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4)

[법륜스님의 하루] 참된 나를 발견하려면 어떤 수행을 해야 하나요? (2024.11.03.)

Buddhastudy 2024. 11. 7. 19:09

 

 

참된 나를 발견한다고 할 때는

참된 나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참된 나를 찾는다고 할 때는

참된 나라는 것이 있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참된 나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우리가 그런 용어를 쓸 때

전제가 되는 사실이 있습니다.

나를 찾는다할 때는 라는 것이 있다는 것이 전제가 되고,

를 중심에 놓는다고 할 때도 가 있다는 것이 전제가 됩니다.

 

그런데 과연 내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하면서

그것이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그것을 찾으려고 합니다.

여기에 우리의 모순이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 불교에서는

나라고 할 것이 없다라고 해서

아나따(anattā, 無我)’ 이렇게 표현합니다.

 

참된 나를 찾으라는 말은

실제로 가 있어서 를 찾으라는 뜻이 아니에요.

라고 하는 이것이 무엇인지 탐구하라는 의미입니다.

 

지금 라고 하는 것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이것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들은 모두 라는 용어도 쓰고 있고

또 실제로 라는 것이 있는 것처럼 느낍니다.

 

그런데 불교 수행이란

라고 하는 이것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것입니다.

 

나를 찾는다하는 말에는

가 있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라고 느껴지는 것이 있는데

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요?

 

법륜 스님처럼 되겠다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

라고 하는 이것이 무엇인지 살피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래서 선() 불교에서는

‘Who am I?’라고 하는 화두를 참구합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What is this?’라고도 합니다.

라고 하는 이것이 무엇인지

자신에게 묻는 것입니다.

 

이것을 중국말로는 是什么(시삼마)?’

이렇게 표현합니다.

 

테라밧다 불교의 관점에서 표현한다면

다만 알아차릴 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이라고 단정하지 않고

다만 알아차릴 뿐입니다.

 

어떤 마음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

어떤 것도 단정하지 않고

다만 알아차리기만 하다 보면

마음의 성질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항상 하지 않고

늘 이랬다 저랬다 합니다.

라고 하는 것이

어떨 때는 이런 게 나 같고, 어떨 때는 저런 게 나 같고,

늘 이렇게 변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무상하다는 것을 자각하게 됩니다.

이것을 아니짜(Anicca, 無常)’라고 합니다.

마음, 느낌, 생각은 모두 무상하기 때문에

그것을 굳이 붙잡을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인연을 따라 이렇게 저렇게 작동할 뿐이에요.

 

우리는 보통 어떤 생각이나 감정이 일어나면

딱 그것을 붙잡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갈등하게 되고, 화도 내게 되는 겁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냥 그 순간에 일어난 하나의 감정일 뿐이지,

조금 있으면 또 바뀌어 버립니다.

 

이 사실을 늘 자각하고 있으면

그것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늘 감정에 휘둘리고 감정에 영향을 받습니다.

감정은 늘 일어납니다.

그러나 감정은 이랬다 저랬다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감정이 이렇게 일어나는구나’, ‘감정이 저렇게 일어나는구나하고

알아차리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위파사나 수행과 선 수행은

방식이 좀 다른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