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부처님께서 수행자들에게 ‘어떤 자세로 수행에 임해야 되느냐.’ 이런 거에 대해서 하신 말씀이 있어서 오늘은 그것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나의 제자 비구들아. 수행자는 교만해서는 안 된다. 겸손하라.
또한 나의 제자들인 비구들아, 수행자는 비굴해서는 안 된다. 당당하라.”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자,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된다고요?
교만해서는 안 되고 겸손해야 한다. 비굴해서는 안 되고 당당해야 한다.
그런데 말은 참 좋은데, 현실 속에서는 이게 많이 좀 헷갈린다고 그럴까?
당당한 것이 교만하기가 쉽고, 겸손하다는 것이 비굴해지기가 쉽죠. 비굴한 걸 또 겸손하다고 말하기도 하고. 또 당당한 거를 교만하다고 말하기도 하고, 교만한 걸 당당하다고 말하기도 하고.
이 교만함과 당당함이 비슷하고,
비굴함과 겸손한 것이 비슷한 게 아니고,
교만한 것과 비굴한 것인 사실은 한 짝이고,
겸손한 것과 당당한 것이 한 짝이에요.
보통 우리가 교만할 때 왜 교만합니까?
“나는 돈이 많다.” 이거 교만한 것 가운데 하나죠?
그런데 이 돈이 많아서 교만한 사람이 돈이 없어졌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 뭐요?
돈 앞에서 비굴하죠. 자기보다 돈 좀 적게 가진 사람한테는 부자라고 폼 잡다가 자기보다 돈 많은 사람 앞에 가서는 꼼짝도 못하지 않습니까. 고개도 제대로 못 쳐들고.
그러니까 교만한 것과 비굴한 것은 정 반대 같은데,
교만한 것과 비굴한 것은 함께 붙어 다닙니다.
지위도 마찬가지요. 지위에 집착하는 사람은 자기가 지위가 높고 주변 사람이 지위가 낮으면 자기가 높다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교만하죠. 참 꼴불견이라고 할 만큼.
그런데 이런 사람이 또 자기보다 더 높은 사람들 앞에서는 비굴하게 굴고 아양 떨고, 그것도 또 꼴불견 아닙니까. 그죠.
또 인기, 이것도 마찬가지요. 자기가 좀 인기가 많고 딴 사람이 인기가 없으면 자기가 인기가 많다고 굉장히 뽐냅니다. 그런데 자기보다 더 인기 있는 사람 만나면 쥐구멍이라도 들어갈 그런 심정으로 대하죠.
그래서 수행자는 교만해서는 안 된다는 거요. 세상 사람들은 이런 재물과 권력과 명예, 이런 것으로 교만하고, 또 뭐에요? 여자 분들은 얼굴 예쁘다고, 남자는 신체 좋다고, 또 옷 좋다고 뽐내는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그죠?
저도 어릴 때 고무신밖에 못 신고 다니다가 추석 때 운동화라도 하나 사주면 아침 일찍 신고 공동우물가에 가서 공연히 왔다 갔다 하죠. 왜? 신발 자랑한다고. 여러분들 좋은 옷 입으면 어떻게 합니까? 어디 가서 공연히 왔다 갔다 하지 않습니까. 그죠? 옷 자랑한다고.
그런데 잘 살펴보면 옷 자랑하는 사람은 마네킹이죠.
옷이 주인이고 자기는 옷걸이에 불과한 거요.
제가 옛날에 알던 분 중에서 부잣집 부인을 알게 되었는데, 그 분이 좋은 일 한다고 보시도 좀 하셨어요. 그리고 스님에게 식사를 한 끼 대접한다 그래서 겨울인데, 어느 고급식당으로 초대를 했어요.
그런데 식사를 하고 앉아있는데, 계속 입구 쪽으로 쳐다보는 거요. 조금 있다가 또 쳐다보고. 그래서 제가 손님이 한 사람 더 오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누가 옵니까?” 그러니까 “아니오” 그래.
“그런데 왜 늘 입구를 살핍니까?” “아, 예.”
그러니까 말을 할 듯 말 듯 하더니
“제가 오늘 비싼 코트를 입고 왔는데 입구에 벗어 놔둬서 그게 마음에 걸리나 봐요.”
그래서 제가 농담으로 “아니 보살님이 옷 지키는 개요?”
옷이 좋으면 사람이 옷걸이가 되고, 옷을 지켜.
허름한 일반 옷을 입고 있으면 다리가 아프면 아무데나 앉죠.
그런데 비싼 옷을 입고 있으면 다리가 아파도 못 앉죠.
사람이 옷을 보호합니다. 옷이 사람을 보호하는 게 아니고.
좋은 옷은 어떤 옷이 좋은 옷입니까?
사람을 잘 보호는 게 좋은 옷이어야 되지 않습니까.
만약에 어린 아이가 넘어져서 뭘 엎질렀어. 옷에 물이 튕겼을 때도 마찬가지죠.
보통 옷을 입고 있을 때는 넘어지는 아이를 먼저 걱정하는데,
비싼 옷을 입고 있으면 아이는 안 보이고 옷 버리는 걸 먼저 걱정하게 되죠.
이런 것이 전도몽상이라고 그래요. 뒤집어져버렸어.
좋은 옷이라는 것은 우리 몸을 잘 보호하는 게 좋은 옷인데,
너무 좋은 옷이 되면 거꾸로 내가 옷을 보호하는 사람이 되는 거요.
이런 분도 계셨어요. 법회에 매일 꼬박꼬박 잘 나오시던 분이었는데, 그 분 소원이 단독 주택을 하나 사서, 정원을 예쁘게 가꾸고 그렇게 살고 싶다고 늘 말씀하셨던 분인데, 어느 때부터 절에 안 나오시는 거요.
그래서 제가 전화를 해서 “아이, 보살님, 요즘 안 보이데요. 왜 그래요?”
“제가 이사를 갔어요.”
“이사 간 거와 절에 나오는 거하고 무슨 관계가 있소?”
“아, 이유가 있습니다.”
“어떤 이유요?”“아파트에 살다 주택으로 이사를 가서 집을 잘 꾸며놓으니까 집을 비워놓을 수가 없습니다.”
집안에 귀한 것이 많을수록 집을 비울 수가 없죠.
전화로 “아니 보살이 집지키는 개요?” 자기도 모르게 좋은 집을 가짐으로 해서 자기가 어느덧 집지키는 개가 되어버리는 거요. 이런 것도 전도몽상이오. 거꾸로 되어버리는 거요. 우리 인생이 이런 경우가 허다합니다.
우리 절에서도 이런 일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스님, 어디 좋은 절에 구경 갑시다.” “바빠서 못 가는데.”
“아니 한번 갑시다.”
이렇게 해서 대중의 뜻을 모아서 구경가지고 버스를 한 대 대절을 했어.
처음에는 대중을 위해서 버스를 대절을 했어요. 그런데 숫자가 안 차면 나중에는 전화를 해서 어떻게 합니까? 어디 놀러 가는데 안 갈래? 안 갈래? 안 갈래? 이렇게 전화를 하는 것은 그 사람을 위해서 하는 게 아니고 차 좌석 채우려고 하는 거요.
이런 것도 어느 때 뒤집어 버려요. 이것은 우리 생활에 언제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이 뒤집어지는 줄을 모르죠.
이런데서 우리가 이러한 잘못된 이런 어리석음을 버리고 출가수행자가 된 거란 말이오.
이런 전도된 생활을 살지 않겠다. 이런 얘기에요.
여러분들 가정에 가보면 옷장에 옷이 수십 벌이 있어요. 계절별로, 색깔별로, 유행별로, 그런데 스님들은 여름하고 겨울, 적으면 두 종류, 늘 같은 색깔이죠. 같은 모양이죠. 그죠?
어떤 때는 여름 겨울옷도 큰 차이 없습니다. 내복 입고 벗고만 조절하면 되니까. 작업복에 법복에 잠잘 때도 같은 거 입고 다녀요. 스님은 옷이 떨어진 거 입었다고 비난 안 받았잖아요.
떨어진 거 입고 다니면 “우리 스님 검소하다.” 이렇게 말해요. 욕 안 해요.
매일 같은 옷 입고 다닌다고 “아이고, 맨날 똑같은 거 입고 다닌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 한 사람도 없어요.
그러니까 도무지 옷을 구입하고 옷을 입고하는데 에너지를 안 쏟는데, 여러분들은 어떻게 살아요?
그 많은 옷을 구입을 하려면 첫째 돈이 많이 들죠. 그럼 그 돈 벌려고 엄청난 노력을 했잖아요. 돈만 있다고 되는 거 아니죠? 그거다 구입하러 다녔을 거 아니오. 얼마나 에너지를 쏟았겠어요. 하기야 재미로 했다니까 할 말은 없지만.
그리고 비싼 옷을 살 때 이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늘 고민을 해야 되잖아. 비싼지 싼지 늘 따져야 되잖아. 그렇게 옷을 구입해 놔도 아침에 일어나서 옷을 입을 때마다 ‘이거 입을까? 저거 입을까?’ 번뇌가 얼마나 많아요. 시간을 그런데 얼마나 많이 투자를 합니까?
그래서 이렇게 말씀 드리면 기분 나쁠지 모르지마는
저하고 여러분이 같이 70년을 산다고 해서 같이 70년 사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은 70년 사는 중에 이런 것들 다 빼버리고, 진실로 자기에게 좋은 시간을 갖는 경우는 10년이 채 안되고,
우리는 이런 데 시간을 거의 낭비하지 않지 않습니까.
그럼 반론을 제기할 거요. ‘요즘 스님들도 유행만 잘 만들더라.’ 이렇게 할 수도 있고, 또 재가에 산다 하더라도 그런데 덜 구애를 받는 사람도 있겠죠. 그래서 일괄적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마는 음식문제도 그렇게 집문제도 그렇고 많은 부분에,
그리고 왜 이렇게 바쁜가?
그것은 어떻게 보면 쓸모없는 곳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투여하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늘 바쁘고, 항상 부족하고, 그래서 인생이 고달프다는 거요.
그런데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이 좋은 길은 어떤가? 옷은 버려진 옷, 분소의란 말이 버려진 옷이라는 뜻입니다. 요즘처럼 잘 갖춘 가사장삼이 아니고, 사람들이 입다가 버린 옷이라는 뜻이에요. 시체를 싸서 버린 옷이니까. 아무도 손 안 대는 옷이라는 거요. 그런 거 주워 입었죠.
그러니까 옷 구입하는데 신경 쓸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밥은 남의 집에 가서 얻어먹지 않습니까. 먹는 거 신경 안 써도 되죠.
여러분은 나이가 50이 되었는데
“저는 좋은 일 하고 싶어요.”
“하면 되지”
“아이고, 그래도 먹고 사는 건 해결해야 되지 않습니까?”
“아니, 나이가 50이 다 되었는데도 먹고 사는걸 해결을 못했는가?”
제가 생각할 때는 그래요.
어디 가서 그냥 먹으면 되는데. 걸식, 이게 얼마나 좋아요. 먹는 걱정 안하잖아요.
자는 걱정? 나무 밑이나 동굴이나 이렇게 자니까, 자는 걱정 안하죠. 그러니까 부처님은 먹고 입고 자는, 의식주를 벌써 해결해버린 거요. 적어도 그 3가지 문제는 아무 걱정이 없는 거요.
그런데 우리는 그 3가지를 해결하려고 죽어라하고 노력을 했는데도 숨넘어갈 때까지 그 3가지를 해결을 잘 못해요. ‘나는 그 3가지를 완전히 해결했다’ 하는 사람 못 만나봤어요. 항상 먹고 입고 자는 걱정이오.
그런데서 만족하다. 이거야. 아무런 부족함이 없어요. 아무런 부족함이 없으니까 왕을 만나도 얻을 게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지. 왕을 만나도 얻을 게 없어요. 특히 부처님은 왕이 궁중에 식사초대 했을 때 응하지를 않으셨거든요.
그러니까 보통 집에 가서는 구걸했지마는 왕이 초청했을 때는 경전에 몇 군데 보면 응하지 않으셨어요. 그러니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 카필라 성에서 아버지가 궁 안에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초청했을 때도 응하지 않고 걸식을 하셨어요.
그러니까 왕한테 고개 숙일 일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왕한테 옷을 받을 일이 있나, 음식 받을 일이 있나, 숙소 구할 일이 있나? 왕한테 부탁할 일이 뭐가 있어요? 왕이 해주고 싶어도 해줄 게 하나도 없어요. 부처님한테.
그러니 왕 앞에서 뭐하다? 당당한 거요. 왕 앞에서도 당당한데 천하 어디 가서 당당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당당한 거요. 비굴할 아무런 이유가 없어.
그러니까 어디를 가서든 뭐 해달라고 요구할 게 없다는 거요. 그러니 왕이 부처님한테 상담와도 저 같으면
“아이고, 높은 사람이 부자가 상담 왔으니 잘 요를 해서 돈을 시주를 좀 하게 만들어야 되겠다. 요즘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 있는데 그걸 해결하도록 해야 되겠다.” 이런 생각 할 필요가 없잖아요.
아무 상관이 없잖아. 다만 그가 힘들다니까 그것만 보고 도와주면 되지. 그런데 빈비사라왕이 부처님께 도움을 청했지, 부처님이 빈비사라왕한테 도움을 청한 것은 없습니다. 자존심 때문에 안 청한 게 아니라 청할 것이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 부처님은 얻어먹고 살으셔도 남이 승단에 보시를 할 때는 보시하는 사람이 주도권을 쥐고 있었어요? 보시 받는 부처님이 주도권을 쥐고 있었어요? 부처님이 주도권을 쥐고 있었어요. 왜? 받고 안 받고를 누가 결정합니까? 부처님이 결정해요.
부처님은 달라고는 절대 안하고, 주면 이것이 수행에 합당하면 승낙하시고 합당하지 않으면 거절하셨어요. 나 같으면 다다익선이라고 일단 받아놓고 볼 텐데 말이오. 거기에 큰 차이가 있어요. 그러니까 당당하셨다는 거요. 그러니까 비굴할 일이 없었다는 거요.
왕 아니라 누구라도, 부자라도. 그 사람한테 뭘 얻을 이익이 없었기 때문에.
또한 부처님은 매일매일 남의 집에 가서 밥을 빌어서 먹고 살았습니다. 그러면 밥을 빌러 가는 거지가 밥 주는 사람한테 큰 소리 칠 수 있어요? 없어요? 없지. 그저 밥 주면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눈물을 흘리고 고맙다고 생각해야 되잖아.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매일 밥을 빌므로 해서 늘 그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고맙다 해야 될 마음을 내야 된다는 거요. 그런데 부처님이 여기에 무슨 교만함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걸식을 하기 때문에,
언제나 이 세상 사람에게 그저 내 생존을,
내 목숨 줄을 이어주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언제나 겸손한 거요.
그러나 왕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부탁할 것이 없기 때문에 당당하다. 이 말이오.
그래서 수행자는 재물이 많거나 지위가 높거나 한다고 해서 거기에 비굴하지 않는다. 즉, 높은 사람 오면 마중도 안하고 쫓아내버린다. 이런 뜻입니까? 아니오. 그건 배척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또 이거 잘못 알아서 대통령이나 국무총리나 사람들이 절에 방문하는데, 인사도 안하는 사람이 있어요. 왜? 스님은 당당해야 되니까. 그건 예의가 없는 거요. 당당한 게 아니라.
그러니까 똑같이 하라는 거죠. 그것이 누구에게나
찾는 사람에게는 환영하고 잘 안내해주고 편안하게 있도록 해주고,
거기에 높다고 잘하고 낮다고 배척하지 마라는 거요.
그래서 우리가 겸손해야 된다. 큰소리 치고. 그런데 이런 말이 있죠.
아상을 버리라 했더니 아상은 버렸는데 중상이 들었다.
이 스님들이 ‘내가 스님이다.’ 가끔 이렇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게 나빠서 그런 게 아니다. 이게 아상이거든요.
그러니까 재물이 있을 때는 돈이 있다고 뻐기는, 지위가 있으면 지위가 높다고 뻐기는, 인기가 있으면 인기가 있다고 뻐기는. 스님이 되도 ‘내가 스님이다’ 하고 뻐기는 이게 아상이란 말이오. 그래서 우리가 이것을 버려야 한다. 그래서 언제나 겸손해야 한다.
겸손하다고 하는 게 거꾸로 비굴해서는 안 된다는 거요. 그저 높은 사람한테 가서 굽실굽실하고, 돈 좀 얻으려고 이렇게 비굴해서는 안 된다.
아무것도 바라는 바가 없기에 당당해야 된다.
당당해야 된다는 게 보시를 한분에게 고맙다 소리를 안 하는 게 당당한 게 아니다.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을 내야 되죠.
그것이 작은 돈을 냈든 큰돈을 냈든, 하루를 와서 도와줬든 한 달을 도와줬든
도와준 분들에게는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을 내야 된다.
이렇게 겸손한 태도와 당당한 태도, 이게 수행자의 길이다.
비단 스님들만 말하는 게 아니겠죠? 이 법문을 드는 사람이 당시에 스님들이었기에, “나의 제자 비구들아.” 이렇게 말했을 뿐이고,
만약에 이게 재가자들에게 하셨다면 “나의 제자들아.” 이렇게 말했을 거요. 승속을 나누지 않고.
그래서 오늘 우리 불자들이 불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언제나 인생을 사는데 있어서 좀 당당하셔야 됩니다. 그런데 보면 늘 어깨가 움츠려 들고, 위축이 되고, 눈을 내리 깔고, 우울한 얼굴을 하고,
그래서 남이 보면 불쌍하게 보이게.
그게 겸손한 거 아니에요.
비굴한 거죠.
사람이 불쌍하게 보이면
동냥은 줄지언정 닮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수행자들이 이렇게 불쌍하게 신도들에게 보이면 여러분들이
“아이고, 우리 스님 불쌍하다.” 이래서 보시는 좀 할지는 몰라도,
‘내가 스님이 되고 싶다. 우리 아들 스님 됐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 안하죠. 불쌍히 보이니까. 이것은 전법의 힘이 떨어지는 거요.
전법이라는 것은 거기 당당함이 있어야 됩니다.
‘나도 스님이 됐으면 좋겠다. 우리 아들도 저렇게 스님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마음이 들어야 되는 거요.
그러려면 사는 게 기쁘고 비록 다 떨어지는 옷을 입고 살아도
늘 싱글싱글하면서 좋은 일 하면서 당당하게 이렇게 살아야
돈이면 다 하고, 권력이면 다 하고. 명예면 다 하고 이러다가 인생이 고달파지고 힘들면
“아, 스님처럼 저렇게 살면 좋겠다.” 이렇게 부러워야 된단 말이오.
부러워야 ‘나도 저렇게 살겠다.’ 이런 마음을 낼 거 아니겠어요? 이게 전법의 힘입니다. 그래야 이 법이 멀리멀리 퍼져나간단 말이오.
그래서 오늘 우리 불교는 당당함을 잃고 비굴해진 측면이 있고, 또 반대로 겸손한 게 많이 없어지고, 교만한 그런 측면이 있다.
그런데서 우리가 교만은 버리고 겸손해야 한다. 또 비굴함은 버리고 당당해야 한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잘 익은 벼의 싹처럼 고개를 숙이는 겸손함과
또 알이 꽉 찬 낱알처럼, 그런 당당함이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진실한 불자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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