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옷차림으로 푸근한 미소로
곁에 있었던 우리의 친구 정일우
“살아오면서 아름다운 사람만 만났다.
인복이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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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복보다는 한복차림이 익숙했던
푸른 눈의 신부
그가 처음 한국 땅에 발을 디딘 것은 1960년대
대학가를 중심으로 유신반대 운동이 뜨겁게 일던 때였습니다.
정일우(존 빈센트 데일리)
1960년 서강대 예수회 신학생 시절
60년대 이후
유신반대 운동을 목격한 그의 고민
‘복음을 입으로만 하며 살고 있지 않는가’
‘3선 개헌 반대’ 1인 시위
“대한아 슬퍼한다. 언론자유 시들어 간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그에게 복음은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행하는 일이었습니다.
“73년도 청계천 판자촌에 들어갔어요.
가난한 사람들 어떻게 사는지, 좀 체험하고 싶어서 들어갔는데
거기에서 내가 얼마나 비인간적인지를 깨달았어요.”
청계천 판자촌 목격 후
달라진 그의 삶
그들의 삶터로 달려가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며 자립을 돕습니다.
판자촌 빈민과 철거민의 자립을 도운
정일우 신부
1986년
‘88올림픽’으로 철거된
상계동 73번지
‘삶의 뿌리를 뽑아버리는 강제철거는
무자비한 인권유린이다’
늘 더 낮은 곳만 찾아 가
스스로 가난한 이가 된 사람
1977년 복음자리 마을
1979년 한독주택
1985년 목화마을 건립
철거민 집단 이주 운동에 헌신
‘돈 있는 사람, 힘 있는 사람, 권력 있는 사람이
이 나라를 올바르게 잡아야지
그런데 안 하기 때문에, 절대로 안 하기 때문에
이 나라의 희망은 가난뱅이뿐이요.’
1998년
존 빈센트 데일리
정일우
대한민국 국적 취득
마지막 순간까지
진짜 사람이 되고 싶다던
참 사람,
정일우 신부
빈민의 아버지
정일우
(1935.11.21~2014.6.2)
성유리
정일우를 기억하여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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