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4)

[법륜스님의 하루] 회사에서 인정받기 위해 외향적인 척이라도 해야 할까요?

Buddhastudy 2024. 10. 31. 20:03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외향적인 사람이 좋은 평가를 받습니다.

예를 들어 미팅을 할 때

주도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사무실에서도 동료들을 찾아가서 논의하고

열심히 바쁘게 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자연스럽게 외향적인 사람이 기준이 되고

외향적으로 행동하도록 강요받게 됩니다.

그에 반해 저는 내향적인 편이라서

조용히 묵묵히 자기 일을 성실하게 하는 스타일이다 보니

겉으로 티가 잘 안 나서

평가를 받을 때 손해 보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천성적으로 있어 보이는 척하거나

나의 능력에 대해 과대 포장하여 말하지는 못하겠습니다.

다양한 성향의 사람이 있는데

왜 외향성을 기준으로 평가를 받아야 하나 싶습니다.

한편으로는 사람을 평가할 때 보이는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으니

나도 회사에서 인정받으려면

그 기준에 맞춰 외향적으로 보이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이 됩니다.//

 

 

지금 질문자도

왜 사람들의 다양한 성향을 인정해 주지 않고

일률적인 기준으로 평가를 하느냐고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있잖아요?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도

질문자를 비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들이 외향성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은 그들의 마음인데

왜 그걸 시비하느냐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

 

가령 육상 선수를 선발한다고 하면

늦게 달리는 사람은 당연히 코치로부터 지적을 받겠지요.

야구선수를 뽑는다면

공을 빠르게 던지거나 공을 잘 받거나 잘 치는 사람이 좋은 평가를 받겠지요.

축구선수라면

골을 넣는 실력이나 수비하는 실력으로 평가를 받지 않겠어요.

노래하는 사람이라면

음정이나 박자나 음색으로 평가를 받겠지요.

이처럼 각 직업의 영역마다

필요로 하는 역량이 다르고

그 역량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다른 겁니다.

 

질문자가 일하는 영역에서는

빨리 못 달린다고 저평가되거나

공을 잘 못 받는다고 또는 공을 잘 못 찬다고 주의를 받지는 않잖아요.

대신 질문자의 직업군에서는

사람들 앞에서 큰 목소리로 능숙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니까

그걸 질문자에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질문자의 요구는 마치 축구선수가

왜 나를 공 차는 것으로만 평가를 하느냐,

공을 잘 차는 사람도 있고 못 차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 않느냐고

말하는 것과 같아요.

 

달리기 선수가 사람마다 신체적 능력이 다 다르고

빨리 달리는 사람도 있고 늦게 달리는 사람도 있는데

왜 인간을 달리는 속도로 평가하느냐고 시비하는 것과 같습니다.

 

본인이 속한 직업군에서 요구하는

핵심 역량을 평가하는 기준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육상 선수라면

내가 달리는 속도가 다른 선수들에 비해 뒤진다고 하면

다른 종목으로 바꿔야지요.

축구 선수가 공을 차는 게 서툴다면

다른 직종으로 바꿔야지요.

 

해당 직종의 평가 기준을 문제 삼을 게 아니라는 겁니다.

현재 자기가 소속된 직업군의 평가 기준은 외향성이고,

그 기준에 따라 평가를 해서 보상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왜 나한테 불리한 기준을 적용하냐고 하는 것은

이치에 안 맞아요.

 

그러니 외향성을 기준으로 평가하지 않는 직업군으로

옮기는 방법이 있습니다.

만약에 농사를 짓는다고 하면

외향성을 기준으로 평가하지 않을 거예요.

모내기를 잘하느냐, 곡식을 잘 심느냐, 이런 걸로 평가하겠지요,

말을 크게 하거나 적게 하는 것으로 평가하지는 않겠지요.

외향성은

질문자가 선택한 직업군의 평가 기준이라고 봐야 합니다.

 

...

 

본인도 좋은 평가를 받고 싶다면 그렇게 하면 되잖아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으면 인정받는 걸 포기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왜 그걸 가지고 시비를 하나요?

인정받고 싶으면 그렇게 하면 됩니다.

 

빨리 달리고 싶으면 달리기 연습을 하면 되고

공을 잘 차고 싶으면

공 차는 연습을 하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예요.

 

자기를 잘 표현해야 좋은 평가를 받는다면

자기도 자신의 업적을 잘 포장해서 표현하면 됩니다.

그만큼 잘 표현하지 못해서 낮은 평가를 받는 것은

감수하면 됩니다.

 

...

 

그러면 직업을 바꾸면 됩니다.

자기를 잘 표현하지 못해도 되는 직업군으로 가면 됩니다.

천성적으로 노래를 못하는 사람이

나를 목소리로만 평가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아요.

 

나는 이 직업군에 안 맞는구나하고 알았으면

다른 직업군으로 가면 됩니다.

영업직이나 홍보직에 있다면 외향적인 게 필요하지요.

자기를 드러내는 것을

옛날에는 부정적으로 생각하기도 했고

요즘도 어떤 직업군에서는 나쁘게 평가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서

수행공동체인 정토회에서는

자기를 늘 과장해서 드러내는 사람이 있다면

나쁘게 평가를 받습니다.

오히려 자기 능력보다 자기를 덜 표현하면

겸손하다고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회사 같은 곳에서는

자기 PR 시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자기 자신을 잘 표현해야

사람들이 자기에 대해서 알고 거기에 맞는 평가를 할 수 있어요.

 

시대가 그것을 요구하고 있고

특히 자기가 속한 직업군에서 그 능력을 요구한다면

인사고과를 잘 받기 위해서

그 기준에 맞춰 업무를 하면 되죠.

자기가 그렇게 못하면 낮은 인사고과를 감수하면 됩니다.

그러니 왜 외향성을 기준으로 평가를 하느냐

이렇게 시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겁니다.

 

명상하는 스님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조용히 앉아 있느냐에 따라

참선을 잘한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겠지요.

그런데 포교하는 스님들은

얼마나 말을 잘하느냐를 기준으로 평가를 받습니다.

선방에서는

말을 잘하는 스님이 아주 낮은 평가를 받아요.

남에게 말로 법을 알리는 포교 그룹에 속해 있으면서 침묵하고

말을 안 하는 사람은 그 그룹에서 좋은 평가를 못 받습니다.

그러니 그 직업군이 정한 평가 기준을 시비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도 있긴 합니다.

말이 적은 사람이 전법 그룹에 있을 경우

초반에는 단점이 되어서 평가를 제대로 못 받을 수 있어요.

그러나 오랜 시간 그 사람을 겪으며 신뢰가 쌓여서

사람들이 많이 따를 수도 있습니다.

 

질문자는 회사의 평가 기준이 나와 맞지 않는다고 불평하면서

빠른시간 내에 회사에서

나의 진가를 알아보고 높이 평가해 주기를 바라는

모순적인 생각을 갖고 있어요.

평가 기준을 안 따르려면

지금은 손해를 좀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에

나의 실력과 진심을 알고 좋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어요.

그것을 지금 알 수는 없지만요.

 

...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에요.

질문자가 그런 평가 기준을 가진 회사에 들어갔으니

평가를 잘 받으려면 그에 준한 노력을 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싶지 않으면

높은 평가를 기대하지 않으면 됩니다.

평가 기준에 맞춰 노력을 하라는 뜻이 아니고요.

 

현재 우리나라 시스템에서 대학에 가려면

성적이 좋아야 돼요? 안 좋아도 돼요?

그런데 대학을 안 가기로 정하면

굳이 학교의 평가 기준에 맞게 성적을 안 받아도 되잖아요?

대학에 가겠다고 하면서

왜 사람을 성적으로 평가를 하느냐고 따지면 안 된다는 겁니다.

 

저는 학생들을 성적으로 등수를 매겨서 평가하는 것에 대해 반대합니다.

만약 제가 교육에 대한 결정권이 있다면

성적으로 등수를 매기는 제도를 모두 없앨 거예요.

그런데 저한테 그런 권한이 없고

현재 교육 시스템은 성적으로 평가하잖아요.

이런 교육 시스템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려면

시험을 쳐서 좋은 점수를 받아야 됩니다.

시험 성적으로 평가받기를 거부한다면

낮은 평가를 감수해야 합니다.

 

외향적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에요.

현재의 평가 기준에서 좋은 점수를 받으려면

평가 기준에 맞춰서 노력해야 하고,

그 평가 기준에 동의할 수 없다면

낮은 점수를 받는 것을 수용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어느 것이 옳다가 아니라

둘 중에 선택하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질문자는 지금 욕심을 부리고 있어요.

평가 기준에 맞추기는 싫은데, 평가는 잘 받고 싶은 것은 모순입니다.

 

...

 

, 그렇습니다.

나는 내성적이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을 해도 잘 안 되거나

또는 그런 평가 기준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평가 점수가 낮은 걸 감수해야죠.

 

대신 다른 부분에서 점수를 높게 받는 방법도 있잖아요.

딱 그거 한 가지만을 가지고 평가하는 건 아니잖아요.

 

제가 학교 다닐 때는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은 점수가 높았어요.

그런데 항상 학기말이 되면 전 과목 평가를 합니다.

음악, 체육, 미술은 거의 낙제 수준에 가까웠어요.

모든 과목을 다 합산해서 평균을 내면 등수가 뚝 떨어져요.

그런데 이게 평가 방법이니까 어쩔 수 없지요.

 

마찬가지로 내가 잘하는 것만 평가해 달라고 하고

관심 없는 것은 평가에 넣지 말라고 하면 안 됩니다.

세상에는 나 같은 사람만 사는 게 아니라

여러 다양한 사람들이 같이 살기 때문입니다.

 

운동경기도 달리기, 던지기 등 여러 종목이 있고,

같은 활쏘기에도 여러 종목이 있잖아요.

어떤 사람은 이 종목을 잘하고, 또 다른 사람은 저런 종목을 잘할 수도 있고

또 종합적으로 다 잘하기도 하고,

여러 평가 기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질문자가 보기에 평가 기준이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면

낮은 점수를 감수하면 되고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싶으면

평가 기준에 맞춰서 노력을 하면 됩니다.

 

, 평가의 기준이

대한민국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기본권을 침해한다면

문제제기를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인권 침해적 요소가 있거나, 인종차별적인 평가를 하거나,

성차별적인 평가를 하거나,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면

법적으로 제소를 해야 합니다.

 

질문자의 억울한 심정은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분야별로, 직업군별로, 나름대로 평가 기준이 있습니다.

대신 그것은 그 분야에서의 평가 기준일 뿐

인간 자체를 평가하는 기준은 아닙니다.

 

그래서 어떤 평가를 할 때는

그 분야의 평가 기준이라는 걸 항상 말해야 됩니다.

사람에 대한 평가 기준이 아니라

그 분야의 업무에 어느 정도 적합한지

평가하는 기준이라고 받아들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