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31살입니다.
집을 나온 지 5년 정도 되었고, 그동안 부모님과 연락을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집을 나온 이후로도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고
일상생활에서도 뭔가 답답하고 마음속에 걸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부모님을 강하게 원망했지만,
최근에는 '그래도 낳아 주셔서 감사하다'라고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어요.
하지만 진심으로 감사한 감정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모님께 왜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저를 낳아주신 것 자체는 감사하지만
성장 과정에서 힘든 기억이 많았고
부모님이 저를 낳은 것도
결국 자식이 있길 바라는 그들의 욕심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요.
그래서 이제 성인이 된 저는 부모님을 미워하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고
담담한 태도를 유지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왜 억지로 감사한 마음을 내야 하나요?//
감사한 마음을 안 가져도 됩니다.
중요한 건 미워하지 않는 거예요.
감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미워하지만 않으면 됩니다.
사실을 따져 보면,
우리가 길 가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듯이
부모님도 미워할 이유가 없어요.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냉정하게 계산해 보면,
자식이 부모에게 받은 것이 더 많습니다.
부모가 늙어서 자식에게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대부분 부모가 자식에게 더 많은 것을 주지요.
부모님이 야단을 쳤다고 해도
그것은 부모님의 성격 때문일 수가 있습니다.
부모님이 이혼을 한 것도 자식이 개입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는 이런 일들이 깊은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어른에게는 일상적인 일이지만,
아이에게는 그때 받은 상처가 오래 남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가 아이를 키울 때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렇다고 부모님이 일부러 나를 힘들게 하려고
그렇게 했던 것은 아닙니다.
부모님도 그저 본인의 수준에서 최선을 다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 상처를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성인이 된 지금은 ‘그럴 수도 있었겠다’ 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렸기 때문에 더 크게 상처를 받았던 것입니다.
성인이 된 지금이라면 같은 상황에서 그렇게 큰 상처를 받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렇다면 미워하는 감정을 없애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요?
바로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억지로 감사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미움을 없애는 가장 적극적이고 빠른 방법이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부모님이 나를 낳아 주고 키워준 것에 대해 감사해하면
미워하는 마음은 사라져 버립니다.
물론 ‘부모님이 나를 원해서 낳았고
자신이 좋아서 키운 것이지
나를 위해 키워준 것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지금 내가 미워하는 감정을 없애려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 감사하는 마음을 내는 거예요.
논리적으로 따져 봐도
자식이 부모에게 받은 것이 더 많습니다.
만약 제가 길을 떠돌며 남의 집에서 밥을 얻어먹고,
처마 밑에서 잠을 자야 하는 상황이라고 합시다.
누군가가 저를 재워주고 밥을 주지만
매일 야단을 치고 가끔 한 대 때리기도 합니다.
이럴 때 어떤 것이 더 나은가 하는 문제입니다.
저라면 한 대 맞고 밥을 얻어먹는 게 낫다고 생각할 거예요.
그것처럼 부모에게 받은 혜택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부모니까 나에게 마땅히 잘해줘야 한다’라는 생각만 하니까
불만이 생기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만큼 부모가 해주지 못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길 가는 사람과 비교했을 때
부모님은 그래도 나에게 혜택을 준 사람이에요.
그래서 미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미워하는 감정을 가장 빨리 없애는 방법이
바로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에요.
감사하는 마음을 내면 미움은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미움이 남아있는 것은 감사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에요.
감사하지 않아도 되지만
미워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
네. 아무 문제없어요.
자연계에서도 새가 둥지를 떠나면
부모와 따로 사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연락하고 싶으면 하면 되고, 연락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요.
그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부모님이 자식을 보고 싶어 괴로워한다면
그것은 부모님의 문제이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에요.
하지만 내가 부모님께 죄책감을 느낀다면
그 죄책감을 없애기 위해 연락을 할 필요가 있는 겁니다.
부모님을 위해 연락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연락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
그냥 모르는 사람처럼 받아들일 수 있다면 연락하지 않아도 돼요.
하지만 ‘그때 한 번쯤 연락해 볼 걸’ 하고 후회할 것 같다면
그 후회를 막기 위해 지금 연락하는 거예요.
결국 본인이 무엇이 나에게 이로운지 살펴보고 결정하면 됩니다.
나중에 후회하는 것을 피하려면
연락하는 것에 대해 열어두는 것도 방법이에요.
부모님께 잘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그냥 연락하는 것을 열어두는 것만으로도
나중에 후회를 덜 할 수가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연락하는 것을 열어두면
불필요한 스트레스나 갈등이 생길 것 같다면
굳이 열어둘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 내가 부모님을 미워해서 연락을 안 하는 것이라면
그 미움이 내 상처 때문은 아닌가 하고 생각해 봐야 해요.
그 상처가 내 문제라면
결국 나 스스로 해결해야 합니다.
상처가 치유되면 연락하는 것을 열어놓고 살 수도 있는 거예요.
저도 가족들과 연락하는 것을 늘 열어두고 있지만
가족들과 거의 만날 일이 없어요.
너무 바쁘니까 자연스럽게 연락이 뜸해지는 겁니다.
친구나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부러 관계를 끊거나 연락을 차단할 필요는 없어요.
스토커처럼 집착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차단할 이유는 없습니다.
연락을 차단한 결과 나중에 본인이 후회를 하게 될지에 대해
스스로 점검해 보면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있어요.
가족 관계는 무의식에 남아있는 것이기 때문에,
부모가 나에게 상처를 줬다고 해도
내 안에는 부모에 대한 애정이 남아있을 수 있습니다.
어릴 때 부모가 나를 혼냈던 것은 상처로 남았을지 모르지만
부모가 젖을 먹이고 밥을 주고 키운 기억도
무의식에는 남아있어요.
그래서 부모를 보면 상처받았던 기억부터 먼저 떠오르지만
막상 멀어지면 그리운 감정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 많은 후회를 하게 돼요.
‘불효자는 웁니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에요.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는 꼴 보기 싫었는데
막상 돌아가시고 나면 후회가 밀려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부모님과 연락해야 한다는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에요.
18살 이전에 부모가 나에게 해 준 것은 빚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부모가 자식을 낳았다면
당연히 키워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 부모에게 받은 도움은 빚이 아니에요.
그 이후에 도움을 받았다면,
그것은 빌린 것과 비슷한 개념이 됩니다.
그러나 부모가 18살 이전에 자식을 키운 것은 빚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길에서 부모 없이 떠돌던 7살짜리 아이를 데려와 키운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아이가 도움을 받은 것은 맞지만
그것이 빚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처럼 어린 시절 부모가 나를 키운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그에 대해 빚을 졌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후회 없이 살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선택을 할지 스스로 점검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제가 1990년대 중반에
북한에서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그들이 저에게 고마워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그들에게 빚이 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도움은
인간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은행에서 1억 원을 빌렸다가
사업에 실패해서 모든 것을 잃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돈을 갚지 못한다고 해서 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채는 문제가 됩니다.
은행 대출은 법적으로 절차가 정해져 있어서
돈이 없으면 갚지 못해도 문제가 발생하지 않지만
사채는 다릅니다.
사채업자는 돈이 있든 없든 무조건 갚으라고 요구해요.
그래서 사업을 할 때는 사채를 조심해야 하는 겁니다.
처음부터 돈을 갚지 않을 의도가 아니었고
단순히 돈이 없어서 갚지 못한다면
그것은 죄가 안 됩니다.
...
그렇다면 연락을 하지 않으면 돼요.
선택은 본인의 몫입니다.
수행이란 결국 내 감정을 어떻게 조절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부모님이 연락을 하든, 화를 내든, 그것은 부모님의 문제예요.
내가 그걸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수행입니다.
연락을 아예 차단할 수도 있고
열어두되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조절할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
연락이 오면 '알았어, 다음에 보자'라고 대답한 후
실제로는 만나지 않으면 됩니다.
직접 찾아온다고 하면
'바빠서 시간이 안 돼'라고 대답하면 됩니다.
연락을 차단하는 방법도 있고
열어두되 내가 원하는 대로 조절하는 방법도 있어요.
결국 선택은 본인의 몫입니다.
면역력이 약하면 무균실에서 살아야 하지만
면역력이 강하면 다양한 환경에서도 살 수 있는 것처럼
가족 관계도 내 상태에 맞게 조절하면 됩니다.
운전을 배울 때 처음에는 한적한 도로에서 연습하지만
실력이 늘면 복잡한 도로에서도 운전할 수 있죠.
가족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감당할 수 있으면 유지하고, 그렇지 않다면 거리 두기를 하면 됩니다.
20살이 넘으면 가족도 사회적 관계가 됩니다.
가족이라고 해서 무조건 연락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가족이라고 해서 무조건 연락을 끊어야 하는 것도 아니에요.
나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라면 유지하고
나에게 해가 되는 관계라면 정리하면 됩니다.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전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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