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불교TV_즉문즉설

월도스님의 즉문즉설 제60회 2. 천태학 공부

Buddhastudy 2014. 7. 1. 20:25

출처: 불교TV

 

천태학이라고 하는 학문이 결코 쉬운 학문이 아닌데, 재가불자로서 천태학을 공부를 하고 거기에 대해 의문 나는 사항을 말씀을 하셨는데, 화엄경을 중심으로 의문 나는 사항을 질문해주셨습니다. 그 질문의 내용을 보면 천태대사가 3x7일 동안 화엄경을 설하셨다고 그러잖아요. 3x 7일 동안 화엄경을 설하시는데 21일동안 설한 경전이 어떻게 5060권의 큰 책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그리고 또 천태학이라 하는 부분에서 이야기하는 58. 여러분들이 천태대사라고 하는 지자대사께서 58교라고 하는 부분의 장르로 부처님의 일대기를 구분해놓으셔서 정리를 해놓으신 부분이 바로 그 유명한 천태학의 교훈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화엄시라고 하는 부분이 3x7=21동안 화엄경을 설하셨는데 그 화엄경을 설하신 내용은 우리 인간을 위해서 설하신 것이 아니고, 깨달음을 얻으시고 난 이후에 정말 진리가 뭔지 모르다가 갑자기 모든 우주법계의 이치가 탁, 알아지고 나니까 기뻤을까요? 안 기뻤을까요? 너무 기쁘고 행복했던 거예요. 그래서 대상을 나누지 않고 우주법계의 모든 생명을 위해서 이것이 진리다. 깨달음의 세계는 이런 거다라고 하는 것을 설해놓은 경전이 대방광불화엄경. 화엄경이에요. 그래서 21일 동안 설하는데, 우리 중생의 입장에서 그 부분을 듣는 시간은 5060권의 내용이 될 수 있는 부분이고.

 

먼저 이 부분의 설명을 하기 이전에 부처님 가르침을 우리가 이야기를 해보면, 부처님 당시에는 문자의 기록이 존재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부처님께서 전달을 하는 부분을 일일이 메모를 하거나 할 수 있는 형편이 안 되었었거든요. 그래서 그 부분에서 어떤 부분의 방향으로 갔느냐하면 부처님의 경전을 들은 말씀을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고 난 이후에 아난을 중심으로 경전을 같이 들은 부분을, 여시아문이라고 하는 부분을 통해서 들은 내용을 정리한 부분을 일컬어서 1차 결집이라고 합니다.

 

1차 결집이라고 하는 부분이 있을 때도 그걸 문자로 남았던 게 아니에요. 이렇게 들었다라고 하는 내용을 정리를 해서 합송을 하는 거죠. 그래서 합송을 해서 아, 이렇게 들은 내용, 이렇게 들은 내용. 그렇게 해서 전해졌던 내용들이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고 난 이후에 400년의 시간이 지나고 난 이후에 대승불교 운동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 이전에 불교라는 자체는 그야말로 나만이 깨닫는, 소위 말하는 소승이라고 하는 부분에 내가 수행해서 나만이 우주법계의 이치를 깨닫고 부처님 제자로서의 행동을 하는데 걸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이런 마음으로 살았다면 400년이 지나면서 이제 경전결집이 본격화 되어 지면서 대승불교운동이 일어나는 겁니다. 상구보리하화중생. 위로 부처님의 진리를 구하고 아래로 중생을 구하는. 자타일시 성불도. 나도 성불해야 되고, 너도 성불해야 되고. 모두가 성불할 수 있는 부분의 방향으로 가는 거 자체가 대승불교입니다. 이 대승불교가 일어나면서 대승불교의 초기 경전으로 자리 잡는 부분의 경전이 바로 화엄경이 되는 거죠.

 

그래서 이 화엄경을 정리를 할 당시에 보면, 화엄경을 설할 때 어떤 내용을 정리할 때 보면, 부처님 말씀이 화엄경을 설한다 해서 화엄경만 설하는 것이 아니고, 아함경을 설한다 해서 아함경만 설하는 것이 아니고, 방등을 설한다 해서 방등만 설하는 것이 아니고, 평생의 어떤 가르침을 펼칠 때보면 보은이니 처음 깨달아서 화엄의, 어떤 대상을 설하지 않고, 깨달음의 환희의 세계에 갇혀있던 내용들을 장르장르마다 설명이 따라붙었을 것이고, 그 부분을 총망라한 부분을 천태대사께서는 그 부분을 분류를 한 거죠. 부처님 말씀에 이 부분의 내용은 방등경에도 나타나고, 아함경에도 나타나고, 또한 반야경에도 나타나고, 법화경에도 나타날 수 있는 장황한 부분들의 내용들을 몰아서 정리를 한 겁니다. 몰아서.

 

그래서 21일 동안 설했지만, 21일 동안 설한 부분이 우리 중생을 향해서 할애하는 것이 아니고, 깨달음의 세계에서 깨달음의 대상을 통해서 가감이 없는 있는 그대로의 설법을 하려고 하다 보니까, 하루의 이야기를 했다고 하더라도 100, 천일, 아니면 수백만권의 책으로 발전을 할 수 있는 부분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본다면, 21일 동안 설한 경이 50권이 되고, 60권이 되는 부분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그 해설을 달고. 그래서 원래는 부처님경전이라는 자체가 화엄경 같은 부분이 중국에서 만들어진 경전이 아니냐? 이런 얘기를 하고 있지만 사실은 산스크리트어로 만들어진 경전을 중국으로부터 받아들여서 중국에서 번역을 하는 과정에서 어떤 스님이 번역을 할 땐 50권이 만들어 질 수도 있고, 어떤 스님이 번역을 할 땐 60권의 책으로 완성이 될 수도 있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 번역의 과정이라는 자체의 예를 드는 부분을 다양하게 예를 들 수 있기 때문에 그와 같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거겠죠. 또한 용수보살이 용궁에서 가져온 경전이 대방광불화엄경이다. 이런 얘기도 있어요. 그런데 그 얘기는 용수보살이 용궁에 가서 가져온 경전이라고 이야기하기 보다는 바로 그만큼 용궁에 사람들, 사람의 몸을 갖지 않은 신비한 세계의 사람들이 이해 할 수 있는 경전이기 때문에, 신비한 내용이라는 경전이라는 내용을 표현하기 위해서 아마 용궁에서 가져왔다라고 하는 부분의 이야기가 회자되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합니다.

 

모쪼록 대방광불 화엄경이라고 하는 경전의 내용은 오늘날 우리가 경전을 이야기할 때, 어떤 스님이 강의를 하는 것이 법화경을 강의할 때, 법화경을 짧게 강의하는 분도 있고, 길게 강의하는 분도 있잖아요. 그죠? 그런 부분의 차이에 의해서 5060권의 소위 그 화엄경이 만들어졌다라고 이해를 해야 될 거 같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보면 부처님 가르침이라는 자체를 짧게도 이야기 할 수 있고, 길게도 이야기 하는 분들이 있잖아요. 그죠? 그래서 그 부분이 긴 거는 어떤 거고, 짧은 것은 어떤 거냐? 짧은 것은 짧게 이야기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짧게 이야기 하는 거고,

 

또 자비심이 넘쳐서 정말 세세하게 세세하게 설명을 해줘야 되겠다. 라고 하는 해석을 한다면 긴 부분의 해석분이 나올 수 있는 부분이라고 이해를 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이해되셨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