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드 세팅이라는 말을 들었어요.
요즘 여기저기서 들리잖아요.
우리도 그리고 마인드 세팅을 한다고 한 4주씩 공부를 했었고.
마인드 세팅을 한다라고 했을 때
크게 두 영역으로 나뉩니다.
뭐냐 하면은 생각의 영역하고, 감정의 영역이에요.
그런데 그중에서도 마인드 세팅이라는 이 개념 자체가 풍기는 뉘앙스
그게 감성 영역보다는 사실은 뭐냐 하면 사고, 사고의 영역
자 이 영역에 대한 느낌이 더 강해요.
그런데 여기도 써놨지만
마인드 세팅이라는 말, 한국말로 풀이를 했을 때
‘사고방식을 바꾼다’
이렇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크다라는 이야기입니다.
문제는 뭐냐면은
사고방식만 바꾸는 게 마인드 세팅이 아니에요.
그리고 사고방식을 바꾸려고 했을 때
실제로 시도를 했을 때
큰 어려움에 봉착을 하게 됩니다.
이유가 뭘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막상 마인드를 세팅하려고 하는데
여러분 내 사고방식을 갖다가 전환을 시키려고 하는데
그게 잘 안 돼요.
이유가 뭘까요?
생각을 내가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래요.
우리가 마인드 세팅에 대해서 공부를 했지만
여러분들이 그렇게 공부하고 나서
4주 뒤에 완전히 할렐루야, 해탈하신 분 계세요?
그 공부한 내용 그대로 완전히 흡수를 해서
소화를 다 시켜서, 내 살로 만든 분 계세요?
그런 얘기 있잖아요.
내가 공부한 것만큼 그대로 소화시켜서
내 지식이 살찐다, 영혼이 살찐다,
아니죠?
그렇게 된 분 없죠, 그냥 살만 쪘죠.
살만 찌고 공부했던 내용은 사실.
솔직히 말하면 겉돌아요.
이게 마인드 세팅에 대한 거창한 꿈을 안고
나는 새로운 마인드, ‘새로운 사고방식을 세팅을 해야지’ 하고 도전을 합니다.
도전을 했는데 뭐가 떨어지는 거예요
효율이 떨어지는 거죠.
세팅을 시도하는 그 내용을 그대로 내가 받아들여서
완전히 소화해서 흡수를 시키느냐?
그게 아니다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럼 그 이유가 뭔가?
일단 사고방식을 바꾸려고 해도
뭐 감정 영역까지는 바라지도 않죠.
사고방식, 그러니까 새롭게 생각하려고 할 때
문제가 뭔 거예요?
가장 원초적인 문제, 원색적인 문제가 뭐예요?
가장 생각이 안 바뀌어요.
이유가 뭡니까?
생각을 내가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래요.
의식을 갖다가 다루는 수행을
본격적으로 아주 깊이 하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에는
생각 자체를 다룰 수가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뭐냐면은
고대로부터 시작해서
모든 어떤 학문 분야, 학술 분야에서
생각이라는 것을 인간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무언가로 바라본 적은 없어요.
인간의 역사 안에서.
그런데 뭡니까?
대부분의 경우에 90% 이상의 사람들은
생각을 내가 하는 것이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라고 여기며 살아갑니다.
근데 그 생각마저도 만들어진 거예요.
여기에서 한번 고찰을 해봐야 돼요.
마인드 세팅이 쉽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뭐냐 하면
내가 생각의 주인이 사실은 아니기 때문에 그렇거든요.
여러분들 어때요?
‘생각을 내가 한다’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하루에 하는 그 생각들 수천, 수만 가지의 생각들을 하는데
그걸 다 일일이 기억을 못해서 그렇죠.
그중에 극히 일부분만 자각을 해요.
극히 일부분만 자각을 하고
그중에서 또 극히 일부분만 뭐를 해요?
의식적으로 컨트롤을 해요.
그런데 여기서 또 문제가 일어납니다.
그 의식적인 컨트롤을 나의 어떤 자유의지로 또 행하느냐?
그렇지도 않아요.
다시 한 번 물어볼게요.
생각을 누가 하는 걸까요?
이게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마인드 세팅을 해야 되는데
마인드 세팅을 하는 그놈이 주체이겠죠. 안 그래요?
마인드 세팅을 만약에 내가 당한다면
나는 마인드 세팅을 당하는 어떤 대상의 입장인 것이고
마인드를 세팅한다라고 할 때
마인드를 세팅하는 어떤 그 주체가 있어야 될 거 아니에요.
그 주체가 마인드를 세팅해야 할 것 아닙니까?
왜냐하면 무언가를 세팅한다라는 건 능동적인 행위잖아요.
반응, 그러니까 리액션이 아니라
능동적인 어떤 행위, 액션이 돼야 되잖아요. 그죠?
근데 문제는 뭐냐면은
이제까지 우리는
내가 한 개인으로서의 [내가 마인드를 세팅을 한다, 생각을 한다]
그러니까 내가 한다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내가 세팅하고 바꾼다.]
하지만 하루에 우리가 하는 생각 중에서
얼마나 많은 생각을 우리가 컨트롤 할 수 있는지를
먼저 한번 들여다보면은
어이없는 결과에 봉착하게 돼요.
뭐냐면 거의 컨트롤 못해요.
만약에 우리가 생각의 주인이라면 뭘 할 수 있어야 돼요?
일단 적어도 생각을 컨트롤 할 수 있어야겠죠.
온오프가 가능해야 돼요.
그리고 뭡니까?
뒤에 오는 생각을 알아야 돼요.
어떤 생각이 나타날지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야 돼요. 그렇죠?
그게 생각이 주인이죠.
과연 그래요?
그리고 또 뭡니까?
나에게 불리한 생각을 굳이 할 필요가 없겠죠.
근데 어때요?
우리 우리 하루에 대부분을 나에게
유리한 생각으로 채워집니까? 불리한 생각으로 채워집니까?
불리한 생각으로 채워집니다.
이런 현상들을 조사를 해봐야 되는 거예요.
그리고 연구를 해봐야 되는 거예요.
결국 뭐냐면, 어떤 결론이냐면 되게 어이없는 결론이죠.
나는 마인드 세팅을 하려고
수업도 듣고, 지금 뭐 노력도 하고, 막 하고 있는데
문제는 알고 봤더니
이 마인드 세팅을 하는 그놈이 누군지를 알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떤 한 개인으로서의
내가 내 마인드를 세팅한다라는 것 자체가
일종의 착각일 수 있다라는 사실에 부딪히게 되는 겁니다.
생각을 내가 하는 거라고 말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에요.
생각을 내가 하는 거면은
껐다 켰다. 유리한 거 불리한 걸 골라서
내 입맛에 맞는 거를 고를 수 있어야 되고,
컨트롤이 가능해야 됩니다.
뒤에 올 생각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야 되고
과연 그런가?
생각은 봤더니
그때 그때 마치 복불복처럼 나타났다 사라집니다.
그런데 인간은 분명히 사유
그러니까 생각의 흐름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어요.
사유를 할 수 있어요.
고찰을 할 수가 있어요.
어떤 경우에는 명백히 ‘내가 생각을 하고 있다’라고 여기게 되어 있어요.
나타나는 현상 그 자체가.
이런 현상들 때문에
[내가 생각을 한다]라고 또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재미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애당초
내가 여기 앉아서 ‘마인드를 세팅해야겠다’라는 그 생각 자체는
또 어떻게 나타난 걸까요?
이런 부분에 대한 어떤 깊은 공부는
시간이 필요하고, 많은 빌드업이 필요한 건데
지금 지금 리마인드 하는
모이면서 제가 좀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마인드를 세팅하려고 그래도 세팅 자체가 어렵습니다.
소화하기도 힘들고 세팅 자체가 어려워.
근데 그 이유가 뭐냐면, 가장 큰 이유는
생각을 내가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내가 생각이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임의대로
‘이 자리에는 너를 놓고, 저 자리에는 너를 놓고’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배치할 수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힘든 거예요.
근데 많은 분들이 마인드 세팅을 사고방식
그러니까 생각 다르기 하기
뭐 마음 고쳐먹기라고 했을 때
생각과 감정 영역을 보통 이야기를 하잖아요.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느껴보기.
되게 말을 되게 쉽게 해요.
근데 문제는 뭐냐?
그게 어려워요.
여러분 어떻습니까?
생각의 물결, 그 생각의 파도가 쏟아져 올 때
혹은 생각의 소낙비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걸 피할 수 있어요?
어지간한 수행을 하지 않으면
그렇게 파도가 덮쳐오고, 생각에 비가 쏟아질 때
피하는 것 자체가 힘들어요.
이 상황에서 어떻게 마인드 세팅을 할 거냐, 이겁니다.
다시
생각을 내가 하는 게 아니라
생각이라는 건 그때그때 인연작용에 의해서
생겨났다 사라졌다 합니다.
그런데 그 인연작용을 들여다봤더니
연기 관계로 온 세상이 다 맞물려 있어요.
온 세상이 다 맞물려 있고, 그리고 또 뭡니까?
과거, 현재, 미래가 전부 다 맞물려 있어요.
존재했던, 존재하는, 그리고 앞으로 존재할
이 한 개인이 체험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말 그대로 우주 삼라만상 전체가
전부 다 연결이 되어 있어서
나의 생각 하나가 나타나요.
이게 무슨 이야기냐?
내 생각의 주인은 실제로 누구라는 이야기입니까?
이 한 개인이 아니라
세상 전체예요.
세상 전체라는 말에는
과거, 현재, 미래에도 들어가는 겁니다.
실제로 생각의 주인은 세상 전체예요.
그렇다면은 감정의 주인은 또 뭐겠어요?
세상 전체죠.
여러분 생각과 똑같이
감정도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죠.
물론 어떤 경우에는
내가 내 감정을 컨트롤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근데 그건 극히 일부분이에요.
빙산의 일각
그리고 그렇게 보일 뿐이지, 그것도.
그다음에 애당초
‘생각을 이렇게 바꿔야겠다’라는 그 생각은 왜 든 거예요?
어떤 원인과 조건이 있을 것 아닙니까?
완벽한 자유의지로 그런 의도가 나타난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 생각이 나타난 것도 아니잖아요.
감정도 마찬가지죠.
생각과 감정의 주인은 그냥 여러분들이 체험하는 세상 전체예요.
근데 이 세상 전체는
과거, 현재, 미래가 전부 다 맞물려 있습니다.
현실태와 가능태, 전부 다 맞물려 있습니다.
그럼, 이쯤 돼서 황당해지기 시작하죠.
그럼 나는 뭐지?
한 개인이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한 개인이 느끼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 얘는 뭐지?
애당초 마인드 세팅이라는 건 할 수나 있는 건가?
그래서 우리가 잘 구분해야 되는 건 뭐냐 하면
한 개인은 왜 필요하냐면요.
마인드라고 부르는 영역은
단순히 생각과 감정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
생각, 감정, 느낌, 반응, 의도, 행위, 규정에 이르는
일련의 정신심리작용, 그다음에 뭡니까?
[외적인 행위], 즉 [실천적 영역]까지도 전부 다 어디에 속해요?
마인드에 속해요.
그래서 이거를 영어식 표현이
마인드를 그대로 쓰면 그 의미가 조금 모자라고요.
차라리 그냥 [새로운 의식 세팅]이라고 부르는 게 나아요.
[새로운 의식을 세팅]을 한다라는 거는
의식에 의해서 알려지는 모든 대상
의식에 의해서 관찰되는 모든 대상을 새롭게 한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뭐예요?
생각, 감정, 느낌, 반응, 의도, 행위, 규정을
모두 새롭게 하는 게 마인드 세팅이에요.
그런데 생각, 감정, 느낌 등의 정신심리작용들의 경우에
방금 말씀드렸던 것처럼
내가 어떻게 컨트롤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네요.
한 개인이 컨트롤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네요.
그럼 한 개인이 실제로 하는 거는 뭐가 있을까요?
[생각] 내가 하는 게 아니에요.
만들어져 나타나는 거지. 인연작용에 의해서
[감정] 마찬가지예요.
[느낌] 마찬가지죠.
그다음에 문제 들어가는 거다.
[반응]은 어떨까요?
여기에서 한 개인에게 부여되는 자율성이나 어떤 선택권, 혹은 능동성
이것을 따질 때는
생각, 감정, 느낌의 영역보다
그 이후에 오는 반응, 의도 행위, 규정이라는 4가지 차원에서는
이 자율성이 조금 더 올라갑니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한 개인이
실제로 바꿀 수 있는 영역은 사실 뭐냐면은요.
-어떻게 반응하고
-그 반응에 따라서 어떻게 행위할 것이냐
어떤 반응하고 그 의도를 만들어서
그 의도에 따라서 어떻게 행위하고
어떻게 규정할 것이냐
그 앞에 있는 생각, 감정, 느낌이라는 퓨어한 정신심리작용 세 가지는
한 개인의 자율성이 더 낮아지는 거예요.
한 개인의 어떤 컨트롤 할 수 있는 그 지분이 낮아지는 거예요.
반면에 그 뒤에 오는
반응, 의도. 행위. 규정이라는 4가지 요소에 대해서는
한 개인의 지배력이 조금 더 올라갑니다.
이유가 뭘까요?
개인이 왜 나타났고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는 이 부분이에요.
개인이라는 거는 결국
고유성과 다양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마련된 어떤 하나의 채널인데
전체의 흐름 안에서 만들어진 생각, 감정, 느낌들이
한 개인을 통해서 표현될 때
반응 의도 행위 규정을 통해서 자율성이 부여되는 겁니다.
어느 정도 부여되는 거예요.
부여되어서 개인은 뭐 어떤 반응을 하는 거예요?
나타나는 생각 감정 느낌에 대해서
-그것을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선택을 해서
-어떤 의도를 만들어서
-어떻게 행위하고
-어떻게 규정짓고 결론 지을 것인가를
그러니까 즉 현실에서의 행위를 드러내기 위한 역할
통로로 있는 게 개인인 거예요.
그럼 여기에서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죠.
그러면 어찌 됐든 알았는데
“마인드 세팅을 한다고 앉아 있는 나는 도대체 뭐고
마인드 세팅은 그럼 도대체 누가 하는 건가?”
이 질문에 대해서는 여전히 풀리지가 않았잖아요.
그러니까 누가 생각하고 누가 느끼는 건가?
답 나왔어요? 근데 여러분.
개인이 하는 게 아니라면 누가 하는 겁니까?
전체가 하는 거예요.
절대 궁극 실재가
실질적인 생각 감정, 느낌의 주인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나기 위해 마련된 통로가
개인이라는 이야기인데
여러분들 개인은
실제로는 없고
실체를 가지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뭐가 있는 거예요?
각각의 고유성과 다양성,
개인이라는 고유성과 다양성으로 표현되는
아주 다양한 전체의 활동만 있는 거예요.
따라서 여러분들의 정체성이 어디로 가야 돼요?
절대 궁극 질재 쪽으로 가야 된다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뭐가 가능해져요?
생각 감정, 느낌을 컨트롤하고, 만들어내는 게 가능해져요.
마인드 세팅도 어디서 해야 되는 겁니까?
내 정체성이 거기에 닿아 있어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작은 나와 큰 나
에고와 셀프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었죠.
다시
개인은 생각, 감정, 느낌이 주인이 아니에요.
개인은 반응, 의도 행위 규정이 나타나기 위한 통로인 거예요.
따라서 내가 생각하고, 내가 느끼고
개인인 내가 그렇게 내 삶을 갖다가 쥐락펴락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는 사실을 먼저 받아들이셔야 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한 개인으로서의
어떤 욕심이나 정체성을 내려놓으셔야 돼요. 버리셔야 돼요.
근데 그러면 모든 걸 잃는 것 같죠?
느낌이 그렇지 않아요
한 개인을 잃고, 뭐를 얻게 되는 겁니까?
전체가 되는 거예요.
마인드 세팅이 어려운 이유는
생각의 주인이 내가 아니기 때문에 어려웠다.
그렇다면 내 정체성이 생각의 주인으로 뻗어갑니다.
여러분들의 셀프를 되찾고
여러분들의 어떤 절대 의식을 회복했다고 쳐요.
그러면 그때부터는 뭐가 가능한 거예요?
나라는 한 개인은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가 고유성과 다양성이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마련한
어떤 하나의 이 채널, 여러분들의 개인 채널
개인 채널을 통해서 전체가 활동하고 있다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그때 뭐가 되는 거예요?
생각과 감정과 느낌이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뭐가 가능해지는 거예요?
진정한 의미의 마인드 세팅이 가능해지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 마인드 세팅을 할 때
[내가 한다[라는 관념이 있으면은 어려워요.
뭐를 하자?
버리자.
여러분들이 ‘나는 한 개인이다’라는 관념에 지배받고 있을 때에는
새롭게 생각할 수도 없고
새롭게 반응하고, 의도하고, 행동할 수도 없어요, 사실은.
왜?
개인은 규정되어 나타난 결과물이기 때문에 그래요.
결과를 출력하는 통로이기 때문에 그래요.
그러면 우리는 정체성이 적어도 어디로 가야지
마인드 세팅을 할 수 있다라는 이야기예요?
여러분들의 셀프 영역까지 정체성이 확장이 되어 있어야
사실 마인드 세팅이 가능한 겁니다.
그런데 이거는 뭐 깨달음에 근접하는 영역이기 때문에
깊은 의식 수행이 없으면 힘들겠죠.
자 그러면은 평범한 일반 대중들한테 희망이 없는 건가?
그렇지 않죠.
여기에 답이 있는 거예요.
마인드 세팅을 제대로 하려면 그래서 뭐다?
생각, 감정, 뭐 그런 것만 바꾸는 게 다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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