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올라마음학교

[현대선15] 무엇이 나란 현상을 살고 있나 / 피올라 현대선 4강 "삶은 스스로 살아있다" 2회

Buddhastudy 2024. 7. 15. 19:37

 

 

나라고 하는 이거는

이게 나란 현상이지 이게 실재하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 나란 현상이라는 게 왜 그러냐면

이 생명의 바다 위에

잠깐 물거품이 나타난 거하고 똑같아요.

생각의 물거품, 감정의 물거품, 느낌의 물거품이 나타난 거야.

 

밤에 주무실 때 나라는 게 있어요? 없어요? 숙면 속에.

없어졌죠.

아침 되면 또 생기죠.

뭐가 생겨서 나를 만든 거예요?

생각, 감정, 느낌이에요.

 

내 눈으로 보니까

, 이거 있잖아요라고 하는데

여러분이 맹인이 돼도, 나는 있다고 그래요.

 

자꾸 자기가 분별하는 거에 속아서 상에 떨어져서 쫓다니는 한은

절대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미 여러분 자신인 거야, 이미.

 

예를 들면

이 자리는, 삶이 스스로 살아있는 이 생명의 자리는

여러분이 치매가 돼도

여러분은 여러분과 상관없이 스스로 살고 있어요.

 

치매 환자가 자기를 잃어버려도

나는 누구인지 몰라. 이름도 까먹었어.

아들도 몰라보고 남편도 몰라봐.

그래도 잘 살고 있어요. 안 그래요?

먹을 거 다 드시고 대소변 다 잘 봐요.

뭐가 살고 있는 거야? 나는 없어졌는데?

 

또 여러분 잘 생각해 봐요.

여러분이 깊은 밤 꿈도 없는 숙면을 취하실 때에도

나라고 할 게 하나도 안 남아 있어요.

깊은 밤에 아무것도 없잖아, 잠잘 때는

그런데도 뭔가 있으니까

생명 현상이 그대로 유지되는 거예요.

 

그래서 누가 흔들어 깨우면은

바로 내가 돌아와서

왜 깨우냐고 짜증 내고

또 아침이 되면

다시 모든 기업과 시스템을 프로그램을 재생시키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

꿈도 없는 깊은 밤, 지난 밤, 숙면 시에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이것도 선문답이에요.

그것이 지금 이 자리에도 있어요. 안 그래?

그러니까 여러분이 살고 있지.

간밤에 여러분의 의지와 아무 상관없이

여러분을 살려주고 있었던 그 자리가

지금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그걸 찾을 필요가 있어요? 없어요?

없지.

찾겠다는 분별 망상만 내려놓으면

이미 그거라고요.

이미 그거가 나로 살고 있는데

지금 이렇게 보고 있고, 이렇게 듣고 있고, 이렇게 느끼고 있는데

뭘 더 찾겠다는 거예요?

 

우리는 그거를 그래도 찾아서 확실히 알고 싶어요.”

왜 그러냐면

이 생각 시스템이 자기 거로 삼겠다는 거예요.

여기 평생 그 짓을 했거든.

 

그러면 절대 큰 깨달음을 못 얻어요.

생각이 계속 주인 노릇을 하는 한은

그 사람은 사이비로 빠질 확률이 높습니다.

자꾸 이분법을 화하고 상대를 만들거든

대상을 만들어서 자꾸 그걸 붙잡아요.

생각은 그거 하는데 도가 텄어요.

 

한번 단적으로 생각해 봐요.

자기가 미쳤거나

아니면 사고가 나서 식물인간이 됐어도

그래도 스스로 살고 있는 무엇이 나한테 있다고.

 

그게 뭔지 한번 돌이켜봐요.

그걸 회광반조라고 하는 거야.

회광반조가 무슨 엄한 걸 회광반조하라는 게 아니고요.

지금 도대체 나라는 이것을 살려주고 있는 게 뭔가?”

지금 나한테 일어나는 이 현상들이 뭔가?”

이렇게 보이고, 들리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때가 되면 배고프고

이렇게 운영하고 있는 이게 뭔가? ”

이 세상은 왜 내 눈앞에 나타나 있나?”

 

내가 나타나라고 해서 나타난 게 아니잖아요.

지가 저 아침이 되면 저절로 나타나요.

눈만 뜨면 나타나.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요.

 

이미 그거의 품 안에서 그거로써 살아가고 있다니까요.

파도는 바다의 품 안에서 파도로서 살아가고 있어요.

그러니까 걱정하실 게 하나도 없어.

뭐 찾을 것도 없어요.

이미 그건데 어떻게 찾아.

찾아봤자 뭐 할 거야, 이미 그건데

뭐 하나라도 더 불어나는 게 있어야지

아무것도 불어나는 것도 없어요.

이자도 없어요.

 

이 자리가 여러분의 영원한 본래자리고 진리자리다, 1 원인의 자리다.

여러분이 헤븐존을 배우게 되면

사람이라는 존재가 무지개 몸으로 이루어져 있다라는 걸 배워요.

법신자리, 원인체, 정신체, 뭐 이런 것들을 쭉 배우는데

거기에 보면

여러분이 아는 자리, 앎의 자리가 원인체예요.

모든 것을 잊게 하려면 아는 놈이 있어야 돼요.

아는 놈이 있어야 인식하고, 있다 없다 하지.

 

근데 문제는 이 앎이라고 하는 놈은

이 오온 활동, 정신활동이 같이 붙어주지 않는 한은

안다라는 것을 드러낼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앎이 있고 나서 생명이 있은 게 아니고

생명이 있고 나서 아는 거예요.

그래서 앎이 근원의 자리가 아닌 거예요.

 

앎보다 더 근원의 자리가 바로 지금 이 자리입니다.

여러분의 생명자리

생명이 있어야 알지, 그렇죠?

 

그래서 이 자리가 왜 영원한 자리이고

영혼이라는 것도 사실은

시공간에 상대적으로 만든 말이에요.

 

이게 그 생사를 초월한 자리냐 하면

여러분 잘 생각해 봐요.

여러분은 자기 몸을 나라고 여기기 때문에

자기 몸의 근원을 따져 올라가 보면

가장 궁극의 시발점이 뭐냐 하면

아빠의 정자와 엄마의 난자가 만났을 때

내가 생겼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데 사실은 정자 난자도 그게 있으려면

생명이 먼저 있어야 돼요.

정자에 생명이 있어야

정자 활동이 만들어지고 정자가 활동합니다.

난자도 생명이 먼저 있어야

난자도 만들어지고 또 활동도 해요.

 

그러니까 난자정자가 만들어지기 이전에 생명 자리가

그 정자의 생명이 먼저 있어야 되고

난자의 생명이 먼저 있어야 돼.

 

그 생명자리는

인류 역사를 보면 한 번도 끊어진 적이 없어요.

그냥 하나예요. 통으로 하나라고.

 

그럼 또 이런 질문을 할 거야.

그럼 아담과 이브, 태초의 인류 전에는요?”

 

그러니까 이렇게 그냥 물질 상에 떨어진 질문만 계속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근데 전기를 봅시다.

전기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도

제가 이런 막대기 2개를 이렇게 막 비비면

그러면 전기가 일어나죠.

그러면 이 전기는

지금 방금 이 전기는 하나님이 만들었어요.

창조했나? 천지 창조했나?

 

원래 있는 거예요.

원래 있는 건데

그런 인연 조건을 만드니까 전기가 나왔을 뿐이에요.

 

생명도 마찬가지예요.

원래 있는 거예요.

그런데 어떤 이 생명이 개체화 육체화 조건을 만들어주면

그것에 의해서 표현됐을 뿐이에요.

원래 있는 거라고

전기나 불이나 지수화풍 이런 것들은 원래 있는 거예요.

원래 있으니까 본래면목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자기가 본래 영생하고, 본래 영원하고

그리고 생사라고 하는 것이

생사가 간밤에 주무시고 아침에 깨어난 거하고 똑같아

 

예를 들어 내시경을 하거나 수술을 했다고 합시다.

수면 내시경을 했다고 칩시다.

그러면 그때 내가 수면 내시경을 했든 마취하고 수술을 했든

그게 정확히 356040초가 걸렸는지 아닌지 다 계산하고 있어요?

아니면 잠깐 눈 감은 거 같은데 30분이 지나갔구나이래요?

후자죠?

 

여러분이 죽어서

육체를 여의어서 의식이 활동을 안 한다.

한 천만 년 그래도요, 눈 떠보면 순간이에요.

?

그건 3차원에서만 천만 년이지, 4차원에서는 시간이 없거든.

그냥 순간이에요.

 

그러니까 생사가 그냥 일여한 거예요.

그냥 시절인연이 돼서

이 개체 생명 현상이 필요하면

다시 나타날 뿐이에요.

 

근데 여러분은 온갖 업을 다 지어서

걱정 안 하셔도 돼.

바로 윤회할 것 같아.

 

그러니까 우리가 정말 본래면목으로 깨어나서

그래서 자기가 능동적으로

수동적으로 윤회하는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자기가 이런 자기의 법보 화신을 표현하고 창조하는

그런 능력까지를 터득해야 돼요.

지금은 그냥 업습의 굴레에 의해서 끌려다니는 그런 신세잖아요.

 

 

그래서 삶이 이렇게 스스로 살아있기 때문에

내가 이 몸을 살리는 게 아니라

알아서 이 몸이 자동으로 살고 있다는 것이고

내 의사에 관계없이 병이 발생하기도 하고 병이 낫기도 해요.

스스로 살아있기 때문에, 그렇죠?

내가 아무리 암에 안 걸리겠다고 해도

암에 걸릴 짓을 하면 걸리게 돼 있고요.

여하튼 내 의사와 상관없이 일어나고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 잘 보세요.

이 단 하나의 그야말로 정말 표시도 나지 않지만

이 모든 세상을 있게 하고 인식시키는 이것이, 이 자리가

또 각자 수많은 70억 인류

또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동물들, 식물들 속에

다 그것이 같이 공존하고 있다는 게

얼마나 경이로워요?

얼마나 대단해요?

이거 정말 신이 아니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겠어요?

 

그래서 부처가 불곡토를 장엄한다”, 이런 말이 있는 거예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스스로 기뻐하셨다라는 말이 있는 거고

근데 우리는 이 세상을 경이롭고 아름답게 보기보다는

지옥으로 보죠.

왜 그러냐 하면

내가 괴로우니까.

 

자 그래서 깨어난다라고 하는 것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스스로 살아있는

지금 나조차 살리고, 있고 내 눈앞에 이 세상을 이렇게 비춰주고 있고

스스로 이렇게 나타나게 하고 있고

소리가 들리게 하고 있고

뭔가를 마시면 느끼게 하고 있고

차 맛이 좋다, 나쁘다

커피 맛이 어떻다

이거라고요. 이거.

 

이 자리를 보고

이 자리를 보고서 깨어나는 게 깨달음이에요.

별거 아닙니다.

이 자리를 십우도에서는 소라고 하는 거예요.

이 자리가 소예요, .

 

그런데 공부할 때는 방편으로 이 자리 이 자리 하지만

소다, 소다 하지만

사실 이게 여러분하고 분리할 수 없는 하나 아니에요?

그러니까 나중에 그것도 다 방편이니까

법공, 지워버려라 소도 잊어버려라

인우구망, 나도 소도 다 잊어버린다.

그래서 이 자리 하나만이 스스로 나라는 현상을 살게 한다

그게 반본환원이에요.

그게 십우도의 마지막 반본환원, 입전수수

그게 이 소리입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당부하고자 하는 것은

아 진리란 이런 것이다. 본래자리란 이런 것이다.”

제발 이지 좀 하지 말라는 거예요.

 

제가 이렇게 책을 보면

어떤 건 또 빛이라고 그래요. .

물론 이 자리가 옛날에 선사들이 이거를

한광이라고 했고 찰 한, 빛 광

한광이라고 표현하신 선사도 있어요.

 

왜 이걸 차갑다고 하냐면

기온이 낮아서 차가운 게 아니고

그 어떤 곳에도 흔들림이 없어

그냥 딱딱 끊어져서

그냥 스스로 묵연하기 때문에 차갑다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깨어난 사람한테는 무슨 소리를 해도 다 통하는데

깨어나지 못한 사람한테 빛이다하면

자기가 또 빚을 만들거든, 빚에 또 집착해요.

그러면 또 빛과 빛 아닌 게 갈라져요.

 

그러니까 빛이다 해도

그러니까 내가 그런 책을 그다지 추천하지 않는 이유가

이게 깨어난 다음에는 무슨 책을 봐도 다 소화가 되지만은

깨어나지 못한 사람한테 그런 걸 자꾸 보이면

지가 또 법상이 생기는 거야.

 

빚이다, 앎이다, 봄이다, 주시자다

뭐 이런 걸 자꾸

이게 깨달음이다, 이것이 법이다 이런 걸 자꾸 만드는 거는

전부 다 삿된 견해라는 거예요.

 

물론 거기에 진리의 측면이 없다는 게 아닙니다. 있어요.

분명히 깨달은 자리는

앎의 원인체 자리가 있고

봄의 정신체 자리가 있고

다 그 작용 활동을 다 가지고 있죠.

 

그러나 그건 필요 조건이지 충분 조건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제발 그 어느 하나 붙들고

이거 이거다 하면 무슨 짝이 나냐면

코끼리 코 붙들고 이게 코끼리라고 하는 짝이 나는 거예요.

코끼리 귀 붙들고 이게 코끼리다

 

 

그러면 어떻게 어떻게 해야 됩니까?

제대로 공부하는 방법은 거꾸로라니까요.

우리가 여태까지 뭘 찾고, 대상화시켜서 알려고 들었던 거 하고는 거꾸로

모든 것의 분별을 다 내려놓으면

저절로 드러나는 자리.

 

/그러면 아무 생각 안 하고 여러분 가만히 있어봐

그러면서 그냥 턱 자각을 해봐.

그럼, 바로 이게 나 자신 아니요.

이 몸뚱아리를 말하는 나 자신이 아니라

지금 이 세상과 더불어

모든 게 다 같이 이렇게 존재하고 있는 이 실상

이게 나 자신 아니오./

 

이게 뭘 의지해서 있는데

이 자리에 의지해서 있잖아.

이 생명의 자리

안 그래요?

여러분 생명이 없는데 뭘 어떻게 인식하고 의식하겠어요?

 

제발 머리 좀 돌리지 말아요.

지금 또 눈알 돌아가면서 생각하시는 분이 지금 두 분 있어?

이 화면에도 보여, 어쩌면 좋아

그렇게 생각해서 정리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면 또 잊어버려.

그래서 내일 또 이거 돌려봐야 돼.

제발 그 짓을 그만하고

지금 이 순간 딱, 딱 잡아야 돼.

, 딱 발견해야 돼.

그러면 다시는 잃어버리지 않아.

여러분이 잊어버리고 싶어도 안 잊어버려져.

제대로 깨어나면

악몽 같아. 이건 정말.

나 제발 잊고 싶어요.” 해도

천만에하고 눈앞에 있어.

 

그런데 자기가 옛날식으로 알려고 들면 내려가 봐요.

그 사람이 앞에서 뭐 떠돌긴 했는데 도대체 뭔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

누가 알아듣고 못 알아듣는 거예요?

다 지 번뇌망상이 그러는 거예요.

저는 안 그랬어요?

 

그러니까 제발 생각으로 정리하려고

지금 이렇게 머리 돌리지 마세요.

그냥 너는 떠들어라.

나는 이렇게 반쯤 졸다가 지나가다가

어 그렇지하고 눈 한번 뜨시면 되는 거야.

 

그래서 저는 여러분이 약간 조는 듯한 표정을 가지신 분이

저분이 내 얘기를 잘 듣고 계시고

지금 말똥말똥하면서 막 그냥 뚫어져라 째려보시는 분들은

걱정되는 거야.

저분은 또 보나마나 머리 굴리고 있는데

내일 가면 또다시 틀고 또 저러고 있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