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스틸
희생 플라이
역전 홈런
삼구삼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야구는 인생이다.
“동원이 인생도
야구 같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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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외야수 3명, 내야수가 4명, 포수 1명, 투수 1명
투수는 좀 독특한 포지션이죠.
홈플레이트에서 18.44m
높이 25.4cm
마운드에서 펼치는
투수 최동원의 세상
스포츠는 마음이에요, 심장.
흔히 말하는 강심장.
최동원은 한국 야구사에서 정말로 손꼽히는
최고에 가까운 승부사다.
불세출의 승부사 최동원
1984년 잊을 수가 없죠.
1984년 한국시리즈 삼성 對 롯데
1차전 완봉승 3차전 완투승 6차원 구원승
“무리라는 것은 알죠.
알지만 나갈 수 있다면 끝까지 나가서 이겨야죠”
-최동원
9회말 롯데 6-4 삼성
7차전
롯데 우승
7차원 완투승
“우리가 팀이니까 이겨야 되겠다.
내 어깨가 부서지더라도 이 온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
불멸의 기록
한국시리즈 4승
“다시 돌아가도 그렇게 던질 것이다.
그게 최동원이니까”
최동원다운
또 하나의 선택
1988년
프로야구 선수회 결성 주도
당시 프로야구 선수 평균연봉 6백만 원
식사조차 제공받지 못했던 열악한 현실
“요즘은 워낙 야구가 인기스포츠여서 스폰서도 있고 하지만
프로야구 선수는 글러브 배트까지 본인이 다 사야 해요.
그러면 2군 선수들은 굉장히 힘들잖아요.
내가 그래도 야구를 대표하는 인물인데
내가 목소리를 안 내면 누가 목소리를 내겠느냐”
당대 최고스타로서의
책임감
“별은 하늘에만 떠 있는다고 별이 아니에요.
누군가에게 길을 밝혀주고, 꿈이 돼줘야 그게 진짜 별이에요”
-최동원
1988년 11월 22일
최동원 선수와 삼성의 김시진 선수가
서로 유니폼을 바꿔 입게 되었습니다.
구단과의 마찰로
삼성으로 트레이드
“저는 선수이기 때문에 시합에서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서
열심히 임하는 게 선수의 도리 아닙니까.
세이브든 선발이든 상관없어요.”
은퇴식도 치르지 못한 채
마운드를 떠나야 했다.
2011년 7월
경남고 對 군산상고 레전드 리매치
최동원은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마음은 어떻게 던지면 된다는 건 알아요.
몸이 안 따라오더군요.
순간적으로 허리 쪽이 조금 안 좋아서...”
마운드에서도
프로야구의 모순을 바로잡기 위해서도
자신을 던졌던 최동원
동원아!
최동원이...
(1958.5.24~2011.9.14)
허구연
최동원을 기억하여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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