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8)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제 1453회] 고민에 명쾌한 답을 내리고 싶어요

Buddhastudy 2018. 12. 25. 20:00


지금 바로 든 질문인데요 사람이 살면서 많은 갈등과 걱정, 고민이 항상 휩싸이게 되잖아요

그때마다 나름에 해결 방안이 있겠죠? 지금 이렇게 만나서 질문을 하거나

하지만 항상 스님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항상 책을 볼 수도 있지만 그렇지도 않잖아요?

그러나 스님은 많은 사람들이 질문하면 어떻게든지 명쾌한 해답을 내리시잖아요

저도 앞으로 살면서 또 많은 사람들의 고민을 들을 수도 있고 나름대로 고민을 제가 들어야 될 텐데

저도 스스로 스님과 같은 명쾌한 답을 내리고 싶어요.//

 

 

꼭 그 말을 해야 되나?

그게 사실 맞아.

왜냐하면 나는 맞는 답을 말하는 게 아니야.

 

자기 문제야? 남의 문제야?

자기 문제는 아무 결론을 내도 괜찮아.

아무렇게나 해도 괜찮아.

아무 차이가 없어.

 

예를 들어서 내가 이 여자 분하고 결혼을 하고 싶다.’ 이럴 때, 이 여자가 내 맘에 거의 80~90%들면 망설일까? 안 망설일까? 안 망설이겠지.

그럼 이 여자가 아예 1~20% 밖에 마음에 안 들면 망설일까? 안 망설일까? 안 망설이겠지. 안 한다고 결론이 이미 나버리고.

그 다음에 80~90%되면 이미 한다고 이미 결론이 난 것이기 때문에 법륜스님한테 안 물어.

 

그러면 물을 때는 이게 얼마냐?

할까? 말까? 할 때라는 거야.

할까 말까 하는 것은 하는 게 좋은 게 한 48% 되고, 안 하는 게 좋은 게 52%되고, 또 하루 자고 일어나니까 안 하는게 52%되고 하는 게 48%, 이럴 때 스님한테 묻는 다는 거야.

고민이 되고, 두 번째 또 묻기까지 한다.

 

그런데 저는 크게 보면 52:48은 별 차이가 없다는 거요.

여러분들은 그 1% 좀 더 나은 걸 찾으니까 머리가 아프고 결론이 안 나는데, 스님은 크게 보면 벌써 망설일 때는 둘의 별 차이가 없다.

이거 이해하면 굉장한 인생이 되요. 인생을 사는 게 확~ 달라져.

그래서 어떤 결론을 내려도 큰 차이가 없어.

 

그러면 왜 망설일까.

결과에 대한 책임을 안 지려는 거야. 무책임성 때문에 망설이는 거요.

왜냐하면, 50:50이니까 하면 안한 거에 대한 아쉬움이 생기겠죠. 안 하면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생기겠죠. 그러니까 100% 후회하게 돼.

 

했으면 한 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안 했으면 안 한 거에 대한 책임을 진다.

, 돈을 빌렸으면 갚으면 되고

갚기 싫으면 안 빌리면 되는 거야.

 

그런데 이 망설인다는 건

빌리고 안 갚는 법을 자꾸 생각한다는 거야.

무책임성이라는 거야.

 

그래서 조금 여러분들 인생을 더 살아보고 경험해보면

, 그건 이러나 저러나 별 차이가 없다하는 것을 알 수가 있어.

 

예를 들어서 여러분들이 중학교 다닐 때나 고등학교 다닐 때, 월말고사에서 지금 4월이니까 4월말고사에 수학 점수가 평소에 80점 나오다가 65점 나왔다. 그러면 학생으로서는 실망이 크나? 안 크나? 크지.

그런데 여러분들 고등학교 2학년 때, 중학교 2학년 때, 어느 월말고사에 수학점수에 65점이든 80점이든 자기 인생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아무 차이가 없어.

 

20점 나오던 사람이 100점 나왔다. 그것도 1번도 아니고 10, 내리 6년이 나왔다. 이러면 조금 차이가 있을 수 있을 거요. 그런데 한 번에 월말고사 그거 조금 잘나오고 못 나오고 전체 인생을 지나놓고 보면 아무 차이가 없어.

 

대학시험 떨어져서 재수할 때는 1년이나 차이 나니까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는 것 같은데

30년 살고 나서 돌아보면 그 1년 재수한 거 별 차이가 날까? 안 날까? 안 나.

그래서 망설일 필요가 없어.

 

딱 여기는 선택을 망설이는 거는 선택이 어려운 게 아니라

선택이 어려운 것은 책임을 안 지려는 것 때문에 그렇다.

그러니까 지은 인연에는 과보가 따르는데, 그걸 기꺼이 받아야 돼.

선택에 따른 뭘 져라? 책임을 져야 돼.

 

혼자 살기를 선택하면 그 좋은점이 있겠지. 그러나 거기도 나쁜점의 결과가 있어.

같이 살기로 결론을 내면 좋은점이 있겠지. 그런데 반드시 거기에는 또 같이 살기 때문에 생기는 혼자 살 때는 생각 못했던 많은 문제가 발생하는 거요. 그걸 기꺼이 받아들여야 돼.

 

그걸 안 받아들이면 어떠냐?

못살겠다고 헤어지고, 헤어지면 외로우니까 또 사람이 필요해서 사귀고, 또 같이 살면 귀찮아서 헤어지고. 이걸 방황이라 그러지. 이런 걸 가출이라고 그래. 왔다갔다왔다갔다 하는 거야.

 

그래서 그거는 아무걱정 없어. 사실은.

걱정은 그런 거지.

무책임성 때문에 걱정이 생기는 거야.

 

그래서 여러분들 질문한 거에 대해서 스님은 아무 걱정을 안 해요.

? 어차피 나한테 묻는 거는 별 차이가 없는 거야.

 

제가 이혼을 하면 좋겠어요? 안 하면 좋겠어요?

이 사람은 이혼하는 거하고 안 하는 거 하고 반반에 걸려서 나한테 물었겠지.

90%쯤 하는 게 좋겠다고 결론이 났으면 나한테 물을까? 자기혼자 결정할까?

이혼하고 싶은 생각도 가끔 있지만 아직도 이 남자가 좋으면 나한테 안 물어.

그래서 결정이 어렵지 않다. 이 말이야.

 

그럼 남의 거는 어떻게 하느냐?

그건 더 쉬워!

그건 뭐라고 하면 된다? “몰라!” 이러면 돼. 하하하. “나도 몰라!”

내 인생도 내가 모르는데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이러면 돼.

 

예를 들면 딸이 남자 친구를 사귀어서 엄마, 내 남자 친구인데 어때? 좀 봐줘!” 하면 몰라!”이러면 돼.

에이, 엄마는 그래도 살아봤잖아.”

그래도 네가 살 남자인데 내가 어떻게 알아?”

아이, 그래도 엄마 좀 봐줘.” 그러면

, 임마! 내가 남자 보는 눈이 있으면 너희 아버지 만났겠니? 나한테는 묻지 마!”

이렇게 딱 처리해야 되는데,

아니 그냥 지가 알아서 그거는 인간이 안됐다. 관상이 어떻다. 키가 어떻다. 얼굴피부가 어떻다. 이런 식으로 간섭하니까 시끄럽지.

 

그러니까 남의 묻는 말에는 무조건 뭐라고 한다?

잘 몰라.” 그러니까 몰라는 귀찮다는 뜻이 아니라 정말 모르잖아.

아나? 모르나?

몰라서 진짜 진지하게 정말 모르는 거야.

 

그래서 자기가 틀리기도 하지만 이라고 그랬는데, 틀리기도하지만이 아니라, 맞는 거 틀린 거 하고 난 아무 관계없이 대화하는 거야.

나하고 대화하는데 자기가 생각하기를

스님 말이 맞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지.

 

자기가 이혼하고 싶으면 나하고 얘기하다 보니까 이혼하는 게 낫겠다.’ 자기가 결론이 나는 거고,

자기가 안하는 게 낫겠다자기가 결론이 나는 거야.

자기가 결론 내니까 스님 말이 맞는 거 같아? 안 맞는 거 같아?

나는 하라 마라 안했는데, 자기 혼자 스님이 하지 마라고 그랬다’ ‘스님이 하라고 그랬다.’ 자기들이 결론내고 이렇게 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