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게으르지 않아서 다스릴 줄 몰라요. 나는 예전에도 살기 바빠 가지고, 나는 그저 밥만 안 거르고 먹고, 그저 어디 기차간이든, 의자이든. 처박혀서 잠잘 시간만 쬐끔 있으면, 별로 나머지는 바라는 거 없었어요. 왜 그냥 앉아버려. 계속해야지. 해결이 됐어요? 해결하려고 여기까지 와가지고 해결이 됐으면 앉고 해결이 안 됐으면 물어야지.
그런데 왜 자기가 문제가 있어가지고 찾아와놓고, 자기 문제는 안 꺼내 놓고 나한테 내가 어쨌느냐? 물어. 그러니까 나도 나보고 물었으니까 그렇게 말했을 뿐이야.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기 싫다고? 자면 되지 그러면. 그거 뭐 걱정이오. 일어나기 싫으면 그냥 자 버리면 되지. 그러면 지각한다고? 당연히 지각하지. 야단맞는다고? 당연히 야단맞지. 짤린다고? 당연히 짤려야지. 그거 뭐 지은 인연의 과본데. 돈을 빌렸으면 갚아야 되는 거고, 똑같은 거 아니오. 갚기 싫으면 안 빌리면 되는 것처럼.
짤리기 싫으면 일어나기 싫어도 어이해야 된다? 일어나면 되는 거고, 야단맞기 싫으면 일어나기 싫어도 일어나면 되는 거고, 지각하기 싫으면 일어나기 싫어도 일어나야 되는 거고 이런 거요. 인생이란 게. 알약 하나 탁~ 먹으면 아침에 싹~ 일어나는 거, 그런 거 달라는 거요? 지금? 뭘 원하는 거요? 흐흠흠. 그래요. 답은 들었다니까 됐고. 충고로 한마디. 답은 찾았다니까 그건 끝내고, 아침에 ‘일어나야지’, ‘일어나야지’ 하고 결심하지 말고, 벌떡 일어난다. ‘일어나야지’, ‘일어나야지.’ 하는 것은 누워있을 때 생기는 번뇌입니다.
일단 일어나버리면 ‘일어나야지.’ 하는 번뇌가 일어납니까? 안 일어납니까? 안 일어나지. 그건 안 일어났을 때 생기는 번뇌요. 일어나버리면 일어나야지 하는 결심도 필요 없고 각오도 필요가 없어요. ‘일어나야지.’ 하는 거는 번뇌에 속해. 망상에 속해. ‘일어나야지’ 하는 건 일어나고 싶다는 뜻이 아니고 ‘일어나야지.’ 이 말은 ‘일어나기 싫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일어나야지를 다섯 번 반복하는 건 일어나기 싫다를 다섯 번 외치는 거니까 못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일어나야지 하고 두 번 세 번 결심을 하지 말고, 일어난다. 어떻게? 벌떡. 그냥 쓱~ 일어나버리는 거요. 생각을 하지 마라. 일어나라. ‘가야지하지.’ 말고 뭐해라? 가라. 그러니까 늘 이렇게 해야지 하는 거는 하기 싫다는 말이야. 그런데 우리가 지금 착각하고 있어. 해야지가 뭐다? 하고 싶다는 거로 착각합니다. 아시겠어요? 해야지 하는 거는 하고 싶다는 거요? 하기 싫다는 거요. 하기 싫다는 거요. 싫으면 안 해도 돼요. 보시해야지. 하기 싫다. 이 말이오.
물론 이제 ‘하기 싫다 이거는 아니에요.’ 그러면. 두 가지에요. 해야지 할 때 하고 싶은 생각도 쬐금 있는데, 천 원만 하고 싶어. 그런데 줄려면 십만 원은 줘야 될 거 같은데, 천원을 어떻게 주나? 계산한다고 그래 복잡한 거요. 그러니까 안 줘도 괜찮고, 천 원 줘도 괜찮고, 만원 괜찮고, 그건 해야지 하지 말고 뭐해라? 형편 되는 데로 해버려라. 그러면 해야지 하는 번뇌가 없어져 버려요. 그 움켜쥐고 있을 필요가 없어요. 이런 거 움켜쥐고 있으면 피곤한 거요. 내 머리를 맴도는 거요.
누워서는 계속 일어나야지. 일어나야 되는데. 아이고 이러면 늦는데. 이래 머리 맴돌지마는 일어나 버리면 싹 없어져요. 온갖 꿈이 꿔지지만 눈떠버리면 없어지듯이. 그러니까 어떻게 일어나느냐? 묻지 말고, 벌떡 일어나버린다. 어떻게 하느냐? 하지 말고 해버린다. 어떻게 가느냐? 하지 말고 출발을 해버린다. 그렇게 몇 번 연습을 하면 돼요. 안 되는 거는 마음에서 안 되는 거요. 늘.
저 사람한테 사랑한다고 고백해야지. 이거는 퇴짜 맞을까 봐 두려워서 그래요. 아시겠어요? 그거는 그 사람의 마음을 내가 너 사랑한다 하면 그 사람도 나도 너 사랑한다. 상대의 마음을 내가 지금 강요하는 거요. 그래서 내가 망설이는 거요. 그러니까 내가 사랑하는 건 내 마음이고, 지가 싫다는 건 누구 마음이다? 지 마음이고, 남의 마음에 내가 간섭할 필요가 없어요. 관여할 수도 없어요. 사실은. 그러기 때문에 그거 알면 그냥 표현해버리면 되는 거요. 내 너 좋다. 이렇게.
그럴 때 나도 너 좋다. 요 말 들을 생각을 안 해야 된다. 이 말이오. 그런데 우리는 그 말 듣고 싶어요? 안 듣고 싶어요? 듣고 싶어요. 그 욕구 때문에 망설여지는 거요. 말을 못 하는 거요. 그 욕구 때문에. 그 기대 때문에 말을 못하는 거요. 싫을 때 싫다. 말 못하는 이유는 비난받을까 봐 두려워서 그래. 욕 얻어 먹을까 봐 두려워서. 손해 볼까 봐 두려워서. 그러니 일어나기 싫으면 자 버리든지. 그러면 손해가 나잖아. 그죠?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 된다? 벌떡 일어나버리든지.
싫으면 안 하면 되는데 안 하면 손해 보니까 어떻게 해야 된다? 싫어도 어떻게 해야 된다? 해버린다. 좋으면 하면 되는데 했다가는 손해 볼 거 같으면 좋아도 뭐해야 된다? 안 해야 되는 거요. 이게 인생이에요. 좋은데 어떻게 안 하노? 싫은데 어떻게 하노? 그 얘기는 스무 살 밑에 어린애 때 하는 소리요. 어린애는 그렇게 말해도 돼요. 왜? 어리니까. 모르니까. 그러니까 천방지축이잖아. 그러니까 이해하죠. 저게 철없어서 저렇구나. 그런데 스무 살이 넘으면 그래 철없는 짓 하면 안 돼요. 자기가 선택에 따른 자기 책임을 져야 되는 거요.
Q2
옛날식으로 말하면 心身심신이 깊어 좋습니다. 그런데 정토회 온 지 얼마 됐어요? 예. 한참 초발심이 지금 날 때에요. 그런데 3년 정토회에 있을지, 없을지, 3년 지나 보고 그때 와서 스님께 감사기도 하세요. 지금은 이게 원수로 갈지, 친한 이로 갈지. 원수로 갈 확률이 더 높은데. 아닙니다. 그러는데 기대가 크기 때문에 실망도 클 거요. 아이~ 지금이야 아닌 거 같지. 지금 벌써 그게 들면 어떻게 하겠어? 그래서 이렇게 기도하세요. 부처님 법 만나 감사합니다. 저는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습니다.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요렇게 기도하세요. 다른 거 다 빼고.
‘부처님 법 만나서 감사합니다. 저는 아무것도 바라는 게 더 이상 없습니다.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알았습니까? 그렇게만 기도하지. 우리 손자 어떻게 되라. 저렇게 되라. 이런 얘기 하지 말고, 그렇게만 딱 3년간 기도해 보세요. 만약 그렇게 3년 기도해가지고 요런 기대심리 집착이 다 끊어지면, 손자가 저절로 잘 될 거고, 요거 움켜쥐고 애를 어떻게 하겠다. 어떻게 하겠다. 어떻게 하겠다. 자꾸 이렇게 생각하면 결과는 나빠집니다. 내 의도와 달리. 의도와 달리 결과는 나빠진다. 알았어요? 뭐라고?
‘부처님법 만나서 감사합니다. 저는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습니다.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그렇게 기도하세요. 나머지는 다 두고. 그냥 손자고 뭐고 그냥 놔두고, 크도록, 지 마음대로 크도록 놔 놓고, 그러고 3년 기도 하고 나서 이제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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