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 역사/역사, 세계사

삼국지 30 : 하진 vs 건석

Buddhastudy 2024. 2. 15. 20:14

 

189, 후한 제12대 황제인 영제가

갑자기 영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궁궐 내 분위기는

하태후, 유변을 지지하는 하진 중심 세력들과

동태후, 유협을 지지하는 동중 세력들로 나뉘어졌습니다.

 

건석은 영제가 죽기 직전, 유협을 잘 부탁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공식적으로는 후계자를 정해놓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장남인 유변이 후한 13대 소제로 즉위하였습니다.

 

새로 즉위한 소제는 10대 초중반의 나이로

어머니 하태후가 정사를 대리하였고

외숙부 하진과 원소의 숙부 원외가 정사를 보좌했습니다.

 

소제의 시대로 접어들며, 권력 중심에 한층 더 가까워진 하진은

우선순위로 평소 자신을 노리고 있던

건석을 제거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하진은 대장군 자리까지 승진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으로는 스스로 천민 출신이라는 자격지심이 있어

명문가 출신의 원소를 두고서 천하의 영웅이라 여기며

자신에게 더 가까이 두기 위해,

원소를 사례교위로 임명시켰습니다.

 

원소는 하진에게 환관인 건석을 없애는 일뿐만 아니라

아예, 십상시와 환관들을 모조리 궤멸시켜

천하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간언했습니다.

 

하진은 원소의 말에 적극 동의하면서

원소를 비롯한 집안 동생 원술에게도

황제의 근위대장인 호분중랑장 직위를 내렸습니다.

 

새로운 황제의 시대가 열리게 되자

황제의 어머니 하태후와 가장 가까운 외척 하진 주변으로

명성이 자자한 사람들이 모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하진의 인사 부름을 받은 인물 중에서

상서령으로는 화흠이 있었는데

화흠은 채널 내 삼국지 18편에 등장한 적이 있습니다.

 

영제와 십상시로 인해, 나라가 어지러웠던 시절

왕분이 쿠데타를 일으켜 영제를 끌어내리려 했지만

화흠은 그 계획이 그리 치밀하지 못하다 여겨

쿠데타에 동참하지 않았던 인물입니다.

 

그는 성장기 시절부터, 세상 사람들로부터

매우 영특한 인재라 소문이 자자했으며

병원, 관녕과 함께 일룡이라 불렸는데

그중에서 용의 머리였다고 합니다.

 

또한, 청렴함과 공정함에 있어 훗날,

조조의 아들 조비시대까지 품위가 뛰어난 인물로 평가받았습니다.

 

하지만, 삼국지연의에서는 제갈량에게 항복을 권했다는 이유로

작가 나관중은 소설 내내 화흠을 집중적으로 깎아내리며

출세욕에만 눈이 먼 간신이자, 악랄한 캐릭터로 묘사하였습니다.

 

 

 

하진을 보좌하기 위해, 명석한 두뇌로 인정받아 등용된 인물로는

화흠과 친한 사이였던 정태라는 자가 있었습니다.

 

정태는 젊을 때부터 재략이 많고, 사람들과도 잘 지냈으나

많은 식객을 보살피느라 재산이 넉넉하지 못했는데

오히려 그러한 점들이 인품으로 작용하면서, 명성이 퍼져나갔습니다.

 

그는 영제가 죽고 새로운 시대가 되면서

잠시 하진 곁에 있다

하진이, 동탁을 끌어들여 환관들을 제거할 움직임을 보이자

이를 반대하다가 하진을 설득하지 못한 후

미련 없이 관직을 떠났습니다.

 

화흠, 정태와 친하며 하진에게 등용된 또 다른 인물로는

삼국지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책사이며

훗날, 조조를 섬긴 순유가 있었습니다.

 

순유는 가후, 순욱과 함께 조조군 최고의 3대 책사로 평가받았으며

조조 세력이 성장하는 데 있어, 잘 알려진 공적으로도 많았지만

은밀히 조조에게만 진언한 책략도 많았다고 합니다.

 

순유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타인의 입장을 헤아렸는데

한 예로 10살도 채 되기 전,

숙부 순구와의 일화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순구는 만취가 되어 인사불성이 되었다가

실수로, 꼬마인 순유의 귀에 상처를 내게 됩니다.

그날 이후, 순유는

순구를 볼 때면 얼른 자리를 피하거나

귀를 보이지 않으려 행동하였고

뒤늦게 이를 알아차린 순구는

순유에게 사과하며 생각이 깊은 순유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또한, 순유는 묘지기 장권이라는 자의 행동을 유추하여

장권의 과거에 대해 의심을 품었는데

순구를 비롯한 어른들이

좀 더 장권에 대해 자세히 조사해보니

그가 살인범인 것을 밝혀내기도 했습니다.

 

하진이 정권을 잡았을 때 순유는

원소에게 천거되어 황문시랑으로 임명되었으나

조금 더 시간이 지난 동탁 정권 시절

동탁의 암살을 실패하여 감옥에 투옥되기도 했습니다.

 

건석은 하진의 출신 배경을 두고서 항상 하진을 무시해 왔는데,

근래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명사들과 장수들이 하진 곁으로 모여들고 있어

불안이 점점 커져만 갔습니다.

 

사족을 대표하는 원소뿐 아니라

하진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바치는 부곡장 오광(吳匡)

그리고, 하진의 동생인 하묘 또한 거기 장군으로 임명되어

하진은 대부분의 군권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건석은 영제가 사망한 직후인지라

하진이 완전히 권력을 장악하기 전에

자신이 통솔하는 임금의 친위대인 금군과 십상시를 동원하여

하진의 행보를 막아내고자 선수를 쳤습니다.

 

건석은 십상시를 대표하는 장양에게 서한을 보냈는데

여기에는 지금 힘을 합쳐, 어리석은 소제를 폐하고

하진 형제까지 처리해야만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한편, 십상시는 여러 명의 환관들이 모인 자리인 만큼

권력 유지를 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서는

생각이 만장일치 되기는 어려웠습니다.

십상시 중에서, 곽승이라는 환관이 있었는데

곽승은 하진과 같은 고향인 남양군 출신이었습니다.

 

하진은 백정 시절부터 부를 일구며

동생 하태후까지 동원하며 조정에서 자리를 잡아가던 중

당시, 동향 사람이자 십상시 중 한 명이었던 곽승에게

오랜 시간 동안 많은 투자를 해왔습니다.

 

곽승은 앞으로 궁궐에서 권력을 차지할 가능성이 있는

하진과 친분을 맺으며, 자신의 안전장치를 만들어 두었고

틈틈이 하진이 자리를 잡아나갈 수 있도록 조력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영제의 사후, 실제로 하진이 권력을 차지하자

이제는 곽승 자신이 하진의 그늘 아래

자리를 보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곽승은 하진과 친밀한 관계였기 때문에

십상시에게 적극적으로 의견을 꺼냈는데

하진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 설득했고

십상시의 수장인 장양 또한 건석의 계획을 살펴보니

황제를 폐립 한다는 쿠데타라는 것은

궁궐 내 너무 많은 적을 만드는 행위였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십상시는 건석의 계획을 따르지 않기로 결정하고

되려, 하진의 환심을 사기 위해

건석이 역모를 꾸미고 있다고 하진에게 일러바쳤습니다.

 

하진은 심적으로도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물적으로도 건석의 편지가 눈앞에 놓여있으니

증거를 앞세워, 건석을 바로 그 자리에서 죽여버렸습니다.

 

건석이 죽어버리자, 황제를 호위하는 금군조차

하진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면서

이제 조정의 군대는 그야말로 하진의 독차지가 되었습니다.

 

십상시는 우선은 목숨을 유지했지만

이들 또한 하진의 권력 독점을 눈 뜨고만 볼 수 없었기에

영제 모친인 동태후와 표기장군 동중과 손을 잡았습니다.

 

 

오늘은 삼국지 30번째 시간으로

영제 사후, 소제의 시대가 되면서

하진과 건석의 대립에 대해 정리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