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2주일 앞으로 다가온 수능 시험을 앞둔 수험생의 엄마입니다.
시험이 임박하니 두통약과 소화제를 달고 사는 것이 보기에 안타깝습니다.
기도의 내용이 저도 모르게 자꾸 기복적
수능을 앞둔 수험생과 수험생 부모들이 어떻게 기도를 하면 남은 기간 불안하고 긴장된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지//
아이가 공부해서 시험 치는데, 왜 불안하죠?
근데 상대가 화를 낸다고
나도 따라 화를 내고
상대가 욕한다고 나도 따라 욕을 하고
상대가 불안하다고 나도 따라 불안하면
나라는 주체적인 인물은 없잖아요.
그냥 경계 따라 흔들리는
바람에 휘날리는 낙엽 같은 존재잖아요.
아이가 불안한데
왜 내가 불안합니까?
자기 실력이 100되는 사람이
80점만 받으면 들어가는 학교에 원서를 냈을 때
심리가 더 불안할까?
자기 실력이 100되는 학생이
130이 돼야 들어가는 학교에 원서를 냈을 때
더 불안할까요?
그러니까 불안이 심하다는 것은
자기가 가고자 하는 거하고
자기 실력이 갭이 클 때 생기는 문제에요.
그 갭은 뭐 때문에 생긴 거예요?
욕심 때문에 생긴 거잖아.
시험 때문에 불안한 게 아니라 욕심 때문에 불안한 거예요.
불안을 내려놓으려면
욕심을 버려야 불안이 사라진다, 이런 얘기에요.
아니 사람은 욕심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잖아요, 그죠?
너도, 나도, 우리 다.
그러나 욕심이 지나치면 불안이 커진다, 이 말이에요.
그러니까 100점 되는 아이가
100점 되는 학과에 원서를 냈을 때는
합격 될 확률이 한 80% 된다.
100점 되는 학생이 80점 받으면 들어가는 학교에 원서를 내면
거의 확률이 95% 된다.
100점 되는 학생이 130 되는데 원서를 내면
합격률이 30% 된다.
없는 거는 아니에요.
그러면 이렇게 합격률이 떨어질수록
그 학교에 합격하기를 원하면 가능성이 적어지니까
불안도가 높아지는 거고
그다음에 합격률이 높을수록 가능성이 확실하니까
불안도가 낮아지는 거예요.
그러면 여기서 기도를 왜 하느냐?
“가능성이 없는 거를 가능하도록 하는 게 기도 아닙니까?‘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이 말이에요.
일반적인 종교가 그러죠.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거를 누군가의 도움을 얻어서 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러면 그거는 개인으로는 나무랄 수가 없어요.
개인은 다 그러고 싶어요.
그래서 정토회에서도
개인이 그렇게 기도하는 건 하지 마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까 신앙이 개인의 자유이듯이
이런 것도 개인의 자유에 들어가는 거예요.
그러나 정토회에서 집단적으로
여기 간판을 붙여놓고
‘수능합격 입시기도’ 이렇게는 하지 마라, 하는 이유는
우리는 수행 집단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런 얘기예요.
그러니까 작은 실력을 가지고
점수가 높은 학교에 들어가려고 하는 거를
부처님이 만약에 도와준다면
이런 사람을 한 명 불쌍히 여기서
정원을 한 명 늘려서 도와준다면
그건 괜찮아요.
근데 내가 봐도 정원을 늘려서 도와주는 경우는 거의 없고
이 학생을 여기다 집어넣으면
실력 되는 학생을 하나 빼내야 돼요.
나한테 잘 보였다고 얘는 공부도 못하는데 집어넣고
나한테 못 보였다고 교회 다닌다고 쟤는 빼버리고
그러면 또 하느님은 또 그 사람 집어넣고 또 이건 빼버리고
그러면 이게 입시 브로커지
어떻게 부처님이다, 하느님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이걸 논리로 따지면 이렇다는 거예요, 따지면. 아시겠어요?
근데 수행이라는 것은
이렇게 합리적으로 따지고 원인을 밝히고
그에 따라서 공부를 하는 게 수행이고
이 신앙이라는 건 그런 걸 안 따지는 거예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그냥 믿으면 된다, 이렇게 하는 거란 말이에요.
신앙에서는 해도 돼요.
그러나 철학이나 수행에서는 이거는 해서는 안 돼요.
근데 개인에게 해선 안 된다, 이렇게 말하지는 않습니다.
개인은 자유기 때문에, 뭐든지.
여기 우리 정토회 회원들도
복을 빌든, 뭐 주식을 투자하든, 뭘 하든
그건 개인은 자유예요.
사람들이 그래요.
‘스님은 윤회를 부정한다’ 이렇게 말하는데
부처님의 가르침은 윤회를 부정하거나 긍정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건 그들의 믿음이기 때문에
알아서 믿도록 내버려 두는 거예요.
그러나 불법의 가르침은
윤회하느냐 안 하느냐?
신이 있느냐 없느냐?
이런 거를 논쟁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내 마음을
이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느냐?
이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느냐?
어떻게 해야 내가 이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느냐?
이런 거를 가르치지
이런 거를 체험하도록 하지.
그런 거를 논리적으로 너무 해도 반갑지 않은 얘기에요.
왜?
지식으로 아는 것은
실제로 이 마음이 움직이는 데는 별로 도움이 안 됩니다.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경험이 되어져야 마음이 움직여요.
물론 바른 지식은 많은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기도를
내가 우리 아들이 대학에 갔으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자기 목표가 분명해야 해요.
‘내가 불안하다’ 그러면 이건 욕심을 버려야 돼.
‘내가 애 성적보다 더 높은 데 가기를 원하고 있구나.’
그러니까 내가 불안해지는 거거든요.
자기 마음을
아이고 아이 성적에 맞게끔 가면 되지
모든 부모가 다 좋은 데 가기를 원하죠.
근데 첫째 그 소원은 성취되기가 어렵고
두 번째는 성취되는 게 불행의 씨앗이 됩니다.
왜 그럴까?
성적이 100이 되는 사람이 130이 돼야 가는 대학에
요행이 들어갔다고 하자.
그러면 그 합격한 이후로 그는 졸업할 때까지 열등의식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 학과에서 성적이, 제일 실력이 처지는 사람 아닙니까, 그죠?
아무리 노력해도 중간에 갈 수 있을까 없을까?
가기 어려워요.
그러면 그 속에서 늘 열등의식을 갖고 살아야 해요.
또 성적이 낮은데 어떻게 요행이 좋은 회사에 취직을 했다.
그럼 좋은 회사라는 것은
이 사람 실력이 이 정도 될 거라고 생각하고 과제를 준단 말이에요.
그럼, 그 직장에서 계속 압박을 받고 살아야 되요.
그 기대에 못 미치기 때문에.
그래서 쫓겨날까 싶어 계속 상사의 눈치를 보고 살아야 돼.
그게 합격할 때는 못 갔지만은
그게 실제로는 화를 가져옵니다.
오히려 성적이 100이 되는데
80쯤 대학에 들어갔다, 70쯤 들어갔다 그러면
합격할 때는 좀 기분이 안 좋다, 내 실력만큼 못 갔다 이럴지 모르지만은
학교 다닐 때는 편안해요.
왜? 맨날 놀아도 어때? 중간은 가요, 아시겠습니까?
조금만 자기가 열심히 하면 어때요?
상위에 올라가요.
동료들 사이에서도 지도가 되고
학교 교수도 주의하는, 바라보는 사람이 되고.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서
서울대도 갔다고 다 잘 되는 게 아니고
그 아래 대학에 갔다고 다 못 되는 게 아닌 이유가
이런 이유 때문에 그래요.
그러고 좋은 대학일수록
정신질환자 비율이 훨씬 높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결혼도
나보다 훨씬 좋은, 조건이 좋은 남자하고 결혼을 했다 하면
그거는 하기도 첫째 어렵고
두 번째 결혼한 뒤에 죽을 때까지 불행하게 살아야 합니다.
바람 피울까 봐, 뭐할까 봐 늘..
왜냐하면 약자잖아요. 을이 되지 않습니까?
평생 을로 살아야 하는 거예요.
이래서 제가 말하잖아요.
불행을 자처한다고
그게 어리석음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자기를 행복하고, 자기를 좀 존엄하게 하려면.
이 욕심이 자기를 그렇게 불행하게 만드는 거예요.
그래서 아이가 욕심을 내는 건 자기가 어떻게 할 수 없잖아, 그죠?
그러나 나까지 욕심을 덩달아 내면 안 되지.
자기는 기도할 때
“그저 우리 아이가 걸리든 떨어지든
그저 편안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기도를 해야
떨어졌을 때 자기가
같이 덩달아 흥분 안 하고, 낙담 안 하고, 위로할 수 있다.
“우리 아이가 조금 저렇게 불안해하는 거 보니
조금 자기가 욕심을 내고 있구나”
그러면 안 될 확률이 높죠.
그러면 안 됐을 때 위로해 줄 수 있다, 이거예요.
“아이고, 너무 걱정하지 마라.
네 실력이 모자라는 게 아니라
원서를 조금 높이면서 생긴 문제니까
다음에 낮추든지 네가 조금 더 노력하면 되지.
네 실력이 없는 거는 아니다.”
이렇게 위로를 해줄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아이가 높이 내는 거는 뭐 말릴 수가 없지만, 지가 결정하니까
부모가 부추겨서 높이는 거는 어리석은 짓이다.
심리치료적인 측면에서 볼 때
아이들이 도시에서, 중간쯤인 성적에 대해서 열등의식이 있다.
그러면 심리치료 측면에서는 아이를 지방으로 전학을 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반에서 성적이 올라가게 돼요.
근데 여러분들은 억지로 돈을 써서, 더 좋은 데 갔다 보내요.
공부 더 잘하라고.
그럼, 성적이 더 떨어져요.
그러면 심리적으로 열등의식을 갖게 되는 거예요.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는 학생이 하지만은
그것을 어느 쪽으로 보내서
아이의 심리를, 열등의식에서 벗어나게 할 거냐 하는 건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일이거든요.
부모가 지혜로워야 하는데
부모가 늘 아이를 망치는 쪽으로 이렇게 하죠.
왜?
욕심에 눈이 어두워서 보지를 못하기 때문에.
그러니 편안한 기도
자기가 불안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잠들려면
이런 이치를 아는 것이 담마, 법이고
그 법에 따라 기도를 해야 돼.
그래서 아이에게 지금 불안해하니까
“너무 불안해하지 마라.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엄마는 너를 지지한다.
네가 잘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혹시 잘못되더라도 엄마는 너를 이해한다.”
또 나쁜 결과가 나오면 위로해 주고
“네가 실력이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니라
조금 네가 욕심을 내서, 학과를 학교를 높이 해서
이런 일이 생겼으니
낙담하지 말자”
이렇게 할 수 있는 엄마가 되면 좋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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