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4)

[법륜스님의 하루] 15년 동안 남편의 병간호에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2024.09.14.)

Buddhastudy 2024. 9. 19. 19:42

 

 

바로 앞 질문에 이어져서 별로 안 좋은데요.

제 문제는 앞사람과 반대의 경우 같습니다.

남편이 아픕니다.

15년 동안 아픈 상태이고

주위에서 다들 남편에게 잘해주지만

저는 이제 남편에게 좀 지치고 있습니다.

남편은 이기적이 됐어요.

예전에는 제가 남편에게 측은한 감정을 느꼈는데

최근에는 지치고 화가 납니다.

남편은 이기적이고, 제 감정에 무관심한 것 같아요.

제 인내심이 바닥이 났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이 스님으로부터 좋은 조언이나 새로운 힘을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건강한 남자 하고도 헤어지는 것이 요즘 사람들인데,

아픈 남자 하고야 헤어지면 되지

그게 뭐 어려운 일입니까?

 

...

 

왜 떠날 수 없습니까?

 

...

 

떠날 수 없는 일은 없습니다.

그냥 떠나면 됩니다.

떠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안 떠나는 것이지요.

지금이라도 가버리면 돼요.

못 떠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안 떠나는 거예요.

질문자의 선택입니다.

이건 하느님이 명령한 것도 아니고

전생에 지은 업보도 아니고, 사주팔자나 궁합도 아닙니다.

그냥 내가 안 떠나는 거예요.

 

...

 

, 당연히 아이들 입장에서는 그러겠죠.

아빠가 아픈데 엄마가 떠났다고 하면

엄마를 미워하게 되겠죠.

그건 당연한 거예요.

질문자는 지금 병든 남편을 돌보려니 힘이 들고

떠나려니 애들이 나를 미워할 것 같은 겁니다.

아이들의 미움을 받는 것과 병든 남편을 돌보는 것 사이에서

지금 어느 것이 더 이익이냐,

이것을 가지고 질문자가 망설이고 있는 거죠.

 

...

 

남편을 반드시 돌보아야 할 의무는 없어요.

제일 좋은 방법은 그냥 떠나는 것입니다.

남편이 건강하고 돈이 많아도

내 마음에 안 든다고 떠나는 시대에

아픈 남편을 두고 떠나는 게 뭐가 문제이겠습니까?

부모가 이혼하는 걸 원하는 자녀가 누가 있습니까?

그런데도 자녀들에 대한 생각은 안 하고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이혼해 버리잖아요?

 

이혼을 하려고 하다가 미련이 남으면 저한테

이혼을 하고 싶은데 아이들 때문에 못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또 어떤 때는

스님 말씀을 듣고 이혼을 안 하려고 했는데,

애들한테 너무 나쁜 영향을 줄 것 같아서 이혼을 해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이혼을 하는 것도 자기가 결정하고

이혼을 안 하는 것도 자기가 결정하면서

아이들 핑계를 대는 겁니다.

이혼을 하고 안 하고는

다 자기가 결정할 문제이지

아이들 핑계를 대는 것은

아이들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자세가 아니에요.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처음부터 아예 이혼할 생각을 안 해야 합니다.

 

지금은 남편을 두고 떠나는 게 유리한 것 같은데

나중을 생각해 보니 더 불리할 것 같다는

현재의 이익과 미래의 이익 사이에서

질문자가 지금 갈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내가 남아 있는 이유는

이 상황에서 그래도 여기 있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내가 선택한 것이다

이렇게 자기 관점이 먼저 잡혀야 합니다.

그래야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

 

아니에요. 대화가 잘 흘러가고 있어요.

그럼, 제가 질문자에게 한번 물어볼게요.

질문자는 건강할 때 짜증이 많이 납니까?

아플 때 짜증이 많이 납니까?

혹은 내가 원하는 것이 잘 이루어질 때 짜증이 많이 납니까?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짜증이 많이 납니까?

내가 몸이 불편해서 움직이기 어려울 때

남편이나 애들이 빨리 집에 오는 것을 기다리게 될까요?

내가 편안하게 집에서 TV도 보고

몸도 마음도 아주 편할 때

밖에 나간 사람을 빨리 들어오기를 기다리게 될까요?

 

질문자는 지금 건강하고, 남편은 아픕니다.

남편은 집에서 질문자의 도움이 필요해서

빨리 왔으면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질문자는 돈 번다고 바쁩니다.

그러면 누가 짜증을 많이 내게 될까요?

남편이 자기한테 짜증을 많이 낼까요?

자기가 남편한테 짜증을 많이 낼까요?

 

원리적으로 봤을 때

아픈 사람이 짜증을 많이 낼 것 같아요?

건강한 사람이 짜증을 많이 낼 것 같아요?

 

...

 

한번 더 바꿔서 질문해 볼게요.

질문자는 자기가 아파 누워서

남편한테 짜증을 내는 게 좋아요?

자기는 건강해서 남편을 돌보면서 남편의 짜증 받는 게 좋아요?

 

...

 

그래요.

그렇다면 남편이 짜증 내는 것은 너무 당연하고

남편의 처지가 되는 것보다는 내 위치가 낫습니다.

 

남편을 떠나지는 않겠다고 하는 전제 하에서 보면

지금 질문자의 처지가 남편보다 좋은데

뭐가 문제가 되겠습니까?

 

아무리 남편이 짜증을 내도

아이고, 내가 안 아픈 게 다행이다이렇게 생각해야죠.

그런데 지금 질문자는

내가 나가서 돈도 벌고, 간호도 해주고, 애도 돌보는데

남편은 나를 알아주지도 않고

나만 보면 짜증을 낸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힘들죠.

 

만약 남편이

당신이 아파서 누워 있고,

내가 아이들을 돌보고, 돈 벌고,

당신 간호도 해줄 테니 바꾸자

이렇게 말하면 바꿀 자신이 있어요?

 

...

 

몸이 아프면 애가 된다니까요.

어린애라는 게 뭐예요?

자기가 자기 일을 못하는 게 어린애입니다.

아픈 사람은 자기가 자기 일을 못합니다.

노인도 자기가 자기 일을 못하니까 어린애 같이 됩니다.

나이가 어린 것만 어린애가 아니라

자기가 자기 일을 못하면 다 어린애예요.

그럴 때마다

그래도 내가 안 아픈 게 다행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

 

질문자가 지금 힘든 것만 생각해서

남편을 떠날까 말까 고민을 하게 되는데

생각을 바꿔보세요.

 

이 상태가 1년이 갈지, 2년이 갈지, 3년 갈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남편이 오랫동안 아프면

남아 있는 걸 후회하게 되고,

남편이 빨리 죽으면

떠난 걸 후회하게 됩니다.

 

그런데 생각을

남편이 오래 살면 살수록 좋다

이렇게 한번 바꿔 보세요.

그렇게 해서 남아 있는 쪽을 선택해 보세요.

 

그리고 항상

아픈 사람이 더 힘들다.

그래도 하루라도 더 살면 애들한테 좋은 일이다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특히 말기가 되면 통증이 심합니다.

그래서 짜증을 많이 냅니다.

그러니 남편에게

여보, 힘들지만 아이들을 위해서 좀 더 살아 주세요

이렇게 말해보세요.

 

질문자가 아무리 힘들어도

통증을 견디고 있는 남편보다 더 힘들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망설여지면 떠나세요.

길이 있다면 그 길밖에 없습니다.

 

첫째,

더 힘든 사람을 생각하면서 자기를 위로하는 길이 있고

 

둘째,

이 힘듦으로 인해 자기가 괴로워하는 길이 있습니다.

 

괴로워하면서 살래?

가볍게 살래?

이 길밖에 선택이 없습니다.

떠나는 길을 제외하면요.

 

...

 

힘든 상황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힘들면 떠나면 되는데 왜 못 떠날까요?

떠나지 않는 것도 자기 선택이라는 겁니다.

 

자기가 선택했으면

그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럴 때 괴로워하면서 사는 길이 있고

괴롭지 않으면서 사는 길이 있습니다.

 

이 둘 중에 어떤 선택을 할 거냐만 남았습니다.

괴롭지 않은 길은 바로 아픈 사람이 나보다 더 힘들다는 것을 이해하는 겁니다.

 

내가 아무리 밖에 나가서 열심히 힘들게 일하더라도

그가 짜증을 내면

그가 나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기 때문에

짜증을 내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꺼이

여보, 많이 기다렸죠?’

이렇게 위로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가 싫으면 떠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