들과 인연을 끊고 살아도 됩니다.

관계를 끊고 살고 싶으면 끊고 살고,

관계를 맺고 살고 싶으면 맺고 살면 되는 거예요.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정답은 없습니다.

 

담배를 피우고 싶으면 건강이 나빠지는 것을 각오해야 하고,

건강이 나빠지지 않으려면 아무리 피우고 싶더라도 담배를 끊어야 합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사람을 만나면 당연히 기대에 못 미치는 사람도 만나게 되고

기대보다 더 나은 사람도 만나게 되죠.

그러면 질문자는 본인의 기준으로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평가할 겁니다.

 

나쁜 사람이라고 평가해서 사람을 안 만나면 외로울 테고

외로우면 다시 사람을 만나게 되겠죠.

 

그래서 질문자가

사람을 만났다가 안 만났다가 하는 것 아니겠어요?

 

질문자는 본인을 기준으로

기대 이상인 사람, 기대 이하인 사람을 나누고 있어요.

그러나 나에게 기대 이상이라고 해서

그 사람이 실제로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나에게 기대 이하라고 해서

그 사람이 실제로 나쁜 사람이라고 할 수도 없어요.

 

나는 그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봤는데

다른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고 보고

나는 그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봤는데

다른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고 보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서

질문자가 친구한테 돈을 빌려달라고 했는데 안 빌려줬어요.

그러면 질문자가 볼 때는 나쁜 친구이지만

그 친구의 남편이 볼 때는 아내가 잘했다고 생각할 거예요.

반대로 질문자가 친구한테 돈을 빌려달라고 했더니 친구가 돈을 빌려줬어요.

그러면 질문자가 볼 때는 좋은 친구이지만

그 가족이 볼 때는 바보같이 왜 돈을 빌려주지?’ 하고 생각할 겁니다.

 

이렇게 보는 사람에 따라 기준이 다 다릅니다.

각자 자기 기준에 따라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나누어 생각할 뿐이지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라는 건 본래 없어요.

 

우리가 볼 때 북한의 지도자는 나쁜 사람이지만

북한 안에서는 영웅입니다.

우리가 볼 때 푸틴은 나쁜 사람이지만

러시아 안에서는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질문자는 자기중심적으로 다른 사람을 보는 습관이 강한 것 같아요.

여러 사람을 만나다 보면

기대 이상인 사람도 있고, 기대 이하인 사람도 있기 마련입니다.

 

누군가를 만나서 이익을 보면

질문자에게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겠지만,

그 사람이 볼 때는

질문자를 만나는 게 손해가 되지 않겠어요?

 

반대로 누군가를 만나서 손해를 보면

질문자는 그 사람이 싫겠지만

그 사람에게는 질문자를 만나는 게 이익이 되겠죠.

 

이렇게 나에게 손해를 주는 사람은 자꾸 나를 만나자고 하고

내가 이익을 보는 사람은 자꾸 도망가기 마련입니다.

이상한 일이 아니에요.

이치로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불교에서는 인간의 괴로움을 여덟 가지(八苦)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중 싫어하는 사람과 만나면서 살아야 하는 괴로움을

원증회고(怨憎會苦)’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서 살아야 하는 괴로움을

애별리고(愛別離苦)’라고 합니다.

두 가지 괴로움은 모두 자기중심적으로 다른 사람을 볼 때 생겨나는 것이에요.

 

반면에 내 기준을 탁 놓아버리면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구나!’ 하면서 가벼워지게 됩니다.

 

부처님은 좋고 싫음을 내려놓아라하고 말씀하셨어요.

누구를 만나라’, ‘누구를 만나지 마라하는 말씀은 안 하셨습니다.

좋고 싫음을 놓아버리면 어떤 사람들을 만나도 아무 문제가 없고

사람들을 전혀 만나지 않아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질문자는 외로움이 커지니까

혼자 있지 못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겁니다.

막상 만나보면 상대가 내 기준에 안 맞으니까 헤어지고

헤어지면 외로워서 다시 다른 사람을 만나는 거예요.

이것을 끊임없이 반복하기 때문에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겁니다.

 

사람을 만나야 되느냐, 헤어져야 되느냐, 혼자 살아야 되느냐, 같이 살아야 되느냐,

여기에는 정해진 답이 없습니다.

사람을 만나면

이런 사람도 있구나’, ‘저런 사람도 있구나하면서

그 속에서 자유로워야 합니다.

혼자 있으면 홀가분하구나하면서 좋아하면 되는 거예요.

 

누구를 만나도 좋고, 아무도 만나지 않아도 좋다

이 사람을 만나도 좋고, 저 사람을 만나도 좋다

 

이렇게 관점을 가지면 자유롭게 살 수 있습니다.

그렇게 안 된다면 연습을 좀 해야 합니다.

 

...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요.

질문자가 사람들한테

밥도 사고, 술도 사고, 커피도 사고, 또 이사할 때 가서 도와주고 하면 사람들이 좋아하겠지요.

 

그런데 남편이 밖에 나가서 그렇게 하면

집에 있는 아내가 싫어합니다.

 

여러분들이 절에 보시를 많이 하면

절에서는 보살님은 참 훌륭하십니다하고 존경하지만

그 남편이나 아내가 속해 있는 가족들은 싫어합니다.

절에 너무 빠져 있다하고 말할 겁니다.

이렇게 똑같은 행동도 사람마다 평가가 다릅니다.

 

사람들과 잘 지내려면 베풀어야 합니다.

내 것만 딱 챙기고 살면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서 사람들과 관계를 좋게 하려면 마음이든 물질이든 베풀어야 해요.

굳이 베풀 것이 없으면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거나 따를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삶을 살 것인지는 본인의 선택이에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저 사람은 내가 뭔가를 줄 때만 좋아하고, 안 주면 좋아하지 않는다하고 비난하는데,

인간의 심리를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한 겁니다.

 

질문자는 그렇게 행동하면서

남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이해하지 못하는 거예요.

 

그러니 좋다’, ‘나쁘다하고 너무 구분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질문자가 그렇게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고,

다르게 하고 싶으면 다르게 하면 됩니다.

본인의 선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