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3)

[법륜스님의 하루] 이민 1.5세로 자라오면서 정체성 때문에 힘듭니다. (2023.09.24.)

Buddhastudy 2023. 12. 7. 19:47

 

 

저는 이민 1.5세로서 정체성에 관한 고민이 있습니다.

14살에 캐나다에 이민을 와서 지금 29살이 되었습니다.

처음 정착을 한 도시는 백인 사회였는데요.

한국인을 많이 만나지 않고 자랐고 유색 인종에 대한 차별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겉보기에는 성공한 듯이 잘 성장해 왔지만

속으로는 끊임없이 생각나는 정체성에 관한 고통이 있습니다.

제가 자란 환경에서 나오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두 나라, 한국과 캐나다의 사이에서 공존하고 있습니다.

이민 1.5세로서 온전히 행복한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행동과 생각은 무엇일까요?//

 

 

도대체 정체성이란 무엇일까요?

질문자가 학생이니까 물질을 예로 들어서 이야기해 봅시다.

 

물질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어요.

첫째, 서로 다른 두 종류 이상의 원소가 화학적으로 결합하여 만들어진 물질인

화합물(化合物)이 있습니다.

둘째, 한 종류의 원소로만 이루어진 홑원소 물질인 단체(單體)가 있습니다.

 

수소 원자 두 개가 결합해서 수소 분자가 됩니다.

똑같은 것이 두 개가 결합하는 것을 단체(單體)라고 합니다.

그런데 물은 수소 원자 두 개와 산소 원자 하나가 결합해서

물이라는 것을 만들어 냅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원자가 결합하는 것을 화합물(化合物)이라고 해요.

 

그러면 물은 정체성이 없고, 수소와 산소는 정체성이 있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각각 다 정체성이 있습니다.

정체성의 종류가 다른 것입니다.

하나는 같은 원자가 결합해서 만든 물질이고,

하나는 다른 원자끼리 결합해서 만든 물질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어떤 물질이 더 많을까요?

서로 다른 원자가 결합해서 만든 물질인 화합물이 더 많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한국에서 자랐다면 한국 사람이 됩니다.

한국에서 자라면 정신적으로 한국의 문화가 스며들게 됩니다.

일본인 부모로부터 태어나서 일본에서 자랐다면 일본인이 됩니다.

이때 한국인 부모에게 태어나서 일본에서 자라면

정체성의 혼란이 온다고 이야기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에요.

 

정체성을 수소, 산소, 질소처럼

홑원소 물질만 정체성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한국 사람이라는 기반 위에

일본 문화의 특징이 결합되면

화합물과 같아서

이것도 하나의 정체성입니다.

 

질문자는 이민자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는 겁니다.

물질에 비유하면 화합물이라는 정체성을 갖는 거죠.

그런데 질문자는 지금 토착 세력의 정체성을 동경하는 거예요.

물이라는 화합물이 단체를 그리워하는 겁니다.

그러면 물을 분해하면 됩니다.

그러면 2H2 + O2가 돼서 물이 수소와 산소로 돌아가게 됩니다.

 

계속 고민이 되면 질문자는 한국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그럼, 한국에서 주류가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수에 속하게 되니까요.

그러나 백인 사회에서 자랐다면 그곳은 백인들이 주류입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인종적인 바탕은 한국에서 왔기 때문에

그 위에 백인 사회의 문화가 화합이 된 거예요.

그래서 백인들과 정체성이 똑같을 수가 없습니다.

질문자는 자기만의 정체성을 가져야 합니다.

자꾸 백인 사회를 기준으로 하니까

질문자는 정체성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서 어릴 때 미국에서 자랐기 때문에

한국인을 기준으로 하면 한국말을 못하고,

미국인을 기준으로 하면 영어를 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영어도 제대로 못하고, 한국어도 제대로 못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정체성이 없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나의 정체성은

한국말도 할 줄 알고, 영어도 할 줄 아는 것입니다.

'나는 한국말과 영어 두 가지를 할 줄 아니

당연히 한 가지만 할 줄 아는 사람보다

그 한 가지만 비교하면 실력이 조금 부족하다.

그래도 나는 두 가지를 할 줄 안다.

한국말 0.8과 영어 0.8을 합하면 1.6이 되니

한국말 1 또는 영어 1 보다 훨씬 능력이 뛰어나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질문자의 정체성입니다.

 

질문자는 정체성이 없는 게 아니라

이미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도 자꾸 남을 기준으로 해서 본인에 대해

'나는 정체성이 없는 사람'이라고 느끼는 것입니다.

아니면 본인이 그런 주류 사회를 부러워하는지도 모르죠.

 

주류 사회를 부러워하면서

이곳에 사는 백인들과 동격으로 대우받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과욕입니다.

주류가 되고 싶으면 한국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질문자는 캐나다에 살면서도

자기 정체성을 가질 수가 있어요.

나만의 정체성을 가지고 사람들과 당당하게 경쟁해서 살면 됩니다.

다만 영어가 조금 부족하다든지. 인종적으로 소수니까

약간 불리한 점이 있을 수는 있어요.

 

만약 한국인 사장이 회사를 운영하는데

한국, 베트남, 파키스탄 출신의 직원이 있다고 합시다.

대다수는 한국 사람을 선호할 겁니다.

그게 나쁜 건가요?

다만 그게 지나쳐서 실력이 안 되는데도 그렇게 하면 부정이 되겠죠.

그러나 실력이 동등하다면

그렇게 선발하는 것은 법으로도 금지할 수 없어요.

 

미국도 지금 한 지역의 주지사가 대통령이 되면

그 지역의 참모들이 백악관으로 다 함께 들어오잖아요.

그런 것처럼 그것을 불리하다고만 보면 안 됩니다.

본인은 이미 그런 사회에 도전을 한 거잖아요.

그것을 극복하려면 실력이 월등히 높으면 됩니다.

베트남 사람이 한국 사람보다 실력이 월등하면

한국 사람을 진급시키고 싶어도

베트남 사람을 진급시킬 수밖에 없어요.

 

역사의 발전은 인간의 도전과 응전(應戰)이라는 말이 있듯이

약간의 고난이 따라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게 되고

그것이 문명을 발전시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여기서

유색인종이라든지 동양인이라는 이름으로 약간의 차별을 받는 것은

감수해야 합니다.

차별이 너무 지나쳐서 법적으로 정해진 규칙을 어길 정도라면

고발을 해야겠지만

관습적으로 차별받는 것을 너무 괴로워하면

여기서 살 수가 없는 거예요.

관습적인 차별은 어느 정도 감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차별을 극복하는 방법은 실력과 친절입니다.

실력이 같다면 더 친절하든지, 아니면 더 실력이 있든지

뭔가 더 나은 면이 있어야 극복이 됩니다.

 

그런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동양인을 차별한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다면

지나치게 안이한 생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짜로 얻으려는 욕심이 깔려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하려면

내가 인종적으로 좀 불리한 측면이 있으니 실력을 좀 보완을 하자,

아니면 서비스를 잘해서 보완하자

이런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저도 승려사회에서 수없이 왕따를 당했지만

지금 여러분과 이렇게 대화하는 것처럼

다른 방식으로 보완해서 여기까지 온 겁니다.

 

법륜 스님이 영어만 잘하면

전 세계에 전법을 잘할 수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런 생각은 의미가 없습니다.

 

저는 영어가 부족하니깐

통역을 붙여서 강의를 하면 되고,

그것이 영어로 직접 강의하는 것보다 효과가 떨어진다면

그건 감수해야죠.

 

내가 원하는 것을 다 이룰 수 없어요.

무언가를 원하는 것 자체는 집착이 아닙니다.

그러나 원하는 것을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집착입니다.

집착을 하면 괴로워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