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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지금 선생님께서는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이렇게 하셨죠?
그런데 그게 아까 내가 아주 간편하게 말씀드렸죠?
생각 내기 이전이 ‘나무불’이고, ‘나무’라는 건 이 전체를 말하는 겁니다.
공심의 평등법을 말하는 거죠.
그러면 그것을 뭐라고 부르느냐 하면 ‘평등공법심’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럼 ‘나무법’ 이것은 큰, 그 전체의 법이 그대로 한 생각에 그냥 법이라는 얘깁니다.
그게 ‘나무법’입니다. ‘나무’는 큰 전체를 말합니다.
그래서 ‘나무승,’ 이 몸뚱이가 수없이 끝없이
저 나무들이 가을에 낙엽이 지면 낙엽이 진대로 지고 또 새잎이 피고, 또 지고 또 피고, 또 지고 또 피니까 ‘나무승’입니다.
그러니 한마음 내기 이전과 마음 내는 거와 육신이 움죽거리는 게
그것이 바로 어마어마하게 끝 간데없는 우리 살림살이가 그렇게 묘하다는 얘기죠.
우리가 이래 뵈도 우리들 전체가 전부 지구의 주인입니다.
그러면서도 우주의 주인일 수도 있는 거지요.
부처님께서도 우주의 전체 삼라대천세계를 요리를 만들어서
대천세계의 모든 것을 보여주시고, 모든 것을 서로가 서로를 이어주시고
그렇게 해서 전체를 공법으로서의 해결을 했다는 얘기죠.
그러니까 옛날에도 오백 일산(日傘)을 한데 받아서 한꺼번에 삼천대천세계에 전부 요리를 만들어서
대천세계의 모든 중생들한테도 한데 모든 걸 보여주고는
그 깨달은 사람, 그 일산을 바친 사람한테 그 안에서,
즉 말하자면 ‘신궁등’ 안에서 천체에 보이고 알게끔 만들어 주신 거거든요.
그렇게 자기가 그릇을 가지고 있으니까 담아줄 수 있지
그릇이 없다면 담아줄 수도 없죠.
여러분들의 그릇대로 담아지는 거지
그릇이 없다면 또 담을 수도 없는 거고요.
그래서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을 따로 갖지 마시고
천체 ‘주인공’ 하면 부처님이나 중생이나 일체 포괄된 상태가
찰나찰나 돌아가는 그 자체가, 그대로, 불 법 승 자체가
그대로 하나로 돌아간다는 ‘일심조차도 언어가 붙지 않느니라.’ 했거든,
일심이라는 자체도.
달마대사가 처음에 동쪽으로 오실 때에 큰 구렁이가 놓여져 있거든요.
그래 구렁이가 전부 사람들을 해칠듯 하니까
구렁이 속에 들어가서 저 멀찌감치 갖다 놓고 돌아오니까
자기 몸뚱이가, 집이 글쎄 아주 못생긴 집 하나만 남았다지 않습니까?
자기 잘생긴 집은 없어지고요.ㅎㅎ
그 소리도 잘 따지고 본다면요,
도둑놈같이 생긴 그 몸뚱이나 이쁘게 잘생긴 몸뚱이나 그 집이 둘이 아닌데
그러면 그 도둑놈도 얼마나 달마대사 못지 않았기 때문에
바로 그 집을 훔쳐가고 자기 집을 남겨놓은 거 아니겠습니까?
그거를 한번 보면요,
그게 달마대사가 가르치기 위해서 방편으로 쓴 말이지,
진짜 딴 놈이 자기 집을 훔쳐간 게 아닙니다.
자기 집 자기 집대로 가지고 있었던 거지.
그러니까 우리가 금방 한찰나에 저 집에 들어가도 저 집이, 내가 말입니다, 아까 얘기했죠.
그 모습도 많거니와 천차만별로 된 그 의식들이 다 천백억화신으로다가 화한다면,
천백억화신이에요.
32상이 구족하면 32응신으로서 구족하다.
32응신이 구족하다면 천백억화신이 들고 나면서 일체제불과 일체 중생들을 다 건진다.
‘일체제불은 다 위로는 한자리하고 아래로는 다 건질 수 있다.’ 하는 뜻이죠, 쉽게 말해서.
그와 마찬가지로 만약에 만 명이 아니, 20만 명이 여러분들이 저한테 와서 용도가 다 다른 대로 여러분들한테다
“이거는 재료를 가져오셨으니까 연구해서 전부 실험하셔서 체험하십시오.
재료 가지고 오신 걸로다가 이렇게 하십시오.” 이렇게 했어도
그 50%는 항상 충당하기 때문에, 안 보이는 데서는 충당하기 때문에…,
예를 들어서 충당할 때는 무엇이 되느냐.
그러면 용도에 따라서 여러분들이 가져오는 대로, 실험하는 대로, 나는 거기 항상 자기가 돼야 될 거 아닙니까?
그러면 내가 이 사람 될 때 나라고 하겠습니까?
저 사람 될 때 나라고 하겠습니까?
지금 병원에 아픈 사람한테 달려갔는데 그 사람 될 때 나라고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천차만별로, 20만 명이 온다 하더라도
전체 20만 명이 20만 명이라고 이것 저것 따질 수가 없죠.
그러니까 한 마디로 인해서 주인공, 너나 나나 둘이 아닌 도리가 바로 주인공이다 이거야.
그리고 어떤 거 될 때 나라고 할 수 없으니까 부처지 ㅎㅎ
어떤 거 돼가지고 나라고 한다면 부처일 수가 있습니까?
부처는 국한된 어떤 한 부분적인, 개별적인 어떠한 이름이 부처가 아닙니다.
포괄적으로 찰나찰나 돌아갈 때에 나투는 그 방법이 바로 열반입니다.
나투는 그 자체가 바로 이것도 됐다 저것도 됐다, 저것 됐다 환경에 따라 용도에 따라서
그냥 돼서 돌아갈 때
이건 부처도 아니고 중생도 아니고 너도 아니고 나도 아니고 돌아갈 때
그게 부처입니다.
그래서 ‘무(無)’ 했었고, ‘주인공’이라고 했었고
그렇게 ‘불(佛)’이라고 하고, ‘부처’라고 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라고 하고
여러 가지를 그렇게 이름을 붙여놓으신 겁니다.
그러니 아까도 얘기했듯이 동쪽으로 간 까닭도 서쪽으로 간 까닭도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네가 똥 마려우면 똥 누고 배고프면 밥 먹고 목마르면 물 먹어라.”
이 소리는 예를 들어서, 여러분들이 좋은 마음으로써 그냥 여길 믿고,
여기서 나를 이끌어가고 내 생각을 내게 할 수 있는 거니까, 나쁘게 생각이 나오면 과거의 인연으로 의해서 그렇게 된 거니까 거기 놓으면 그것도 녹아져 버린다.’ 하고 믿고 거기 놓고
내 탓으로 돌리고, 내 잘못으로 돌리고, 모두가 내가 하는 걸로 돌리고,
내가 안 해도 안 하는 걸로 돌리고,
모든 것은 내 주인공이 하는 거지 남의 탓할 게 없죠.
그렇게 돌아가야 만이
여러분들이 1년이 못 가도 나를 바로 발견할 수 있는
그런 계기가 생기지 않나 이렇게 봅니다.
여러분들이 여러분 자체를 모른다면
바로 어저께 일도 모르고, 내일 일도 모르고, 지금 일 돌아가는 것도 모르는데 어떻게 합니까?
봐야 뭘 하죠, 들어야 뭘 하죠, 또 먹어봐야 맛을 알죠.
내가 이해가 가지 않더라도 한번 생각을 해보면
허공을 믿으라는 것도 아니고, 형상을 믿으라는 것도 아니고
내 고깃덩어리를 믿으라는 것도 아니니
자기 장본인의 주인공을 믿으라는데
한 번쯤은 생각해 봐야될 점이 아닐까요?
모두 여러분들 주먹 안에 들었어요.
일체 만법은 여러분들 주먹 안에 들었으니
한주먹에 들어 있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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