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2)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제124회 귀신 공포증

Buddhastudy 2012. 4. 9. 22:10

  방송 보기: BTN

 

. 내가 팔을 이렇게 올리고 내리고 하는 것은 내 의지로 하죠. 그런데 지금 심장이 뛰는 건 내 의지로 합니까? 저절로 됩니까? 저절로 되죠. 그러니까 지금 내장기관이 움직이는 거는 저절로 일어나요. 내가 소화하지 마라 한다고 소화 안 되고, 심장 뛰지 마라 한다고 심장이 안 뛰고, 숨 쉬지 마라 한다고 숨 안 쉬어지고 이런 게 아니에요. 이것은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고 움직이고 하는 것은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 내가 어떤 명령을 해야 움직이게 된다.

 

그것처럼 우리들의 마음에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들의 정신작용에도. 의식,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의식이 있고, 내가 비록 감지 못하고 저절로 작용하는 무의식이 있다. 이런 얘기요. 이 무의식은 우리 몸하고 아주 밀접하게 연관이 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어둡다 하면 의식적으로는 불을 켜나 끄나 똑같습니다. 그런데 무의식의 세계에서는 불을 켜면 두려움이 없어지고, 불을 끄면 두려움이 생기고. 이것은 오랫동안 우리가 어떤 공격을 받을 때 어두울 때 공격을 많이 받죠. 그죠? 밝으면 뭐 할 수가 있다? 피할 수가 있지 않습니까? 그죠?

 

이것은 오랜 삶 속에서 저절로 형성이 된 거에요. 그러기 때문에 이게 저절로 작용을 합니다. 무서워해야지 한다고 무서워지는 게 아니라, 무서워해야지 안 해도 두려움이 일어나고, 무서워 안해야지 한다고 안 일어나는 게 아니라, 안해야지 해도 저절로 일어납니다. 마치 심장이 뛰어라 해도 뛰고, 뛰지 마라 해도 뛰고. 그건 나하고 관계가 없이 지가 알아서 움직인다. 그런데 우리 호흡 같은 거 보면 어떠냐? 내가 호흡을 의식 안 해도 호흡이 됩니까? 안됩니까? 호흡이 되죠.

 

그런데 호흡 같은 경우는 내가 또 멈추자 하면 일시적으로 멈추어 집니까안 멈추어 집니까? 멈추어져요. 빨리하고 싶으면 빨리하고, 천천히 하고 싶으면 천천히 하고, 멈추면 멈추고. 이렇게도 돼요. 그러니까 큰 근본 틀은 저절로 일어나지마는 부분적으로는 이렇게 의식을 따르는 거요. 그런 것처럼 우리들의 이 마음의 작용도 근본적으로는 그 까르마에 의해서 업식에 의해서 이렇게 내 의지와 관계없이 자동으로 작동을 하는데, 어느 정도 우리가 의지에 의해서 이것이 또한 부분적으로 컨트롤이 가능하다. 이런 얘기요.

 

그런데서 일상적인 호흡을, 호흡을 길게 하는 복식호흡이나 단전호흡을 자꾸 연습하면 어때요? 호흡을 길게 할 수 있는 것처럼, 어둠속에 두렵지마는 그러나 의식이 어둡다고 두렵나? 어둡다고 무슨 강도가 나타나는 건 아니지 않느냐? 방안에서 불을 켠 상태에서 두렵지 않는데 끄면 두렵다. 그러면 껐다가 켰다가, 껐다가 켰다가, 껐다가 켰다가 하면서 두려움이 있다면 밝고 어둠이 있느냐? 마음에서 일어나느냐? 이걸 계속 실험을 해보면 어디에서 일어난다는 걸 알 수 있다? 마음에서 일어난다. 밝고 어둠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다. 이런 얘기요.

 

이런 것을 첫째 자각을 하고, 두 번째 자각했음에도 불구하고 불을 켜면 나도 모르게 어두움이 일어나니까. 어두움이 두려움의 원인이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불을 켜놓고 두려움이 일어나는 가운데서 어두움은 두려움이 아니야. 그건 네가 어두울 때 늘 두려워했던 오랜 습관 때문에 자동으로 일어나는 거야. 그러니까 어두운 가운데서도 두렵지 않다는 걸 내가 자각을 했기 때문에. 즉 두려움에 휩쓸리면 어떠냐? 불을 켜야 되는데, 어두움 자체는 두려움하고 관계가 없다. 다만 오랫동안 그렇게 내가 습관들여 살았기 때문에 자동으로 일어나는 거다. 나도 모르게 일어나는 거다.

 

이렇게 자각을 하면 불을 꺼놓고 두려움이 사라질 때까지 지속적으로 기다려 볼 수가 있다. 즉 어두운데도 두렵지 않는 연습을 할 수 있다 이거야. 처음엔 잘 안되겠죠. 그러나 외진 곳에 있으면 두렵다. 어떤 곳 산에 가서 같이 있으면 두렵지 않고 혼자 있으면 두렵다. 그럼 이것도 혼자 있는 연습을 해보는 거요. 그런데 이게 자각이 안 되면 두려워서 혼자 있을 수가 없는데, 자각이 되면 두려운 가운데서도 혼자 있을 수가 있죠. ? 두려움은 혼자 있는데서 오는 게 아니라는 걸 내가 알기 때문에. 이것도 계속 연습을 해야 어때요? 나도 모르게 일어나는 습관성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그러니까 먼저 이것을 알아차려야 되고, 두려움이 밖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되고. 두 번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이 일어날 때 내가 밖에서 오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에 이걸 회피하지 않고 거기서 지속적으로 이 변화를 지켜볼 수가 있게 된다. 이렇게 자꾸 연습을 하게 되면 어때요? 어두운 가운데도 두렵지 않은 세계로, 혼자 있는데도 두렵지 않는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어두우면 두렵다든지 혼자 있으면 두렵다든지 하는 것은 사람에 따라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모든 사람이 다 있는 거다.

 

아주 두려운 사람, 불만 끄면 두려워서 막~ 소리를 질러야 될 이런 사람도 간혹 있듯이. 아무리 어두워도 어두운거로는 아무 두려움을 잘 못 느끼는 이런 사람도 어때요? 간혹 있다. 그래서 옛날부터 뭐라고 그래요? 누구는 담이 크다. 누구는 담이 작다. 이런 말을 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까르마, 업이 형성된 차이 때문에 오는 거요. 보통 엄마가 심리적 안정감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서 자란 아이들은 혼자 있거나 어둡거나 이런 데 대한 두려움이 적은편이고,

 

엄마가 늘 심리불안상태에 있었던 사람, 또는 본인이 어릴 때 눈을 떴는데 낮에 잤는데 깜빡 자가지고 어두워질 때까지 잤어. 눈을 떠서 엄마 하는데 깜깜하고 아무것도 안보이고 엄마도 없어. 그래서 그 어두움 때문에 갑자기 두려움을 느꼈다. 이런 상처가 이렇게 무의식세계 사이에 있는 사람은 어두움에 대해서 거의 선천적으로 두려워하는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그러니까 이제는 이것은 어떻게 형성되었든 나의 까르마, 나의 업식이니까. 본인이 이제 이걸 알았으니까.

 

그러니까 자기 까르마 대로 습관대로 살려면 가능하면 불을 켜놓고 살면 되는 거고, 어두운 데는 안가면 되는 거고. 이걸 극복을 하겠다고 생각한다면 불을 꺼놓고 혼자 있는 연습을, 꺼놓고 있는 연습을 자꾸 해야 되겠지. 그 다음에 가위에 눌린다. 이런 거는 주로 어릴 때 꿨던 악몽이 이렇게 반복되는 경우가 있는데, 주로 기가 막혔을 때, 즉 체했을 때 주로 많이 악몽이 꾸어집니다. 이건 신체적으로 가만히 자기 악몽을 꿀 때 자기 상태를 조사를 해보면. 그럴 때는 일어나서 운동을 하고 체기를 내리고 자면 그런 것이 일어나지 않게도 된다. 이렇게 볼 수 있어요.

 

불을 꺼놓고 가만히 앉아있으면 눈을 감고 불을 켜놓고 눈을 감고 있어보면 되죠. 불을 켜놓고 또는 낮에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있으면 두려움이 없다면 사실은 어두운데도 두려움이 없잖아. 그죠? 그러면 불을 켜놓고 눈을 감고 앉아있어 보고, 불을 끄고 눈을 감고 있어보면 되죠. 그러면 똑같은 상황인데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상황인데 두려움이 있다 하면 두려움을 가만히 두려움이 일어난 상태를 계속 보면 되죠. 알아차리면. ‘~ 내가 지금 힘들어하구나.’ ‘두려워하구나.’ 그것을 지속적으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그것이 가라앉을 때까지 계속 보면 되죠.

 

그런데 한 오 분쯤 하다가 에라 모르겠다고 불을 켠다든지 그러지 말고, 그러니까 그걸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계속 하면, 그러다가 졸려가지고 자버리면, 두려워하다 자는 건 아니잖아요. 수행하다가 자는 거니까. 잠이 왔으면 좋은 거지, 잠이 안와서 문제라니까. 잠이 오면 좋은 거고 잠이 안 오면 열 시간이라도 지켜보면 되는 거고. 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