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수행하게 되면서
지적당하는 것을 불편해하고 싫어하는 내 모습을 보았습니다.
나에게도 이런 모습이 있다는 것을 처음 발견했을 때는
인정하기도 싫었고 정말 짜증이 났습니다.
‘내가 저 사람과 똑같네’ 하는 생각에
시간이 가면 갈수록 답답하고 무섭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상대방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는데
수행을 통해 그 생각에서 벗어나
‘내 문제이구나’ 하고 생각했다가
지금은 또다시 상대방에게서 내 결점을 보게 되니까
어떻게 해야 될지 답답합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수행해야 될까요?//
제가 한 가지 물어보겠습니다.
만약에 질문자에게 암이 있다고 한다면
의사가 진단해서 몸 안에 있는 암을 발견하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암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 좋을까요?
암을 발견해야 수술을 해서 고치든지,
혹은 죽는다고 하더라도 원인을 알고 죽을 것 아니겠습니까?
그것처럼 질문자에게 못된 성질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좋을까요? 모르는 것이 좋을까요?
내가 암이 있는 줄 모를 때는
의사가 암을 발견해서 알려줘야 합니다.
그것처럼 나에게 더러운 성질이 있는 줄을 내가 모를 때
남편이든 누구든 상대편이 알려주면
좋은 일이에요? 나쁜 일 이에요?”
좋은 일인데 왜 속이 상해요?
...
이해는 돼요.
암을 몰랐을 때는 술 먹고 잘 놀았을 겁니다.
오늘 아침에 암이라고 알고 나면
술도 못 먹겠고, 수술할 걱정도 해야겠지요.
만약 오늘까지도 암인 줄 몰랐으면
‘오늘까지도 잘 놀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 겁니다.
질문자의 심정은 이해가 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암을
조기 발견하는 것이 좋아요? 늦게 발견하는 것이 좋아요?”
스스로 발견하면 다행인데,
스스로 발견하지 못하면 남이라도 발견해 주면 좋지 않아요?
그래요. 남이 조기 발견하도록 도와주었는데
질문자는 도리어 못마땅해하고 있는 겁니다.
암을 발견했다고 의사한테 가서
‘그냥 넘어가지 왜 그것을 찾아내었느냐?’ 하고 항의하는 격입니다.
질문자가 수행자가 아니라면 몰라도
수행자라면 다른 사람이 나의 문제점을 지적해 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순간적으로는 기분이 나쁠 수 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차피 이미 있는 것을 발견한 거잖아요.
나에게 없으면 몰라도 이미 있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니 ‘지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마음을 내야 합니다.
지금은 미워하는 마음이 없어졌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싫으니까 꼴도 보기 싫었는데
정작 내게도 그런 모습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니
오히려 상대방을 미워하지 못하겠습니다.
상대방을 미워하면 결과적으로 나 자신을 미워하게 되는 것이니까요.
나 자신을 미워하면 안 되죠.
암이 생겼다고 나 자신을 미워하면 어떡해요?
암이 생겼으면 암만 도려내면 되고
성질이 급하다면 급한 성질만 고치면 되고
짜증을 잘 낸다면 짜증을 잘 내는 것만 고치면 되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몸 자체를 다 죽이려고 하면 안 되죠.
몸을 죽이면 암도 죽습니다.
하지만 그게 바로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입니다.
내 성질이 좀 더럽다고 자살을 해 버리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에요.
성질이 더러우면 그 성질만 고치면 됩니다.
문제가 있으면 그것만 고치면 되지
다른 것은 손댈 것이 없습니다.
자신을 너무 학대할 필요도 없고
남을 미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렇게 관점을 가지고 꾸준히 정진하면 좋겠습니다.
말하는 것이나 표정을 보니까
질문자는 조금 막무가내인 성격이 있는 것 같아요.
이런 말을 했다고 스님을 또 미워할까요?
질문자는 자신을 조금 더 살피는 자세가 필요해 보입니다.
내가 막무가내로 행동하면 다른 사람도 그걸 다 알아요.
그런데 아무도 지적을 안 해 줍니다.
왜 그럴까요?
지적을 해주면 욕을 얻어먹을까 싶어서 그렇습니다.
만약 지적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에요.
사람들이 왜 법륜스님을 좋아할까요?
그런 말들을 해주니까요.
그러나 남편이나 아내가 그런 말을 해주면
기분이 나빠서 귀에 잘 안 들립니다.
질문자에게도 그러한 면이 조금 있으니까
누가 지적을 해주면 스스로를 살피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기죽을 필요도 없습니다.
병이 발견되었다고 무조건 죽을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고치면 되니까요.
상대를 욕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렇구나’ 하고 고칠 수 있으면 고치되
못 고쳐도 괜찮아요? 그래도 알고 못 고치는 것이 나아요?
못 고칠 바에야 모르는 것이 나아요?
그래도 알고 못 고치는 것이 낫습니다.
왜냐하면 알고 못 고치면
내가 옳다는 주장이 좀 적어집니다.
화를 잘 내더라도 내가 화를 잘 낸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남이 지적했을 때 반발이 좀 약합니다.
그런데 나도 모르고 있으면
‘뭐라고?’ 하면서 반발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 못 고치더라도 아는 것이 낫습니다.
알고 있으면 그에 맞추어서 조절하고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요.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정토회는 기본적인 교육 프로그램과 법회 프로그램을
모두 온라인으로 진행하고 있지만
실천 활동이나 수련 프로그램은 모두 오프라인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시간을 내셔서 봉사도 하고 수련도 참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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