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당시에 이분이 나타난다는 소식을 미리 듣고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켜고 지켜봤데요.
내가 한번 찾아보겠다.
그녀, 기생
그런데 아무도 못 찾았다는 거죠.
그와 중에 어느 누구한테도 걸리지 않고
청진동, 광화문, 무교동 종로 일대를 다 돌아다니다가 돌아갔다는 거예요.
그녀, 행랑어멈
거지굴, 매음굴 등 현장을 누볐던 기자.
1920년대
사람들은 그녀를 향해 이렇게 외쳤습니다.
패왕, 최은희가 나타났다.
그녀가 나타날 때면 어김없이 붙는 수식어.
1924년 12월 17일
“지금부터 독자여러분이 고대하시던
조신일보사 주최, 무선전화 공개방송 시험이 시작되겠습니다.”
최초의 아나운서.
1925년 7월
남조선 여자 정구대회
최초의 여성 시구자
변신의 귀재, 늘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던 그녀는
우리들의 최초 민간 여기자 최은희였습니다.
그 당시는 일제가 문화통치를 내세우면서
언론의 자유를 죽였다.
신문 출간도 허용하던 시대였는데요
말이 좋아 허용이지, 그때 출간된 신문들을 보면 검열 때문에 삭제 되어서 굉장히 빈 곳이 많아요.
그런 시기에 이 분이 특종을 내죠.
조선의 마지막 임금인 순종의 장례식을 앞두고
일본 경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그녀는
그길로 종로서에 잠입
6.10만세 운동을 하던 이들이 취조당하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렇게 탄생한 최은희 기자의 특종
모 중대사건 폭로
-1926년 6월 7일 조선일보, 최은희 기자 단독 보도
그리고
“최초의 여기자로서 내 생활이 천만 여성계에 공헌하지 못한다면
아무 가치 없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대담한 마음으로
남성 위주의 사회조직을 바꿔야겠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최은희
처음으로 신문에 등장한 가정면
여성들이 알아야 할 상식은 물로
직접 변장을 하고 탐방 기사를 써
기생, 행랑어멈 등 소외된 여성들의 삶을 전한다.
‘여자는 약자가 아니다.’
부당한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목소리를 잃은자들을 대변하여 더욱 외치는 것
여성 스스로 해방하는 날
세계가 해방할 것이다.
조선 자매들아 단결하자
-항일 여성단체 근우회 결성
최은희
(1940.11.21~1984.8.17)
장영남,
최은희를 기억하여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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