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이 있는 95세인 아버지가 병원 치료를 거부하십니다.
그래서 집에서 모시고 있습니다.
음식을 전혀 드시지 못하고
물이나 사이다만 조금 넘기실 수 있는 상태입니다.
주로 누워만 계시고 몸이 많이 쇠약해진 상태입니다.
보통 정신이 오락가락하시지만
이따금 의식이 돌아오곤 하십니다.
자식들이 방문하여 인사드리면
눈도 제대로 못 뜨시고 ‘고맙다’고 하면서 울먹이십니다.
평생 금슬이 좋으셨던 어머님에게
‘당신이 진짜 최고다’ 하는 말을 자주 하면서
혼자 가기 싫으니 함께 인생을 떠나자고 하십니다.
가끔 꿈을 꾸며 소리 지르시는데
꿈에서 보이는 양 갈래 길에서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십니다.
15년 전에 돌아가신 저희 시아버지가 왜 내 집에 왔냐고 저에게 물어보시기도 하시며
섬망 증세를 보이기도 합니다.
평소 아버지는 어머니를 따라서 절에 다니셨습니다.
불교는 임종을 돕는 기도문이 없는 것 같아서
천주교에서 임종을 돕는 기도문을 찾아보았습니다.
그것을 제가 불교식으로 바꾸어
서방정토 극락세계 아미타 부처님을 찾는 기도를 아버지와 함께 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이 기도를 받아들이지는 않는 것 같았습니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생의 애착을 놓기 힘들어하시는 아버지가
평온하게 임종을 맞이하실 수 있도록
아버지를 어떻게 돌봐야 할까요?
두 번째 질문은
임종 직후 몸의 모든 자극이 멈추어도
청각은 몇 시간 더 작용한다고 들었는데
아버지 임종 후 어떤 말을 하면 도움이 될까요?
세 번째 질문입니다.
망자의 정신 작용에도 불교의 연기법이 적용되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특정한 기도법이
망자에게 도움이 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망자의 상태가 각기 다르기 때문입니다.
-생전에 늘 아미타 부처님을 불렀던 분이라면
아미타 부처님을 같이 불러주면 편안해질 것입니다.
-생전에 늘 하나님을 찾던 분이라면
하나님께 기도를 해주면 편안해할 것입니다.
-생전에 늘 알라신을 찾던 분이라면
알라신께 기도를 드리면 편안해할 것입니다.
그런데 질문자의 아버지는
평소에 부처님이나 하나님을 부르며
꾸준히 기도하셨던 분이 아닙니다.
그래서 질문자가 부처님이나 하나님을 부른다고 해서
아버지가 편안해지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편안해지기를 바라는 질문자의 마음은
내가 남을 바꾸고 싶어 하는 욕심과 다르지 않습니다.
아버지를 보는 내가 먼저 편안해야 합니다.
아버님이 어머님과 같이 가겠다고 말하든, 고함을 치거나 원망을 하든,
이런 행동들은 인간이 죽어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여러 증상 중 하나입니다.
의식이 또렷하지 않을 때 무의식이 나옵니다.
무의식 상태에서는
3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고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원망할 수도 있고,
기뻐할 수도 있습니다.
아버지가 정신이 약간 돌아오게 되면
자식들에게 ‘너희들이 나를 돌본다고 고생한다’ 하고 말하기도 합니다.
모두 의식과 무의식을 왔다 갔다 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런 것에 질문자가 일일이 반응하여
‘아버지가 괴롭구나!’, ‘아버지가 나를 좋아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은
그저 질문자의 생각일 뿐입니다.
아버지를 보는 내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는 것이
올바른 수행적 관점입니다.
질문자는 아버지의 모습을 조용히 관찰하는 것이 좋습니다.
저의 아버지도 돌아가시기 전에 누워 계시다가
갑자기 ‘아이고! 논에 물길 좀 봐라. 물이 다 말랐다. 물을 대라!’ 하고 말씀하셨어요.
그것은 의식이 희미해지면서
예전에 농사를 지을 때의 생각이
무의식 세계에 떠올라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것처럼 질문자도 아버지가 갑자기
‘너희 시아버지가 왜 여기에 왔니?’라고 말하면
‘아버지가 지금 무의식 상태에 빠져 있구나!’ 하고 이해하면 됩니다.
나이가 95세인 분이
링거나 산소호흡기에 의존하는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고 하신 것은
매우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몸은 음식을 못 먹어도 물만 먹을 수 있으면
한 달가량 더 살 수 있습니다.
곡기를 끊으면 점점 살이 빠지고 몸이 바싹 말라서
얼마 되지 않아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곡기를 끊은 기간에는
뇌에 에너지 공급이 잘 안 됩니다.
그래서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들게 됩니다.
이럴 때는 아버지가 생(生)을 정리하는 과정을 가만히 지켜보십시오.
아이가 뱃속에 생겨 태어나고 자라는 과정을 바라보듯이
노쇠하여 점점 몸이 약해지고
의식이 사라지는 과정을 가만히 지켜보는 겁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마감되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관찰해 보면
‘이 세상에는 괴로울 일이 아무것도 없다’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런 깨달음은 질문자의 인생에 큰 도움이 됩니다.
이것이 부모님의 임종을 지켜보는 수행자의 자세입니다.
질문자가 이런 관점을 갖지 않으면
‘아버지가 괴롭고 힘들어하시는데 내가 어떻게 하면 되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혼란스러워집니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아미타 부처님을 열심히 부르면
질문자의 마음이 편할지는 몰라도
아버지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평소 아버지가 아미타 부처님을 부르며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질문자가 마음속으로
아미타 부처님을 부르면서
‘다음 생애는 편안한 데 태어나셔서 행복하게 사십시오’ 하고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불교에서는 임종게(臨終偈)가 있습니다.
임종을 앞둔 스님들이 죽음을 여여하게 바라보며
생애 마지막에 한 글귀를 남기는 것을 말합니다.
선사들이 남긴 임종게를 보면
죽음을 슬퍼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도 생(生)처럼 그냥 하나의 과정으로 담담히 받아들입니다.
그것처럼 질문자도 죽음을 담담히 대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아버지에게 나타나는 여러 가지 증상은
사람이 죽음에 임박했을 때 나타나는
정신적, 육체적 증상입니다.
첫 번째로 질문한
‘죽음을 두려워하는 아버지를 어떻게 돌봐야 할까요?’ 하는 질문이 해결되면
나머지 질문들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의 죽음을 담담하게 바라보지 못하고 불안해하니까
자꾸 다음의 문제들이 마음에 걸리는 것입니다.
불안한 마음을 내려놓고 관찰자의 자세로 돌아가 밝은 지혜를 가진다면
모든 의문이 없어집니다.
질문자의 마음이 불안하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하면 아버지가 편안할까?,
‘인연은 어떻게 흩어지고, 흩어진 뒤에는 또 어떻게 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모두 번뇌에 속합니다.
지혜로운 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이런 질문조차도 불필요합니다.
불교는 사람이 죽은 뒤에
어떻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죽음의 순간도 삶의 일부이기 때문에
태어나는 순간을 바라보는 것처럼
편안하고 여일하게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수행이고 불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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