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3)

법륜스님의 하루_ 수행이란 무엇인가요? (2023.07.03.)

Buddhastudy 2023. 10. 17. 19:39

 

 

오늘은 입재식을 맞이해 수행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괴로움이 없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합니다.

괴로움이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삶을 사는 사람이 바로 수행자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괴로움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들에게 왜 괴로운가요?’ 하고 물어보면

대부분이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고 대답합니다.

아내가 문제라고 하거나, 남편이 문제라고 하거나, 부모가 문제라고 하거나

자식이 문제라고 하거나, 친구가 문제라고 하거나

회사의 상사나 부하직원이 문제라고 하거나,

이렇게 다른 사람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 세상이 문제라고 말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내가 알지도 못하는 전생과 사주가 문제라고 하거나

하느님이 나를 미워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수행이란 무엇인가요?-

그들에게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은 무엇인가요하고 물어보면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변화해야 한다고 대답합니다.

아이가 변화해야 하고, 남편과 아내가 변화해야 하고

심지어 전생과 사주도 변화해야 하고, 하느님의 마음까지도 변화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을 기준으로

그런 조건들이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바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기준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도록

그런 조건들이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변화는 내 힘만으로 이뤄낼 수는 없기 때문에

힘 있는 누군가에게 부탁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부탁할 때는 주로 두 가지의 방식을 씁니다.

첫째, 어떤 물건이나 돈, 선물을 주면서 부탁합니다.

둘째, 도와달라고 굽신거리며 빌어서 부탁합니다.

 

이렇게 무언가를 신에게 선물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비는 행위를 하는 것이 바로

뿌자(Puja), 즉 제사입니다.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이 제사장입니다.

종교를 가진 사람은 도움을 요청하는 상대에게 늘 고개를 숙이고 빌어야 합니다.

심지어 스스로 저는 당신의 종입니다하고 고백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붓다의 가르침은 이것과는 정반대입니다.

나의 괴로움은 바로 나의 어리석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붓다의 가르침입니다.

나의 지나친 욕망과 내가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괴로움이 발생했다는 것이지요.

, 괴로움은 밖으로부터 오는 게 아니라 나로부터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만약 어리석음을 깨우쳐서 밝은 지혜를 갖는다면

누구나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나의 지나친 욕망을 자제하고, 서로 다름을 인정해서

내가 옳다는 주장을 내려놓으면

모든 사람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붓다의 가르침에 따르면

우리는 괴로움을 해결하기 위해서

누군가에게 빌거나 부탁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의 문제를 자각해서 스스로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평화와 세상의 평화를 가져오는 길-

 

수행을 하면 할수록 괴로움이 점점 줄어들게 됩니다.

수행을 하면 할수록 비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어리석음을 깨우치고 지혜가 생겨남으로써 얼굴이 밝아지고

세상을 총체적으로 바라보는 힘을 갖게 됩니다.

 

수행을 하면 욕망을 자제하게 되기 때문에

무언가를 더 가지려 껄떡거리지 않게 됩니다.

설령 내가 돈이 많더라도 욕망을 자제하고 살기 때문에

검소하게 살게 됩니다.

검소하게 살면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기 때문에

오히려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가 있습니다.

검소하게 살면 소비가 적어지기 때문에

기후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서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가 있게 되고

서로 더 가지려고 다투지 않으니 평화를 가져옵니다.

 

내가 옳다는 주장을 하지 않고

나와 다른 생각을 인정하기 때문에

더 이상 갈등을 일으키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행은 마음의 평화를 가져오고

나아가 세상의 평화까지 가져오는 길입니다.

 

내가 옳다는 주장을 하지 않고, 내가 잘났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설령 지위가 높다고 해도 겸손합니다.

괴로움 없는 행복한 삶을 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베풀고 또한 겸손하기까지 하니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죽어서 좋은 곳에 간다거나 나쁜 곳에 간다거나 하는 생각도 할 필요가 없고

더 많은 돈과 지위를 얻고자 누군가에게 빌어서 부탁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살아있는 것에 감사하면서

일상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하루하루를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면

이 세상을 사는데 특별히 어려울 일이 없습니다.

이렇게 괴로움 없는 삶을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가는 것을

수행이라고 말합니다.

 

 

-108배를 하는 이유-

 

그러나 지금까지 어리석게 살아 온 습관 때문에

비록 자각한다 해도 금방 괴로움이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동안 살아온 관성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괴로움에 빠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괴로움이 없고 자유로운 삶을 향해

하루하루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것이 수행입니다.

 

수행을 해서 변화가 일어나면 변화가 일어나서 좋은 거예요.

변화가 일어나지 않아도 지금까지 잘 살아왔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습니다.

변화가 빨리 일어나야 된다고 욕심을 내면

변화가 빨리 일어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또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괴로움이 없는 쪽으로 나아가겠다고 삶의 방향을 선택했다면

이제는 꾸준히 해 나가는 일만 남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아침에 일어나면 눈을 뜨자마자 적어도 한 시간은

살아있는 기념으로

자기 자신을 행복하고 자유롭게 하는 일에 가장 먼저 시간을 사용하는 겁니다.

가족을 위하고 사회를 위하는 것도 좋지만

제일 먼저 자기 자신을 위해서 1시간을 사용하는 거예요.

 

한 시간 동안 수행을 하는 방법은

첫째, 수행문을 읽고, 수행이 무엇이라는 관점을 분명히 해야 됩니다.

둘째, 어제 하루의 삶을 돌아보고, 수행적 관점을 놓친 경우가 있었는지 떠올려 봅니다. 생각이 서로 다를 뿐인데 내가 옳다는 생각에 집착하면

짜증이 나거나 화를 내게 됩니다.

그 순간을 돌아보며 서로 다를 뿐인데 내가 관점을 놓쳤구나하고 뉘우치게 됩니다.

내가 어제 우울했다면 왜 우울했는지 살펴보는 거죠.

 

친구들이 나보다 월급도 많고 재산도 많아서 마음이 우울했구나.

내가 욕망에 너무 끄달렸구나!’

이렇게 자각하면 우울감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항상 수행적 관점을 놓치지 않고 깨어있으면

괴로울 일이 없어요.

괴로움을 느꼈다는 것은

이미 수행적 관점을 놓쳐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 내가 수행적 관점을 놓쳤구나!’ 하고

원래 자리로 되돌아오는 것이 참회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 망상에 빠지기 쉽기 때문에

, 내가 놓쳤구나!’ 할 때마다 절을 한 번씩 함으로써

더욱더 분명하게 자각을 하게 되는 거예요.

 

절을 하면 두 가지 효과가 있습니다.

첫째, 전신 운동이 되기 때문에 육체의 건강에 매우 도움이 됩니다.

특히 현대인들은 운동이 부족하기 때문에

아침에 108배 절을 하는 정도만 해도 기본적인 운동을 하게 돼요.

둘째, ‘내가 옳다하고 집착하는 교만심과

자기주장이 조금 수그러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것은 비굴한 것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스스로 잘못을 자각하고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수행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제자들아,

비굴하지 말고 당당해라!

교만하지 말고 겸손해라!’

 

그런데 우리는 당당함과 교만함, 겸손함과 비굴함을

자꾸 혼동해서 생각합니다.

당당하라고 하면 교만해지고,

겸손하라고 하면 비굴해지기가 쉬워요.

이것은 잘못된 관점입니다.

 

수행자는 누구에게도 빌 일이 없는 당당함을 갖되

모든 사람에 대해서 늘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불법을 직접 체험하는 방법-

 

서양 문화에서는

신을 제외하고는 절을 하지 말라는 관념이 있어서

절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갖는 사람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때로는 절을 하는 것이 비굴함의 상징처럼 비춰질 때도 있습니다.

 

여기에는 약간의 문화적 오해가 있습니다.

절은 신에게 비는 행위가 아니에요.

비굴한 동작이 아니라 스스로를 겸손하게 낮추는 동작입니다.

물론 오늘 처음 입재하는 분들은

절을 해보면 조금 어색하거나 약간의 거부반응이 일어날 수도 있어요.

어떤 일이든 처음 하게 되면 서툴러서

약간 하기 싫은 마음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절을 꾸준히 해서 조금만 익숙해지면

삶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법문을 듣거나 불교대학을 다니는 것은

이치로 불법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매일 아침마다 하는 이 수행정진은

불법을 내 몸과 마음에서 직접 체험하는 것이에요.

 

부처님이 훌륭하시다’, ‘법륜스님이 훌륭하시다하는 말은

모두 남의 얘기입니다.

내가 직접 경험해서 내 것으로 만드는 것만이

나의 자산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 오늘부터 100일 동안

매일 아침 눈뜨자마자 1시간은

자신을 위해 정진하는 시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